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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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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年(B.C. 180)
신유년(B.C. 180)
八年이라
나라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 8년이다.
冬十月 太后立呂通爲燕王注+通, 台之子也.하다
[綱] 겨울 10월에 태후太后여통呂通을 세워 연왕燕王으로 삼았다.注+여통呂通여태呂台의 아들이다.
◑ 夏 江漢水溢하다
[綱] 여름에 장강長江한수漢水가 범람하였다.
◑ 秋七月
[綱] 가을 7월에 태후太后하였다.
遺詔하여 産爲相國하고 祿女爲帝后하고 審食其爲帝太傅하다
유조遺詔를 남겨서 여산呂産상국相國으로 삼고 여록呂祿의 딸을 황후皇后로 삼고 심이기審食其를 황제의 태부太傅로 삼게 하였다.
太后祓하고 還過軹道注+祓, 音弗, 除惡之祭. 後書禮儀志 “三月上巳, 官民皆絜於東流水上, 曰洗濯祓, 除去宿垢疾疢.할새 見物如蒼犬 來撠掖注+撠, 音戟, 謂拘持之也. 掖, 音亦, 俗作腋, 肘脅之間.이어늘
[目] 전에 태후太后불제祓祭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지도軹道를 지나올 적에注+은 음이 이니, 나쁜 것을 제거하는 제사이다.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에 “3월 상사일上巳日관민官民이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깨끗이 씻는 것을 세탁불洗濯祓이라 하니, 묵은 때와 질병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였다.창견蒼犬(푸른 개)과 같은 동물이 와서 겨드랑이를 잡아당기는 꿈을 꾸었다.注+은 음이 이니, 잡아당김을 말한다. 은 음이 이니, 세속에서 으로 쓰는데, 팔꿈치와 옆구리 사이이다.
卜之하니 云趙王如意爲祟注+祟, 思遂切, 神禍也.라하더니 遂病掖傷하여 病甚이라
점을 치니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가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였는데,注+사수思遂이니, 이 내리는 이다. 마침내 겨드랑이가 아픈 증세가 생겨 병이 위독해졌다.
乃令祿爲上將軍하여 居北軍하고 産居南軍하고 戒曰
이에 여록呂祿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아 북군北軍에 있게 하고 여산呂産남군南軍에 있게 하고, 경계하기를,
我崩이면 大臣 恐爲變이니 必據兵衛宮하고 愼毋送喪하여 爲人所制라하더니 至是하다
“내가 하면 대신大臣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우니, 반드시 군대를 점거하고 궁궐을 호위하며, 삼가 상여喪輿를 전송해서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하였다.
[綱] 제왕齊王 유양劉襄이 군대를 동원하여 여러 여씨呂氏들을 토벌하자, 상국相國 여산呂産대장군大將軍 관영灌嬰으로 하여금 제왕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관영이 형양滎陽에 주둔해서 나라와 연합하였다.
九月 太尉勃, 丞相平, 朱虛侯章 誅産祿及諸呂하니 齊王灌嬰兵 皆罷하다
灌嬰灌嬰
9월에 태위太尉 주발周勃, 승상丞相 진평陳平,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여산呂産여록呂祿 및 여러 여씨呂氏들을 토벌하니, 제왕과 관영의 군대가 모두 해산하였다.
諸呂欲爲亂호대 未敢發이러니 朱虛侯以呂祿女爲婦 知其謀하고 陰告其兄齊王襄하여 令發兵西注+西, 謂西詣京師.하고 己爲內應하여 以誅諸呂하고 立齊王爲帝하니
[目] 여러 여씨呂氏변란變亂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감히 발동發動하지 못하였는데,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여록呂祿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므로 그들의 음모陰謀를 알고는 형인 제왕齊王 유양劉襄에게 은밀히 말해서, 군대를 출동하여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注+西는 서쪽으로 경사京師(장안長安)에 나아감을 이른다. 자신은 내응內應해서 여러 여씨들을 토벌하고 제왕齊王을 세워 황제皇帝로 삼기로 하였다.
於是 齊王 發兵擊濟南하고 遺諸侯王書하여 陳諸呂罪注+濟南, 本屬齊, 元年割以封呂台, 台卒, 産嗣封.하다
이에 제왕이 군대를 출동하여 제남濟南을 공격하고 제후왕諸侯王들에게 글을 보내어 여러 여씨들의 죄상을 열거하였다.注+제남濟南은 본래 나라에 속했는데, 원년元年에 땅을 떼어 여태呂台를 봉하였고, 여태呂台하자 여산呂産이 이어서 봉해진 곳이다.
産等 遣灌嬰하여 將兵擊之러니 至滎陽하여 謀曰 諸呂欲危劉氏어늘 今我破齊하면 是益其資也라하고
여산呂産 등이 관영灌嬰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제왕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관영이 형양滎陽에 이르러 상의하기를 “여러 여씨가 유씨劉氏를 위태롭게 하려고 하는데, 지금 내가 나라를 격파하면 이는 그들의 밑천을 더해주는 것이다.” 하고,
乃諭齊王하여 與連和하여 以待呂氏變하여 共誅之注+變, 謂發動也.하니 齊王 乃還兵西界하여 待約하다
마침내 제왕에게 권유해서 함께 연합하여 여씨가 변란을 일으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토벌하자고 하니,注+은 발동함을 이른다. 제왕이 마침내 서쪽 경계로 회군하여 약속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太尉勃 不得主兵이라
[目] 이때 태위太尉 주발周勃은 군대를 주관할 수가 없었다.
酈商 老病하고 其子寄與祿善이라
역상酈商은 늙어 병들었고 그의 아들 역기酈寄여록呂祿과 친하였다.
平, 勃 使人劫商하여 令寄紿說祿曰注+劫者, 劫質也, 蓋劫寄父商爲質, 諭以不行說祿, 將殺之也. 說, 音稅. 高帝與呂后 共定天下하여 劉氏所立 九王이요 呂氏所立 三王이니 皆大臣之議 諸侯亦以爲宜注+九王, 楚王交‧代王恒‧淮南王長‧吳王濞‧琅邪王澤‧齊王襄‧常山王朝‧淮王武‧濟川王太. 三王, 梁王産‧趙王祿‧燕王通.
진평陳平주발周勃이 사람을 보내어 역상을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서 역기로 하여금 여록을 속여 설득하게 하기를,注+은 협박하여 인질로 삼는 것이다. 역기酈寄의 아버지 역상酈商을 협박하여 인질人質로 삼고, 여록呂祿에게 가서 설득하지 않으면 장차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설득하다)는 음이 이다.고제高帝여후呂后와 함께 천하天下를 평정해서 유씨劉氏로 세운 왕은 아홉이고 여씨呂氏로 세운 왕은 셋이니, 모두 대신大臣들의 논의論議를 거쳤고 제후諸侯들 역시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注+구왕九王(아홉 명의 왕)”은 초왕楚王 유교劉交, 대왕代王 유항劉恒,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 오왕吳王 유비劉濞, 낭야왕琅邪王 유택劉澤, 제왕齊王 유양劉襄, 상산왕常山王 유조劉朝, 회양왕淮陽王 유무劉武, 제천왕濟川王 유태劉太이고, “삼왕三王(세 명의 왕)”은 양왕梁王 여산呂産, 조왕趙王 여록呂祿, 연왕燕王 여통呂通이다.
今太后崩하고 帝少어늘 而足下不急之國하고 乃將兵留此하면 爲大臣諸侯所疑하리니
이제 태후太后께서 하시고 황제皇帝께서 어리신데, 족하足下가 급히 봉국封國나라로 가지 않고 끝내 군대를 거느리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대신과 제후들에게 의심을 사게 될 것입니다.
何不歸將印하여 以兵屬太尉하고 請梁王歸相印하고 與大臣盟而之國
어찌하여 장수의 관인官印을 돌려주어 군대를 태위太尉에게 소속시키고 양왕梁王(여산呂産)에게 청하여 정승의 관인을 돌려보낸 뒤에 대신들과 맹세하고 봉국封國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까.
齊兵必罷 足下高枕而王千里하리니 萬世之利也니라
이렇게 하면 나라의 군대는 반드시 해산할 것이고, 족하足下는 베개를 베고 편안히 지내며 천 리의 땅에서 왕 노릇 할 것이니, 이는 만세萬世토록 이로운 일입니다.” 하였다.
祿 然其計호대 諸呂老人 或以爲不便이라하여 猶豫未決하다
周勃周勃
여록이 그 계책을 옳게 여겼으나, 여러 여씨의 노인老人들이 간혹 좋은 계책이 아니다고 하여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九月 平陽侯窋 見産하니 郞中令賈壽使從齊來注+使, 所吏切.하여 具以灌嬰與齊楚合從으로 告産하고 且趣産急入宮하다
[目] 9월에 평양후平陽侯 조줄曹窋여산呂産을 만나보았는데, 마침 낭중령郞中令 가수賈壽사자使者가 되어 나라에서 돌아와注+使(사신이 되다)는 소리所吏이다.관영灌嬰나라, 나라와 연합한 사실을 자세히 여산에게 말하고, 또 여산에게 재촉하여 급히 입궁入宮하게 하였다.
聞其語하고 馳告平勃한대 欲入北軍이나 不得이라
조줄이 이 말을 듣고 달려가 진평陳平주발周勃에게 고하였는데, 주발이 북군北軍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乃令襄平侯紀通으로 持節하여矯內勃北軍注+通, 信之子也. 矯, 詐也, 詐以天子之命也. 內, 讀曰納.하고 復令寄說祿解印하여 以兵授勃하다
이에 양평후襄平侯 기통紀通으로 하여금 부절符節을 가지고 황제의 명이라고 사칭하여 주발을 북군北軍에 들이게 하고,注+기통紀通기신紀信의 아들이다. 는 속임이니, 천자天子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들이다)은 으로 읽는다. 다시 역기酈寄로 하여금 여록呂祿을 설득해서 관인官印을 풀어 병권을 주발에게 주게 하였다.
入軍門하여 令曰 爲呂氏어든 右袒하고 爲劉氏어든 左袒注+爲, 去聲.하라하니 軍中 皆左袒이라
주발이 군문軍門에 들어가 명령하기를, “여씨呂氏를 위하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劉氏를 위하면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하니, 군중軍中이 모두 왼쪽 어깨를 드러내었다.
이나 尙有南軍이라
그러나 아직도 남군南軍이 남아 있었다.
乃召朱虛侯章하여 佐勃한대 令章監軍門하고 令窋告衛尉하여 毋入産殿門注+窋, 將丞相之命, 以告衛尉, 使毋納産也.하다
진평陳平이 마침내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을 불러서 주발을 돕게 하자, 주발이 유장으로 하여금 군문軍門을 감독하게 하고 조줄로 하여금 위위衛尉에게 고하여 여산을 전문殿門에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注+조줄曹窋승상丞相(진평陳平)의 을 받들어 위위衛尉에게 고해서 여산呂産을 들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欲入宮爲亂이러니 至殿門하여 弗得入하고 徘徊往來注+徘徊, 彷徨不進之意.어늘
[目] 여산呂産입궁入宮해서 변란을 일으키고자 하였는데 전문殿門에 이르러 들어갈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였다.注+배회徘徊”는 방황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뜻이다.
尙恐不勝하여 未敢公言誅之注+公言, 猶明言也하고
주발周勃은 아직도 여러 여씨呂氏를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그를 토벌하라고 명백하게 말하지 못하였다.注+공언公言”은 분명히 말하는 것과 같다.
乃謂章曰 急入宮하여 衛帝하라하고 予卒千餘人하여 入宮門하여 擊産殺之하다
마침내 유장劉章에게 말하기를 “급히 입궁入宮하여 황제를 호위하라.” 하고, 군졸軍卒 1천여 명을 주어 궁문宮門으로 들어가 여산을 공격하여 죽이게 하였다.
帝遣謁者하여 持節勞章注+勞, 去聲.이어늘 欲奪其節이나 不得하고 則從與載하여 因節信하여 馳斬長樂衛尉呂更始하고 還報勃注+從與載, 謂就謁者, 同車共載. 因節信, 謂因謁者所持之節, 用爲信也. 章與謁者同車, 故爲門者所信, 得入長樂宮. 更始, 呂后弟子.한대
황제가 알자謁者를 보내어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유장을 위로하게 하였는데,注+(위로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유장이 그 부절符節탈취奪取하고자 했으나 탈취하지 못하고는 곧바로 알자謁者를 따라가서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는 알자의 부절을 〈그래도 신표信標로 삼아〉 수레를 달려가서 장락궁長樂宮위위衛尉 여경시呂更始의 목을 베고 돌아와 주발에게 보고하였다.注+종여재從與載”는 알자謁者에게 가서 같은 수레에 함께 탄 것을 이른다. “인절신因節信”은 알자가 가지고 있는 부절符節을 인하여 그대로 신표信標로 삼음을 이른다. 유장劉章이 알자와 함께 수레를 같이 탔기 때문에 문지기에게 신임을 받아 장락궁長樂宮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경시呂更始여후呂后 아우의 아들이다.
起拜賀하고 遂遣人分部하여 悉捕諸呂男女하여 無少長 皆斬之注+分, 扶問切.하고 而廢魯王張偃하고 遣章하여 告齊王罷兵하니 灌嬰兵亦罷歸하다
주발이 일어나 절하며 축하하고는, 마침내 사람들을 여러 부서로 나누어 파견해서 여씨呂氏남녀男女들을 모두 체포하여 어린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모두 목을 베고,注+(나누다, 구분하다)은 부문扶問이다.노왕魯王 장언張偃을 폐위시키고, 유장을 보내어 제왕齊王에게 고하고 군대를 해산하게 하니, 관영灌嬰의 군대 역시 해산하여 돌아갔다.
班固曰注+固, 東漢扶風安陵人, 作西漢書.
[目]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孝文時 天下以酈寄爲賣友라하니 夫賣友者 謂見利而忘義也
효문제孝文帝 때에 천하天下 사람들은 역기酈寄를 보고 친구(여록呂祿)를 팔아먹은(배신한) 사람이라 하였는데, 친구를 팔아먹었다는 것은 이익을 보고 의리를 잊은 것을 말한다.
若寄 父爲功臣而又執劫하니
역기로 말하면 아버지가 공신功臣인데다 또 협박까지 당한 상태였다.
雖摧呂祿이나 以安社稷하니 誼存君親 可也니라
비록 친구인 여록呂祿을 꺾었지만 사직社稷을 안정시켰으니, 의리상 군주와 아버지를 보존시킨 것이 옳았다.”
楊氏曰
[目] 양씨楊氏(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반고班固동한東漢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 사람이니, 《전한서前漢書》를 지었다.
諸呂擅兵하여 謀危劉氏하니 忠臣所共切齒어늘
“여러 여씨呂氏병권兵權을 장악하여 유씨劉氏를 위태롭게 하려고 도모하였으니, 충신忠臣들이 모두 이를 갈며 분하게 여겼다.
寄乃與之友善이로되 而商亦莫之禁也
역기酈寄여록呂祿과 친하였으나, 역상酈商 또한 이것을 금하지 못하였다.
雖摧呂祿이나 乃以劫而後하니 功亦不足以贖其罪矣
비록 여록을 꺾었으나 〈역기가〉 결국 협박을 받은 뒤에 따라서 한 일이니, 이 또한 그 잘못을 속죄贖罪할 수 없다.
賣友與否 非所論也니라
친구를 팔아먹었는지의 여부는 논할 바가 아니다.”
胡氏曰
孝文帝 劉恒孝文帝 劉恒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太尉左袒之令 非也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는 태위太尉의 명령은 잘못된 것이다.
有如軍士不應이어나 或皆右袒이어나 或參半焉이면 則如之何
만일 군사軍士들이 명령에 응하지 않았거나 혹은 모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었거나 혹 반만 참여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 할 것인가.
程子謂是時 直當驅之以義而已 不當問其從不從也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이르시기를, ‘이때에는 곧바로 의리로 몰아붙여야 할 뿐이고, 따를 것인가의 여부를 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況將之於軍 如臂之於指하니 其爲劉氏與不爲劉氏 非惟不當問이라 亦不必問也니라
더구나 장수와 군졸의 관계는 팔과 손가락의 관계와 같으니, 유씨劉氏를 위하느냐 위하지 않느냐를 물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굳이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綱] 여러 대신大臣들이 대왕代王 유항劉恒을 맞이하여 황제로 세우니, 9월에 〈대왕代王이〉 장안長安에 이르러 즉위卽位하고 여후呂后효혜황제孝惠皇帝의 아들이라고 이름한 등을 처형하고, 사면赦免하였다.
諸大臣 謀曰 少帝及諸王 皆非眞孝惠子也 呂后詐名他人子而立之하여 以彊呂氏하니
[目] 여러 대신大臣들이 상의하기를 “소제少帝들은 모두 진짜 효혜황제孝惠皇帝의 아들이 아니고, 여후呂后가 다른 사람의 아들을 속여 효혜황제의 아들이라 이름하고는 이들을 세워 여씨呂氏를 강하게 한 것이다.
卽長用事 吾屬無類矣注+言被誅滅無遺種.리라
가령 이들이 장성하여 권세를 부린다면 우리들은 주멸誅滅되어 종자도 남지 않을 것이다.”注+〈“무류無類”는〉 주멸誅滅을 당해 남은 종자가 없게 됨을 말한다. 하였다.
或言 齊王 高帝長孫이니 可立이라한대 大臣 皆曰 呂氏幾危宗廟하니
혹자가 말하기를 “제왕齊王고제高帝장손長孫이니, 세울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씨가 거의 종묘宗廟를 위태롭게 할 뻔하였다.
今齊王舅駟鈞 虎而冠注+言惡戾如虎而著冠.이라 卽立齊王인댄 復爲呂氏矣리라
지금 제왕의 장인인 사균駟鈞은 갓을 쓴 호랑이처럼 잔학殘虐한 사람이니,注+〈“호이관虎而冠”은〉 성품이 호랑이처럼 흉악凶惡하면서 의관을 차려 입은 자를 말한다. 만일 제왕을 세우면 또 다시 여씨처럼 될 것이다.
代王 高帝子 最長이요 仁孝寬厚하며 太后家薄氏謹良이라하여 乃召代王하다
대왕代王은 고제의 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덕이 있으며, 태후太后의 집안은 박씨薄氏인데 삼가고 선량하다.” 하여, 마침내 대왕代王을 불렀다.
代郞中令張武等曰 漢大臣 習兵하여 多詐하니 願稱疾毋往하여 以觀其變하소서
[目] 나라의 낭중령郞中令 장무張武 등이 말하기를, “나라 대신大臣들은 병사兵事에 익숙하여 속임수가 많으니, 원컨대 병을 칭탁하고 가지 말아서 그 변화를 관찰하소서.” 하였다.
中尉宋昌曰注+昌, 義之孫也.
그러나 중위中尉 송창宋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송창宋昌송의宋義의 손자이다.
秦失其政 豪傑竝起호대 卒踐天子之位者 劉氏也 天下絶望 一矣
나라가 정권을 잃자 호걸豪傑들이 함께 일어났지만 끝내 천자의 지위에 오른 자는 유씨劉氏이니, 천하 사람들이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끊은 것이 첫 번째입니다.
高帝封王子弟 地犬牙相制하니 此所謂磐石之宗也 天下服其彊 二矣注+犬牙相制, 言封子弟, 境土交接, 若犬之牙, 不正相當而相銜入也. 磐, 固也. 謂如磐據之大石, 不可拔也.
고제高帝자제子弟를 왕으로 봉할 적에 땅이 개의 이빨처럼 맞물려 서로 견제하니, 이것은 이른바 반석처럼 굳건한 종친宗親이라는 것이어서 천하가 그 강함에 복종함이 두 번째입니다.注+견아상제犬牙相制”는 자제子弟를 봉할 적에 그 국경이 서로 맞물린 것이 마치 개의 이빨과 같아서 바르게 서로 맞지 않고 서로 맞물려 들어감을 말한다. 은 견고하다는 뜻이니, 〈“반석磐石”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큰 바위와 같아서 뽑을 수 없음을 이른다.
除秦苛政하고 約法令, 施徳惠하여 人人自安하니 難動搖三矣
우리 나라는 나라의 가혹한 정사를 제거하여 법령法令을 줄이고 은덕을 베풀어서 사람마다 스스로 편안해하니, 동요시키기 어려운 것이 세 번째입니다.
夫以呂太后之嚴으로 立三王하여 擅權制 然而太尉 以一節 入北軍하여 一呼 士皆左袒하니 此乃天授 非人力也
여태후呂太后의 위엄으로 여씨呂氏 세 사람을 으로 세워 통치의 권력을 독단하였으나, 태위太尉가 부절 하나를 가지고 북군北軍에 들어가서 한 번 호령하자 군사들이 모두 왼쪽 어깨를 드러냈으니, 이는 하늘이 준 것이지 인력人力이 아닙니다.
今大臣 雖欲爲變이나 百姓弗爲使注+下爲去聲, 下具爲同.
이제 대신들이 비록 변란을 일으키고자 하더라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注+아래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구위具爲”의 도 같다.
因天下之心하여 而欲迎立大王이니 大王 勿疑也하소서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인하여 대왕大王영립迎立하려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소서.”
於是 遣太后弟昭하여 往見勃한대 勃等 具爲昭하여 言所以迎立王意하다
[目] 이에 대왕代王태후太后의 아우 박소薄昭를 보내 주발周勃을 만나보게 하였는데, 주발 등이 박소를 위하여 대왕을 영립迎立하려는 뜻을 자세히 말하였다.
昭還報한대 乃命昌參乘하고 武等六人 從詣長安하여
박소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대왕이 마침내 송창宋昌에게 을 하도록 명하고 장무張武 등 6인은 전거傳車를 타고 장안長安에 가도록 명하였다.
至渭橋注+渭橋在長安北三里. 咸陽宮在渭北, 興樂宮在渭南, 秦昭王通兩宮之間, 作渭橋, 長三百八十步.하니 群臣 拜謁稱臣이어늘 下車答拜한대
대왕代王위교渭橋에 이르자,注+위교渭橋장안長安 북쪽 3에 있다. 함양궁咸陽宮위수渭水 북쪽에 있고 흥악궁興樂宮위수渭水 남쪽에 있는데, 나라 소왕昭王이 두 궁 사이가 통하도록 위교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380보이다. 여러 신하들이 배알拜謁하고 이라고 칭하니, 대왕이 수레에서 내려 답배答拜하였다.
太尉勃 進曰 願請間注+間, 音閑, 言欲向空閑處語.하노이다 昌曰 所言公인댄 公言之하고 所言私인댄 王者 無私니라
태위太尉 주발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한가한 곳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注+은 음이 이니, 한가한 곳에 가서 말하고자 함을 말한다. 하니, 송창이 말하기를, “말할 내용이 공적公的인 것이면 공적으로 말하고, 말할 내용이 사적私的이면 왕자王者는 사사로움이 없습니다.” 하였다.
乃跪上天子璽符어늘 謝曰 至邸而議之호리라
주발이 마침내 무릎 꿇고 천자天子옥새玉璽부절符節을 올렸는데, 왕이 사양하기를 “대저代邸(대왕代王의 저택)에 가서 논의하겠소.” 하였다.
後九月晦 至邸하니 丞相平等 皆再拜言曰 子弘等 皆非孝惠帝子 不當奉宗廟 大王 高帝長子 宜爲嗣
[目] 9월 그믐에 대왕代王대저代邸에 이르니, 승상丞相 진평陳平 등이 모두 재배再拜하고 말하기를, “아들 등은 모두 효혜황제孝惠皇帝의 아들이 아니니 종묘宗廟에 제사를 받들게 해서는 안 되고, 대왕大王고제高帝장자長子이니 마땅히 후사後嗣가 되어야 합니다.
願大王 卽天子位하소서
원컨대 대왕은 천자天子의 지위에 오르소서.” 하였다.
西向讓者三이요 南鄕讓者再러니 遂卽位注+王入代邸而漢廷群臣繼至, 王以賓禮接之, 故西鄕. 群臣勸進, 王凡三讓, 群臣遂扶王正南面之位, 王又讓者再.하다
대왕代王이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사양하고 남쪽을 향하여 두 번 사양하고는, 마침내 즉위하였다.注+대왕代王이 대왕의 저택邸宅으로 들어오자 나라 조정의 여러 신하들이 계속하여 이르니, 대왕이 손님의 로 접견하였기 때문에 서쪽을 향한 것이다. 여러 신하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자 대왕이 세 번 사양하였고, 여러 신하들이 마침내 왕을 부축하여 남면南面의 자리에 앉게 하자, 왕이 또다시 두 번 사양한 것이다.
章弟東牟侯興居 請除宮注+班志 “東牟縣屬東萊郡.” 除宮, 淸宮也. 天子行幸所至, 必遣靜室令, 先按行, 淸淨殿中, 以虞非常. 此時群臣雖奉帝卽位, 而少帝猶居禁中, 蓋有所屛除也.하고 乃與太僕滕公으로 入宮하여 載少帝出하고 奉法駕迎帝注+漢官儀 “天子鹵簿, 有大駕‧法駕‧小駕. 大駕, 公卿奉引, 大將軍參乘, 屬車八十一乘. 法駕, 公卿不在鹵簿中, 惟京兆尹‧執金吾‧長安令奉引, 侍中參乘, 屬車三十六乘.”하다
유장劉章의 아우 동모후東牟侯 유흥거劉興居궁실宮室을 깨끗이 청소할 것을 청하고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모현東牟縣동래군東萊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제궁除宮”은 궁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천자天子행행行幸하여 가는 곳에는 반드시 정실령靜室令을 보내어 먼저 순행巡行하여 전중殿中을 깨끗이 청소해서 비상非常 사태를 대비하게 한다. 이때에 여러 신하들이 비록 황제를 받들어 즉위하게 하였으나 소제少帝가 아직도 금중禁中에 있었으니, 물리쳐 제거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태복太僕등공滕公과 함께 입궁入宮해서 소제少帝를 태워 나오고, 법가法駕를 받들어 황제를 맞이하였다.注+에 “천자天子노부鹵簿(의장儀仗)에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가 있는데, 대가大駕공경公卿봉인奉引하고(앞에서 인도하며 수레를 이끌고) 대장군大將軍참승參乘하니 촉거屬車(시종侍從하는 수레)가 81이고, 법가法駕공경公卿노부鹵簿에 들어 있지 않고 오직 경조윤京兆尹, 집금오執金吾, 장안령長安令봉인奉引하며 시중侍中참승參乘하니 촉거屬車가 36이다.” 하였다.
卽夕 入未央宮하여 夜拜宋昌爲衛將軍하여 鎭撫南北軍注+衛將軍, 文帝始置.하고 以張武爲郞中令하여 行殿中注+行, 去聲.하고 有司分部하여 誅少帝及諸王於邸하고 帝還坐前殿하여 下詔書하여 赦天下하다
이날 저녁 황제는 미앙궁未央宮에 들어가서 밤에 송창宋昌을 임명하여 으로 삼아 남군南軍북군北軍진무鎭撫하게 하고,注+위장군衛將軍문제文帝가 처음 설치하였다.장무張武낭중령郎中令으로 삼아 궁전 안을 순찰하게 하였으며,注+(순행하다)은 거성去聲이다.유사有司들은 부서를 나누어 소제와 〈진짜 혜제惠帝의 아들이 아닌〉 여러 왕들을 그들의 저택邸宅에서 처형하였고, 황제는 돌아와 전전前殿에 앉아서 밤에 조서詔書를 내려 천하天下사면령赦免令을 내렸다.
역주
역주1 太后朋……審食其爲帝太傅 : “《資治通鑑綱目》에 漢代에 들어와 처음으로 后의 喪을 썼으나 여전히 姓을 쓰지 않았고, 上官氏에 이르러 처음으로 姓을 썼으나 여전히 장례 지낸 것은 쓰지 않다가, 東漢(後漢)에 이르러 처음으로 장례 지낸 것을 썼다. 이때 장례를 마치자 審食其를 황제의 太傅로 삼고, 곧바로 ‘遺詔’라고 쓴 것은 太后의 뜻이기 때문이다.[綱目 入漢世 始書后喪 猶未書姓也 至上官氏 始書姓 猶未書葬也 至東漢 始書葬 於是旣葬 以審食其爲帝太傅 直書遺詔 太后志也]” 《書法》
역주2 齊王襄……皆罷 : “‘使’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군주의 명령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주의 명령이 있지 않았는데, 그 시킴[使]을 받은 것을 비난한 것이 아닌가? 위에서 ‘齊王 劉襄이 군대를 일으켜 여러 呂氏를 토벌했다.’고 썼고, 뒤이어 ‘灌嬰이 머물러 주둔하여 齊나라와 연합했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그 시킴을 받은 것은 亂賊을 토벌하기 위한 계책이다. 그러니 관영이 이때에 權變을 잘했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아래에 ‘제왕과 관영의 군대를 모두 파했다.’라고 써서 관영을 齊나라에 나란히 나열하였으니, 이는 관영을 훌륭하게 인정한 것이다.[書使 何 未有君命 未有君命而受其使 非譏歟 上書齊王襄發兵討諸呂 繼書嬰留屯 與齊連和 則受其使者 所以爲討亂計也 嬰於是可謂能權矣 故下書齊王灌嬰兵皆罷 列嬰於齊 予嬰也]” 《書法》
역주3 (南)[陽] : 저본에는 ‘南’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諸大臣……赦 : “呂后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여후가 어머니의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후는 어찌하여 어머니의 도리가 없었는가? 婦人으로서 천하를 통제하고, 가짜 아들로 정통을 어지럽혀서 어머니의 도리가 없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의 이 부분에서 ‘孝惠帝의 아들이라 이름했다.’라고 곧바로 쓰고 后에 ‘太’자를 쓰지 않았으니, 이는 文帝와 끊기 위한 것이다.[書呂后 何 后無母道也 后則曷爲無母道 以婦人制天下 以假子亂正統 其爲無母道也大矣 故綱目於此 直書曰所名孝惠子 而后不書太 所以絶之於文帝也]” 《書法》
“惠帝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로부터 太子가 뒤이어 즉위하였으니, 비록 “呂氏가 다른 사람의 자식을 취하여 기르고 태자라고 이름했다.”고 하였으나, 당시에 권력을 잡은 대신들은 모두 있으나 마나 하여, 심지어는 여씨를 크게 봉하고 少帝를 바꾸어 세우는데도 일체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며 여후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資治通鑑綱目》에 이 사실을 쓸 적에 일찍이 폄하하는 말이 없어서 또한 참으로 孝惠帝의 아들인 듯이 한 것은 漢나라 조정의 장수와 정승들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 사실을 쓰기를 ‘여후가 효혜제의 아들이라고 이름한 弘 등을 주벌했다.’고 하였으니, 효혜제의 아들이 아님이 분명한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것을 모아 관찰하여 시작을 근원하고 끝을 맞추어보면 《자치통감강목》에서 漢나라 조정의 신하들을 책망한 뜻을 충분히 볼 것이다.[自惠帝早世 太子繼立 雖曰呂氏取他人子 養而名之 然當時用事大臣 略不能爲有無 甚至大封諸子 更立少帝 一切拱手 聽其自爲 綱目書之 曾無貶詞 亦若眞孝惠子然者 所以著漢朝將相之罪爾 至是 始書其實 其曰誅呂后所名孝惠子弘等 則非孝惠之子審矣 學者合而觀之 原始要終 足見綱目責漢朝之意矣]” 《發明》
역주5 여러 왕 : 濟川王 劉太, 淮陽王 劉武, 恒山王 劉朝를 말한다.
역주6 參乘 : 옛날에 존귀한 사람의 왼쪽에는 말몰이가 앉고, 오른쪽에는 장군 등을 태우도록 되어 있다. 이 사람을 參乘이라고 하는데 호위의 의미를 가지며, 오른쪽에 앉기 때문에 右參이라고도 한다.
역주7 乘傳 : 이에 대해서는 15쪽 訓義 ③에 보인다.
역주8 衛將軍 : 蔡質의 《漢官典儀》에는 車騎將軍, 衛將軍, 左‧右‧前‧後將軍은 지위가 上卿에 해당하고 이는 景帝와 武帝 시기에 설치되었다고 하였다.
역주9 漢官儀 : 後漢의 應劭가 지은 책으로, 漢나라 官制와 儀式 등을 기술한 책이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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