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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처음에 太宰 慕容恪이 병이 있었는데, 모용각은 燕主 慕容暐는 나이가 어려서 직접 정사를 다스리지 못하고 太傅 慕容評은 시기심이 많다고 여겨서 모용위의 형 樂安王 慕容臧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지금 남쪽에 남은 晉나라(東晉)와 서쪽에 강한 秦나라(前秦)가 항상 〈우리 나라를〉 공격하여 빼앗을 마음을 품고 있다. 우리는 大司馬가 6軍을 통솔하니, 적임자가 아니면 맡겨서는 안 된다.
내가 죽은 뒤에 親疏를 가지고 따져 말한다면 마땅히 너와 慕容沖이 맡아야 하겠지만,
注+① 慕容沖은 慕容暐의 아우이다. 너희들은 비록 재주와 식견이 明敏하나 나이가 어려서 다사다난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吳王(慕容垂)은 타고난 자품이 英傑하고 세상을 뛰어넘는 智略을 갖추고 있으니, 너희들이 만약 그를 추대하여 대사마의 임무를 맡기면 반드시 四海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외적이겠느냐. 이익을 탐하여 폐해를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모용각은 또 이것으로 모용평에게 말해주었는데, 모용각이 죽자 모용평은 그 유언을 따르지 못하였다.
注+② ‘冒利而忘害’는 兵權을 얻는 이로움에 눈이 멀어 외람되이 大司馬의 임무를 담당하고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패하게 하는 폐해를 망각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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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秦나라 魏公 符廋가 陝城을 가지고 燕나라에 항복하고서 연나라에게 군대를 내어 지원해줄 것을 청하니, 진나라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연나라 范陽王 慕容德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符氏가 골육 간에 乖離되어 정성을 바쳐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니,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연나라에 주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앙화를 받으니, 옛날 吳나라와 越나라의 일을 가지고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注+① ≪春秋≫에 吳나라가 越나라를 공격하여 패배시키자, 越王 句踐이 화친을 청하니, 吳王 夫差가 이를 허락하려 하였다. 伍子胥가 諫하였으나 오왕은 간언을 듣지 않고 마침내 월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뒤에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니, 오왕 부차가 월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다. 그러나 〈월나라의〉 范蠡가 말하기를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었는데, 오나라가 취하지 않았다. 지금 하늘이 오나라를 월나라에 주는데, 월나라가 어찌 하늘을 거스르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마땅히 皇甫眞에게 명하여 幷州와 冀州의 병력을 이끌고서 곧바로 蒲坂으로 달려가고, 吳王 慕容垂에게 명하여 許昌과 洛陽의 군대를 이끌고서 달려가 符廋의 포위를 풀고, 太傅 慕容評에게 명하여 京師의 禁衛軍을 총괄하여 두 군대의 지원 부대가 되고서 三輔 지방에 격문을 돌려 禍福을 분명히 보여주면, 저들은 반드시 풍문만 듣고도 호응할 것이다.”
태부 모용평은 말하기를 “진나라는 강대국이다. 지금 비록 어려움이 있으나 쉽게 도모할 수가 없으며, 조정(慕容暐)은 비록 현명하나 先帝만 못하고, 우리들의 智略이 또 太宰 慕容恪과 비교가 안 되니, 관문을 닫고 국경을 보존하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注+② 燕나라 사람은 그 군주를 일러 朝廷이라 하였다.
부수가 모용수와 황보진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符堅과 王猛은 모두 人傑입니다. 연나라에 禍를 끼친 것을 도모한 지가 오래이니, 지금 기회를 타서 진나라를 점령하지 않으면 후일에 甬東의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注+③ 甬은 余隴의 切이니, 甬東은 越나라의 변방인 甬江의 동쪽이다. 越나라가 吳나라를 멸하고 吳王 夫差를 甬東으로 옮기려 하자, 오왕은 “내 伍子胥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모용수가 황보진에게 말하기를 “主上은 春秋가 너무 젊다. 그리고 太傅의 식견과 도량이 어찌 부견과 왕맹에 필적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