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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1)

자치통감강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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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4권 상
漢 獻帝 建安 14년(209)~漢 獻帝 建安 24년(219)
己丑年(209)
起己丑漢獻帝建安十四年하여 盡丁未漢後主建興五年하니 凡十九年이라
十四年이라 春三月 孫權 引兵還하다
孫權 圍合肥하여 久不下 率輕騎하고 欲身往突敵이어늘
長史張紘 諫曰 麾下恃盛壯之氣하고 忽彊暴之虜하시니 三軍之衆 莫不寒心注+麾下, 猶言閣下‧節下‧殿下也. 以權在軍中, 故稱麾下.이라
雖斬將搴旗하여 威震敵場이나 此乃偏將之任이요 非主將之宜也注+搴, 音騫, 拔取之也. 願抑賁, 育之勇하고 懷霸王之計하소서
乃止하다 操遣兵하여 救合肥로되 久而不至러니
揚州別駕蔣濟 詐言救至라하여 遣使齎書語城中하니 權軍 獲之하고 遂引兵還하다
秋七月 曹操軍合肥하고 開芍陂屯田注+芍, 音鵲. 陂, 所以畜水也. 芍陂, 屬廬江郡.하다
◑冬十月 荊州地震하다
◑十二月 操軍 還譙하다
操留張遼, 樂進, 李典하여 屯合肥而還하다 遼軍中 嘗有謀反者하여 驚亂起火하니 一軍 盡擾
遼曰 是不一軍盡反이요 必有造變者하여 欲以驚動人耳라하고 乃令軍中호되 其不反者 安坐하라
遼將親兵數十人하고 中陳而立이러니 俄頃 皆定하니 卽得首謀者하여 殺之注+陳, 讀曰陣.하다
孫權 表劉備하여 하다
周瑜攻曹仁歲餘 所殺傷 甚衆하니 委城走
以瑜領南郡太守하여 屯江陵하고 程普領江夏太守하여 治沙羨注+羨, 音夷. 沙羨, 縣名, 屬江夏郡.하고 呂範領彭澤太守하고 呂蒙領尋陽令注+範傳云 “範領彭澤太守, 以彭澤‧柴桑‧歷陽爲奉邑.” 班志 “尋陽縣, 屬廬江郡.”하다
劉備表權行車騎將軍하여 領徐州牧이러니 劉琦卒한대 以備領荊州牧이어늘
周瑜分南岸地以給備注+荊江之南岸, 則零陵‧桂陽‧武陵‧長沙四郡地也.하니 備立營於油口하고 改名公安注+水經 “南平郡孱陵縣, 有油水, 西北注于江, 曰油口.”하다
以妹妻備하니 妹才捷剛猛하여 有諸兄風이라 侍婢百餘人 皆執刀侍立하니 備每入 心常凜凜注+恐爲所圖也.이러라
曹操密遣辯士蔣幹하여 布衣葛巾으로 私行하여 說周瑜러니 瑜出迎하여 立謂之曰注+立, 卽也. 子翼 良苦로다 遠涉江湖하여 爲曹氏作說客邪注+子翼, 幹字.아하고
因延幹하여 與周觀營中하고 行視倉庫, 軍資, 器仗訖 還飮宴할새 示之侍者服飾珍玩之物하고
因謂幹曰 丈夫處世 遇知己之主하여 外託君臣之義하고 內結骨肉之恩하여 言行計從하여 禍福共之하니 假使蘇, 張更生이라도 能移其意乎注+蘇‧張, 謂蘇秦‧張儀也.
但笑하고 終無所言이러니 還白操하여 稱瑜雅量高致 非言辭所能間也注+間, 去聲.라하니라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4권 상
獻帝 建安 14년(209)~ 獻帝 建安 24년(219)
己丑年(209)
資治通鑑綱目≫ 제14권은 己丑年 나라 獻帝 建安 14년(209)부터 시작하여 丁未年 나라(蜀漢) 後主 建興 5년(227)까지이니, 모두 19년이다.
나라 孝獻皇帝 建安 14년이다. 봄 3월에 孫權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孫權孫權
孫權合肥를 포위하여 오랫동안 함락하지 못하자, 자신이 직접 경무장한 기병을 인솔하고 가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자 하였는데,
長史 張紘(장굉)이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麾下(손권)께서 건장한 기운을 믿고 강포한 적을 소홀히 하시니, 三軍의 병사들이 寒心해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注+麾下(將帥敬稱)는 閣下, 節下, 殿下라는 말과 같으니, 孫權이 군중에 있었기 때문에 휘하라고 칭한 것이다.
비록 적의 장수를 참살하고 적의 깃발을 탈취해서 위엄이 적진에 진동하더라도, 이는 일개 副將의 임무이고 主將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注+은 음이 이니, 뽑아 취함이다. 원컨대 을 억제하고 霸者王者의 계책을 품으소서.”
손권이 이에 출격을 중지하였다. 曹操가 군대를 보내어 합비를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오랫동안 이르지 않았다.
揚州別駕 蔣濟가 구원병이 도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使者에게 편지를 주어 성안으로 들어가서 말하게 하니, 孫權의 군대가 이 편지를 얻어 보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 가을 7월에 曹操合肥에 군대를 주둔하고, 芍陂(작피)의 屯田을 개척하였다.注+은 음이 이다. 는 물을 저축해두는 것이니, 芍陂廬江郡에 속하였다.
】 겨울 10월에 荊州에 지진이 있었다.
】 12월에 曹操의 군대가 譙縣으로 돌아갔다.
曹操張遼, 樂進, 李典을 남겨두어 合肥에 주둔하게 하고 돌아갔다. 장료의 軍中에 일찍이 반역을 도모한 자가 있어서 밤중에 병사들이 놀라 허둥대다가 불길이 일어나니, 온 군대가 모두 소요하였다.
張遼張遼
장료가 말하기를 “이것은 온 군대가 모두 배반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변란을 조장한 자가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동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고, 마침내 군중에 명령하기를 “배반하지 않은 자는 편안히 앉아 있으라.” 하였다.
장료가 親衛兵 수십 명을 거느리고 진영 가운데 서 있자 잠시 후에 모두 진정되니, 즉시 주모자를 잡아 죽였다.注+(진영)은 으로 읽는다.
孫權이 표문을 올려 劉備에게 荊州牧을 겸하게 하였다.
周瑜曹仁을 공격한 지 1년여에 殺傷당한 병사가 매우 많으니, 조인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孫權은 주유로 南郡太守를 겸하게 하여 江陵에 주둔시키고 程普江夏太守를 겸하게 하여 沙羨(사이)에 治所를 두게 하였으며,注+는 음이 이다. 沙羨의 이름이니, 江夏郡에 속하였다. 呂範彭澤太守를 겸하고 呂蒙尋陽令을 겸하게 하였다.注+三國志≫ 〈吳書 呂範傳〉에 “呂範彭澤太守를 겸하고서 彭澤, 柴桑, 歷陽奉邑(賦稅를 받아서 俸祿으로 삼는 封地)으로 삼았다.” 하였다. ≪漢書≫ 〈地理志〉에 “尋陽縣廬江郡에 속한다.” 하였다.
劉備가 표문을 올려 孫權行車騎將軍으로 삼아서 徐州牧을 겸하게 하였는데, 마침 劉琦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荊州牧을 겸하게 하였다.
周瑜南岸의 땅을 나누어 유비에게 주니,注+
劉備가 孫夫人에게 장가들다劉備가 孫夫人에게 장가들다
荊江南岸은 바로 零陵, 桂陽, 武陵, 長沙의 땅이다.
유비는 油口에 진영을 세우고 지명을 고쳐 公安이라 하였다.注+水經≫에 “南平郡 孱陵縣(잔릉현)에 油水가 있으니, 서북쪽으로 양자강으로 유입되는데, 이곳을 油口라 한다.” 하였다.
孫權이 자기의 妹氏劉備에게 시집보내니, 그 매씨는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강하고 용맹하여 여러 오라비의 풍모가 있었다. 모시는 종 백여 명이 모두 칼을 잡고 모시고 서 있으니, 유비가 매번 그녀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에 항상 두려워하였다.注+〈“心常凜凜”은〉 그녀에게 도모를 당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曹操가 비밀리에 辯士 蔣幹을 보내어 布衣葛巾을 착용하고 남몰래 길을 떠나 周瑜를 설득하게 하였는데, 주유가 나와 맞이하여 즉시 그에게 이르기를注+은 즉시이다.子翼이 참으로 고생한다. 멀리 江湖를 건너와서 曹氏를 위하여 유세하는 이 되었는가.”注+子翼蔣幹의 자이다. 하고는
장간을 맞이하여 함께 진영 안을 두루 구경하고 다니면서 창고와 군수물자, 병기와 의장을 보여준 뒤에 돌아와 술을 마시고 잔치할 적에 장간에게 모시는 자들의 아름다운 복식과 진귀한 완호품을 보여주었다.
주유는 인하여 장간에게 말하기를 “大丈夫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서 밖으로는 君臣의 의리를 의탁하고 안으로는 骨肉의 은혜를 맺어 말이 행해지고 계책이 시행되어서 을 함께하니, 설령 같은 辯士가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注+, ”은 蘇秦張儀를 이른다. 하였다.
장간이 다만 웃기만 하고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가 조조에게 아뢰면서 주유의 아량과 높은 운치는 언어로 이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칭찬하였다.注+(이간질하다)은 去聲이다.


역주
역주1 孟賁과 夏育의 용맹 : 맹분과 하육은 모두 중국 고대의 勇士이다. 맹분은 齊나라 사람으로 살아 있는 소의 뿔을 손으로 뽑고, 물에서는 蛟龍도 피하지 않았으며 뭍에서는 호랑이와 코뿔소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육은 衛나라 사람으로 千鈞의 무게를 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鈞은 120斤이다.
역주2 領荊州牧 : 領은 兼領의 의미로 겸직을 가리킨다.(安作璋‧熊鐵基, ≪秦漢官制史稿≫, 齊魯書社, 1984)
역주3 蘇秦과 張儀 : 蘇秦과 張儀는 전국시대의 辯士로, 각국을 돌아다니며 교묘하게 제후들을 설득했던 인물들이다. 소진은 처음에 秦나라 惠王을 찾아갔으나 자신의 말을 써주지 않자, 燕‧趙‧韓‧魏‧齊‧楚의 六國이 연합하여 秦나라에 대항하도록 하는 合從策을 가지고 각국의 군주를 설득하였고, 장의는 육국의 군주들에게 다시 秦나라를 섬기도록 하는 連衡策을 가지고 설득하였다.(≪史記≫ 〈蘇秦列傳〉, 〈張儀列傳〉)

자치통감강목(11)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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