目
魏가 發近郡兵萬五千人하여 使懷朔鎭將楊鈞으로 將之하여 送柔然可汗阿那瓌返國이어늘
右丞張普惠
가 上疏曰 蠕蠕
가 久爲邊患
이러니 今革面稽首
하고 束身歸命
하니 撫之可也
注+① 易革卦上六曰 “小人革面.” 程傳云 “小人雖未能心化, 亦革其面, 以從上之敎令也.”어니와
乃更自勞擾하여 興師郊甸之内하여 投諸荒裔之外하여 救累世之勍敵하고 資天亡之醜虜하니 臣未見其可也케이다
況今旱暵
이 方甚
이어늘 干時而動
이 其可濟乎
注+② 暵, 音漢, 日氣乾也.리잇가 脫有顚覆
이면 鈞之肉
을 其足食乎
잇가
宰輔가 専好小名하고 不圖安危大計하니 此微臣所以寒心者也니이다하되 弗聽하다
阿那瓌之南奔也
에 其從父兄婆羅門
이 討示發破之
하니 國人
이 推婆羅門
하여 爲彌偶可社句可汗
注+③ 彌偶可社句, 魏言安靜也.이어늘 魏
가 遣使者牒云具仁
하여 往諭之
하고 使迎阿那瓌
注+④ 牒云, 代北復姓. 具仁, 名也. 云, 一作雲.러라
具仁이 至柔然에 婆羅門이 殊驕慢하여 無遜避心하고 責具仁禮敬하되 具仁이 不屈커늘
婆羅門이 乃遣大臣하여 將兵二千하여 隨具仁迎阿那瓌하되 阿那瓌가 懼不敢進하여 請還洛陽하다
目
高車伊匐
이 擊柔然可汗婆羅門
하여 大破之
注+① 伊匐, 彌俄突之弟也.하니 婆羅門
이 帥十部落詣涼州
하여 請降於魏
한대
柔然餘衆이 相帥迎阿那瓌하니 阿那瓌가 乞兵送還이러라
詔中書門下博議
한대 涼州刺史袁翻曰 自國家都洛以來
로 蠕蠕高車
가 迭相吞噬
하여 始則蠕蠕授首
하고 旣而高車被擒
注+② 蠕蠕授首, 謂佗汗也. 高車被擒, 謂彌俄突也.이러니
今高車가 自奮於衰微之中하여 克雪讐恥나 誠由種類繁多하여 終不能相滅이니이다
自二虜交闘로 邊境無塵이 數十年矣니 此中國之利也니이다
今蠕蠕兩主
가 相繼歸誠
注+③ 兩主, 謂阿那瓌․婆羅門.하니 戎狄禽獸
가 終無純固之節
이나 然存亡繼絕
은 帝王本務
라
若棄而不受
면 則虧我大德
이요 若納而撫養
이면 則損我資儲
며 或全徙内地
면 則非直其情不願
이라 亦恐終有劉石之患
注+④ 劉石, 劉聰․石勒.이니이다
且蠕蠕尚存이면 則高車猶有内顧之憂하여 未暇窺窬上國이나 若其全滅이면 則高車跋扈之勢를 豈易可知리잇가
今蠕蠕雖亂이나 部落猶衆이라 處處棋布하여 以望舊主니 高車雖彊이나 未能盡服也니이다
愚謂蠕蠕二主를 竝宜存之하여 居阿那瓌於東하고 處婆羅門於西하여 分其民하여 各有攸屬이니이다
阿那瓌所居는 非所經見이라 不敢臆度이나 婆羅門은 請修西海故城하여 以處之니이다
西海
는 在酒泉之北
한대 去高車所居金山
에 千餘里
注+⑤ 此西海, 非王莽所置西海郡之西海. 但言在酒泉之北, 則別有西海故城也. 金山形如兜鍪, 其後突厥居金山之陽, 即此山.라 實北虜往來之衝要
요 土地沃衍
하여 大宜耕稼
注+⑥ 沃, 水之灌沃者. 衍, 地之平延者.하니
宜遣一良將하여 配以兵仗하여 監護婆羅門하고 因令屯田하여 以省轉輸之勞니이다
其北은 則臨大磧하여 野獸所聚니 使蠕蠕射獵하여 彼此相資하면 足以自固라
外以輔蠕蠕之微弱
하고 内亦防高車之畔渙
이니 此安邊保塞之長計也
注+⑦ 畔渙, 通鑑作畔援, 猶言跋扈也.니이다
若婆羅門이 能收離聚散하여 復興其國者인댄 漸令北轉徙渡流沙하면 則是我之外藩이요 高車勍敵이니 西北之虞가 可以無慮리이다
如其姦回反覆이라도 不過爲逋逃之寇니 於我何損哉리잇가
朝議
가 是之
라하여 乃置阿那瓌於吐若奚泉
하고 婆羅門於故西海郡
注+⑧ 吐若奚泉, 在懷朔鎭北無結山下.하다
目
【目】 北魏가 낙양 부근 郡의 병사 1만 5천 명을 징발한 뒤 懷朔鎭將 楊鈞에게 이들을 통솔해서 柔然의 可汗 郁久閭阿那瓌를 전송하여 귀국하게 하였는데,
右丞 張普惠가 疏를 올리기를 “蠕蠕이 오랫동안 변방의 걱정거리였는데 지금 태도를 바꿔 머리를 숙이고 몸을 묶어 항복해오니 그들을 감싸 안는 것이 옳은 일이긴 합니다만,
注+① ≪周易≫ 革卦 上六爻辭에 “小人이 얼굴을 바꾼다.” 하였는데, ≪程傳≫에 “小人이 비록 마음까지 교화되지는 못하였으나 겉모습이라도 바꿔 통치자의 지휘를 따른 것이다.” 하였다.
다시 스스로 수고스럽고 분주하게 畿內의 군사를 일으켜 먼 변방 밖에 투입하여, 누대에 걸친 호적수를 구원하고 하늘이 멸망시키려는 추한 오랑캐를 도우니, 신은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지금 한발이 매우 심한데, 시절을 거역하며 출동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注+② 暵은 음이 漢이며 날씨가 메마른 것이다. 만에 하나 실패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양균의 몸뚱이를 씹어먹은들 충분하겠습니까.
재상들이 오직 작은 명성만을 좋아하고 국가의 안위에 관한 큰 계책을 도모하지 않으니 이는 미천한 신이 한심해하는 바입니다.”라고 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아나괴가 남쪽으로 달아날 때 그의 사촌 형 郁久閭婆羅門이 郁久閭示發을 공격해 격파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바라문을 추대해서 彌偶可社句可汗으로 삼자,
注+③ 彌偶可社句는 北魏의 말로 安靜을 뜻한다. 북위가 사신 牒云具仁을 보내, 그를 잘 달래고 아나괴를 맞아들이게 하였다.
注+④ 牒云은 代北의 復姓이고 具仁은 이름이다. 云은 一本에는 雲으로 되어 있다.
첩운구인이 유연에 이르렀는데, 바라문이 매우 교만하여 가한의 지위를 사양할 마음이 없고 첩운구인에게 공경하는 예를 표할 것을 요구했으나 첩운구인이 굽히지 않았다.
바라문이 이에 대신을 파견하여 병사 2천을 이끌고 첩운구인을 따라가 아나괴를 맞이하게 하였으나, 아나괴가 두려운 나머지 감히 나가지 못하고 낙양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였다.
目
【目】 北魏 元叉와 劉騰이 胡太后를 유폐시킬 때 右衛將軍 奚康生이 그 모의에 참여한 이유로, 원차가 그에게 황제 좌우에 있는 호위 군사들을 통솔하게 하였다.
注+① 〈“領左右”는〉 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통솔하는 것이다.
혜강생의 아들 奚難當이 侯剛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니 후광의 아들은 원차의 매부이다. 원차가 혜강생과 인척 관계인 이유로 그를 대단히 신임하여 세 사람이 언제나 궁중에서 함께 지냈다. 혜강생은 성격이 거칠고 포악하여 원차가 점차 꺼려하자 혜강생 역시 조금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였다.
魏主(元詡)가 西林園에서 胡太后에게 朝會할 적에 문관과 무관들이 배석했는데, 술이 얼큰히 취해 춤을 출 때 혜강생이 力士舞를 선보이며
注+② 儛(춤추다)는 舞와 같으니, 勇士들이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서고 앉고 일어서는 기세를 지어서 춤추는 것이다. 춤사위가 빙 돌거나 꺾이는 즈음에 호태후를 뒤돌아보며 손을 들거나 발로 차고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끄덕이며 잡아 죽이려는 태도를 보이니,
注+③ “頷首”는 머리를 낮추는 것이다. 호태후가 그 의도를 알았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해질 무렵에 호태후가 황제를 대동하고 宣光殿에 묵으려는 것을
注+④ 宣光殿은 洛陽 北宮에 있는데, 元叉 등이 胡太后를 이곳에 유폐시킨 것이다. 후광이 저지하였는데, 혜강생이 말하기를 “至尊은 폐하(호태후)의 아들이시니 폐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호태후가 스스로 일어나 황제를 이끌고 堂을 내려갈 적에 황제가 앞서서 문으로 들어섰는데 좌우의 무리들이 앞다퉈 밀치면서 문을 닫을 수 없자, 혜강생이 千牛刀를 빼앗아 그들을 베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되었다.
注+⑤ 황제의 좌우에 千牛刀가 있는데 이를 防身刀라 한다. 千牛刀는 예리한 칼인데, 庖丁이 수천 마리 소를 해체했지만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데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
황제가 선광전에 오르자 혜강생이 술기운을 빌려 처분을 내리려 하다가 원차에게 저지당하였다. 光祿勲 賈粲이 태후를 속여 말하기를 “侍官들이 두려운 마음에 불안해하니 폐하께서 직접 위로해주셔야 합니다.
注+⑥ “懷恐”은 心懷가 두려움에 젖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호태후가 마침내 殿閣 아래로 내려가자 가찬이 황제를 부축해 동쪽 문으로 나가 顯陽殿으로 모시고 갔다가 되돌아와 호태후를 선광전에 유폐시켰다.
결국 원차가 혜강생을 살해하고 해난당을 추방한 뒤 劉騰을 司空으로 삼았다. 유등은 공사간의 청탁을 오직 전달되는 재화의 내용에 따라 결정하여, 六鎭을 각박하게 수탈하니 한 해 수입이 만억이었고, 이로 인해 원근의 사람들이 괴로워하였다.
注+⑦ 巨萬, 萬萬億이며 巨萬萬計는 萬萬萬(萬億)이다.
京兆王 元繼는 자신이 권세와 지위가 너무 높다고 해서 司徒를 崔光에게 양보하겠다고 청하자, 원계를 太保로, 최광을 사도로 삼았다.
目
【目】 高車의 伊匐이 柔然의 可汗 郁久閭婆羅門을 공격해 크게 격파하니,
注+① 바라문이 열 개 部落을 이끌고 涼州로 와서 北魏에 항복을 요청하였다.
柔然의 남은 무리들이 서로 이끌고 郁久閭阿那瓌를 맞이하니, 아나괴가 北魏에 병사를 파견해 귀국길을 호송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中書省과 門下省에게 널리 의논하게 하자, 涼州刺史 袁翻이 말하기를 “국가에서 洛陽에 도읍을 정한 이후 蠕蠕과 高車가 번갈아 가며 서로 병탄하여, 처음에는 연연이 頭領을 내주고 그 뒤에는 고차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注+② “蠕蠕授首”는 佗汗可汗의 경우를 말하고 “高車被擒”은 彌俄突의 경우를 말한다.
지금 고차가 쇠퇴한 가운데서 떨치고 일어나 지난 치욕을 씻긴 했으나 진실로 종족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끝내 상대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두 오랑캐가 서로 싸우면서부터 변경이 별문제 없이 지내온 것이 수십 년이 되었으니 이는 中國의 이익입니다.
지금 연연의 두 군주가 연이어 우리에게 귀순하였는데
注+③ 두 군주는 阿那瓌와 婆羅門을 말한다. 禽獸와 다름없는 戎狄이 끝내 순수하고 견고한 절의는 없다고 해도, 망해가는 나라를 되살려주고 끊어져가는 종족을 이어주는 것은 帝王의 본무입니다.
만일 저버리고 받아주지 않으면 우리의 큰 덕망을 망가뜨리는 일이고, 〈바라문을〉 들여보내 돌봐주게 되면 우리의 비축한 재물을 손상시키게 되며, 모두를 내지로 옮기게 되면 그들이 내심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
과
의 우환이 발생할까 염려됩니다.
注+④ 劉石은 劉聰과 石勒이다.
그리고 연연이 여전히 보존한다면 고차는 여전히 국내를 돌아봐야 하는 걱정거리가 있어서, 上國(북위)을 엿볼 겨를이 없게 되지만, 만일 전멸시키면 고차의 발호하는 형세를 어찌 다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연연이 혼란에 빠져 있긴 하나 여전히 많은 부락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옛 군주를 기다리고 있으니, 고차가 비록 강성하다 해도 그들을 모두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연연의 두 군주를 모두 존립시켜주어 아나괴는 동쪽에 머물게 하고 바라문은 서쪽에 머물게 해서, 그 백성들을 나누어서 각기 소속을 두게 해야 합니다.
아나괴가 머물 곳은 제가 본 적이 없어서 감히 억지로 유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라문은 옛 西海城을 수리해 머물도록 청합니다.
西海는 酒泉 북쪽에 있는데 고차가 사는 金山과 천여 리가 됩니다.
注+⑤ 여기서의 西海는 王莽이 설치한 西海郡의 西海가 아니다. 다만 酒泉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별도로 西海故城이 있는 것이다. 金山은 모습이 투구처럼 생겼다. 훗날 突厥이 金山 남쪽에 살았는데, 바로 이 산이다. 실로 북쪽 오랑캐가 왕래하는 요충지이고 토지가 비옥하고 평평하여 농사짓기에 아주 알맞습니다.
注+⑥ 沃은 물이 젖는 것이고, 衍은 땅이 평평하게 펼쳐진 것이다.
마땅히 능력 있는 장수를 파견해서, 그 군대에 병기를 지급하여 바라문을 감독하고 보호하도록 하고 그대로 그들로 하여금 屯田을 운영하게 해서 운송의 수고를 덜게 해야 합니다.
그 북쪽은 大莫(고비사막) 부근으로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연연에게 이들을 사냥하며 살도록 하면서 피차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충분히 스스로 견고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밖으로는 연연의 미약함을 보호하고 안으로는 고차의 발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변방을 안정시키고 보호하는 장구한 계책입니다.
注+⑦ “畔渙”은 ≪資治通鑑≫에서 “畔援”으로 썼는데 跋扈라는 말과 같다.
만약 바라문이 흩어진 무리들을 모아 그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할 경우엔 그들을 점차 북쪽으로 옮겨 사막을 넘어가게 하면 우리의 바깥 울타리가 되고, 고차의 강한 적이 되리니 서북 지역의 걱정거리가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간악한 짓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한낱 도망을 일삼는 도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우리에게 무슨 손해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조정의 의견이 이를 옳다고 하여, 아나괴를 吐若奚泉에, 바라문을 옛 서해군에 배치하였다.
注+⑧ 吐若奚泉은 懷朔鎭 북쪽 無結山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