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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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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申年(B.C. 25)
四年이라
春正月 匈奴單于來朝하다
丞相王商 多質有威重하고 容貌絶人注+多質, 言少文飾也.이라
單于來朝할새 拜謁商하고 仰視大畏之하여 遷延却退하니 聞而歎曰 眞漢相矣로다
三月朔 日食하다
琅邪太守楊肜 與王鳳連昏注+肜, 音融. 連昏者, 婚家之姻親也.이러니 其郡 有災害어늘 按問之한대
鳳以爲請하되 商不聽하고 竟奏免肜하니 奏寢不下注+寢, 息也.하다
鳳以是怨商하여 陰求其短하여 使人告商淫亂事注+通鑑 “使耿定上書, 言商與父傅婢通, 及女弟淫亂, 奴殺其私夫, 疑商敎使.” 私夫, 女弟之私與姦通者.하니 天子 以爲暗昧之過 不足以傷大臣이라한대 鳳固爭하여 下其事司隷注+句.하다
太中大夫張匡 素佞巧러니 復上書하여 極言詆商이라
有司奏請召詣詔獄한대 素重商하고 知匡言多險하여 制曰勿治하라
固爭之한대 詔收商丞相印綬러니 免相三日 發病하여 歐血薨하니 諡戾侯
子弟親屬 皆出補吏하여 莫得留給事宿衛者
有司奏請除國邑호되 詔子安嗣侯하다
以張禹爲丞相하다
爲太子 受論語於禹러니 及卽位 賜爵關內侯하고 拜光祿大夫給事中하여 與王鳳竝領尙書하니
禹內不自安하여數病上書하여 欲退避鳳注+數病, 屢託疾也.한대
不許하고 撫待愈厚하여 遂以爲相하다
罽賓 遣使來獻하다
武帝通西域 罽賓 自以絶遠하여 漢兵不能至라하여 獨不服하여數剽殺漢使하고 遣使來謝注+罽, 音計. 罽賓, 西域國名, 治循鮮城, 去長安萬二千二百里, 不屬都護. 剽, 劫也.하다
孝元以絶域이라하여 不錄하고 絶而不通이러니 及帝卽位 復遣使獻謝罪하다
欲遣使者하여 報送其使한대 杜欽說王鳳曰
中國所以爲通厚蠻夷하여㥦快其求者 爲壤比而爲寇也注+㥦, 與愜同. 爲, 去聲. 比, 近也. 壤比, 謂境壤相連比也.
今縣度之阸 非罽賓所能越也注+縣, 讀曰懸. 縣度, 國名, 在烏秅國西, 去陽關五千八百八十里. 谿谷不通, 懸繩索, 相引而度, 故名. 烏, 一加切. 秅, 直加切. 其鄕慕不足以安西域이요 雖不附 不能危城郭注+鄕, 讀曰嚮.이라
前親逆節하여惡暴西域이라 絶而不通注+暴, 謂章露也.이니이다
今悔過來로되 而無親屬貴人이요 奉獻者 皆行賈賤人이니 欲通貨市買하여 以獻爲名注+賈, 音古, 下同.이라
煩使者하여 送至縣度하면 恐失實見欺니이다
起皮山하여 南更不屬漢之國四五하니 時爲所侵盜注+皮山, 西域國名, 去長安萬五千里. 更, 工衡切, 言經歷不屬漢者, 凡四五國.이요
又歷大小頭痛之山 赤土身熱之阪하여 令人身熱無色하고 頭痛嘔吐하며
又有三池磐, 石阪道하여 陿者 尺六七寸이요 長者 徑三十里하여 臨崢嶸不測之深注+崢, 仕耕切. 嶸, 音宏. 崢嶸, 山峻貌.이라
行者騎步相持하고 繩索相引하여 二千餘里 乃到縣度하니 險阻危害 不可勝言이니이다
聖王 分九州하고 制五服 務盛內하고 不求外하시니
今遣使者하여 承至尊之命하고 送蠻夷之賈하여 勞吏士하고 涉危難하여罷敝所恃하여 以事無用 非久長計也注+所恃, 謂中國之人. 無用, 謂遠方蠻夷之國.
使者業已受節하니 可至皮山而還이니이다
於是 白從欽言하다
罽賓 實利賞賜賈市하여 其使數年而一至云이러라
山陽 火生石中하다
詔改明年元曰陽朔注+朔, 始也. 以火生石中, 言陽氣之始.이라하다


병신년(B.C. 25)
[綱] 나라 효성황제孝成皇帝 하평河平 4년이다.
봄 정월에 흉노匈奴선우單于가 와서 조회하였다.
[目] 승상丞相 왕상王商은 매우 질박하여 위엄과 중후함이 있으며, 용모가 보통 사람보다 빼어났다.注+다질多質”은 문식文飾이 적음을 말한 것이다.
선우單于가 와서 조회할 적에 왕상을 배알하고는 우러러보고 크게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나니, 이 듣고 감탄하기를 “왕상은 참으로 나라의 〈훌륭한〉 정승이다.” 하였다.
[綱] 3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綱] 여름 4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승상丞相 낙창후樂昌侯 왕상王商인수印綬를 거두게 하니, 왕상이 근심 때문에 하였다.
[目] 낭사태수琅邪太守 양융楊肜왕봉王鳳의 집안과 혼인하였는데,注+은 음이 이다. “연혼連昏”은 혼인한 집안의 친인척이다. 그의 (낭야琅邪)에 재해가 있자, 왕상王商이 조사하여 따졌다.
왕봉이 느슨히 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왕상이 듣지 않고 끝내 양융을 면직시킬 것을 아뢰었는데, 이 이 아룀을 묵혀두고 회부시키지 않았다.注+은 잠재운다는 뜻이다.
왕봉은 이 때문에 왕상을 원망하여 은밀히 그의 단점을 찾아내고 사람을 시켜 왕상의 음란한 일을 아뢰니,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경정耿定으로 하여금 글을 올려서 ‘왕상王商이 아비의 계집종(시비侍婢)과 간통하였고, 여동생이 음란하여 종이 그녀의 사부私夫(정부情夫)를 죽였는데, 왕상이 교사한 듯하다.’라고 했다.” 하였다. 사부私夫는 여동생이 은밀히 간통한 자이다. 천자는 “애매한 잘못으로 대신大臣을 상하게 할 수 없다.”라 하였으나, 왕봉이 굳이 간쟁하여 이 일을 사례司隷에게 회부시켰다.注+여기서 를 뗀다.
[目] 태중대부太中大夫 장광張匡은 평소 간사하고 말을 잘하였는데, 다시 글을 올려서 왕상王商을 극구 비방하였다.
유사有司가 왕상을 조옥詔獄으로 불러올 것을 청하였으나, 은 평소 왕상을 소중히 여겼고, 장광은 남을 많이 모함한다는 것을 알고는 를 내려 “치죄하지 말라.” 하였다.
왕봉王鳳이 굳이 간쟁하자, 이 명하여 왕상의 승상丞相인수印綬를 거두니, 왕상은 정승에서 면직된 지 3일 만에 병이 나서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 시호를 여후戾侯라 하였다.
그의 자제와 친족이 모두 외직으로 쫓겨나 낮은 관리에 보임補任되어서 궁중에 남아 급사給事숙위宿衛를 하는 자가 없었다.
유사有司국읍國邑을 없앨 것을 주청하였으나, 명하여 아들 를 잇게 하였다.
[綱] 장우張禹승상丞相으로 삼았다.
[目] 태자太子로 있을 적에 장우張禹에게 《논어論語》를 수학하였는데, 즉위하자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하고 광록대부光祿大夫 급사중給事中을 제수하여, 왕봉王鳳과 함께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장우는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여 자주 병을 칭탁하고 글을 올려 물러나 왕봉을 피하고자 하였다.注+수병數病”은 여러 번 병을 칭탁한 것이다.
그러나 은 허락하지 않고 위로하고 대우하기를 더욱 두텁게 하여 마침내 정승으로 삼았다.
[綱] 계빈罽賓이 사신을 보내 와서 공물을 바쳤다.
[目] 처음에 무제武帝서역西域과 통할 적에 계빈罽賓은 스스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라 군대가 오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유독 복종하지 않고서 자주 나라 사신을 협박하여 죽이고는 사신을 보내 와서 사죄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계빈罽賓서역西域국명國名이다. 순선성循鮮城치도治都로 삼으니 장안長安과의 거리가 12,200리인데, 도호都護에 속하지 않았다. 은 위협함이다.
효원황제孝元皇帝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라 하여 죄를 묻지 않고서 끊고 왕래하지 않았는데, 황제가 즉위하자 다시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사죄하였다.
[目]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계빈罽賓의 사신에게 답례로 전송하고자 하니, 이에 두흠杜欽왕봉王鳳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중국이 오랑캐들을 너그럽게 대우해서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이유는 지역이 가까워 침략하기 때문입니다.注+(만족함)은 과 같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는 가깝다는 뜻이니, “양비壤比”는 접경이 서로 연하고 가까움을 이른다.
이제 현도국縣度國의 험함은 계빈이 넘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요,注+으로 읽으니, 현도縣度국명國名으로 오차烏秅 서쪽에 있다. 양관陽關과의 거리가 5,880리인데, 계곡谿谷이 통하지 않고 끈을 매달아 서로 인도해 건너다니므로 현도縣度라 이름하였다. 일가一加이고, 직가直加이다. 그들이 우리 중국을 사모한다고 하여 서역西域을 편안히 할 수 없고, 비록 따르지 않더라도 성곽이 있는 여러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못합니다.注+(향하다)는 으로 읽는다.
전에 직접 반역을 하여 죄악이 서역에 드러났으므로 나라에서 끊고 왕래하지 않았습니다.注+은 글로 드러냄을 이른다.
지금 허물을 뉘우치고 왔으나, 〈보내온 사람 중에〉 친족과 귀인이 없고 물건을 받들어 올리는 자는 모두 여행하는 장사꾼과 신분이 천한 사람이니, 이는 재화를 교역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자 하여 공물을 바치는 것을 명분으로 삼는 것입니다.注+(장사꾼)는 음이 이니 아래도 같다.
그러므로 사자使者를 번거롭게 하여 현도縣度에까지 보낸다면, 실제를 잃고 저들에게 속임을 당할까 염려됩니다.
[目] 〈현도국縣度國에 가려면〉 피산皮山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다시 나라에 소속되지 않은 4, 5개의 나라를 거치게 되니, 때로 그들에게 침탈을 당할 것입니다.注+피산皮山서역西域에 있는 나라 이름이니, 장안長安과의 거리가 15,000리이다. (다시)은 공형工衡이니, 나라에 소속되지 않은 4, 5개의 나라를 지나감을 이른다.
또 크고 작은 두통頭痛을 일으키는 산과 붉은 땅에 신열身熱이 나는 언덕을 지나가게 되어, 사람들이 몸에서 열이 나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두통과 구토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삼지반三池磐석판도石阪道가 있어서 좁은 곳은 1 6, 7이고, 긴 곳은 도로가 30리여서 깊고 험하여 측량할 수 없는 깊은 곳에 임하게 됩니다.注+(가파르다)은 사경仕耕이고 (가파르다)은 음이 이니, “쟁굉崢嶸”은 산이 험준한 모양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기병騎兵보병步兵이 서로 의지하고 노끈으로 서로 인도하여 2천여 리를 지나서야 비로소 현도국縣度國에 이르게 되니, 험하고 막히고 위험하고 해로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目] 성왕聖王 되도록 안을 성대하게 하고 밖을 강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자使者를 보내어서 지존至尊을 받들고 오랑캐들의 장사치를 전송하여 관리와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고, 위험하고 험난한 곳을 건너가서 믿는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어 쓸데없는 나라를 섬김은 나라의 장구함을 도모하는 계책이 아닙니다.注+소시所恃”는 중국의 사람을 이르고, “무용無用”은 먼 지방의 오랑캐 나라를 이른다.
사자使者가 이미 부절符節을 잡고 갔으니, 피산국皮山國에 이르거든 돌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이에 왕봉王鳳이 황제에게 아뢰어 두흠杜欽의 말을 따르게 하였다.
계빈罽賓은 실로 나라에서 내려주는 상과 물건의 교역을 이롭게 여겨서, 그 사신이 몇 년 만에 한 번씩 이르렀다.
[綱] 산양山陽에 돌 가운데에서 불이 났다.
[目] 조령詔令을 내려 명년明年양삭陽朔으로 개원改元하였다.注+은 시작함이니, 돌 가운데에서 불이 남은 양기陽氣가 시작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詔收丞相……商以憂卒 : “모든 물건은 두 가지가 모두 큰 이치가 없고 권력과 귀함은 양립하는 형세가 없는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王鳳이 권력을 독점하여 은총을 견고히 하였으니, 王商이 비록 평소 충직하기로 이름났으나, 또한 외척의 소원한 자였다. 왕봉이 왕상에게 눈을 흘긴 지가 이미 오래였는데, 더구나 또 그의 뜻을 거스름에 있어서이겠는가. ‘詔令을 내려 왕상의 印綬를 거두게 하자, 왕상이 근심 때문에 卒하였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천자의 부득이한 뜻이 은연 중 書法의 사이에 나타난 것이요, 왕상의 죽음이 그의 죄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大臣을 나가고 물러가게 함을 군주도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 그렇다면 成帝가 이때에 이르러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凡物無兩大之理 權貴無竝立之勢 當是之時 王鳳專權固寵 商雖素著忠直 然亦外戚疏屬 鳳側目已久 況又忤其意乎 書詔收商印綬 商以憂卒 則天子不得已之意 隱然見於書法之間 而商死不以罪 曉然可知 夫進退大臣 人主猶不得自專 則成帝至是 亦具位焉耳 寧不愧哉]” 《發明》
역주2 九州를……적에 : 九州는 중국을 아홉 개 州로 나눈 것으로 冀州‧兗州(연주)‧靑州‧徐州‧揚州‧荊州‧豫州‧梁州‧雍州를 이르는데, 왕조에 따라 연혁이 있었으나 모두 중국 또는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며, 五服은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인바,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畿內를 전복이라 하고, 500리씩 점점 멀어져 황복에 이르면 2,500리가 되는바, 구주와 오복은 중국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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