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17)

자치통감강목(1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1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宋元嘉十八年이요 魏太平眞君二年이라
春正月 宋以彭城王義康으로 爲都督江交廣州軍事하다
義康至豫章하여 辭刺史어늘 以爲都督三州軍事하니 前龍驤參軍扶令育 上表曰注+扶, 姓也.
彭城王 先朝之愛子 陛下之次弟 若有迷謬之愆이면 正可導以義方이니 奈何一旦黜削하여 遠送南垂
萬一義康 年窮命盡하여 奄忽于南하면 臣雖微賤이나 竊爲陛下羞之하노이다 陛下徒知惡枝之宜伐하니 豈知伐枝之傷樹乎
願亟召還하여 兄弟恊和하고 君臣輯睦하면 則四海之望塞하고 多言之路絶矣리이다 表奏 賜死하다
裴子野曰 夫在上爲善 若雲行雨施하여 萬物受其賜하고 及其惡也 若天裂地震하여 萬物所驚駭 誰弗知見이리오
豈戮一人하고 鉗一口하여 所能弭滅哉 是皆不勝其忿而有增於疾疢也 以太祖之含弘으로 尙掩耳於彭城之戮하니
自此以後 誰易由言注+彭城之戮, 見下二十八年. 易, 以豉切.이리오 有宋累葉 罕聞直諒하니 豈骨鯁之氣 俗愧前古리오 抑時王之刑政 使之然乎인저
張約隕於權臣하고 扶育斃於哲后하니 宋之鼎鑊 可畏哉인저
魏新興王俊 謀反伏誅注+俊, 明元之子也.하다
◑魏人伐酒泉克之하다
魏以沮渠無諱終爲邊患하여 遣兵伐之하여 拔酒泉하니 無諱乃謀西度流沙하다
楊難當寇宋漢川이어늘 宋遣兵討之하다
難當傾國寇宋邊하여 謀據蜀土하여 遣其將苻沖出東洛이어늘 宋梁秦刺史劉眞道 擊斬之注+東洛在晉壽界. 眞道, 懷敬之子也.하니
難當攻拔葭萌하고 遂圍涪城이라가 不克而還하니
十二月 宋遣龍驤將軍裴方明等討之하다
宋晉寧郡反하니 討平之注+晉惠帝永安二年, 分建寧西七縣爲益州郡, 至懷帝, 更名晉寧郡.하다


宋나라 太祖 文帝 劉義隆 元嘉 18년이고, 北魏 世祖 太武帝 拓跋燾 太平眞君 2년이다.
[綱] 봄 정월에 宋主가 彭城王 劉義康을 都督江州交州廣州軍事로 삼았다.
[目] 劉義康이 豫章에 도착하여 江州刺史를 사직하였는데, 宋主가 그를 都督三州軍事로 삼았다. 前 龍驤參軍 扶令育이注+① 扶는 姓이다. 표문을 올리기를
“彭城王은 先帝의 사랑하던 아들이고 폐하의 다음 아우입니다. 만약 미혹되거나 그릇된 허물이 있다면 바로 의로운 방법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찌하여 갑자기 강등하여 멀리 남쪽 변방으로 보낸 것입니까.
만일 유의강이 목숨이 다 되어 남쪽에서 갑자기 죽는다면 신은 비록 미천하나 가만히 폐하를 위하여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폐하는 다만 나쁜 가지는 마땅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어찌 가지를 자르면 나무가 손상되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바라건대 빨리 불러 돌아오게 하여 형제간에 화합하고 군신간에 화목하게 된다면 四海의 원망이 해소되고 유언비어가 끊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표문이 상주되자 賜死되었다.
[目] 裴子野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무릇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선행을 하는 것은 마치 구름이 지나가며 비가 내려서 만물이 그 은혜를 받는 것과 같고, 그 악행에 미쳐서는 마치 하늘이 찢어지고 지진이 발생하여 만물이 놀라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어찌 한 사람을 죽이고 입을 다물게 하여 없앨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는 모두 그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병을 더 증대시키는 것이다. 太祖(劉義隆)의 넓은 도량으로도 오히려 彭城王의 죽음을 간언하는 것에는 귀를 막았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누가 쉽게 말을 하겠는가.注+① 彭城王의 죽음은 아래 28년(451)에 보인다. 易(쉽다)는 以豉의 切이다. 宋나라는 몇 代가 되도록 정직하고 진실한 간언을 드물게 들으니, 어찌 당시에 뼈대 있는 사람의 기백이 이전만 못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아마도 당시 제왕의 형벌과 정치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은 權臣에게 죽임을 당했고 은 현명한 군주에게 죽임을 당하니 宋나라의 형벌이 아, 두렵도다!”
[綱] 北魏 新興王 拓跋俊이注+① 拓跋俊은 明元帝 拓跋嗣의 아들이다. 반란을 꾀하였다가 주살되었다.
[綱] 北魏가 酒泉을 정벌하여 함락시켰다.
[目] 北魏는 沮渠無諱가 결국 변방의 근심거리가 된다고 여겨 병사를 보내 정벌하여 酒泉을 함락시키니, 저거무휘가 서쪽으로 가서 를 건널 것을 모의하였다.
[綱] 楊難當이 宋나라의 漢川(漢中)을 침범하였는데 宋나라가 병사를 파견하여 토벌하였다.
[目] 楊難當이 국력을 기울여 宋나라 변방을 침범하여 蜀 지역을 점거하려고 도모하여 〈宋나라가〉 將軍 苻沖을 파견하여 東洛에서 출병하게 하였는데 宋나라 梁州秦州刺史 劉眞道가 부충을 공격하여 목을 베었다.注+① 東洛은 晉壽 경계에 있다. 劉眞道는 劉懷敬의 아들이다.
양난당이 葭萌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마침내 涪城을 포위하였다가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갔다.
12월에 宋나라가 龍驤將軍 裴方明 등을 파견하여 양난당을 토벌하였다.
[綱] 宋나라 晉寧郡이注+① 晉 惠帝 永安 2년(305)에 建寧 서쪽 7縣을 나누어 益州郡으로 만들고, 懷帝 때에 이르러 晉寧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반란을 일으키니,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역주
역주1 張約 : 劉宋 초기 사람으로, 徐羨之 등의 비위를 고발하다가 서선지에게 살해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61쪽에 보인다. ≪宋書≫에는 張約之라 하였고, ≪南史≫에는 張約之와 張約이 혼용된다.
역주2 扶育 : 扶令育을 말한다. ≪宋書≫ 〈劉義康列傳〉 考證에 “≪南史≫에는 令자가 扶자 위에 있다. 裴子野의 論贊에 扶育이라 하였으니, ≪資治通鑑≫에는 ≪송서≫를 따라 扶令育으로 되어 있다. ≪남사≫가 옳을 듯하다.” 하였다.
역주3 流沙 : 漠이 보통 고비 사막을 가리키는 것처럼 流沙는 西域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칭하는 데에 많이 사용하였다.

자치통감강목(17) 책은 2021.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