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代郞中令張武等曰 漢大臣이 習兵하여 多詐하니 願稱疾毋往하여 以觀其變하소서
秦失其政에 豪傑竝起호대 卒踐天子之位者는 劉氏也니 天下絶望이 一矣요
高帝封王子弟
에 地犬牙相制
하니 此所謂磐石之宗也
라 天下服其彊
이 二矣
注+犬牙相制, 言封子弟, 境土交接, 若犬之牙, 不正相當而相銜入也. 磐, 固也. 謂如磐據之大石, 不可拔也.요
除秦苛政하고 約法令, 施徳惠하여 人人自安하니 難動搖三矣라
夫以呂太后之嚴으로 立三王하여 擅權制나 然而太尉 以一節로 入北軍하여 一呼에 士皆左袒하니 此乃天授요 非人力也라
今大臣
이 雖欲爲變
이나 百姓弗爲使
注+下爲去聲, 下具爲同.라
故로 因天下之心하여 而欲迎立大王이니 大王은 勿疑也하소서
目
[目] 전에
태후太后가
불제祓祭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지도軹道를 지나올 적에
注+불祓은 음이 불弗이니, 나쁜 것을 제거하는 제사이다.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에 “3월 상사일上巳日에 관민官民이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깨끗이 씻는 것을 세탁불洗濯祓이라 하니, 묵은 때와 질병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였다.창견蒼犬(푸른 개)과 같은 동물이 와서 겨드랑이를 잡아당기는 꿈을 꾸었다.
注+극撠은 음이 극戟이니, 잡아당김을 말한다. 액掖은 음이 역亦이니, 세속에서 액腋으로 쓰는데, 팔꿈치와 옆구리 사이이다.
점을 치니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가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注+수祟는 사수思遂의 절切이니, 신神이 내리는 화禍이다. 마침내 겨드랑이가 아픈 증세가 생겨 병이 위독해졌다.
이에 여록呂祿을 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아 북군北軍에 있게 하고 여산呂産은 남군南軍에 있게 하고, 경계하기를,
“내가 붕崩하면 대신大臣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우니, 반드시 군대를 점거하고 궁궐을 호위하며, 삼가 상여喪輿를 전송해서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붕崩하였다.
綱
[綱] 제왕齊王 유양劉襄이 군대를 동원하여 여러 여씨呂氏들을 토벌하자, 상국相國 여산呂産이 대장군大將軍 관영灌嬰으로 하여금 제왕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관영이 형양滎陽에 주둔해서 제齊나라와 연합하였다.
9월에 태위太尉 주발周勃, 승상丞相 진평陳平,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이 여산呂産과 여록呂祿 및 여러 여씨呂氏들을 토벌하니, 제왕과 관영의 군대가 모두 해산하였다.
目
[目] 이때 태위太尉 주발周勃은 군대를 주관할 수가 없었다.
역상酈商은 늙어 병들었고 그의 아들 역기酈寄는 여록呂祿과 친하였다.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이 사람을 보내어 역상을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서 역기로 하여금 여록을 속여 설득하게 하기를,
注+겁劫은 협박하여 인질로 삼는 것이다. 역기酈寄의 아버지 역상酈商을 협박하여 인질人質로 삼고, 여록呂祿에게 가서 설득하지 않으면 장차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세說(설득하다)는 음이 세稅이다. “
고제高帝가
여후呂后와 함께
천하天下를 평정해서
유씨劉氏로 세운 왕은 아홉이고
여씨呂氏로 세운 왕은 셋이니, 모두
대신大臣들의
논의論議를 거쳤고
제후諸侯들 역시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注+“구왕九王(아홉 명의 왕)”은 초왕楚王 유교劉交, 대왕代王 유항劉恒,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 오왕吳王 유비劉濞, 낭야왕琅邪王 유택劉澤, 제왕齊王 유양劉襄, 상산왕常山王 유조劉朝, 회양왕淮陽王 유무劉武, 제천왕濟川王 유태劉太이고, “삼왕三王(세 명의 왕)”은 양왕梁王 여산呂産, 조왕趙王 여록呂祿, 연왕燕王 여통呂通이다.
이제 태후太后께서 붕崩하시고 황제皇帝께서 어리신데, 족하足下가 급히 봉국封國인 조趙나라로 가지 않고 끝내 군대를 거느리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대신과 제후들에게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어찌하여 장수의 관인官印을 돌려주어 군대를 태위太尉에게 소속시키고 양왕梁王(여산呂産)에게 청하여 정승의 관인을 돌려보낸 뒤에 대신들과 맹세하고 봉국封國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면 제齊나라의 군대는 반드시 해산할 것이고, 족하足下는 베개를 베고 편안히 지내며 천 리의 땅에서 왕 노릇 할 것이니, 이는 만세萬世토록 이로운 일입니다.” 하였다.
여록이 그 계책을 옳게 여겼으나, 여러 여씨의 노인老人들이 간혹 좋은 계책이 아니다고 하여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目
[目]
양씨楊氏(
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注+반고班固는 동한東漢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 사람이니, 《전한서前漢書》를 지었다.
“여러 여씨呂氏가 병권兵權을 장악하여 유씨劉氏를 위태롭게 하려고 도모하였으니, 충신忠臣들이 모두 이를 갈며 분하게 여겼다.
역기酈寄가 여록呂祿과 친하였으나, 역상酈商 또한 이것을 금하지 못하였다.
비록 여록을 꺾었으나 〈역기가〉 결국 협박을 받은 뒤에 따라서 한 일이니, 공功이 또한 그 잘못을 속죄贖罪할 수 없다.
친구를 팔아먹었는지의 여부는 논할 바가 아니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는 태위太尉의 명령은 잘못된 것이다.
만일 군사軍士들이 명령에 응하지 않았거나 혹은 모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었거나 혹 반만 참여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이르시기를, ‘이때에는 곧바로 의리로 몰아붙여야 할 뿐이고, 따를 것인가의 여부를 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더구나 장수와 군졸의 관계는 팔과 손가락의 관계와 같으니, 유씨劉氏를 위하느냐 위하지 않느냐를 물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굳이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目
[目] 여러
대신大臣들이 상의하기를 “
소제少帝와
들은 모두 진짜
효혜황제孝惠皇帝의 아들이 아니고,
여후呂后가 다른 사람의 아들을 속여 효혜황제의 아들이라 이름하고는 이들을 세워
여씨呂氏를 강하게 한 것이다.
가령 이들이 장성하여 권세를 부린다면 우리들은
주멸誅滅되어 종자도 남지 않을 것이다.”
注+〈“무류無類”는〉 주멸誅滅을 당해 남은 종자가 없게 됨을 말한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제왕齊王은 고제高帝의 장손長孫이니, 세울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씨가 거의 종묘宗廟를 위태롭게 할 뻔하였다.
지금 제왕의 장인인
사균駟鈞은 갓을 쓴 호랑이처럼
잔학殘虐한 사람이니,
注+〈“호이관虎而冠”은〉 성품이 호랑이처럼 흉악凶惡하면서 의관을 차려 입은 자를 말한다. 만일 제왕을 세우면 또 다시 여씨처럼 될 것이다.
대왕代王은 고제의 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덕이 있으며, 태후太后의 집안은 박씨薄氏인데 삼가고 선량하다.” 하여, 마침내 대왕代王을 불렀다.
目
[目] 대代나라의 낭중령郞中令 장무張武 등이 말하기를, “한漢나라 대신大臣들은 병사兵事에 익숙하여 속임수가 많으니, 원컨대 병을 칭탁하고 가지 말아서 그 변화를 관찰하소서.” 하였다.
그러나
중위中尉 송창宋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注+송창宋昌은 송의宋義의 손자이다.
“진秦나라가 정권을 잃자 호걸豪傑들이 함께 일어났지만 끝내 천자의 지위에 오른 자는 유씨劉氏이니, 천하 사람들이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끊은 것이 첫 번째입니다.
고제高帝가
자제子弟를 왕으로 봉할 적에 땅이 개의 이빨처럼 맞물려 서로 견제하니, 이것은 이른바 반석처럼 굳건한
종친宗親이라는 것이어서 천하가 그 강함에 복종함이 두 번째입니다.
注+“견아상제犬牙相制”는 자제子弟를 봉할 적에 그 국경이 서로 맞물린 것이 마치 개의 이빨과 같아서 바르게 서로 맞지 않고 서로 맞물려 들어감을 말한다. 반磐은 견고하다는 뜻이니, 〈“반석磐石”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큰 바위와 같아서 뽑을 수 없음을 이른다.
우리 한漢나라는 진秦나라의 가혹한 정사를 제거하여 법령法令을 줄이고 은덕을 베풀어서 사람마다 스스로 편안해하니, 동요시키기 어려운 것이 세 번째입니다.
여태후呂太后의 위엄으로 여씨呂氏 세 사람을 왕王으로 세워 통치의 권력을 독단하였으나, 태위太尉가 부절 하나를 가지고 북군北軍에 들어가서 한 번 호령하자 군사들이 모두 왼쪽 어깨를 드러냈으니, 이는 하늘이 준 것이지 인력人力이 아닙니다.
이제 대신들이 비록 변란을 일으키고자 하더라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注+아래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구위具爲”의 위爲도 같다.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인하여 대왕大王을 영립迎立하려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