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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방사方士 난대欒大가 과감히 큰소리를 치면서 주저하지 않고 신선神仙으로 자처하였는데, 상上을 뵙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臣이 일찍이 해상海上을 왕래하면서 신선인 안기생安期生과 선문자羨門子(연문자)의 등속을 만나보니, 말하기를 ‘황금黃金을 만들 수 있고 황하黃河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불사약不死藥을 얻을 수 있고 신선을 초치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의 스승은 사람들에게 구함이 없고 사람들이 그를 구하니, 폐하께서 반드시 이분들을 초치하고자 하신다면, 사자使者(난대欒大 자신)의 신분을 귀하게 하여 황제의 친척으로 삼고 손님의 예禮로 우대하여야 비로소 말을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난대를
오리장군五利將軍으로 제수하여
악통후樂通侯를 봉하고
식읍食邑과 가장 좋은 집을 하사하였으며,
注+《은택후표恩澤侯表》에 “악통후樂通侯는 안정군安定郡 고평현高平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였다.” 하였다.위장공주衛長公主를 그에게 시집보내면서 황금 10만 근을 주어 보냈다.
注+공주公主는 위태자衛太子(여태자戾太子)의 누이이다.
상上이 직접 그의 집에 가니 난대의 귀함이 천하에 진동하였다.
이에 바닷가 연燕나라와 제齊나라 사이에서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금방禁方이 있고 신선술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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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전에 주아부周亞夫가 승상丞相이 되었을 적에 조우趙禹가 승상부丞相府의 사史가 되었는데, 승상부 안에서는 모두 그의 청렴하고 공평함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주아부는 조우를 신임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조우가 해로움이 없음[
무해無害]을 내 분명히 알고 있으나, 법조문을 너무 까다롭게 적용하여 큰
부府에 머물 수 없다.”
注+“무해無害”는 억울하게 일을 처리하여 해害로운 바가 없음을 이른다. 일설에 “무비無比(견줄 사람이 없음)라는 말과 같다.” 하였다. 또 해害는 이김이니, 능히 그를 이길 자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대부大府는 승상부丞相府와 어사부御史府이다. 하였다.
조우가 소부少府가 되자 혹독하고 엄격하였는데, 말년에 옥리獄吏들이 준엄함을 힘쓰니, 조우는 도리어 너그럽고 공평함으로 이름났다.
윤제尹齊는 평소 과감하게 죄인을 목 베는 것으로 이름났었는데, 중위中尉가 되자 〈너무 나약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 하여 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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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해에 상上이 안국소계安國少季로 하여금 가서 왕王과 태후太后에게 들어와 조회하도록 타일러서 국내國內의 제후諸侯에 견주게 하니, 왕은 이때 나이가 어리고 태후는 중국 사람이며, 안국소계가 가서 또 그녀와 간통하여 남월南越의 사람들이 태후를 따르지 않았다.
태후가 사자使者를 통해 글을 올려서 국내의 제후에 견주어 3년에 한 번 조회하고 변방의 관문을 없앨 것을 청하자, 천자天子가 이를 허락하고 그의 승상丞相인 여가呂嘉에게 은인銀印을 하사하니, 사자가 이곳에 머물며 진무鎭撫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