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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사도司徒 왕도王導가 병을 핑계로 조회하지 않고 사사로이 치감郗鑒을 전송하자, 변곤卞壼이 아뢰기를 “왕도가 법을 무시하고 사사로운 정을 따라서 대신大臣의 절조節操가 없으니, 그를 면직할 것을 청합니다.” 하니, 비록 이 일이 그치고 실행되지 않았으나, 온 조정이 두려워하였다.
변곤은 검소하고 청렴결백하며 일을 결단하는 것이 정확하고 솔직하며, 맡은 관직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여 시속時俗이 좋아하는 것을 구차히 함께 따르려 하지 않았으므로, 여러 명사名士들에게 경시를 당하였다.
완부阮孚가
注+① 阮孚는 阮咸의 아들이다. 변곤에게 이르기를 “
경卿은 항상 한가롭고 편안한 때가 없어서 기왓장을 입에 물고 있는 듯하니, 너무 수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자, 변곤이 대답하기를 “여러 군자들은 도덕이 드넓고 풍류가 뛰어남으로써 서로 숭상하니,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일을 할 사람은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
귀유貴遊(관직이 없는
왕공귀족王公貴族)의 자제들 중에
왕징王澄과
사곤謝鯤을 사모하여 예법에 구애받지 않고 호방하게 행동하는 자들이 많았다. 변곤은 조정에서 얼굴빛을 엄숙하게 하고 말하기를 “예법을 무너뜨리고
풍교風敎를 해치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없다.
중조中朝가 전복된 것이 실로 이 때문이다.” 하고,
상주上奏하여 그들의 죄를 심문하고자 하였다.
注+② 中朝는 西晉을 이른다. “奏推”는 上에게 아뢰어서 그 죄를 심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도王導와 유량庾亮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니, 마침내 중지하였다.
目
[
목目]
사마종司馬宗은 스스로 직책을 잃었다고 여겨서 조정을 원망하였고
注+① 司馬宗이 禁軍을 관장하는 직책에서 해임당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실직했다고 여긴 것이다. 사마종은 明帝의 사부였는데, 명제가 즉위하자 長水校尉를 더해주었다. 左衛將軍으로 전직하여, 虞胤과 함께 황제에게 신임을 받아서 금군을 관장하였다. 사마종은 王導, 庾亮과 뜻이 맞지 않아서 의리를 중시하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협객들과 결탁하여 그들을 심복으로 삼았다. 왕도와 유량이 모두 이것을 아뢰었으나, 황제는 사마종이 친족이라 하여 매번 포용하였다. 황제가 병이 위독하자 사마종과 우윤이 은밀히 반란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는데, 유량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 御牀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며 아뢰자, 황제가 그제야 비로소 깨닫고 사마종을 驃騎將軍으로 전직시키고 우윤을 大宗正으로 삼으니, 사마종은 마침내 원망하여 말소리와 얼굴빛에 나타났다. 또 평소
소준蘇峻과 친하였다. 〈이 때문에〉
유량庾亮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고, 사마종 역시
집정대신執政大臣인 유량을 폐하고자 하였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종아鍾雅가 사마종이 모반했다고 탄핵하니, 유량은 그를 체포하여 죽이고 그의 형인 태재太宰 서양왕西陽王 사마양司馬羕을 강등하여 익양현왕弋陽縣王으로 봉하였다.
사마종은 종실에 가까운 친족이고 사마양은
선제先帝의 사부였는데
注+② 司馬羕과 司馬宗은 형제인데 사마종은 近屬이라고 하고 사마양은 保傅라고 하였으니, 사마종에게는 친족을 쓰고 사마양에게는 관직을 쓴 것이다. 유량이 하루아침에 죽이고 내치니, 이로 말미암아 더욱
원근遠近의 인심을 잃게 되었다.
사마종이 죽을 때에 황제(진晉 성제成帝)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오랜 뒤에 황제가 유량에게 묻기를 “평상시 보이던 머리가 하얀 노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자, 유량은 그가 모반하다가 복주伏誅되었다고 대답하였다.
황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외숙이 누군가가 역적질을 한다고 말하면 곧바로 그를 죽여버리니, 사람들이 만일 외숙이 역적질을 한다고 하면 마땅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자, 유량은 두려워하여 낯빛이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