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初에 熲이 旣定西羌이로되 而東羌先零等種이 猶未服하니 皇甫規, 張奐이 招之連年이로되 旣降又叛이라
桓帝詔以問熲한대 熲이 上言曰 東羌이 降於皇甫規者 已二萬落이라 餘寇無幾어늘
今張奐
이 躊躇久不進者
는 當慮外離內合
하여 兵往必驚
注+躊躇者, 猶豫也.이요
且羌虜人畜疲羸하여 有自亡之勢라 欲更招降하여 坐制彊敵耳니이다
臣
은 以爲狼子野心
을 難以恩納
이라 勢窮雖服
이나 兵去復動
注+狼子野心, 言豺狼之子, 心在山野, 不可馴服.이니이다
計所餘三萬餘落이 近居塞內하여 路無險折하여 而久亂幷, 涼하고 累侵三輔하니
西河, 上郡이 已各內徙하고 安定, 北地 復至單危하여 自雲中, 五原으로 西至漢陽二千餘里를 匈奴,諸羌이 幷擅其地하니
是爲癰疽伏疾
이 留滯脅下
注+伏疾, 猶疾之隱伏在身.라 如不加誅
하면 轉就滋大
하리니
若以騎五千, 步萬人, 車三千兩이면 三冬, 二夏에 足以破定이니 無慮用費爲錢이 五十四億이라
如此면 則可令群羌破盡하고 匈奴長服하여 內徙郡縣이 得反本土하리이다
目
時에 張奐이 徵還하니 節等이 以奐新至하여 不知本謀라하여 矯制하여 使奐으로 率五營士討武하고
甫將千餘人出하여 與奐合하고 使其士로 大呼武軍曰 竇武反하니 汝皆禁兵으로 當宿衛宮省이어늘 何故隨反者乎아
營府素畏服中官
注+營府, 謂五營校尉府也.이라 於是
에 武軍
이 稍稍歸甫
하니 自旦至食時
에 兵降略盡
이라
武自殺이어늘 梟首都亭하고 收捕宗親賓客하여 悉誅之하고 及劉瑜, 馮述은 皆夷其族하고
遷皇太后於南宮하고 徙武家屬於日南하고 門生故吏 皆免官禁錮하다
目
【목目】 처음에, 단경段熲이 서강西羌을 평정하였는데 동강東羌인 선령先零(선련) 등의 종족이 복종하지 않으니, 황보규皇甫規와 장환張奐이 수년 동안 이들을 불러 귀부歸附하게 하였는데, 항복하였다가 또다시 배반하였다.
환제桓帝가 조령詔令을 내려 단경에게 묻자, 단경이 다음과 같이 상언上言하였다. “황보규에게 항복한 동강東羌이 이미 2만 개의 부락이 되어서 남은 적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장환이 오랫동안 주저하며 진격하지 않으니, 이는 응당
강족羌族이 겉으로는 이산되었으나 안으로는 연합하여 우리 군대가 쳐들어가면 반드시 놀라서 배반할까 염려해서요
注+“주저躊躇”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강족의 사람과 말이 피폐하여 스스로 망할 형세가 있기 때문에 다시 이들을 불러 항복시켜서 가만히 앉아 강한 적을 제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臣은 생각건대 이리의 새끼와 같이 길들이기 어려운 오랑캐의 마음은 은혜로
초유招諭하기가 어렵습니다. 형세가 궁하면 비록 항복하나 우리 군대가 떠나오면 다시 동요합니다.
注+“낭자야심狼子野心”은 시랑豺狼의 새끼는 마음이 산야山野에 있기 때문에 길들여 복종시킬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헤아려보건대 남은 3만여 개의 부락이 가까이 변방 안에 살면서 길이 험하거나 막힌 곳이 없어서 오랫동안 병주幷州와 양주涼州를 어지럽히고 여러 번 삼보三輔 지방을 침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하西河와 상군上郡의 백성들은 이미 각각 내지로 옮겨왔고 안정安定과 북지北地는 다시 고단孤單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서, 운중雲中과 오원五原으로부터 서쪽으로 한양漢陽에 이르기까지 2,000여 리를 흉노匈奴와 여러 강족羌族이 그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기와 몸속에 숨어 있는 병이 갈비뼈 밑에 머물고 있는 것과 같으니
注+“복질伏疾”은 몸속에 숨어 있는 병과 같은 것이다., 만약 주벌을 가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만약 5,000명의 기병과 10,000명의 보병과 3,000대의 병거兵車를 동원한다면, 겨울 세 번과 여름 두 번이 지날 동안에 충분히 이들을 격파하여 안정시킬 수 있는데, 비용이 대략 54만 전錢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면 여러 강족들이 깨끗이 다 격파되고 흉노가 오래도록 복종하여, 내지內地의 군현郡縣으로 옮겨왔던 자들이 다시 본토本土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目
【
목目】
단경段熲은 이에 10,000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15일 동안의 군량을 갖고서
팽양彭陽에서 곧바로
고평高平을 향하여 가면서
선령先零 등의 여러 종족과 싸웠는데
注+팽양彭陽과 고평高平은 모두 현縣의 이름이니, 안정군安定郡에 속하였다., 이때 오랑캐의 군대가
강성强盛하니 장병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단경은 이에
군중軍中에 명하여 긴 화살촉과 예리한 칼날, 긴 창을 쓰는 부대를 삼중으로 배치하고, 강한 궁노부대를 좌우에 두고 경무장한 기병을 나열하여
좌우익左右翼으로 삼은 다음
注+족鏃은 화살촉이다. 중重(중첩하다)은 직룡直龍의 절切이다.,
장병들에게 이르기를 “지금 우리가 집에서 수천 리 멀리 떠나와 있으니, 용감하게 진격하면 일이 이루어질 것이요, 패주하면 반드시 다 죽을 것이다. 노력하여 함께 공명功名을 세우자.” 하고는 이어서 크게 고함을 치니,
병사들이 모두 고함소리에 응하여 함성을 지르며 적진으로 달려갔다. 단경이 말을 타고 옆에서 치달려 나가 적진을 향해 돌격突擊하니, 오랑캐 병사들이 크게 무너졌다. 이에 8,000여 명의 수급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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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장환張奐이 상언上言하기를 “동강東羌이 비록 격파되었으나 남은 종족을 다 없애기 어려우니, 마땅히 은혜로 항복시켜야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조서詔書를
단경段熲에게 내리니, 단경이 다시 다음과 같이
상언上言하였다. “
신臣은 본래
동강東羌의 종족이 비록 많기는 하나 유약하여 제재하기 쉬울 줄로 알고 있습니다.
注+연輭은 유연乳兗의 절切이니, 유약함이다. 이 때문에 자주 어리석은 생각을 아뢰어 길이 편안할 수 있는 계책을 생각하였습니다.
注+비比는 자주라는 뜻이다. “진우려陳愚慮”는 어리석은 충정을 하소연한다는 말과 같다.
장환은 말하기를 ‘오랑캐가 강하여 격파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불러 항복시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성조聖朝에서는 밝게 굽어 살피시어 저의 어리석은 말을 믿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장환은 마침내 이것을 시기하고 원망하여 말하기를 ‘
강족羌族들도 같은 기운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다 죽일 수가 없고, 피가 흘러 들을 더럽히면
화기和氣를 손상하여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注+“강일기소생羌一氣所生”은 동강東羌 또한 천지 음양天地 陰陽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臣이 삼가 생각건대, 선령先零의 여러 종족이 누차 반복反覆하여 주군州郡을 공격해서 노략질을 하고 무덤을 파헤쳐서 화禍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미치고 있으니, 상천上天이 진노震怒하여 우리의 손을 빌려 주벌을 행하는 것입니다.
〈신臣이〉 군대를 출동하여 여름을 지내는데 연이어 단비가 내려서 농사가 풍년이 들고 사람들도 염병이 없으니, 위로 하늘의 마음을 점쳐봄에 하늘이 재상災傷을 내리지 않고, 아래로 사람의 일을 살펴봄에 사람들이 화목하여 군대가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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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처음에 두태후竇太后가 〈황후皇后에〉 책봉될 때에 진번陳蕃이 공로가 있었다.
두태후竇太后가 임조臨朝하게 되자 정사의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진번에게 맡기니, 진번이 두무竇武와 함께 합심하고 협력하여 왕실王室을 보좌하고
천하天下의 명현名賢인 이응李膺, 두밀杜密, 윤훈尹勳, 유유劉瑜 등을 불러서 모두 조정에 서서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에 천하의 선비들이 모두들 목을 늘이고 태평성대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유모乳母인
조뇨趙嬈(조뇨)와
여상서女尙書들이 아침저녁으로
태후太后의 곁에 있었고
注+뇨嬈는 내료乃了의 절切이다. 여상서女尙書는 궁중의 내관內官(여관女官의 등속)이다.,
중상시中常侍인
조절曹節과
왕보王甫 등이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서 아첨하며 태후를 섬기니,
태후가 이들의 말을 믿고서 자주 조명詔命을 내려 〈마음대로〉 작위를 봉封하고 관직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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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진번陳蕃과 두무竇武가 이를 미워하였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조당朝堂에 모였는데, 진번이 은밀히 두무에게 말하기를 “조절曹節과 왕보王甫가 나라의 정권을 잡고 희롱하여 해내海內를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히니,
지금 이들을 주벌하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자, 두무가 그 말을 매우 옳게 여겼다. 진번이 크게 기뻐하여 손으로 자리를 밀치고 일어나니, 두무는 마침내 상서령 윤훈尙書令 尹勳을 데려다가 함께 계책計策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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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8월에
태백성太白星이
방성房星의
상장성上將星을 침범하여
태미궁太微宮으로 들어갔다.
注+≪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방성房星의 네 별을 명당明堂이라 하니 천자天子가 정사를 펴는 집이고 또한 사보四輔(네 보좌하는 신하)이다. 제일성第一星은 상장上將이고, 다음은 차장次將이고, 다음은 차상次相이고, 위에 있는 별은 상상上相이다.” 하였다. 태미太微는 천자天子(천제天帝)의 뜰이다.
유유劉瑜가 이를 보고 꺼려하여 황태후皇太后에게 상서上書하기를 “점성서占星書를 살펴보건대, 〈이런 성상星象이 나타나면〉 궁문宮門이 닫히고 장수와 정승이 이롭지 못합니다. 간사한 사람이 군주의 곁에 있으니, 원컨대 급히 막으소서.” 하였으며,
또 두무竇武와 진번陳蕃에게 편지를 보내어 속히 큰 계책을 결단하라고 권하였다. 이에 두무와 진번은 주우朱㝢를 사례교위司隷校尉로, 유우劉祐를 하남윤河南尹으로, 우기虞祈를 낙양령雒陽令으로 삼고는
아뢰어
위표魏彪를 면직시키고 자기와 친한
소황문 산빙小黃門 山冰으로 대신하게 하였으며,
장락상서 정삽長樂尙書 鄭颯을 체포하여
북시옥北寺獄으로 보냈다.
注+산빙山冰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장락상서長樂尙書는 아마도 태후太后가 임조臨朝하면서 설치하여, 외조外朝의 문서文書와 여러 일을 아뢰고 하달하는 것을 관장한 듯하다.
진번이 말하기를 “이들은 마땅히 체포하여 죽여야 하니, 어찌 다시 조사하고 심문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으나, 두무는 산빙山冰과 윤훈尹勳으로 하여금 함께 죄를 조사하게 하였다.
공초供招의 말이
조절曹節과
왕보王甫에게까지 연루되니, 윤훈과 산빙은 즉시 조절 등을 체포할 것을 아뢰고, 또 유유로 하여금 태후에게 아뢰는 글을 올리게 하였다.
注+납內(들이다)은 납納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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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이때 장환張奐이 부름을 받고 돌아오니, 조절曹節 등은 장환이 막 돌아와서 자기들의 본래의 계책을 알지 못한다고 여기고는 황제의 명을 사칭해서 장환으로 하여금 오영五營의 병사를 거느리고 두무竇武를 토벌하게 하였다.
왕보王甫는 1,000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나와서 장환과 연합하고, 그 병사들로 하여금 두무의 병사들에게 “두무가 모반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금병禁兵으로서 궁성宮省을 숙위宿衛해야 하는데, 무슨 연고로 모반한 자를 따르는가.”라고 크게 소리치게 하였다.
영부營府의 병사들은 평소
중관中官(환관)들을 두려워하여 복종하였다.
注+영부營府는 5영營의 교위부校尉府를 이른다. 이에 두무의 군대가 차츰 왕보에게 돌아가니, 새벽부터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병사들이 거의 다 항복하였다.
두무가 자살하자 도정都亭에 효수梟首하고 두무의 종친宗親과 빈객賓客을 체포하여 다 죽였으며, 유유劉瑜와 풍술馮述은 멸족滅族시켰다.
황태후皇太后를 남궁南宮으로 옮기고 두무의 가솔들을 일남日南으로 귀양 보내고, 그들의 문생門生과 예전의 부하들은 모두 관직을 파면하고 금고禁錮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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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양씨楊氏(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조절曹節과 왕보王甫가 황제의 지위를 도둑질하고 희롱하였으니, 진실로 천하天下가 함께 미워하는 바였다.
두무竇武가 황제의 지친至親으로 막중한 권력을 잡고서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맞이해서 서로 협력하여 도모하였으니, 간흉姦凶을 제거하는 것은 형편상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몸이 망가지고 공이 훼손되고 나라에 후환을 끼쳤으니, 이는
기미幾微의 일을 은밀하게 하지 못하고
화禍가 머뭇거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注+유冘는 유猶와 통한다.
장환張奐은 북주北州의 호걸로 평소 중인中人(환관)의 당이 아니었는데, 두무가 기회를 틈타 계책을 결단하여 거두어 써서 자신을 위하게 하지 못하고,
마침내 날이 새도록 머뭇거려서 역적으로 하여금 장환을 속여 부리게 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注+“지회遲回”는 뜻을 결단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모두 거성去聲인 듯하니, 기다리며 회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