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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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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9권 하
漢 光武帝 建武 28년(52)~漢 明帝 永平 18년(75)
壬子年(5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9권 하
한 광무제漢 光武帝 건무建武 28년(52)~한 명제漢 明帝 영평永平 18년(75)
임자년壬子年(52)
二十八年이라 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28년이다. 봄에 나라 땅을 동해왕東海王에게 보태주었다.
徙魯王興하여 爲北海王하고 以魯益東海하다 帝以東海王彊 去就有禮注+謂以天下讓.
노왕 유흥魯王 劉興을 옮겨 북해왕北海王으로 삼고 나라 땅을 동해왕東海王에게 보태주었다. 황제는 동해왕 유강東海王 劉彊이 거취에 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注+〈“거취유례去就有禮”는〉 유강劉彊천하天下를 사양함을 이른다.
優以大封하여 食二十九縣하고 賜虎賁, 旄頭하고 設鍾簴之樂하여 擬於乗輿러라
봉지封地로 우대하여 29개의 을 식읍으로 주었으며, 를 하사하고 의 음악을 진설하여 황제에 버금가게 하였다.
延平陳氏曰 愛其有禮하여 而以僭禮賞之 過矣
연평 진씨延平 陳氏(진관陳瓘)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가 가 있음을 사랑하여 참람한 로 상을 준 것은 잘못이다.”
夏六月 注+上十七年, 廢郭后爲中山王太后. 二十年, 中山王輔徙封沛王, 后爲沛太后.하다
】 여름 6월에 패태후 곽씨沛太后 郭氏하였다.注+앞의 건무建武 17년(41)에는 곽후郭后를 폐하여 중산왕 태후中山王 太后로 삼았었고, 20년(44)에는 중산왕 유보中山王 劉輔를 옮겨 패왕沛王으로 봉하고 태후太后패태후沛太后로 삼았다.
◑秋八月 遣諸王就國하다
】 가을 8월에 여러 을 보내 봉국封國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先是 問趙憙以久長之計한대 憙請遣諸王就國하니 遂遣魯王興 齊王石就國注+石, 章之子, 縯之嫡孫也.하다
】 이보다 앞서 조희趙憙에게 장구한 계책을 묻자, 조희가 여러 왕을 내보내 봉국封國으로 나아가게 할 것을 청하니, 이 마침내 노왕 유흥魯王 劉興제왕 유석齊王 劉石을 내보내 봉국으로 나아가게 하였다.注+유석劉石유장劉章의 아들이고 유연劉縯적손嫡孫이다.
馬援兄子壻王磐 平阿侯仁之子也 王莾敗 擁富貲爲游俠하여 有名江淮間이러니
】 처음에 마원馬援의 조카사위인 왕반王磐평아후 왕인平阿侯 王仁의 아들인데, 왕망王莾이 패망하자 왕반은 부귀를 믿고 유협游俠을 하여 강회江淮 지역에서 명성이 있었다.
游京師하여 與諸貴戚友善하니 謂姊子曹訓曰 王氏 廢姓也 子石 當屛居自守어늘
왕반이 경사京師에 와서 여러 귀척들과 사귀어 친하게 지내니, 마원이 누이의 아들 조훈曹訓에게 말하기를 “왕씨王氏는 멸망한 성씨姓氏이다. 자석子石이 마땅히 물러나 은거하여 스스로 지켜야 하는데,
而反游京師長者하여 用氣自行하여 多所陵折하니 其敗必也注+子石, 王磐字. 長者, 指諸貴戚也.라하니라
도리어 경사의 장자長者들과 교유하면서 힘을 쓰고 멋대로 행동하여 남을 능멸하고 무시하는 일이 많으니, 실패할 것이 틀림없다.”注+자석子石왕반王磐의 자이다. 장자長者는 여러 귀척貴戚들을 가리킨다. 하였다.
後歳餘 坐事死러니 磐子肅 復出入王侯邸第 禁罔尙疏하여 諸王 皆在京師하여 競修名譽하고 招游士
】 1년 남짓 지난 뒤에 왕반王磐이 일에 연좌되어 죽었는데, 왕반의 아들 왕숙王肅이 또다시 왕후王侯의 저택에 출입하였다. 이때에 법망法網이 아직 엉성하여 여러 왕들이 모두 경사京師에 있으면서 다투어 명예를 닦고 유협游俠하는 선비들을 초치하였다.
馬援 謂司馬呂种曰注+种, 援行軍之司馬也. 建武之元 名爲天下重開하니 自今以往으로 海内日當安耳
마원馬援은 그의 행군사마行軍司馬여충呂种(여충)에게 이르기를注+여충呂种마원馬援행군사마行軍司馬이다.건무建武 초기에는 천하를 새롭게 여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으니, 지금 이후로는 해내海内가 날마다 편안해질 것이다.
但憂國家諸子竝壯而舊防未立하니 若多通賓客이면 則大獄起矣리니 卿曹戒愼之注+舊防, 諸侯王子不許交通賓客.하라하더니
다만 국가(황제)의 여러 아들들이 모두 건장한데 예전의 금령禁令이 아직 확립되지 못하였으니, 만약 이들이 빈객들과 많이 통한다면 큰 옥사가 일어날까 근심스럽다. 들은 부디 경계하고 삼가라.”注+예전 금령禁令에는 제후諸侯왕자王子들이 빈객과 교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였다.
至是 有上書告肅等受誅之家爲諸王賓客하니 慮因事生亂이라하다
이때에, 왕숙 등 주벌을 받은 집안의 자제들이 제왕諸王빈객賓客이 되니, 일을 인하여 난을 일으킬까 염려된다고 상서上書하여 고발한 자가 있었다.
更始子壽光侯鯉 得幸於沛王注+壽光縣, 屬北海郡.이러니 怨劉盆子하고 結客하여 殺故式侯恭注+沛王傳 “鯉怨劉盆子害其父, 因輔結客, 報殺盆子兄故式侯恭.”한대
마침 경시更始(유현劉玄)의 아들 수광후 유리壽光侯 劉鯉패왕沛王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注+수광현壽光縣북해군北海郡에 속하였다., 그는 유분자劉盆子를 원망하고 빈객들과 결탁하여 고식후 유공故式侯 劉恭을 살해하였다.
注+후한서後漢書≫ 〈패헌왕류보전沛獻王劉輔傳〉에 “유리劉鯉유분자劉盆子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원망하여 유보劉輔를 통해 빈객들과 결탁하고 유분자의 형인 고식후 유공故式侯 劉恭을 보복하여 죽였다.” 하였다.
帝怒하니 沛王 坐繫詔獄이라가 三日 乃得出하다 因詔郡縣하여 收捕諸王賓客하니 更相牽引하여 死者以千數
황제가 노하니, 패왕沛王은 이 죄에 연좌되어 조옥詔獄에 갇혀 있다가 3일 만에 석방되었다. 황제는 인하여 군현郡縣조령詔令을 내려서 여러 왕의 빈객들을 체포하게 하니, 번갈아 서로 끌어들여서 죽은 자가 천 명으로 헤아려졌다.
呂种 亦與其禍하니 臨命 歎曰 馬將軍 神人也注+臨命, 臨將終命之時.라하다
여충呂种 또한 이 옥사에 걸렸는데, 죽을 때에 탄식하기를 “마장군馬將軍은 신령스러운 사람이다.”注+임명臨命”은 막 숨을 거두려 할 때를 당한 것이다. 하였다.
秋八月戊寅 東海王彊 沛王輔 楚王英 濟南王康 淮南王延 始就國注+英ㆍ康ㆍ延, 亦皇子也.하다
】 가을 8월 무인일戊寅日동해왕 유강東海王 劉彊, 패왕 유보沛王 劉輔, 초왕 유영楚王 劉英, 제남왕 유강濟南王 劉康, 회남왕 유연淮南王 劉延이 처음으로 봉국에 나아갔다.注+유영劉英, 유강劉康, 유연劉延 역시 황자皇子이다.
以張佚爲太子太傅하고 桓榮爲少傅하다
桓榮(≪古聖賢像傳略≫)桓榮(≪古聖賢像傳略≫)
장일張佚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고, 환영桓榮태자소부太子少傅로 삼았다.
大會群臣하고 問誰可傅太子者오한대 群臣 承望上意하여 皆言太子舅執金吾原鹿侯陰識可注+原鹿縣, 屬汝南郡. 可, 言可任也.라하다
이 신하들을 크게 모아놓고 누가 태자太子의 사부가 될 만한 자인가를 물으니, 여러 신하들이 의 뜻을 받들려고 모두 태자의 외숙인 집금오 원록후執金吾 原鹿侯 음식陰識(음지)가 적임자라고 말하였다.注+원록현原鹿縣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는 맡길 만한 적임자임을 말한 것이다.
博士張佚 正色曰 今陛下立太子 爲陰氏乎잇가 爲天下乎잇가
이에 박사 장일博士 張佚이 정색하고 말하기를 “지금 폐하께서 태자를 세우는 것은 음씨陰氏를 위해서입니까. 천하를 위해서입니까.
卽爲陰氏인댄 則陰侯可어니와 爲天下인댄 則固宜用天下之賢才니이다
음씨를 위해서라면 음후陰侯를 사부로 두어도 되지만, 천하를 위해서라면 진실로 마땅히 천하의 현재賢才를 써야 합니다.” 하였다.
帝稱善하고 曰 欲置傅者 以輔太子也 今博士不難正朕하니 況太子乎注+不難正朕, 謂佚正救我, 猶且不難.아하고
황제가 좋은 말이라며 칭찬하고 말하기를 “사부를 두고자 하는 것은 태자를 보필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박사가 을 바로잡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으니, 하물며 태자이겠는가.”注+불난정짐不難正朕”은 장일張佚을 바로잡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음을 이른다. 하고는
卽拜佚爲太子太傅하고 以博士桓榮爲少傅하여 賜以輜車乗馬注+輜車, 衣車也, 輧車有衣蔽, 無後轅者, 謂之輜車.하다
당일로 장일을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임명하고 박사 환영博士 桓榮태자소부太子少傅로 삼고서 치거輜車승마乗馬를 하사하였다.注+치거輜車의거衣車(휘장을 친 수레)이니, 병거輧車 중에 휘장을 둘러 가리고 뒤에 끌채가 없는 것을 치거輜車라 한다.
大會諸生하여 陳其車馬印綬하고 曰 今日所蒙 稽古之力也 可不勉哉아하니라
환영이 제생諸生들을 크게 모아놓고서 하사받은 거마車馬인수印綬를 진열하고 말하기를 “오늘 내가 입은 은혜는 옛 경전을 상고한 덕이니, 제생들은 학문을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北匈奴이어늘 許之하다
북흉노北匈奴가 화친을 애걸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北匈奴遣使하여 貢馬及裘하고 更乞和親하고 并請音樂하며 又求率西域諸國胡客하여 俱獻見注+見, 賢遍切.이어늘
북흉노北匈奴가 사신을 보내어 말과 갖옷을 바치면서 다시 화친을 애걸하고 아울러 음악을 청하였으며, 또 서역西域 여러 나라의 오랑캐 객인客人(사절)을 거느리고 와서 함께 공물을 바치고 황제皇帝를 알현할 것을 청하였다.注+(알현하다)은 현편賢遍이다.
帝下三府하여 議酬答之宜注+三府, 謂太尉ㆍ司徒ㆍ司空府也.하니 司徒掾班彪曰 臣聞孝宣帝 勅邊守尉曰 匈奴 大國이라 多變詐하니
황제가 삼부三府에 회부하여 알맞게 답례할 바를 의논하게 하니注+삼부三府태위부太尉府, 사도부司徒府, 사공부司空府를 이른다., 사도연 반표司徒掾 班彪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이 듣건대, 효선황제孝宣皇帝께서 변방의 에게 신칙하시기를 ‘흉노匈奴는 큰 나라로 변화와 속임수가 많으니,
交接得其情이면 則却敵折衝이요 應對入其數 則反爲輕欺注+數, 術數也. 入其數, 言入其術中也.라하시니이다
그들을 상대하여 그들의 실정을 알면 적을 물리치고 제압할 수 있지만, 응대하다가 그들의 술수에 넘어가면 도리어 무시와 속임을 당할 것이다.’注+는 술수이니, “입기수入其數”는 그들의 술수에 넘어감을 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今北匈奴見南單于來附하고 懼謀其國이라 數乞和親하고 又遠驅牛馬하여 與漢合市하고 重遣名王하여 多所貢獻注+合市, 與漢和合爲市也. 重, 柱用切, 再也.하니
지금 북흉노北匈奴남선우南單于내부來附한 것을 보고 자기 나라를 도모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주 화친을 애걸하고, 또 멀리 소와 말을 몰고 와서 우리 나라와 교역하고 거듭 들을 보내서 공물을 바친 것이 많습니다.注+합시合市”는 나라와 화친하여 교역을 하는 것이다. 주용柱用이니 거듭함이다.
斯皆外示富彊以相欺誕也니이다 見其獻益重 知其國益虗 歸親愈數 爲懼愈多
이는 모두 밖으로 자기들의 부강함을 과시하여 상대를 속이려는 술책입니다. 이 보건대, 그들이 바친 공물이 중할수록 더욱 그들 나라의 재정이 고갈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귀의하여 친근히 하려는 일이 잦을수록 더욱 그들의 두려움이 많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나 今旣未獲助南이면 則亦不宜絶北이니 羈縻之義 禮無不答이라
그러나 지금 우리가 남선우를 도와서 북흉노를 칠 수 없다면 북흉노를 끊어서도 안 됩니다. 의 의리상, 에 답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謂可頗加賞賜하여 略與所獻相當하고 報答之辭 令必有適注+適, 當也. 言報答之辭, 必有當乎事情也.이니이다
생각건대 두둑하게 상을 하사하여 그들이 바친 바와 대략 상당하게 하고 보답하는 말도 반드시 여기에 맞게 하여야 합니다.注+은 마땅함이니, 〈“보답지사 영필유적報答之辭 令必有適”은〉 보답하는 글이 마땅히 사정에 합당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今立藁草并上注+立, 謂創制也. 文草曰藁.하오니 曰 單于不忘漢恩하고 追念先祖舊約하여 欲求和親하여 以輔身安國하니 計議甚髙
】 지금 당장 초고草稿를 써서 함께 올리니注+은 처음 만듦을 이른다. 글을 한 것을 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우單于나라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선조先祖의 옛 약속을 추념하여 화친을 청해서 몸을 보호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고자 하니, 계책과 의논이 매우 훌륭하다.
爲單于嘉之注+先祖舊約, 謂呼韓邪舊約也.하노라 往者 匈奴數有乖亂하여 呼韓邪, 郅自相讐隙이러니
선우를 위하여 가상히 여기노라.注+선조구약先祖舊約”은 호한야呼韓邪와의 옛 약속을 이른다. 지난번 흉노匈奴에 자주 변란變亂이 있어서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질지선우郅支單于가 서로 원수가 되어 틈이 벌어졌는데,
竝蒙孝宣皇帝垂恩救護 各遣侍子하고 稱藩保塞
모두 효선황제孝宣皇帝께서 내려주신 은혜와 구호救護를 받았으므로
其後 郅支忿戾하여 自絶皇澤이로되 而呼韓附親하여 忠孝彌著러니 及漢滅郅支 遂保國傳嗣하여 子孫相繼
그 뒤에 질지선우가 분노하여 스스로 황제의 은택을 끊은 데 반해, 호한야선우는 귀부하고 친히 따라서 충성과 효도가 더욱 드러났었는데, 호한야선우가 마침내 나라를 보존하고 후사에게 지위를 전하여 자손이 서로 이어져왔다.
今南單于擕衆向南하여 欵塞歸命하고 自以呼韓嫡長으로 次第當立이어늘 而侵奪失職이라하여
지금 남선우南單于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을 향하여 변경에 와서 귀순하겠다 하고, 스스로가 호한야의 적장손嫡長孫이므로 마땅히 즉위해야 할 차례인데도 선우의 지위를 빼앗겨 잃었다 해서,
猜疑相背하여 數請兵將하여 歸掃北庭하니 策謀紛紜하여 無所不至
시기하고 의심하여 서로 배반해서 자주 나라의 군대와 장수를 청하여 돌아가 북흉노北匈奴왕정王庭을 소탕하려 하니, 계책이 분분하여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惟念斯言 不可獨聽注+惟, 思也.이요 又以北單于比年貢獻하여 欲修和親이라 拒而未許하니 將以成單于忠孝之義
생각건대 이 말을 전적으로 들어줄 수 없고注+는 생각함이다., 또 북선우北單于가 해마다 공물을 바쳐서 화친을 닦고자 하므로 〈남선우의 요청을〉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는 장차 북선우의 충효忠孝하는 의리를 이루고자 해서였다.
漢秉威信하여 總率萬國하니 日月所照 皆爲臣妾이라
나라가 위엄과 신의를 갖고서 만국萬國을 통솔하니,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은 모두 신첩臣妾이 된다.
殊俗百蠻 義無親疎하여 服順者褒賞하고 畔逆者誅罰하니 善惡之效 呼韓, 郅支是也
풍속이 다른 여러 오랑캐들은 의리상 친소親疎의 구분이 없어서 복종하여 따르는 자에게는 포상을 내리고 반역하는 자에게는 주벌을 내리니, 선악善惡의 효험은 호한야선우와 질지선우가 이 경우이다.
今單于欲修和親하여 欵誠已逹하니 何嫌而欲率西域諸國하여 俱來獻見 西域國 屬匈奴 與屬漢何異리오
】 지금 선우單于가 화친을 닦고자 하여 정성이 이미 드러났는데, 무엇을 혐의하여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를 거느리고 함께 와서 공물을 바치고 황제를 알현하려 하는가. 서역의 여러 나라가 흉노匈奴에 소속되는 것이 나라에 소속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單于數連兵亂하여 國内虗耗하니 貢物 裁以通禮 何必獻馬裘리오
선우는 수년 동안 병란이 이어져서 나라 안이 텅 비었을 터이니, 공물을 줄여서 를 통해야 할 것이다. 어찌 말과 갖옷을 바칠 필요가 있겠는가.
今齎雜繒五百匹 弓, 鞬, 韇丸一 矢四發하여 遺單于注+鞬, 居言切, 弓衣也. 韇, 徒谷切. 韇丸, 箭筩也. 發, 十二矢也. 射禮三而止, 每射四矢, 故以十二矢爲一發也. 一說 “四矢爲一發.”하고
이제 잡증雜繒 500, 활과 활집, 화살통 한 개와 화살 네 을 가져다가 선우에게 주고注+거언居言이니 활집이다. 도곡徒谷이니, “독환韇丸”은 화살통이다. 은 12개의 화살이다. 활 쏘는 는 3번에 그치니, 매번 활을 쏠 때마다 4발의 화살을 사용하므로 화살 12개를 한 이라 한다. 일설에 “4개의 화살이 한 이다.” 하였다.,
又賜獻馬左骨都侯, 右谷蠡王雜繒各四百匹 斬馬劍各一하노라
또 말을 바친 좌골도후左骨都侯우녹려왕右谷蠡王에게 각각 잡증雜繒 400참마검斬馬劍을 하나씩 하사하노라.
單于前言先帝時所賜呼韓邪竽, 瑟, 空侯皆敗라하여 願復裁賜注+竽, 女媧氏所作, 大於笙. 列管三十六於匏內, 施簧管端而吹之. 空侯, 字或從竹, 樂器也. 其形似瑟而小, 七絃, 用撥彈之, 如琵琶. 世本云 “空國侯所造.” 劉昫曰 “漢武帝使樂人侯調所作, 以祠太廟.” 或曰 “侯輝所作, 其聲, 坎坎應節, 謂之坎侯, 聲訛爲箜篌.” 裁, 量也, 裁賜, 謂量多少以賜也.호되
선우가 지난번에 「선제先帝 때에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하사한 공후空侯가 모두 오래되어 망가졌다.」 하면서 다시 재량하여 하사하기를 원하였으나注+여와씨女媧氏가 만든 것이니, 보다 크다. 36개의 을 박[] 안에 진열하고 관의 끝에 (진동판)을 달아서 분다. 공후空侯는 글자가 혹 변을 따르기도 하니, 악기이다. 그 모습이 비파와 비슷하나 작으니, 이 일곱 줄로 활을 사용해 타는 것이 비파와 같다. ≪세본世本≫에는 “공국후空國侯가 만든 것이다.” 하였고, 유후劉昫(유후)는 “나라 무제武帝악인 후조樂人 侯調로 하여금 만들게 하였는데, 이것을 태묘太廟에 연주하여 제사했다.” 하였다. 혹자는 “후휘侯輝가 만든 것이니, 그 소리가 땅땅 절도에 맞아 감후坎侯라 했었는데, 음이 잘못되어 공후箜篌가 되었다.” 하였다. 는 헤아림(재량)이니, “재사裁賜”는 많고 적음을 헤아려 하사함을 이른다.,
念單于國尙未安하여 方厲武節하여 以戰攻爲務하니 竽瑟之用 不如良弓利劍이라 未以齎注+言不齎持往遺也.하노라
내 생각건대 선우의 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못해서 한창 무력을 숭상하여 전쟁과 공격의 일에 힘쓰고 있으니, 의 용도가 좋은 활과 예리한 검만 못할 듯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주지 않노라.注+〈“미이재未以齎”는〉 가지고 가서 주지 않음을 말한다.
不愛小物하노니 於單于便宜所欲 遣驛以聞하라한대 帝悉納從之하다
은 작은 물건을 아끼지 않노니, 선우가 원하는 바를 편의에 따라 파발마를 보내 알리라.’ 하소서.” 황제가 그의 말을 모두 받아들여 따랐다.
역주
역주1 以魯益東海 : “〈太子를〉 폐출하고 세우는 시기에는 〈거동에〉 어려운 점이 있는데, 劉彊이 자식 노릇을 잘 행하고 황제가 아버지 노릇을 잘 행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써서 찬미한 것이다.[廢興之際 難矣 彊能爲子 帝能爲父 故特書美之] ≪書法≫ 東海王 劉彊은 원래 太子였는데, 그의 어머니인 郭氏가 투기를 하여 皇后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에 유강이 이를 혐의하여 스스로 태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곽씨가 폐위된 것은 光武帝 建武 17년(41), 유강이 폐위된 것은 건무 19년(43)에 보인다. 書法은 ‘筆法’이란 말과 같다. 朱子는 ≪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적에 孔子의 ≪春秋≫ 筆法을 따라 綱과 目으로 나누었는바, 綱은 ≪春秋≫의 經文을, 目은 ≪春秋左氏傳≫ 傳文을 따랐다. ≪자치통감강목≫의 筆法을 밝힌 것으로는 劉友益(宋)의 ≪綱目書法≫, 尹起莘(宋)의 ≪綱目發明≫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책은 현재 淸나라 聖祖(康熙帝)가 엮은 ≪御批資治通鑑綱目≫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필법은 綱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특별히 이 ≪자치통감강목≫을 愛讀한 이유는 바로 이 필법에 있다. ≪어비자치통감강목≫에는 이외에도 汪克寬(元)의 ≪綱目凡例考異≫ 등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고 ≪강목서법≫과 ≪강목발명≫의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또한 陳濟(明)의 ≪資治通鑑綱目集覽正誤≫를 인용하여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각각 ≪書法≫, ≪發明≫, ≪正誤≫로 요약하여 표기하였다.
역주2 虎賁과 旄頭 : 虎賁은 官名으로 國君을 侍衛하거나 궁궐과 궁문을 守衛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旄頭는 騎士의 이름으로 제왕의 행차에 선봉의 역할을 하였다.
역주3 鍾簴(종거) : 종묘의 예악에 쓰이는 종과 북을 매다는 틀로, 종묘사직의 권위를 상징한다.
역주4 沛太后郭氏薨 : “諸侯王의 太后가 죽을 적에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쓴 것은 어째서인가. 廢后이기 때문이다. 廢后 중에 끝을 잘 마친 자가 드무니, 光武帝는 후한 情을 보존했다고 이를 만하고, 郭后는 폐위에 잘 대처했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薨’이라고 써서 모두 인정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의 凡例에 의하면, 戰國時代에 한 지역의 왕의 경우를 제외하고 薨이라고 쓴 자는, 不成君(정통을 승계하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한 자)과 廢帝와 廢后가 아니면 시호를 帝라 하고 后라고 한 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의 어머니요 공주 중에 큰 공이 있는 자이니, 이 경우가 아니면 薨이라고 쓰는 道가 없다. 唐나라 會昌(841~846) 이후로 宰相과 節度使 중에 薨이라고 쓴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王太后卒 未有書者 此其書 何 廢后也 廢后以善終者鮮矣 帝可謂能存厚 后可爲善處廢 故書薨 交予之 綱目之例 自戰國分王外 其書薨者 非不成君廢帝廢后 則諡爲帝爲后者也 不然則帝母也 公主有大功者也 非是 無薨道矣 唐會昌以後 宰相節鎮有書薨者 誤也]다” ≪書法≫
역주5 마침……살해하였다 : 更始는 更始帝 劉玄으로, 新나라 王莽 때 綠林兵과 舂陵兵 등의 연합세력이 新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황제로 세운 사람이며, 또 다른 반란 세력인 赤眉兵이 세운 황제가 劉盆子이다. 경시제는 적미병에게 핍박을 받다가 부하에게 살해되었고 유분자는 光武帝에게 항복하였다. 劉恭은 유분자의 형이며 조부가 元帝 때에 式侯에 봉해졌기 때문에 ‘故式侯’라 한 것이다.
역주6 乞和親 : “‘求和親(화친을 요구하다.)’이라고는 썼으나 ‘乞和親(화친을 애걸하다.)’이라고 쓴 적은 없으니, ‘乞’은 자신을 낮추는 말이고, 또 ‘求’라고 쓴 것보다 간절하다. 이보다 앞서 北匈奴가 일찍이 화친을 구했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때에 다시 화친을 哀乞하였으므로 특별히 ‘乞’이라고 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화친을 쓴 경우가 16번인데, ‘乞和親’이라고 쓴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結和親(화친을 맺다.)’이라고 쓴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으니, ‘乞和親’이라고 쓴 것은 한 번뿐이다.[書求和親矣 未有書乞和親者 乞 卑辭也 又切於書求者矣 先是北匈奴嘗求和親 不許 於是更乞和親 故特書乞 終綱目書和親十六 莫善於乞和親 莫不善於結和親 書乞和親 一而已]” ≪書法≫
역주7 名王 : 匈奴의 여러 왕 중에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자를 말한다.
역주8 羈縻(기미) : 말의 머리를 싼 것을 羈라 하고, 소의 고삐를 縻라 한다. 천자국(중국)이 먼 나라를 직접 통치하지 않고 그 나라의 우두머리에게 관직과 물품을 주고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하는 외교 방식을 말한다.
역주9 : 反切音을 표시한 것이다. ‘反(번)’은 뒤집는다(되치다)는 뜻으로 번역을 의미하고, ‘切’은 자른다는 의미이다. 앞 글자의 初聲을 따고 뒷글자의 中聲과 終聲을 따서 읽는다.
역주10 각각……보호하였다 : 呼韓邪單于와 郅支單于가 각자의 아들을 漢나라에 보내고 스스로 藩臣을 칭한 내용은 ≪資治通鑑綱目≫ 제6권 상 甘露 원년(B.C.53)과 2년(B.C.52) 조에 보인다.
역주11 漢나라가……뒤로 : 漢나라가 郅支單于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내용은 ≪資治通鑑綱目≫ 제6권 중 建昭 3년(B.C.34) 조에 보인다.
역주12 (文)[支] : 저본에는 ‘文’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支’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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