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北魏의 王足이 梁나라를 침략하였을 때에 梁主(蕭衍)가 寧州刺史 李略에게 명령을 내려 방어하게 하면서 일이 평정되면 益州刺史에 임명하겠다고 허락하였다. 왕족이 물러가고 나서 梁主가 그를 임명하지 않으니, 이략이 원망하면서 배반할 모의를 꾸미자 梁主가 그를 죽였다.
이략의 형의 아들인 李苗가 北魏로 달아났고, 마침 校尉 淳于誕 역시 漢中에서 북위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魏主(元恪)에게 蜀 지역을 빼앗을 계책을 가지고 설득하자, 魏主가 그들의 말을 믿고 高肇를 大都督으로 임명하여 보병과 기병 15만 명을 거느리고 益州를 침략하게 하였다.
游肇가 간언하기를 “지금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들고 있으니,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고, 蜀 지역은 지세가 험준하고 좁아 방어하는 곳에 틈이 없으니, 어찌 헛된 주장을 듣고 대군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군대를 움직일 때에 처음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魏主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