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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망王莽이 자신의 딸을 황제의 배필로 삼아서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하고자 하여 아뢰기를
“
장추궁長秋宮의 황후를 아직 세우지 못하였고
액정掖庭(
비빈妃嬪들이 거처하는 곳)의
잉첩媵妾(잉첩) 수를 채우지 못했으니
注+① 장추궁長秋宮은 황후皇后의 궁宮 이름이니, 가을은 수확하는 때이고 장長은 항구恒久의 뜻이므로 궁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오경五經을 상고하고 의논하여 황후를 맞이하는
예禮를 정하고 열두 여자를 취하는 뜻을 바로잡아
계사繼嗣를 많이 두며
注+② 취取(장가들다)는 취娶로 읽는다. 제후諸侯는 한 번에 아홉 여자를 취하고, 오직 은殷‧
주周 두 나라
왕王의 후손과
주공周公‧
공자孔子의
후세後世,
장안長安에 있는
열후列侯의
적처嫡妻의 딸들을 널리 채택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注+③ “이왕후二王後”는 은殷나라와 주周나라의 후손을 이른다. “주공공자세周公孔子世”는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후세를 이른다. 적嫡은 종통宗統을 계승하는 자이다. 적適(정실)은 적嫡으로 읽으니, 〈“적자녀適子女”는〉 적처嫡妻가 낳은 자식을 이른다.
이 일을 유사有司에게 회부하여 많은 여자들의 이름을 올리게 하니, 선택된 여자들 중에 왕씨王氏의 딸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왕망은 이들이 자신의 딸과 경쟁할까 염려해서 곧바로 상언上言하기를 “저의 딸자식은 재주가 용렬하여 여러 여자들과 함께 채택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태후太后가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왕씨王氏는 짐의 외가外家이니 채택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서민庶民과 많은 유생儒生, 낭관郎官들이 궁문宮門을 지키면서 글을 올리고,
공公과 경卿, 대부大夫들이 궁궐의 문 아래에 엎드려서 모두 “안한공安漢公의 따님을 얻어 천하 사람들의 어머니로 삼기를 원합니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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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망王莽의 장자長子 왕우王宇는 왕망이 위씨衛氏(중산효왕후中山孝王后, 평제平帝의 모친)를 막아 경사京師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하여, 은밀히 위보衛寶와 서신을 통하여 위후衛后로 하여금 상서上書하여 국가의 은혜에 사례하고,
인하여 정씨丁氏와 부씨傅氏의 옛 악행을 아뢰게 하여 경사京師에 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에 왕망이 태후太后에게 아뢰어 중산효왕후中山孝王后를 포상하여 탕목읍湯沐邑 7,000호戶를 더 봉하였다.
왕우가 다시 〈위후衛后로〉 하여금 상서上書하여 경사京師에 올 것을 요구하게 하였는데, 왕망이 듣지 않았다.
왕우가 스승인 오장吳章과 손위 처남인 여관呂寬과 의논하니,
오장이 말하기를 “왕망이 귀신을 좋아하니, 변괴스러운 짓을 하여 놀라고 두렵게 만들고, 인하여 유사한 일을 가지고 설득하여 정사를 위씨에게 돌려주게 하자.” 하였다.
注+① “추류推類”는 변괴를 인하여 유사한 일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과 같은 것으로 왕망을 설득한 것이다. 설說(유세하다)는 음이 세稅이고, 영令(명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이에 왕우가 즉시 여관으로 하여금 밤에 피를 가지고 가서 왕망의 집에 뿌리게 하였는데
注+② 쇄灑(뿌리다)는 사하沙下의 절切이다., 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발각되었다.
왕망은 왕우를 붙잡아 옥獄으로 보내 독약을 마시고 죽게 하고, 위씨의 가솔들을 모두 죽이고 오직 위후만 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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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원제元帝의 여동생인 경무장공주敬武長公主는 평소 왕망王莽을 비난하였고, 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은 왕망의 항렬이 높은 친속이고 평아후平阿侯 왕인王仁은 평소 강직하였는데, 〈왕망이〉 모두 태황태후太皇太后의 조명詔命으로 압박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또 군국郡國의 호걸과 한漢나라의 충직한 신하로 왕망에게 아첨하지 않은 하무何武와 포선鮑宣, 왕상王商과 신경기辛慶忌의 여러 아들들이 다 죄에 걸려 죽으니, 모두 수백 명이었다.
이에
해내海內가 진동하였다.
注+① 하무何武는 왕망王莽을 대사마大司馬로 천거하지 않았고, 포선鮑宣은 평소 강직하다는 명성이 있었고, 왕상王商은 왕봉王鳳과 화합하지 못하고 왕봉에게 배척당하여 분노와 한을 품고 죽으니, 그의 아들 왕안王安이 왕씨王氏를 따르지 않았다. 신경기辛慶忌는 본래 왕봉이 키워준 사람인데, 왕망은 그의 세 아들인 신통辛通‧신준辛遵‧신무辛茂가 모두 유능함을 보고는 이들과 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무는 본래 명신名臣의 자손으로 형제가 모두 현달한 지위에 있으니 왕망에게 붙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고, 또 몸을 굽혀 견풍甄豐과 진감甄邯을 공손히 섬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