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綱】 한漢나라 효환황제 연희孝桓皇帝 延熹원년元年이다. 여름 5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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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태사령 진수太史令 陳授가 일식日食의 변고는 허물이 양기梁冀에게 있다고 아뢰자, 양기가 진수를 체포하여 고문해서 옥중獄中에서 죽게 하니, 황제가 이로 말미암아 양기에 대하여 노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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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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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기우제를 크게 지냈다.注+우雩는 탄식하면서 비를 구하는 제사이다. 일설一說에 “우雩는 멂이니, 멀리 백곡百穀을 위하여 단비를 기원하는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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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가을 7월에 태위 황경太尉 黃瓊이 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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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겨울 10월에 황제가 광성원廣成苑에서 교렵校獵하고 마침내 상림원上林苑에 이르렀다.注+광성원廣成苑은 하남河南의 신성현新城縣에 있고, 이 상림원上林苑은 낙양雒陽의 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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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12월에 남흉노南匈奴와 오환烏桓과 선비鮮卑가 침입하자, 진구陳龜를 도료장군度遼將軍으로 삼고 병주幷州와 양주涼州의 1년 치의 조부租賦(조세)를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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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진구陳龜가 출발에 앞서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신臣이 들으니, 삼신三辰(해와 달과 별)이 궤도를 순히 따르지 않으면 사士를 발탁하여 정승으로 삼고, 만이蠻夷가 순종하지 않으면 졸병을 뽑아 장군으로 삼으라 하였습니다.注+“삼신불궤三辰不軌”는 삼신三辰(해와 달과 별)의 운행이 궤도를 순順히 따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신臣은 문무文武의 재능이 없는데 외람되게 장수의 임무를 맡으니, 비록 이 몸이 죽더라도 국가에 보탬이 될 바가 없습니다.
서주西州는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들이 가난한데 자주 오랑캐의 침략을 겪고 여러 번 재해가 들어 흉년을 당하니, 비록 생기生氣를 머금고 있는 듯하나 실제는 말라 죽은 나무와 똑같습니다.注+삭數(자주)은 음音이 삭朔이다. 갱更은 공형工衡의 절切이니, 아래도 같다.폐하陛下께서는 백성百姓을 자식처럼 여기시는데, 어찌 이들을 어루만지고 돌보는 은혜를 드리우지 않으십니까.注+언焉(어찌)은 어건於虔의 절切이다.
목牧(자사刺史)과 수守가 어질지 못해서 재앙을 불러오고, 오랑캐들이 흉악하고 사나워서 국가의 쇠약함을 인하여 틈을 엿보며, 장수將帥들이 충성스럽지 못해서 간사한 자들을 모이게 하고 적을 토벌함에 소극적이어서 창고에 곡식이 고갈되고 공업功業에 효험이 없으니注+단單(다하다)은 탄殫과 같다.,
마땅히 목牧과 수守를 다시 선임해서 간사한 자와 잔학한 자를 제거하여 물리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장수將帥와 교위校尉를 다시 선발해서 문무文武의 재능이 있는 자를 가려 뽑으며注+“장교將校”는 호흉노중랑장護匈奴中郞將과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 호강교위護羌校尉를 이른다.,
병주幷州와 양주涼州의 금년 조부租賦와 졸경전卒更錢을 면제하고注+조租는 부세이다. 갱更은 졸경전卒更錢(병역을 대신하여 관官에 납부하는 금전)을 이른다. 죄를 지은 노예들을 너그럽게 용서해서 지난날의 잘못을 깨끗이 씻고 새 출발을 하게 하시면, 선善한 관리들은 멸사봉공滅私奉公함으로써 얻게 되는 복福을 알고 악한 자들은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도모하다가 받게 되는 화禍를 깨달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호마胡馬가 장성長城을 엿보지 못할 것이요 변방에 후망候望(살피고 망봄)하는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注+한漢나라 제도에, 변방마다 중요하고 험한 곳에는 성을 별도로 쌓고, 인하여 관리와 병사를 배치해서 장폐障蔽로 삼고 이를 후성候城이라 하였는바, 여기에서 봉화를 살피고 망보았다. 황제는 마침내 유주幽州와 병주幷州의 자사刺史와 태수太守를 다시 선임하고 조령詔令을 내려 진陳장군을 위해 병주幷州와 양주涼州의 1년 치의 조부租賦를 면제하게 하였다.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병주幷州와 양주涼州의 1년 치 조부租賦를 면제하여 관리와 백성들에게 하사했다.” 하였다.
진구가 관직에 부임하니, 주군州郡이 놀라고 두려워해서 경상적으로 지출하던 비용을 줄인 것이 1년에 억전億錢으로 헤아려졌다.注+경經은 떳떳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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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장환張奐을 북중랑장北中郞將으로 삼았다.注+≪후한서後漢書≫ 〈장환렬전張奐列傳〉을 살펴보면, 〈“북중랑장北中郞將”은〉 바로 호흉노중랑장護匈奴中郞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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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이 도료장군度遼將軍의 군문軍門을 불태우고 적갱赤阬(적갱)에 주둔하여 경보警報를 알리는 봉화烽火가 계속 이어지니, 군사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注+군문軍門은 바로 도료장군度遼將軍의 군문이니, 이때 도료장군度遼將軍이 오원五原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환張奐은 장막 안에 편안히 앉아서 태연자약하게 경서를 강론하고 외우면서, 오환烏桓을 은밀히 유인해서 그로 하여금 흉노匈奴와 도각屠各의 거수渠帥(우두머리)를 참수하고 그 군대를 습격하여 격파하게 하니, 여러 오랑캐들이 모두 항복하였다.注+도屠는 직어直於의 절切이니, 도각屠各은 흉노匈奴의 별종別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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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진구陳龜를 불러 돌아오게 하였는데, 진구가 밥을 먹지 않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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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양기梁冀가 진구陳龜와 평소 원한이 있었는데 그를 불러 돌아오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였다. 양기의 포악함이 날로 심해지자 진구가 상소上疏하여 주벌할 것을 청하였으나, 황제가 살펴보지 않았다. 진구는 마침내 밥을 먹지 않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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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충고种暠(충고)를 도료장군度遼將軍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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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충고种暠가 진영이 있는 곳에 이르러 먼저 은혜와 신의를 베풀고서 오랑캐들이 복종하지 않은 뒤에야 토벌을 가加하고, 강족羌族들 중에 포로로 잡혀 군현郡縣에 인질이 된 자들을 모두 돌려보냈으며,
성심誠心으로 회유하고 어루만져서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리기를 분명하게 하니注+지質(인질)는 음이 치致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강족羌族들 중에 예전에 사로잡혀 군현郡縣에 인질이 된 자가 있었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강족羌族과 호족胡族이 모두 와서 순히 복종하였다. 이에 봉화를 없애고 살피고 망보는 것을 제거하니, 변방이 편안하여 경보警報가 없었다.
역주
역주1不食而卒 :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먹지 않고 죽은 것이 3번(龔勝, 陳龜, 辛謐)이니, 모두 절개가 있는 선비들이다.[終綱目不食而卒三(龔勝 陳龜 辛謐) 皆節士也]다”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