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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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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巳年(141)
신사년辛巳年(141)
六年이라 春正月 馬賢 與羌戰이라가 敗沒하니 東西羌 遂大合하고 閏月 鞏唐羌 寇三輔하여 燒園陵注+羌居安定․北地․上郡․西河者, 謂之東羌, 居隴西․漢陽, 延及金城塞外者, 謂之西羌. 鞏唐, 西羌種也.하다
나라 효순황제 영화孝順皇帝 永和 6년이다. 봄 정월正月마현馬賢강족羌族과 싸우다가 패하여 전몰戰歿하였다. 동강東羌서강西羌이 마침내 크게 연합하고, 윤달에 공당강鞏唐羌삼보三輔 지방을 침략하여 원릉園陵을 불태웠다.注+강족羌族 중에 안정安定, 북지北地, 상군上郡, 서하西河에 거주하는 자들을 ‘동강東羌’이라 하고, 농서隴西한양漢陽에서 금성金城의 변방 밖에까지 걸쳐 거주하는 자들을 ‘서강西羌’이라 한다. 공당鞏唐서강西羌종족種族이다.
命馬賢하여 討西羌이어늘 大將軍商 以爲 賢老하니 不如太中大夫宋漢이니이다 帝不從注+漢, 由之子也.이러니
】 처음에 마현馬賢에게 명하여 서강西羌을 토벌하게 하자, 대장군 양상大將軍 梁商이 “마현은 늙어서 태중대부 송한太中大夫 宋漢만 못합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따르지 않았다.注+송한宋漢송유宋由의 아들이다.
到軍 稽留不進이라 武都太守馬融 上疏曰 今雜種諸羌 轉相鈔盜하니
마현이 군대에 도착하여 지체하며 전진하지 않자, 무도태수 마융武都太守 馬融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지금 여러 강족羌族들이 돌려가며 서로 노략질하고 도둑질하니,
宜及其未幷하여 亟遣深入하여 破其支黨이어늘 而馬賢等 處處留滯注+幷, 合也. 支, 猶枝也. 謂其黨與之分散, 如木之有枝. 故曰支黨.
이들이 미처 연합하지 않았을 때에 서둘러 군대를 깊이 들여보내서 그들의 지당支黨을 격파하여야 하는데, 마현 등은 곳곳마다 지체하고 있습니다.注+은 합함이다. 와 같으니, 그 당여黨與가 나뉘어 흩어져 있는 것이 나무에 가지가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지당支黨”이라 한 것이다.
羌, 胡 百里望塵하고 千里聽聲하니 今逃匿避回하여 漏出其後 則必侵寇三輔하여 爲民大害注+回, 胡對切, 繞也, 曲也. 漏出其後, 謂脫漏在人之後.하리이다
강족羌族, 호족胡族들은 100리 밖에서도 먼지를 바라보고 1,000리 밖에서도 소리를 듣고 〈자기들을 공격해 옴을 아니,〉 이제 도망하여 숨어 있던 강족들이 마현을 피해 빠져나와 뒤에 있으면, 반드시 삼보三輔 지방을 침략하고 도둑질하여 백성들의 큰 폐해가 될 것입니다.注+호대胡對이니, 두름이요 굽음이다. “누출기후漏出其後”는 빠져나와 상대방의 뒤에 있음을 이른다.
願請賢所不可用關東兵五千하여 裁假部隊之號하여 盡力率厲하여 埋根行首하여 以先吏士하면 三旬之中 必克破之注+埋根, 言不退也. 行, 謂行伍也.하리이다
은 원컨대, 마현이 사용하지 않은 관동關東의 병력 5,000명을 청하여 부대部隊라는 칭호를 임시로 사용해서 힘을 다해 병사들을 거느리고 장려하여 대오의 앞에서 굳건히 지키면서 뒤로 물러나지 않게 하고, 이 직접 관리와 병사들보다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고자 하오니, 이렇게 하면 30일 내에 반드시 적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注+매근埋根”은 물러서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항오行伍(항오)를 이른다.
又聞吳起爲將 暑不張蓋하고 寒不披裘라하니이다 今賢 野次垂幕하고 珍肴雜遝하며 兒子侍妾 事與古反注+遝, 或作沓, 達合切. 雜遝, 衆多貌.하니
이 또 들으니, 옛날 오기吳起는 장수가 되었을 적에 더워도 일산을 펴지 않고 추워도 갖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마현馬賢은 들에 머물 적에 천막을 치고 진귀한 음식이 이것저것 많으며 아들과 시첩侍妾도 있어, 일이 옛날과 반대됩니다.注+은 혹 으로 쓰는데 달합達合이니, “잡답雜遝”은 많은 모양이다.
臣懼賢等 專守一城하여 言攻於西而羌出於東이요 且其將士 將不堪命하여 必有高克潰叛之變也注+鄭高克好利而不顧其君, 文公使克將兵而禦狄于境, 陳其師旅, 翺翔河上, 衆潰而歸.하노이다
은 마현 등이 오로지 한 을 지키고 있으니, 강족들이 말로는 서쪽을 공격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쪽을 공격할까 두렵고, 또 그의 장수와 병사들이 장차 명령을 감당하지 못해서 반드시 고극高克처럼 궤멸되어 배반하는 변고가 있을까 염려됩니다.”注+춘추시대春秋時代나라 고극高克이 이로움을 좋아하여 군주를 돌아보지 않자, 나라 문공文公이 고극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국경에서 북적北狄을 막게 하였는데, 군대를 진열하고는 하수河水 가에서 한가하게 노닐었다. 이에 무리가 궤멸되어 돌아왔다.
安定人皇甫規 亦見賢不恤軍事하고 審其必敗하여 上書言狀호되 朝廷 皆不從이러니 至是하여 果敗하다
안정安定 사람 황보규皇甫規도 마현이 군사軍事를 걱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반드시 할 것을 알고는 글을 올려 상황을 말하였다. 그러나 조정朝廷(황제)이 그들의 말을 모두 따르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마현이 과연 패하였다.
二月 有星孛于營室하다
】 2월에 패성孛星영실성營室星에 나타났다.
◑武都太守趙沖 擊破鞏唐羌이어늘 詔沖督河西四郡兵注+武都太守, 西羌傳, 作武威太守. 沖以追羌之功, 詔督河西四郡兵, 則武威太守爲是. 武都, 西北接漢陽, 東北接扶風, 南接漢中, 無緣遠督河西四郡兵.하다
무도태수 조충武都太守 趙沖공당강鞏唐羌을 격파하자, 조충趙沖에게 명하여 하서河西 4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注+무도태수武都太守는 ≪후한서後漢書≫ 〈서강전西羌傳〉에 무위태수武威太守로 되어 있다. 조충趙沖강족羌族을 추격한 공로가 있어 그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하서河西의 4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면, 무위태수武威太守가 옳다. 무도武都는 서북쪽으로 한양漢陽과 접하고 동북쪽으로 부풍扶風과 접하고 남쪽으로 한중漢中과 접하였으니, 멀리 하서河西의 4의 군대를 감독하게 할 까닭이 없다.
安定上計掾皇甫規 上疏曰 羌戎潰叛 皆因邊將 失於綏御하니이다
안정安定상계연上計掾황보규皇甫規가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나라에 귀부歸附했던〉 강족羌族융족戎族이 흩어져 배반한 것은 모두 변방의 장수들이 이들을 제대로 위무慰撫하고 통제하지 못해서입니다.
乘常守安則加侵暴注+言前後相乘, 以侵暴羌戎爲常也.하고 苟競小利則致大害하며 微勝則虛張首級하고 軍敗則隱匿不言이라
장수들은 변방이 계속 편안하면 오랑캐들을 침략하여 포악한 짓을 자행하고注+〈“승상수안칙가침폭乘常守安則加侵暴”는〉 전후前後로 서로 이어서 강족羌族융족戎族을 침략하여 포악한 짓을 자행하는 것을 떳떳함으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구차하게 작은 이익을 다투어 결국 큰 폐해를 초래하였으며, 또 작은 승리를 얻으면 수급首級을 허위로 부풀리고, 군대가 패하면 숨기고 말하지 않습니다.
軍士勞怨하여 困於猾吏하여 進不得快戰以徼功하고 退不得溫飽以全命하여 餓死溝渠하고 暴骨中原하니
군사軍士들이 수고로운 나머지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서 교활한 관리에게 억압을 당해서, 나가서는 통쾌하게 싸워 을 세우지 못하고 물러가서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어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해서 굶어 죽은 시신이 도랑에 뒹굴고 백골이 들에 버려져 있으니,
徒見王師之出이요 不聞振旅之聲이라 酋豪泣血하여 驚懼生變하니 是以安不能久하고 叛則經年이니이다
한갓 왕사王師가 출동하였다는 것만 보았을 뿐, 승리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오랑캐의 추호酋豪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놀라고 두려워하여 변고를 내니, 이 때문에 변방의 편안함이 오래가지 못하고 한 번 배반하면 몇 해를 넘기는 것입니다.
願假臣屯列坐食之兵五千하여 出其不意하여 與趙沖共相首尾하면 可不煩方寸之印, 尺帛之賜하여 高可滌患이요 下可納降이니이다
원컨대, 에게 병영에 모여 하는 일 없이 군량미를 축내는 병사 5,000명을 빌려주소서. 이 적들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군사를 내어서 조충趙沖과 함께 서로 머리와 꼬리가 되어 호응하면, 방촌方寸인장印章(관직과 작위)과 한 자[]의 비단을 번거롭게 내리지 않고서도 위로는 조정의 환란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고, 아래로는 오랑캐로부터 항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若謂臣年少官輕하여 不足用者 凡諸敗將 非官爵之不高, 年齒之不邁注+邁, 往也. 臣不勝至誠하여 沒死自陳하노이다 帝不能用注+沒死, 猶言昧死也, 冒死也.하다
만약 이 나이가 적고 관직이 낮아서 등용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신다면, 모든 패한 장수들의 관작이 높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연치가 많지 않았던 것이 아니니注+는 지나감이다., 은 지극한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아룁니다.” 황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注+몰사沒死”는 매사昧死라는 말과 같으니, 죽음을 무릅쓰는 것이다.
鞏唐羌 寇北地하다
공당강鞏唐羌북지北地를 침략하였다.
◑秋八月 하다
】 가을 8월에 대장군 양상大將軍 梁商하였다.
以上巳會賓客하여 讌于雒水注+昔周公成洛邑, 因流水以泛酒, 鄭俗以三月上巳, 溱․洧兩水之上, 秉蘭祓除. 又秦昭王以三日置酒河曲, 見金人, 奉水心之劍曰 “令君制有西夏.” 乃霸諸侯, 因此立爲曲水, 至漢相沿, 皆爲盛集也. 古以三月上巳日爲上巳, 後以三月三日爲上巳. 讌, 合飮也.러니 酒闌 繼以䪥露之歌注+飮酒, 半罷半在曰闌. 䪥, 下拜切, 一作薤. 漢高帝時, 齊王田橫自殺, 其門人不敢哭, 但隨柩敍哀歌, 名曰䪥露蒿里. 後代相承, 使挽逝者歌之, 號爲挽歌. 武帝時, 李延年分爲二曲, 䪥露送王公․貴人, 蒿里送士大夫․庶人. 其辭曰 “䪥上朝露何易晞. 露晞明朝還復落, 人死一去何時歸. 蒿里誰家地, 聚精魄無賢愚. 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踟躕.”어늘
】 처음에 양상梁商상사上巳빈객賓客을 모아 낙수雒水에서 잔치를 벌였는데注+옛날 주공周公낙읍洛邑을 이루고 흐르는 물을 따라 술잔을 띄웠으며, 나라 풍속에는 3월 상사上巳에 〈을 물리치기 위해〉 진수溱水유수洧水 두 물가에서 택란澤蘭을 캐고 불제祓除를 행하였다. 또 나라 소왕昭王은 3월 3일 하곡河曲에서 술자리를 베풀 적에 금인金人(금동金銅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만났는데, 금인金人이 물속의 을 받들어 올리며 말하기를 “임금님으로 하여금 서하西夏를 제압하여 소유하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나라가 마침내 제후諸侯의 패자가 되자, 이곳에 곡수曲水하는 자리를 세웠는바, 나라 때까지 이를 인습해서 모두 성대한 모임으로 삼았다. 옛날에는 3월 상사일上巳日(일진日辰에 첫 번째 가 든 날)을 상사上巳라 하였는데, 뒤에는 3월 3일을 상사上巳라 하였다. 은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䪥露(해로)의 노래를 불렀다.注+술을 마실 적에 은 자리를 하고 은 남아 있는 것을 ‘’이라 한다. 하배下拜이니 일본一本에는 ‘’로 되어 있다. 나라 고제高帝 때에 제왕 전횡齊王 田橫자살自殺하자 그 문인門人들이 감히 하지 못하고 다만 영구靈柩를 따라 슬픈 노래를 불렀는데, ‘해로호리䪥露蒿里’라고 이름하였다. 후대後代에 이것을 계승해서 상여를 끄는 자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고는 만가挽歌라고 하였다. 무제武帝 때에 이연년李延年이 이것을 나누어 두 곡조로 만들었는데, 해로곡䪥露曲왕공王公귀인貴人을 장송할 때에 부르고, 호리곡蒿里曲사대부士大夫서인庶人들을 장송할 때에 불렀다. 그 노래에 이르기를 “부추 위에 아침 이슬은 어찌 이리도 쉽게 마르는가. 이슬은 말라도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내리지만, 사람은 죽어 한 번 떠나가면 어느 때에 다시 돌아오는가. 호리蒿里는 누구의 집터인가. 정백精魄을 거둘 때에는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 구별이 없네. 귀백鬼伯(염라대왕)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가. 사람 목숨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네.” 하였다.
周擧聞之하고 歎曰 此所謂哀樂失時 非其所也 殃將及乎注+左傳 “哀樂失時, 殃咎必至.”인저하더니
주거周擧가 이 말을 전해 듣고 탄식하기를 “이는 이른바 ‘슬픔과 즐거움이 때를 잃었다.’는 것이니, 만가輓歌를 부를 장소가 아니다. 장차 앙화殃禍가 미칠 것이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슬픔과 즐거움이 때를 잃으면, 재앙과 허물이 반드시 이른다.” 하였다. 하였다.
至是病篤하여 勅冀等曰 吾生無以輔益朝廷하니 死何可耗費帑藏이리오
이때에 이르러 양상의 병이 위독해지자, 아들 양기梁冀 등에게 말하기를 “내 살아서 조정朝廷(황제)을 보필하여 유익하게 함이 없었으니, 죽어서 어찌 국고國庫의 물건을 함부로 허비하겠는가.
衣衾, 飯含, 玉匣, 珠貝之屬 何益朽骨이리오 宜皆辭之注+含, 戶暗切. 口實也. 白虎通曰 “大夫飯以玉, 含以貝, 士飯以珠, 含以貝也.”니라이어늘 諸子欲從其誨한대 朝廷 不聽하다
옷과 이불과 반함飯含옥갑玉匣주패珠貝의 등속이 썩은 뼈에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마땅히 모두 사양해야 한다.”注+호암戶暗이니, 〈“반함飯含”은〉 죽은 자의 입에 채우는 것이다. ≪백호통白虎通≫에 “대부大夫으로 을 하고 자개로 을 하며, 는 진주로 을 하고 자개로 한다.” 하였다. 하였다. 양상이 하자 여러 아들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조정(황제)이 허락하지 않았다.
以梁冀爲大將軍하고 不疑爲河南尹注+不疑, 冀之弟也.하다
양기梁冀대장군大將軍으로 삼고 양불의梁不疑하남윤河南尹으로 삼았다.注+양불의梁不疑양기梁冀의 아우이다.
◑以周擧爲諫議大夫하다
주거周擧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았다.
梁商 疾篤이어늘 帝親臨幸하여 問以遺言한대 對曰 臣 從事中郞周擧 淸高忠正하니 可重任也이니이다 由是用之하다
】 처음에 양상梁商이 병이 위독하자 황제가 친히 가서 유언遺言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종사중랑從事中郞주거周擧가 청백하고 고상하고 충성스럽고 바르니, 중임重任을 맡길 만합니다.” 하였다. 이 때문에 그를 등용한 것이다.
九月 諸羌 寇武威하다
】 9월에 여러 강족羌族무위武威를 침략하였다.
◑是月晦 日食하다
】 이 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冬十月 徙安定北地郡注+以羌寇充斥, 涼部震恐, 復徙安定居扶風, 北地居馮翊.하다
】 겨울 10월에 안정安定북지군北地郡의 백성들을 내지內地로 옮겼다.注+강족羌族의 침략이 잦아 양주부涼州部가 놀라고 두려워하므로, 다시 안정安定의 백성을 옮겨 부풍扶風에 거주하게 하고, 북지北地의 백성을 옮겨 풍익馮翊에 거주하게 하였다.
◑十一月 遣車騎將軍張喬하여 屯三輔하다
】 11월에 거기장군 장교車騎將軍 張喬를 보내서 삼보三輔 지방에 주둔하게 하였다.
◑徙荊州刺史李固爲泰山太守하다
형주자사 이고荊州刺史 李固를 옮겨 태산태수泰山太守로 삼았다.
荊州盜起하여 彌年不定注+彌, 終也, 滿也.이어늘 以李固爲刺史하다 固到하여 遣吏勞問境內하고 赦寇盜前釁하여 與之更始注+釁, 罪釁也.하니
형주荊州에 도적 떼가 일어나서 1년이 넘어도 평정하지 못하자注+는 마침이요, 가득함이다., 이고李固형주자사荊州刺史로 삼았다. 이고가 부임하여 관리를 보내서 경내境內를 위문하고 도적들이 예전에 지은 죄를 사면하여서 그들에게 새 출발을 하게 하니注+(흔)은 죄이다.,
於是 賊帥自縛歸首注+首, 獨服也.어늘 固皆原之하고 遣還相招하니 半歲間 餘類悉降하다
이에 의 우두머리가 스스로 포박하고서 귀순하여 항복하였다.注+는 혼자 와서 항복하는 것이다. 이고가 모두 용서하고 돌려보내 서로 불러오게 하니, 반년 사이에 남은 무리가 모두 항복하였다.
奏南陽太守高賜等臧穢注+臧, 古贓字通.하니 賜等 重賂梁冀한대 冀爲之千里移檄而固持之愈急注+爲, 去聲. 千里移檄, 言移檄一日行千里, 救之急也.이라 冀遂徙固爲泰山太守하니
이고가 남양태수 고사南陽太守 高賜 등의 장물죄 같은 추악한 행위를 아뢰니注+(뇌물)은 옛날에 자와 통용되었다., 고사 등은 양기梁冀에게 많은 뇌물을 바쳤다. 양기가 그들을 위하여 매우 급히 격문(급전急傳)을 보냈으나, 이고가 법의 집행을 더욱 엄하게 하니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천리이격千里移檄”은 격문을 보낼 적에 하루에 1,000리를 가게 해서 급히 구원함을 말한 것이다., 양기는 마침내 이고를 옮겨 태산태수泰山太守로 삼았다.
泰山盜賊 屯聚歷年이라 郡兵常千人 追討호되 不能制러니
이때에 태산泰山의 도적이 몇 년 동안 모여 주둔하고 있었는데, 상주군常住軍 1,000명이 쫓아가 토벌하였으나 제압하지 못하였다.
固到하여 悉罷遣歸農하고 但選留任戰者百餘人하여 以恩信招誘之하니 未滿歲 賊皆弭散注+任, 音壬. 弭, 止也. 散, 逃潰而去也.하다
이고가 부임하여 군사들을 모두 해산하여 돌려보내 농사짓게 하고, 다만 전투할 만한 자 100여 명을 선발해서 남겨두고서 은혜와 신의로써 도적들을 불러 회유하니, 채 1년이 못 되어 도적들이 모두 항복하고 해산하였다.注+(맡다)은 음이 이다. 는 그침이다. 은 도망하여 흩어져 감이다.
역주
역주1 大將軍梁商卒 : “대장군에게는 岑彭 이후로 ‘卒’이라고 쓴 적이 없는데, 여기서 梁商에게 ‘卒’이라고 썼으니, 이는 그를 어질게 여긴 것이다.[大將軍 自岑彭後 未有書卒者 於是卒梁商 賢之也]다” ≪書法≫
역주2 (飮)[斂]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古今注≫에 의거하여 ‘斂’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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