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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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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亥年(B.C. 94)
정해년(B.C. 94)
三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태시太始 3년이다.
春正月 帝東巡琅邪하여 浮海而還하다
봄 정월에 황제가 동쪽으로 낭야琅邪를 순행하여 바다에 배를 띄웠다가 돌아왔다.
[綱] 황자皇子 유불릉劉弗陵이 탄생하였다.
弗陵母 曰河間趙倢伃 居鉤弋宮하여 任身十四月而生注+帝置倢伃, 位視上卿, 爵比列侯. 倢, 音接, 言接幸於上也. 伃, 音予, 美貌, 字或竝從女. 帝巡狩, 過河間, 望氣者言 “此有奇女.” 亟使使召之, 女兩手皆拳, 上自披之, 手卽時伸. 由是得幸, 號拳夫人. 鉤弋宮, 倢伃手可反屈如鉤, 故以名宮. 一說 “發手得一玉鉤, 故號焉.” 三輔黃圖 “鉤弋宮, 在城外.” 漢武故事 “在直門南.” 任, 讀曰妊, 孕也. .한대
[目] 유불릉劉弗陵의 어머니는 하간河間조첩여趙倢伃이니, 구익궁鉤弋宮에 거주하여 임신한 지 14개월 만에 아들을 낳았다.注+황제가 첩여倢伃를 두니, 지위가 상경上卿에 견주고 작위가 열후列侯에 비견하였다. 은 음이 이니 의 총애를 받음을 말하고, 는 음이 이니 아름다운 모양인데, 황제가 순수巡狩하여 하간河間 지방을 지나가는데, 망기望氣하는 자가 말하기를 “여기에 참으로 기이한 여자가 있습니다.” 하므로, 급히 사자를 시켜 불렀다. 여인은 두 손이 모두 굽어 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직접 펴주자 손이 즉시 펴졌다. 이 때문에 황제의 총애를 얻어 호를 권부인拳夫人이라 하였다. 구익궁鉤弋宮첩여倢伃의 손이 갈고리처럼 굽어 있었으므로 이로써 궁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일설에 “손을 들어 한 가락지를 얻었으므로 호를 구익鉤弋이라 했다.” 하였다. 에 “구익궁鉤弋宮은 도성 밖에 있다.” 하였고, 에는 “직문直門 남쪽에 있다.” 하였다. 으로 읽으니, 아기를 잉태함이요, 과 통한다.
上曰 聞昔 堯十四月而生이라하고 乃命門曰 堯母門이라하다
은 말하기를 “내 들으니, 옛날 임금이 14개월 만에 탄생하였다.” 하고는, 그 문을 ‘요모문堯母門’이라 명명命名하였다.
司馬公曰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爲人君者 動靜擧措 不可不愼이니 發於中이면 必形於外하여 天下無不知之
인군人君이 된 자는 일동일정一動一靜과 모든 조처를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마음에서 나오면 반드시 외면에 나타나서 천하에 알지 못하는 이가 없게 된다.
當是時也하여 皇后, 太子皆無恙이어늘 而命鉤弋之門曰堯母라하니 非名也
이때를 당하여 황후皇后태자太子가 모두 아무 탈이 없었는데, 구익궁鉤弋宮의 문을 요모문堯母門이라 이름하였으니, 올바른 명칭이 아니다.
是以 姦臣 逆探上意하여 知其奇愛少子하여 欲以爲嗣注+姦臣, 謂江充.하고 遂有危皇后太子之心하여 卒成巫蠱之禍하니 悲夫注+巫, 祝也. 蠱, 厭也, 惑也. 謂使巫祠祭祝詛厭魅以蠱惑人也.
이 때문에 간신姦臣(강충江充)이 의 뜻을 역탐해서 특별히 작은아들(유불릉劉弗陵)을 사랑하여 후사로 삼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는,注+간신姦臣강충江充을 이른다. 마침내 황후와 태자를 위태롭게 할 마음을 품어 끝내 무고巫蠱를 이루었으니, 슬프다.”注+는 저주이고, 는 누름이고 미혹함이니, 무당으로 하여금 제사하여 저주하고 해서 사람을 고혹蠱惑하게 하는 것이다.
注+古山林之官曰衡. 掌諸池苑, 故稱水衡. 衡, 平也, 主平其稅入.하다
[綱] 강충江充수형도위水衡都尉로 삼았다.注+옛날 산림山林의 관원을 (저울대)이라 하였으니, 여러 못과 동산을 관장하였으므로 수형水衡이라 칭한 것이다. 은 〈저울대처럼〉 공평함이니, 산림山林천택川澤에 대한 부세賦稅의 수입을 공평하게 거둠을 주관하였다.
爲趙王客이러니 得罪亡하여 詣闕告趙太子陰事한대 太子坐廢注+陰事, 謂陰謀之事.하다
[目] 처음에 강충江充조왕趙王의 문객이 되었었는데, 죄를 얻고 나라로 도망 와서 대궐에 나아가 나라 태자太子의 은밀한 일을 고발하자, 태자가 이로 인해 폐위되었다.注+음사陰事”는 음모의 일을 이른다.
容貌魁岸하고 被服輕靡注+魁, 苦回切, 大也. 岸者, 有廉稜, 如崖岸之形. 被, 皮義切. 被服, 衣服也. 輕, 輕細也. 靡, 靡麗也.하니 召與語하고 大悅之하여 拜爲直指繡衣使者하여 使督察貴戚近臣踰侈者하다
강충은 용모가 크고 비범하였으며 입는 옷이 가볍고 화려하니,注+고회苦回이니, 큼이다. 은 모가 있는 것이 강안江岸의 형상과 같은 것이다. 피의皮義이니 “피복被服”은 입은 옷이다. 은 옷감이 가볍고 섬세한 것이고, 는 화려함이다. 이 불러 함께 말하고는 크게 기뻐하여 직지수의사자直指繡衣使者를 삼아 그로 하여금 귀척貴戚근신近臣 중에 법도를 넘고 사치한 자를 감독하고 사찰하게 하였다.
擧劾無所避하여 令身待北軍擊匈奴注+謂令貴戚身待於北軍也.하니
강충은 죄인을 들어 탄핵함에 기피하는 바가 없어서, 귀척貴戚들로 하여금 몸소 북군北軍에 가서 대기하면서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였다.注+〈“영신대북군令身待北軍”은〉 귀척貴戚들로 하여금 몸소 북군北軍에 가서 대기하게 함을 이른다.
貴戚子弟 叩頭求哀於上하여 願入錢贖罪 凡數千萬이라
그리하여 귀척의 자제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에게 애처롭게 하소연하여 돈을 바치고 속죄받기 원하는 자가 대략 수천에서 만 명이 되었다.
上以充爲忠直이라하다
이에 은 강충을 충직하다고 생각하였다.
嘗從上甘泉할새 逢太子家使 乘車馬行馳道中하여 充以屬吏注+從, 才用切. 上, 時掌切. 甘泉宮, 在北山, 故言上也. 家使, 太子遣人之甘泉請問者也.한대
[目] 강충江充은, 일찍이 을 따라 감천궁甘泉宮에 올라갈 적에 태자가太子家의 사자가 수레와 말을 타고 치도馳道 가운데를 가는 것을 보고는 그를 옥리獄吏에게 넘겼다.注+(따르다)은 재용才用이고, (올라가다)은 시장時掌이다. 감천궁甘泉宮북산北山에 있으므로 올라간다고 말한 것이다. 가사家使태자太子가 사람을 보내어 감천궁에 가서 문후問候를 청하게 한 자이다.
太子使人謝充曰 非愛車馬 誠不欲令上聞之하여 以敎敕亡素者하노니 唯江君 寬之注+漢令, 諸侯有制, 得行馳道中者. 行旁道, 無得行中央三丈也, 不如令, 沒入其車馬. 亡, 與無通, 言素不敎敕左右.하라
태자太子가 사람을 시켜 강충에게 사례하기를 “내가 수레와 말을 아껴서가 아니요, 진실로 으로 하여금 이 말을 들으시고서 내가 ‘평소 부하들을 가르치고 신칙함이 없다.’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아서이니, 부디 강군江君은 너그러이 용서하라.”注+나라 법령에 제후는 황제의 제명制命이 있어야 치도馳道 가운데를 다닐 수 있었다. 〈일반인은〉 옆길을 가고, 세 길쯤 되는 중앙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법령대로 하지 않으면 수레와 말을 적몰籍沒(몰수)하였다. 와 통하니, 〈“교칙망소敎敕亡素”는〉 평소에 좌우에 있는 자들을 가르치고 신칙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不聽하고 遂白奏한대 上曰 人臣 當如是矣라하고 大見信用하니 威震京師러라
강충이 듣지 않고 마침내 상주하자, 은 말하기를 “인신人臣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하고, 크게 신임하여 등용하니, 위엄이 경사京師를 진동하였다.
역주
역주1 皇子弗陵生 : “皇子가 태어난 것을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쓴 것은 어째서인가? 태자를 위태롭게 했기 때문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황자가 태어난 것을 쓴 것이 다섯 번이니, 모두 변고가 있는 자들이다.[子生不書 此何以書 危太子也 終綱目 書子生五 皆有故者矣]” 《書法》
역주2 두 글자는……한다 : ‘倢伃’ 두 글자 모두 ‘婕妤’로 씀을 말한 것이다.
역주3 三輔黃圖 : 저자 미상으로 모두 6권인데, 漢나라 때 長安의 고적을 위주로 기록하였으며, 간혹 周나라 靈臺와 靈囿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특히 宮殿과 苑囿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역주4 漢武故事 : 後漢의 班固가 지었다 하는바, 1권으로 되어 있다. 일설에는 齊나라 王儉이 지었다 하는바, 내용이 《史記》‧《漢書》와 서로 출입이 있다.
역주5 (娠)[身]通作(身)[娠] : 저본에는 ‘娠通作身’으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 의거하여 ‘身通作娠’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厭魅 : 또한 厭媚로도 쓰니, 迷信의 방법을 사용하여 귀신에게 기도해서 미혹하여 사람들을 해침을 이른다. 厭勝, 壓勝이라고도 하니, 본서 64쪽 訓義 ①에 보인다.
역주7 以江充爲水衡都尉 : “황자 劉弗陵이 태어나고 江充이 〈궁궐 안으로〉 들어왔으니, 太子의 화가 이때에 시작되었으므로 삼가 기록한 것이다.[弗陵生 江充入 太子禍始此矣 故謹志之]” 《書法》
“江充이 〈趙나라 太子의〉 은밀한 일을 고발하여 등용되었으니, 어찌 군자로서 남의 은밀한 일을 고발하는 자가 있겠는가. 그가 소인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武帝가 그를 총애하고 등용해서 그로 하여금 신분이 귀하고 황제와 가까운 신하들을 督察하게 하였으니, 그가 권세를 쥐고 망령되이 행동함은 본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太子는 나라의 儲貳로 社稷과 宗廟가 달려 있는 바이니, 신분이 귀하고 황제와 가까운 신하에 견줄 바가 아니다. 더구나 태자의 家臣이 잘못을 저지르자, 강충은 마침내 그를 잡아 황제에게 아뢰어 나라의 근본인 태자를 동요시키고자 하였으니, 어찌 옳겠는가. 강충을 등용함을 특별히 써서 화의 뿌리가 시작된 바를 드러내었으니, 후일 巫蠱의 변을 오히려 누구를 허물하겠는가.[江充以告陰事見用 烏有君子而告人陰事者哉 其爲小人必矣 武帝寵而用之 使督察貴近 則其乘勢妄作 自無可疑者 太子國之儲貳 社稷宗祧所繫 非貴近比 況其家臣有過 乃執而奏之 欲以搖動國本 可乎 特書用充 以著禍根之所自始 他日巫蠱之變 尙誰咎哉]” 《發明》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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