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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망王莽이 조서詔書를 내려 염단廉丹을 꾸짖자, 염단은 두려워하여 밤에 자신의 부하인 풍연馮衍을 불러 왕망이 내린 조서詔書를 보여주었다.
풍연은 인하여 염단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
장량張良은 자신이
한韓나라의 다섯 조정에서 재상을 지낸 가문이라 하여,
진 시황秦 始皇을
박랑博浪에서 철퇴로 저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장군의 선대는
한漢나라의 신실한 신하였습니다.
注+선제宣帝 때에 후장군後將軍을 지낸 염포廉褒가 바로 염단廉丹의 선조이다.
신新나라가 일어남에 영웅호걸들이 따르지 않고, 지금은
해내海內가 혼란하여 사람들이
한漢나라의
덕德을 생각하기를
보다 더 심하게 하니, 하늘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반드시 따릅니다.
지금 장군將軍을 위하여 계책을 세우건대, 대군大郡을 점거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진무하고, 충절을 갈고 닦아서 영웅호걸의 선비들을 받아들이며,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계책을 물어 사직社稷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만인萬人의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복록福祿이 무궁한 후대에까지 이어지며 공렬功烈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드러날 것이니,
드넓은 벌판에서 군대가 전복되어 멸망하고 몸이 썩어 초야를 기름지게 해서 공이 무너지고 이름이 상실되어 치욕이 선조에게 미치는 것과 비교하여,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注+여與(같다)는 여如와 같다. 그러나 염단은 듣지 않았다. 풍연은
풍봉세馮奉世의
증손曾孫이다.
目
【
목目】
왕상王常이 돌아와서 다른 장수들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말하자
注+왕상王常은 유연劉縯과 만나고, 나머지 장수인 성단成丹과 장앙張卬(장앙)은 군중에 있었다., 모두 말하기를 “
대장부大丈夫가 기왕에 군대를 일으켰으면 마땅히 각자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남의 제재를 받아야 합니까?” 하였다.
왕상이 차근차근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왕망王莽이 가혹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여러 번 잃었으니,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며 한漢나라를 그리워한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로 인하여 군대를 일으킬 수 있었다.
백성들이 원망하는 사람은 하늘이 제거하고, 백성들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니, 대사大事를 일으킬 적에 마땅히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에 순종하고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여야 비로소 공功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강함과 용맹함을 믿고 감정과 욕심을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면 비록 천하를 얻더라도 반드시 다시 잃게 되니,
진秦나라와
항우項羽의 형세로도 결국은 멸망하고 전복하였는데
注+이夷는 멸망함이고, 복覆은 패망함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들이 포의布衣로 초야에 모여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멸망하는 길이다. 지금 남양南陽의 여러 유씨劉氏가 온 종실宗室(집안)이 나서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들이 와서 의논하는 것을 보건대 모두 깊은 계책과 큰 생각이 있으니, 왕공王公의 재주이다.
이들과 더불어 연합하면 반드시 큰 공功을 이룰 것이니, 이것은 하늘이 우리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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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장수들은 평소 왕상王常을 존경하였다. 이에 모두 사죄하기를 “왕장군王將軍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이 거의 불의不義에 빠졌을 것이다.” 하고는 즉시 병력을 인솔하여 한漢나라 군대와 신시新市, 평림平林의 군대와 합병하니,
이에 여러 부대가 마음과 힘을 함께하여 예기銳氣가 더욱 성대하였다. 유연劉縯은 병사들에게 큰 연향을 베풀어주고 맹약盟約을 만들었으며 3일 동안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나누어 6부部로 만들었다.
12월 그믐, 한밤중에 은밀히 군대를 출동하여 남향藍鄕을 기습 점령해서 적의 치중輜重을 모두 노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