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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회계왕會稽王 사마욱司馬昱이 환온桓溫의 아우 환운桓雲을 예주자사豫州刺史로 삼고자 하였는데, 복야僕射 왕표지王彪之가 말하기를
“환온이 상류에 있어서 이미 천하(
강동江東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였는데, 그 아우가 다시 서쪽
번진藩鎭에
注+① 東晉의 豫州는 長江의 서쪽에 진영을 두었고, 建康은 장강의 동쪽에 있으므로 예주를 西藩이라 한 것이다. 처하면 병권이 한 가문에 몰리게 되니, 뿌리를 깊게 하고 꼭지를 튼튼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였다.
사마욱은 마침내 다시 사만謝萬으로 환운을 대신하게 하였다.
왕희지王羲之가 환온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사만은 재주가 뛰어나
세무世務에 통달하니,
注+② “才流經通”은 그의 재주가 세상을 경륜할 만하여 당시의 同流 중에 世務에 통달한 자가 됨을 말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낭묘廊廟(조정)를 주관하게 하면 이는 진실로 후생 중에 빼어난 자이어서 적합하지만, 이제 그로 하여금 몸을 굽혀 병란이 난 뒤의
번진藩鎭을 다스리게 한다면 재주에 맞지 않는 일을 바꾸어 시키는 것입니다.”
注+③ 〈“今以之俯順荒餘 則違才易務矣”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邊郡의 병사와 백성들이 모두 병란을 겪은 뒤에 피폐하고 병들어 소생하지 못해서 난폭하고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고개를 숙이고 나아가 유순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謝萬은 그러한 재주가 아니니, 그를 등용한다면 재주를 어김이 되는 것이다. 務는 일이다. 사만은 廊廟에 처할 수 있는 재주를 가졌는데 그로 하여금 변방 고을에 처하게 함은 일을 바꾸어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왕희지는〉 또다시 사만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그대가 고매한
재간才幹과 하찮은 일을 좋아하지 않는
기품氣品를 가지고 몸을 굽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자들과 일을 함께하면 진실로 마음을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注+④ 邁는 멂이다. 〈“以君邁往不屑之韻……誠難爲意也”는〉 그가 고매함을 自矜하여 軍中의 자잘한 사무를 좋게 여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群辟”은 여러 관료와 모든 제후들이다.
그러나 이른바 통달한 지식이란 것은 바로 일에 따라 자신의 뜻을 행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것이니, 원컨대 그대는 항상 사졸士卒들과 고락苦樂을 함께하면 지극히 선善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사만은 그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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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맹王猛이 날로 친애와 총애를 받아 권력을 행사하니, 훈구勳舊들이 그를 많이 미워하였다. 번세樊世는 본래 저족氐族의 호걸로 진주秦主 부건苻健을 보좌하여 관중關中을 평정하였는데,
왕맹에게 이르기를 “우리들이 밭을 갈아놓자 그대가 그 곡식을 먹는가.” 하니, 왕맹이 말하기를 “다만 그대로 하여금 밭을 갈게 할 뿐만이 아니요, 또 그대로 하여금 밥을 짓게 하여 먹겠다.” 하였다.
번세가 크게 노하여 “마땅히 너의 머리를 장안성長安城 성문에 매달아놓을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나는 세상에 살지 않겠다.” 하였다.
왕맹이 이 사실을 부견에게 아뢰자, 부견이 말하기를 “반드시 이 늙은 저족氐族을 죽인 뒤에야 백관百官을 엄숙히 할 수 있다.” 하였다.
마침 번세가 들어가 일을 말하면서 왕맹과 부견의 앞에서 논쟁을 벌였다. 번세가 일어나 왕맹을 공격하려고 하자, 부견이 노하여 번세를 참수하니, 이에 여러 신하들이 왕맹을 볼 적에 모두 숨을 죽였다.
注+① “屛息”은 숨을 거두어 감춤을 이르니, 몹시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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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순선荀羨이 가견賈堅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대로 진晉나라의 신하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근본을 배반하고 항복하지 않는가?” 하자,
가견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제 스스로 중화를 버린 것이지 우리가 배반한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이미 주인이 없으니, 강하면 그에게 목숨을 의탁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남을 섬겼으니, 어찌 절개를 바꾸겠는가.
나는 어려서
속수束脩의
예禮를 행하여 스스로 뜻을 세우고서
注+① “束脩自立”은 스승을 따라 就學하면서 곧 자립함에 뜻을 둠을 말한 것이다. 脩는 脯이니, 포 10마리를 束이라 한다. 옛날 스승을 따라 배울 적에 반드시 束脩를 가지고 예를 표하였다. 혹자는 “자신을 검속하고 修飭하여 몸을 세움을 이른다.” 하였다. 조趙나라(
후조後趙)와
연燕나라(
전연前燕)를 지나오면서 일찍이 뜻을 바꾸지 않았으니,
군君이 어찌 나에게 급박하게 항복하라고 말하는가.” 하자,
순선이 노하여 그를 붙잡아 빗속에 버려두니, 며칠 만에 분노하다가 졸卒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