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二十
과 楚王負芻元
과 燕二十八
과 魏王假元
注+假, 景閔王子.과 齊三十八年
이라
綱
燕太子丹이 使盜로 劫秦王이라가 不克하니 秦이 遂擊破燕代兵하고 進圍薊하다
目
初
에 丹
이 旣亡歸
하야 怨秦王欲報之
하야 以問其傅鞠武
注+鞠, 姓也.한대
武請約三晉
하며 連齊楚
하며 媾匈奴
하야 以圖之
한대 太子曰 太傅之計曠日彌久
하니 令人心惛然
하야 恐不能須也
注+惛然, 言武之計迂遠, 使人悶然也. 須, 待也.하노라
頃之
요 秦將軍樊於期得罪亡之燕
하니 太子受而舍之
注+舍, 館也.어늘
燕小不足以當秦하며 諸侯又皆服秦하야 莫敢合從하나니
丹은 以爲誠得天下之勇士하야 使於秦하야 劫秦王하야 使悉反諸侯侵地를 若曹沫之與齊桓公盟이면 則善矣요
不可
어든 則因而刺殺之
注+齊桓公與魯莊公盟于柯, 魯曹沫執匕首, 劫桓公, 請歸侵地, 桓公許之. 歸而欲勿與, 管仲不可, 卒歸侵地. 沫, 音末, 又讀曰劇.니
彼大將
이 擅兵於外
하고 而內有亂
이면 則君臣
이 相疑
하리니 以其間
으로 諸侯得合從
이면 破秦
이 必矣
注+間, 古莧切, 謂間隙.니
目
乃舍軻上舍하고 丹이 日造門하야 所以奉養軻를 無不至러니
秦王
이 必悅見臣
하리니 臣乃有以報
注+亢, 抗‧剛二音. 督亢, 燕之膏腴地. 後漢志 “涿郡方城縣有督亢亭.”니라 丹曰 樊將軍
이 窮困
하야 來歸丹
하니
丹이 不忍也하노라 軻乃私見於期曰 秦王遇將軍이 可謂深矣로다
父母宗族이 皆爲戮沒하고 今聞購將軍首를 金千斤邑萬家라하니
於期太息流涕曰 計將安出고 軻曰 願得將軍之首하야 以獻秦王하면
秦王必喜而見臣
하리니 臣左手把其袖
하고 右手揕其胸
하면 則將軍之仇報
하고 而燕見陵之愧除矣
注+揕, 張鴆切, 刺也.리라하고
遂自刎
注+切齒, 謂齒相磨切也. 腐, 音輔, 爛也. 切齒腐心, 皆奮怒之意.이어늘
又嘗豫求天下之利匕首
하야 以藥焠之
하야 以試人
하니 血濡縷
에 無不立死者
注+焠, 怱潰切, 染也. 謂以毒藥染劍鍔也. 水與火合爲焠, 堅刀刃也. 濡, 音儒. 縷, 力主切. 言人血出纔足以沾濡絲縷, 便立死也. 一說 “血出如絲縷之細.”어늘
目
至咸陽
하야 見秦王
할새 奉圖以進
하야 圖窮而匕首見
注+見, 賢遍切.이어늘荊軻가 秦王을 암살하려 하다(漢代 武梁祠堂畵像石)
左右以手共搏之
하고 且曰 王
은 負劒
注+搏, 手擊也. 古者, 帶劍上長, 拔之不出室. 欲王推之於背, 令前短易拔, 故云 “王負劍.” 室, 鞘也.하소서한대 王
이 遂拔以擊軻
하야 斷其左股
한대
軻引匕首
하야 擿王不中
注+擿, 與擲同. 中, 去聲.이라 自知事不就
하고 罵曰 事所以不成者
는 欲生劫之
하야 必得約契
하야 以報太子也
라하더라
王
이 大怒
하야 益發兵
하야 就王翦於中山
注+就, 卽也, 從也.하야 與燕代
로 戰易水西
하야 大破之
하고 遂圍薊
注+薊, 音計. 薊, 燕都也. 班志 “薊縣屬廣陽國.” 唐爲幽州治所.하다
진秦나라 왕
정政 20년,
초楚나라 왕
부추負芻 원년,
연燕나라 왕
희喜 28년,
위魏나라 왕
가假 원년,
注+가假는 경민왕景閔王의 아들이다.제齊나라 왕
건建 38년이다.
오래된 나라가 다섯에 새로 생긴 나라가 하나이니, 모두 여섯 나라이다.
綱
[綱]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자객으로 하여금
진秦나라 왕을 협박하게 하려다가 이루지 못하자,
진秦나라가 마침내
연燕나라와
대代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진군하여
를 포위하였다.
目
[目] 처음에
단丹이
진秦나라에서 도망쳐 돌아온 뒤에
진秦나라 왕에게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고 하여 자신의
태부太傅 국무鞠武에게 자문하였다.
注+국鞠은 성이다.
국무가
과 우호를 맺고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와 연합하고
흉노匈奴와 화친하여
진秦나라를 도모할 것을 청하였는데, 태자가 말하기를 “
태부太傅의 계책은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길어서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니 기다릴 수가 없을 듯합니다.”
注+“혼연惛然”은 국무鞠武의 계책이 오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심란하게 함을 말한다. 수須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였다.
오래지 않아
진秦나라 장수
번오기樊於期가 죄를 지어
연燕나라로 도망하여 오자 태자가 맞이하여 머물게 하였다.
注+사舍는 머물게 한다는 뜻이다.
국무가 태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간하였으나 태자가 듣지 않았다.
태자가 위衛나라 사람 형가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공손한 글과 많은 예물로 그를 초청하여 만났다.
태자가 형가에게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이미 한韓나라 왕을 포로로 잡고 조趙나라를 압박하였으니, 재앙이 장차 연燕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연燕나라가 약소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부족하고 제후도 모두 진秦나라에 복종하여 감히 합종하는 자가 없습니다.
내 생각에, 진실로 천하의 용감한 선비를 얻어
진秦나라에 보내
진秦나라 왕을 협박하여 그로 하여금 침탈한 땅을 모두 제후들에게 돌려주게 하기를
이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회맹하였던 것처럼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대로
진秦나라 왕을 찔러 죽여야 합니다.
注+제齊나라 환공桓公과 노魯나라 장공莊公이 가柯에서 회맹會盟하였다. 노魯나라 조말曹沫이 비수匕首를 들고 환공桓公을 협박하여 침략한 땅을 돌려주기를 요구하자, 환공이 승낙하였는데, 제齊나라로 돌아가서는 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관중管仲이 반대하자, 환공이 마침내 침략했던 땅을 돌려주었다. 말沫은 음이 말末이다. 또한 귀劌로 읽는다.
저들의
대장大將이 국외에서 병권을 독단하고 국내에서 혼란이 일어난다면 군주와 신하가 서로 의심할 것이니, 그 사이를 틈타서 제후들이 합종할 수 있다면
진秦나라를 반드시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注+간間은 고현古莧의 절切이니, 간극을 말한다.
형경荊卿은 유념해보십시오.” 하니, 형가가 승낙하였다.
目
[目] 이에 형가荊軻를 좋은 집에 살게 하고, 단丹이 날마다 방문하여 형가를 접대하기를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마침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멸망시키자 단丹이 두려워하여 형가를 진秦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다.
형가가 말하기를 “진秦나라에 가면서 믿을 만한 것이 없으면 진秦나라 왕을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번오기樊於期 장군의 머리와 연燕나라 독항督亢의 지도를 얻어서 진秦나라 왕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그러면
진秦나라 왕이 반드시 기뻐하여 신을 만나볼 것이니, 신이 이에 보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注+항亢은 음이 항抗과 강剛 두 가지이다. 독항督亢은 연燕나라의 비옥한 지역이다. 《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탁군涿郡 방성현方城縣에 독항정督亢亭이 있다.”고 하였다. 하니,
단丹이 말하기를 “
번樊 장군이 사정이 곤란하여 나에게 와서 의지하고 있으니, 내가 차마 죽일 수 없습니다.” 하였다.
형가가 이에 홀로 번오기를 만나 말하기를 “진秦나라 왕의 장군에 대한 처사는 악독하다고 할 만합니다.
부모와 종족이 모두 살육을 당해 죽었고, 지금 장군의 머리를 천 근의 금과 만 가호의 읍으로 산다고 합니다.
번오기가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계책을 장차 어떻게 세울 것입니까?” 하니, 형가가 말하기를 “장군의 머리를 얻어서 진秦나라 왕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그러면
진秦나라 왕이 반드시 기뻐하여 신을 만나볼 것이니, 신이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면 장군의 원수를 갚을 것이고,
연燕나라가 당했던 굴욕을 제거할 것입니다.”
注+침揕은 장짐張鴆의 절切이니, 찌른다는 뜻이다. 하였다.
번오기가 말하기를 “이것은 신이 밤낮으로 이를 갈고 속을 썩이는 일입니다.”
하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注+“절치切齒”는 이가 서로 갈림을 말한다. 부腐는 음이 보輔이니, 썩는다는 뜻이다. “절치切齒”와 “부심腐心”은 모두 분노의 뜻이다.
단丹이 달려가 엎드려 곡을 하였으나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 머리를 상자에 담았다.
注+함函은 상자이다. 성盛(담다)은 음이 성成이다.
또 일찍이 천하의 예리한 비수를 미리 구하여 독약에 담가두었다가 사람에게 시험하니, 피가 실오라기를 적실 만큼만 나도 바로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注+쉬焠는 총궤怱潰의 절切이니, 담근다는 뜻이다. 독약에 검의 칼날을 담금을 말한다. 물과 불을 합하는 것이 쉬焠이니, 칼날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유濡(적시다)는 음이 유儒이고, 누縷(실오라기)는 역주力主의 절切이다. 사람이 겨우 실오라기를 적실 만큼만 피가 나도 바로 죽음을 말한 것이다. 일설에 “피가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目
[目]
형가荊軻가
함양咸陽에 이르러
진秦나라 왕을 만났을 때에 지도를 받들어 올렸는데, 지도가 다 펼쳐지자 비수가 드러났다.
注+현見(드러나다)은 현편賢遍의 절切이다.
왕의 소매를 잡고 찌르니, 비수가 몸에 닿기 전에 왕이 놀라 일어났다.
형가가 왕을 추격하자 왕이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注+환環(돌다)은 음이 환宦이다.
진秦나라의 법에 의하면, 전각 위에 올라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작은 무기도 소지할 수 없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함께 손으로 형가를 때리며 말하기를 “왕께서는 검을 등 뒤로 돌리소서.”
注+박搏은 손으로 친다는 뜻이다. 옛날에 칼을 차면 위가 길어서 칼을 뽑아도 칼집[실室]에서 나오지 않았다. 왕으로 하여금 검을 등 뒤로 밀어서 앞이 짧게 하여 뽑기 쉽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검을 등 뒤로 돌리소서.”라고 말한 것이다. 실室은 칼집이다. 하였는데, 왕이 마침내 검을 뽑아 형가를 쳐서 왼쪽 다리를 잘랐다.
형가가 비수를 집어 들고 왕에게 던졌으나 맞지 않으니,
注+적擿(던지다)은 척擲과 같다. 중中(적중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스스로 일이 성공할 수 없음을 알고는 꾸짖기를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왕을 사로잡아 협박하여 기필코 약조를 얻어낸 뒤에 태자에게 알리고자 해서였다.” 하였다.
진秦나라 왕이 마침내 형가의 사지를 해체하여 조리를 돌렸다.
注+“체해體解”는 사지를 해체한다는 뜻이다.
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더 출동시켜
중산中山에 있던
왕전王翦에게 보내
注+취就는 나아간다는 뜻이고, 따른다는 뜻이다.연燕나라,
대代나라와
역수易水의 서쪽에서 싸우게 하였는데, 그들을 크게 격파하고 마침내
계薊를 포위하였다.
注+계薊는 음이 계計이니, 계薊는 연燕나라의 도읍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계현薊縣은 광양국廣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당唐나라 때에는 유주幽州의 치소治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