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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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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辰年(188)
무진년戊辰年(188)
五年이라 春二月 有星孛于紫宮注+紫宮, 卽太微也. 匡衛十二星之內, 皆曰紫宮, 天子之宮也.하다
나라 효령황제 중평孝靈皇帝 中平 5년이다. 봄 2월에 패성孛星자궁紫宮(자미궁紫微宮)에 나타났다.注+자궁紫宮은 바로 태미성太微星이다. 둘레에 있는 12개의 별의 안을 모두 자궁紫宮이라 하니, 천자天子이다.
◑黃巾餘賊 寇太原, 河東하다
황건적黃巾賊의 남은 무리가 태원太原하동河東을 침략하였다.
◑屠各胡寇幷州하여 殺刺史張懿하다
도각호屠各胡병주幷州를 침략하여 자사 장의刺史 張懿를 살해하였다.
◑以劉焉爲益州牧하고 劉虞爲幽州牧하다
유언劉焉익주목益州牧으로 삼고, 유우劉虞유주목幽州牧으로 삼았다.
太常劉焉 見王室多故하고 建議하여 以爲四方兵寇 由刺史威輕이요 且用非其人所致 宜改置牧伯하고 選淸名重臣하여 以居其任이니이다
태상 유언太常 劉焉황실皇室에 변고가 많은 것을 보고는 건의하기를 “사방四方에 병란이 나고 도적이 일어나는 것은 자사刺史의 위엄이 가볍고 또 적임자를 등용하지 못한 소치所致이니, 깨끗하고 명망이 있는 중신重臣을 선발하여 그 직임에 있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侍中董扶私謂焉曰注+扶學圖讖, 何進薦之, 徵拜侍中. 京師將亂하고 益州分野 有天子氣注+通鑑, 此下云 “焉乃更求益州.” 分, 扶問切. 二十八宿布列於天, 各有躔度. 周天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分爲十二次, 班固取三統歷, 十二次配十二野, 而分野之說行焉. 蔡邕月令章句, 自危十度, 至壁八度, 謂之豕韋之次, 衛之分野, 自壁八度, 至胃一度, 謂之降婁之次, 魯之分野, 自胃一度, 至畢六度, 謂之大梁之次, 趙之分野, 自畢六度, 至井十度, 謂之實沈之次, 晉之分野, 自井十度, 至柳三度, 謂之鶉首之次, 秦之分野, 自柳三度, 至張十二度, 謂之鶉火之次, 周之分野, 自張十二度, 至軫六度, 謂之鶉尾之次, 楚之分野, 自軫六度, 至亢八度, 謂之壽星之次, 鄭之分野, 自亢八度, 至尾四度, 謂之大火之次, 宋之分野, 自尾四度, 至斗六度, 謂之析木之次, 燕之分野, 自斗六度, 至須女二度, 謂之星紀之次, 越之分野, 自須女二度, 至危十度, 謂之玄枵之次, 齊之分野. 晉書天文志, 用後魏太史令陳卓所言郡國所入宿度, 今亦載之. 自軫十二度, 至氐四度, 爲壽星, 於辰在辰, 鄭分, 屬兗州. 自氐五度, 至尾九度, 爲大火, 於辰在卯, 宋分, 屬豫州. 自尾十度, 至南斗十一度, 爲析木, 於辰在寅, 燕分, 屬幽州. 自南斗十二度, 至須女十度, 爲星紀, 於辰在丑, 吳越分, 屬揚州. 自須女八度, 至危十五度, 爲玄枵, 於辰在子, 齊分, 屬靑州. 自危十六度, 至奎四度, 爲諏訾, 於辰在亥, 衛分, 屬幷州. 自奎五度, 至胃六度, 爲降婁, 於辰在戌, 魯分, 屬徐州. 自胃七度, 至畢十一度, 爲大梁, 於辰在酉, 趙分, 屬冀州. 自畢十二度, 至東井十五度, 爲實沈, 於辰在申, 魏分, 屬益州. 自東井十六度, 至柳八度, 爲鶉首, 於辰在未, 秦分, 屬雍州. 自柳九度, 至張十六度, 爲鶉火, 於辰在午, 周分, 屬三 自張十七度, 至軫十一度, 爲鶉尾, 於辰在巳, 楚分, 屬荊州.라하다
시중 동부侍中 董扶가 은밀히 유언에게 이르기를注+동부董扶도참설圖讖說을 배웠는데, 하진何進이 천거하여 불러다가 시중侍中을 제수하였다.경사京師가 장차 혼란할 것이요, 익주益州분야分野에는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습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유천자기有天子氣) 아래에 “유언劉焉이 마침내 다시 익주목益州牧이 되기를 요구했다.” 하였다. (분야)은 부문扶問이다. 28宿(수)가 하늘에 벌려 있을 적에 각각 전도躔度(성신星辰이 운행하는 도수度數)가 있다. 주천周天이 365와 4의 1인데 이것을 나누어 12방위를 만드니, 반고班固을 취하여 12방위를 12분야에 배속시켜 분야分野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채옹蔡邕에 의하면, 위수危宿 10로부터 벽수壁宿 8까지를 시위지차豕韋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벽수壁宿 8로부터 위수胃宿 1까지를 항루지차降婁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위수胃宿 1로부터 필수畢宿 6까지를 대량지차大梁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필수畢宿 6로부터 정수井宿 10까지를 실침지차實沈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정수井宿 10로부터 유수柳宿 3까지를 순수지차鶉首之次(순수지차)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유수柳宿 3로부터 장수張宿 12까지를 순화지차鶉火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장수張宿 12로부터 진수軫宿 6까지를 순미지차鶉尾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진수軫宿 6로부터 항수亢宿 8까지를 수성지차壽星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항수亢宿 8로부터 미수尾宿 4까지를 대화지차大火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미수尾宿 4로부터 두수斗宿 6까지를 석목지차析木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두수斗宿 6로부터 수녀숙須女宿 2까지를 성기지차星紀之次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고, 수녀숙須女宿 2로부터 위수危宿 10까지를 현효지차玄枵之次(현효지차)라 하니 나라의 분야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는 후위後魏(북위北魏)의 태사령太史令진탁陳卓이 말한 군국郡國이 들어간 28宿도수度數를 따랐으니 이제 이것도 기재한다. 진수軫宿 12로부터 저수氐宿 4까지가 수성壽星이 되니, 12방위의 진방辰方에 있고 나라의 분야로 연주兗州에 속한다. 저수氐宿 5로부터 미수尾宿 9까지가 대화大火가 되니 12방위의 묘방卯方에 있고 나라의 분야로 예주豫州에 속한다. 미수尾宿 10로부터 남두성南斗星 11까지가 석목析木이 되니 12방위의 인방寅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유주幽州에 속한다. 남두성南斗星 12로부터 수녀숙須女宿 10까지가 성기星紀가 되니 12방위의 축방丑方에 있고 나라와 나라의 분야로 양주揚州에 속한다. 수녀숙須女宿 8로부터 위수危宿 15까지가 현효玄枵가 되니 12방위의 자방子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청주靑州에 속한다. 위수危宿 16로부터 규수奎宿 4까지가 추자諏訾(추자)가 되니 12방위의 해방亥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병주幷州에 속한다. 규수奎宿 5로부터 위수胃宿 6까지가 항루降婁가 되니 12방위의 술방戌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서주徐州에 속한다. 위수胃宿 7로부터 필수畢宿 11까지가 대량大梁이 되니 12방위의 유방酉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기주冀州에 속한다. 필수畢宿 12로부터 동정숙東井宿 15까지가 실침實沈이 되니 12방위의 신방申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익주益州에 속한다. 동정숙東井宿 16로부터 유수柳宿 8까지가 순수鶉首가 되니 12방위의 미방未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옹주雍州에 속한다. 유수柳宿 9로부터 장수張宿 16까지가 순화鶉火가 되니 12방위의 오방午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삼하三河(하내河內, 하동河東, 하남河南으로 낙양洛陽 지역)에 속한다. 장수張宿 17로부터 진수軫宿 11까지가 순미鶉尾가 되니 12방위의 사방巳方에 있고 나라 분야로 형주荊州에 속한다. 하였다.
刺史郤儉 賦斂煩擾하여 謠言 遠聞注+郤, 音隙, 姓也.하고 而耿鄙, 張懿 皆爲盜所殺이라
마침 익주자사 극검益州刺史 郤儉(극검)이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백성들을 괴롭혀서 유언비어가 널리 퍼지고注+이니, 이다., 경비耿鄙장의張懿도 모두 도적들에게 살해당하였다.
朝廷 遂從焉議하여 選列卿, 尙書하여 爲州牧호되 各以本秩居任注+列卿, 秩中二千石, 尙書, 秩六百石耳, 東都以後, 尙書職任, 重於列卿.하여 以焉爲益州하고 虞爲幽州하니 州任之重 自此始하다
조정에서는 마침내 유언의 건의를 따라 열경列卿(구경九卿)과 상서尙書에서 뽑아서 주목州牧을 삼되 각각 본래의 질석秩石을 가지고 직임에 있게 하여注+열경列卿중이천석中二千石이고 상서尙書육백석六百石이었는데, 동도東都(동한) 이후로는 상서尙書직임職任열경列卿보다 중하였다. 유언을 익주목益州牧으로 삼고 유우劉虞유주목幽州牧으로 삼으니, 주목州牧의 직임이 중해진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魯恭王之後注+魯恭王, 名餘, 景帝子. 東海恭王五世孫이라 嘗爲幽州刺史하니 民夷懷其恩信이라 用之注+東海恭王, 名彊, 光武子.하다
유언劉焉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고注+노공왕魯恭王은 이름이 이니, 경제景帝의 아들이다., 유우劉虞동해공왕東海恭王의 5세손이다. 유우는 일찍이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냈는데, 백성과 오랑캐들이 그의 은혜와 신의를 그리워하였으므로 그를 유주목幽州牧으로 등용한 것이다.注+동해공왕東海恭王은 이름이 이니, 광무제光武帝의 아들이다.
入蜀하니 賊殺卻儉이어늘 從事賈龍等 破走之하고 選吏迎焉하니 徙治綿竹하고 務行寛惠하여 以收人心하다
유언이 지방에 들어갔는데 마침 도적들이 각검卻儉을 살해하니, 종사從事가룡賈龍 등이 도적들을 격파하여 패주시키고 관리를 선발하여 유언을 맞이하였다. 유언은 치소治所면죽綿竹으로 옮기고는 너그럽고 은혜로운 정사를 행하여 인심人心을 수합하는 데 힘썼다.
南匈奴右部反하여 殺其單于羌渠하다
남흉노南匈奴우부右部가 반란을 일으켜 선우 강거單于 羌渠를 살해하였다.
詔發南匈奴兵하여 配劉虞하여 討張純하니 單于羌渠 遣左賢王하여 將騎詣幽州한대
조령詔令을 내려서 남흉노南匈奴의 병력을 징발하여 유우劉虞에게 배속시켜서 장순張純을 토벌하게 하니, 선우 강거單于 羌渠좌현왕左賢王을 보내어 기병을 거느리고 유주幽州로 가게 하였다.
國人 恐發兵無已 於是 右部䤈落하여 與屠各胡合하니 凡十餘萬人이라 攻殺羌渠注+䤈, 馨兮切. 光武建武中, 右部薁犍日逐王比, 來降, 立爲䤈落尸逐鞮單于. 右部䤈落者, 蓋其支庶, 分居右部, 因以爲種落之號.하다
흉노의 사람들은 병력을 징발함이 끝이 없을까 염려하였다. 이에 우부右部혜락䤈落(혜락)이 반란을 일으켜 도각호屠各胡와 연합하니, 병력이 모두 10여만 명이었다. 이들은 선우 강거單于 羌渠를 공격하여 살해하였다.注+형혜馨兮이다. 광무제 건무光武帝 建武 연간에 우부 욱건일축왕右部 薁犍日逐王(욱건일축왕) 가 와서 항복하므로 그를 세워서 혜락시축제선우䤈落尸逐鞮單于로 삼았다. 우부 혜락右部 䤈落은 남흉노의 지서支庶(지손支孫)들이니, 우부右部에 나누어 살면서 이로써 종족과 부락의 칭호로 삼았다.
大水하다
】 홍수가 졌다.
기주자사 왕분冀州刺史 王芬이 자살하였다.
陳蕃子逸 與襄楷 會於冀州刺史王芬坐注+坐, 才臥切.러니 楷曰 天文 不利宦者하니 黃門, 常侍真族滅矣리라
진번陳蕃의 아들 진일陳逸양해襄楷와 함께 기주자사 왕분冀州刺史 王芬의 자리에 모여 있었는데注+(자리)는 재와才臥이다., 양해가 말하기를 “천문天文환자宦者들에게 이롭지 못하니, 황문黃門상시常侍가 참으로 멸족될 것이다.” 하였다.
어늘 芬曰 若然者 願驅除하노라하고 因上書言호되 黑山賊 攻劫郡縣하니 欲以起兵이니이다
진일이 기뻐하자, 왕분이 말하기를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내가 환관을 몰아내기를 원한다.” 하고는, 인하여 상서上書하여 말하기를 “흑산적黑山賊군현郡縣을 공격하고 겁탈하므로, 군대를 일으키고자 합니다.” 하였다.
帝欲北巡河間舊宅이라 芬等 謀以兵誅諸常侍하고 因廢帝而立合肥侯하여
마침 황제가 북쪽으로 가서 하간河間의 옛집에 행차하고자 하였다. 왕분 등은 병력을 거느려 상시常侍들을 주살하고, 이어서 황제를 폐하고 합비후合肥侯를 세울 것을 도모하였다.
以告曹操注+秦合肥縣, 漢置廬江國, 東漢爲合肥侯國, 仍隷九江郡.한대 操曰 夫廢立之事 天下之至不祥也 古人 有權成敗하고 計輕重하여 而行之者하니 伊, 霍 是也
왕분 등이 이 계획을 조조曹操에게 알리자注+나라 합비현合肥縣은, 전한前漢에서는 이곳에 여강국廬江國을 설치하였고, 동한東漢에서는 합비후국合肥侯國으로 삼아서 그대로 구강군九江郡에 소속시켰다., 조조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황제를 폐하고 세우는 일은 천하天下에 지극히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옛사람 중에 성패成敗를 저울질하고 경중輕重을 계산하여 이를 실행한 자가 있으니, 바로 이다.
이나 皆懷至忠之誠하고 據宰輔之勢하고 因秉政之重하고 同衆人之欲이라 能計從事立이라
그러나 이들은 모두 지극히 충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재보宰輔의 권세를 쥐고 있었으며, 또 정권을 잡고 있는 중한 지위에다가 여러 사람들의 바람이 함께하였다. 그러므로 능히 계책을 따르자 일이 성립된 것이다.
今諸君 徒見曩者之易하고 未覩當今之難하여 而造作非常하여 欲望必克하니 不亦危乎
지금 제군들은 한갓 과거의 쉬운 것만 보고 당금當今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여 비상非常한 일을 만들어서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라니, 또한 위태롭지 않겠는가.”
會北方夜半 有赤氣하여 東西竟天하니 太史言 北方 有陰謀하니 不宜北行이라한대
】 마침 북방北方의 밤하늘에 붉은 구름이 있어서 동서東西로 하늘에 가득하였다. 이에 태사太史가 말하기를 “북방北方음모陰謀가 있으니, 북쪽으로 행차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帝乃止하고 勅芬罷兵이러니 俄而 徵之하니 懼自殺하다
황제가 마침내 행차를 중지하고 왕분王芬에게 명하여 군대를 파하게 하였다. 얼마 후 그를 부르니, 왕분이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
秋八月 置西園八校尉하다
】 가을 8월 서원西園에 여덟 명의 교위校尉를 두었다.
以小黃門蹇碩으로 爲上軍校尉하고 袁紹, 鮑鴻, 曹操, 趙融, 馮芳, 夏牟, 淳于瓊等七校尉 皆統於碩注+蹇, 姓也. 七校尉, 紹爲中軍校尉, 鴻爲下軍校尉, 操爲典軍校尉, 融爲助軍左校尉, 芳爲助軍右校尉, 牟爲左校尉, 瓊爲右校尉.하다
소황문 건석小黃門 蹇碩상군교위上軍校尉로 삼고, 원소袁紹, 포홍鮑鴻, 조조曹操, 조융趙融, 풍방馮芳, 하모夏牟, 순우경淳于瓊 등 일곱 명의 교위校尉가 모두 건석에게 통솔을 받았다.注+이다. 일곱 명의 교위校尉원소袁紹중군교위中軍校尉, 포홍鮑鴻하군교위下軍校尉, 조조曹操전군교위典軍校尉, 조융趙融조군좌교위助軍左校尉, 풍방馮芳조군우교위助軍右校尉, 하모夏牟좌교위左校尉, 순우경淳于瓊우교위右校尉가 된 것이다.
帝自黃巾之起 留心戎事하니 壯徤有武略이라 帝親任之하여 雖大將軍이나 亦領屬焉하다
황제는 황건적이 일어난 뒤로부터 군대의 일에 유념하였는데, 건석이 건장하고 무략武略이 있다 하여 황제가 그를 친애하고 신임해서, 비록 대장군大將軍이라도 그에게 예속시켰다.
冬十月 靑, 徐黃巾 復起하다
】 겨울 10월에 청주靑州서주徐州의 황건적이 다시 일어났다.
평락관平樂觀에서 강무講武(무예武藝를 강습함)하였다.
望氣者以爲京師 當有大兵하여 兩宮 流血이라하니 帝欲厭之注+厭, 一涉切, 厭勝也.하여 乃發四方兵하여 講武於平樂觀한대
】 구름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경사京師에 마땅히 큰 병란이 있어서 두 (황제와 태후)이 피를 흘릴 것이다.” 하였다. 황제가 이 기운을 누르고자 하여注+일섭一涉이니, 눌러 이기는 것이다. 마침내 사방四方의 병력을 징발하여 평락관平樂觀에서 강무講武하였는데,
起大壇하고 建華蓋注+水經註 “穀水, 自白馬寺東南, 逕平樂觀, 在上西門外.”하고 帝躬擐甲介馬하여 稱無上將軍하고 行陳三匝而還注+擐, 貫也. 介, 亦甲也. 行, 去聲, 按行也. 陳, 讀曰陣, 下同. 匝, 周也.하다
큰 단을 세우고 화려한 일산을 세우고는注+수경주水經註≫에 “곡수穀水백마사白馬寺로부터 동남쪽으로 평락관平樂觀을 거쳐 흐르니, 〈평락관平樂觀은〉 상서문上西門 밖에 있다.” 하였다. 황제가 몸소 갑옷을 입고 말에게도 갑옷을 입히고서 무상장군無上將軍이라 칭하고 을 세 차례 순행하고 돌아왔다.注+은 뀀이요, 또한 갑옷이다. 거성去聲이니, 안행按行(순행巡行)함이다. (군진軍陣)은 으로 읽으니, 아래도 같다. 은 두루함이다.
問討虜校尉蓋勳曰 吾講武如是하니 何如 對曰 臣聞先王 昭德이요 不觀兵注+國語, 載祭公謀父之言. 昭, 明也. 觀兵, 觀示兵威也.이라하니이다
황제가 토로교위 개훈討虜校尉 蓋勳(갑훈)에게 묻기를 “내가 강무講武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어떠한가?” 하자, 갑훈이 대답하기를 “이 들으니, 선왕先王을 드러내 보였고 군대의 위엄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注+〈“소덕 불관병昭德 不觀兵”은〉 ≪국어國語≫에 실려 있는 제공모부祭公謀父(채공모보)의 말이다. 는 밝힘이다. “관병觀兵”은 군대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다.
今寇在遠而設近陳하니 不足昭果毅 祗黷武耳注+殺敵爲果, 致果爲毅. 黷, 猶慢也, 數也.니이다 帝曰 善하다 恨見君晩이로다 群臣 初無是言也니라
지금 적이 먼 곳에 있는데 가까운 곳에 을 설치하였으니, 과의果毅를 밝히기에 부족하고 다만 를 함부로 할 뿐입니다.”注+적을 죽임을 라 하고, 를 지극히 함을 라 한다. 은 함부로 하고, 자주 함과 같다.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좋다. 내 을 늦게 만난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여러 신하들 중에는 애당초 이런 말을 하는 자가 없었다.” 하였다.
謂袁紹曰 上甚聰明호되 但蔽於左右耳라하고 與紹 謀共誅嬖倖하니 蹇碩하여 出勳爲京兆尹하다
개훈蓋勳원소袁紹에게 말하기를 “은 매우 총명한데 다만 좌우左右 신하들에게 가려졌을 뿐이다.” 하고는, 원소와 함께 총애하는 환관들을 죽일 것을 도모하였다. 건석蹇碩이 두려워하여 갑훈을 경조윤京兆尹으로 내보냈다.
十一月 涼州賊王國 圍陳倉이어늘 以皇甫嵩爲左將軍하여 討之하다
】 11월에 양주涼州왕국王國진창陳倉을 포위하자, 황보숭皇甫嵩좌장군左將軍으로 삼아서 토벌하게 하였다.
◑遣騎都尉公孫瓚하여 討漁陽賊하여 走之하다
기도위 공손찬騎都尉 公孫瓚을 보내 어양漁陽의 적을 토벌하여 패주시켰다.
역주
역주1 마땅히……바꾸고 : 漢 武帝 때에 전국을 13部(州)로 나누고 刺史를 두었다. 이후 州 長官의 명칭이 牧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刺史로 바뀌는 것이 반복되었는데, 이때 牧으로 바뀐 것이다.
역주2 (何)[河] : 저본에는 ‘何’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河’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三統歷 : 세 종류의 책력으로 夏나라는 建寅月을 歲首 삼으니 이를 人統이라 하고, 殷나라는 建丑月을 세수로 삼으니 이를 地統이라 하고 周나라는 建子月을 세수로 삼으니 이를 天統이라 하였다. 建寅月은 斗柄(北斗七星 자루)이 초저녁에 寅方을 가리키는 달로 이를 夏正이라 하는데 지금의 음력 정월이며, 建丑月과 建子月 역시 斗柄이 丑方과 子方을 가리키는 달로 建丑月은 지금의 음력 섣달인데 이를 殷正이라 하고, 建子月은 지금의 음력 동짓달인데 이를 周正이라 한다. 三統이란 “하늘은 子會에서 열리고 땅은 丑會에서 열리고 사람은 寅會에서 태어났다.[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 하였다는 運會說에 입각한 것이다. 1運은 129,600년인데, 여기에 子․丑․寅․卯의 12會가 있으며 1會는 10,800년으로 한 運會가 끝나면 天地가 다시 開闢한다고 한다.
역주4 月令章句 : 蔡邕(133~192)이 지은 것으로 兩漢時代의 思想과 科學技術 등을 서술하였는데 현재 完本은 전하지 않고 輯軼本이 전한다.
역주5 冀州刺史王芬自殺 : “王芬이 환관을 주벌하고 인하여 황제를 폐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울 것을 도모하였는데, 어찌하여 自殺이라고만 썼는가. 군주에게 경계를 보인 것이다. 鄭衆이 전횡하자 周章의 계책이 일어났고, 趙忠과 張讓이 횡포를 부리자 왕분의 계책이 결정되었으니, ≪資治通鑑綱目≫에 역모를 했다고 쓰지 않은 것은 환관을 높이고 신임하는 군주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왕분은 폄하할 것이 없는가. 자살이라고 쓴 것은 그를 폄하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비상한 일을 만들려 하였으니, 이로써 다만 자기 몸을 죽였을 뿐이다.[芬謀誅宦官 因廢立帝 則曷爲止以自殺書 示戒也 鄭衆專而周章之謀起 趙張橫而王芬之計決 綱目不書謀逆 所以爲尊信宦閹者之戒也 然則芬無貶乎 書自殺 所以爲貶也 不量其力 造作非常 祗足以殺其身而已矣]” ≪書法≫ “王芬이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황제)을 도모하였으니, 마땅히 ≪春秋≫의 無將의 주벌(君親에 대해서는 弑害는 물론 시해하려는 마음만 가져도 주벌함)을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그 모반한 사실을 쓰지 않고, 또 어찌하여 죄가 있어 伏誅했다고 쓰지 않았는가. 이때에 靈帝의 죄악이 桀王보다도 더하였으니, 바로 獨夫일 뿐이다. 더구나 王芬은 다만 환관을 죽여서 어두운 군주를 폐하고 현명한 군주를 세우고자 한 일을 꾀한 것이다. 이 때문에 ≪資治通鑑綱目≫에서 그의 죄를 감해주었으니, 이는 왕분이 靈帝를 미워한 것을 용서한 것으로, 그 뜻이 은미하다.[芬以下謀上 宜得春秋無將之誅 胡不書其謀反 又胡不書其有罪伏誅 是時靈帝罪浮于桀 乃獨夫耳 況芬本謀特欲誅宦者 爲廢昏立明之擧 是以綱目末減其罪 蓋恕芬 所以惡靈也 其旨微矣]” ≪發明≫
역주6 伊尹과 霍光 : 伊尹은 이름이 摯로 商나라의 賢相이다. 夏나라의 桀王이 無道한 짓을 자행하자, 商나라의 湯王을 보좌하여 걸왕을 쳐서 夏나라를 멸망시키고 商나라를 통일천하로 만들었다. 또 탕왕의 손자인 太甲이 즉위하여 잘못을 저지르자, 그를 탕왕의 묘소가 있는 桐 땅으로 내쳤다가 태갑이 改過遷善한 뒤에 다시 復位시켰는바, 이 사실이 ≪史記≫ 〈殷本紀〉와 ≪孟子≫ 〈萬章 上〉에 보인다. 霍光은 前漢 武帝 때의 大將軍으로, 무제의 遺詔를 받들어 어린 昭帝를 옹립하고 보필하였으며, 소제가 後嗣 없이 일찍 죽자, 太后의 令으로 昌邑王 劉賀를 迎立하였으나, 유하가 荒淫無道하므로 그를 폐위하고 무제의 증손인 劉詢(宣帝)을 옹립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역주7 講武平樂觀 : “‘講武’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난한 것이다. 도적이 먼 곳에 있는데 京師에서 講武하는 것은 대비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中平 元年(184) 황건적이 일어났을 때에 뒤이어 군대를 都亭에 주둔했다고 썼고, 中平 5년(188) 황건적이 다시 일어났을 때에도 뒤이어 平樂觀에서 講武하였다고 썼으니, 이는 모두 깊이 비난한 것이다. 講武를 쓴 것이 이때 시작되었으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講武’라고 쓴 것이 세 번이고 ‘大閱(크게 閱兵했다)’이라고 쓴 것이 두 번이다.[書講武 何 譏也 寇在遠而講武於京師 以爲非禦備也 故元年賊起 繼書屯都亭 五年復起 繼書講武平樂觀 皆深譏之 書講武始此 終綱目 書講武三 書大閱二]다” ≪書法≫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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