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태중대부太中大夫 장광張匡은 평소 간사하고 말을 잘하였는데, 다시 글을 올려서 왕상王商을 극구 비방하였다.
유사有司가 왕상을 조옥詔獄으로 불러올 것을 청하였으나, 상上은 평소 왕상을 소중히 여겼고, 장광은 남을 많이 모함한다는 것을 알고는 제制를 내려 “치죄하지 말라.” 하였다.
왕봉王鳳이 굳이 간쟁하자, 상上이 명하여 왕상의 승상丞相의 인수印綬를 거두니, 왕상은 정승에서 면직된 지 3일 만에 병이 나서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 시호를 여후戾侯라 하였다.
그의 자제와 친족이 모두 외직으로 쫓겨나 낮은 관리에 보임補任되어서 궁중에 남아 급사給事와 숙위宿衛를 하는 자가 없었다.
유사有司가 국읍國邑을 없앨 것을 주청하였으나, 명하여 아들 안安이 후侯를 잇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