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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3)

자치통감강목(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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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巳年(297)
七年이라 春正月 하다
齊萬年 屯梁山하니 有衆七萬注+前漢志 “扶風好畤縣有梁山.”이라 梁王肜 夏侯駿 使周處 以五千兵擊之어늘
處曰 軍無後繼 必敗리니 不徒亡身이라 爲國取恥니이다 肜, 駿 逼遣之하다
處攻萬年於六陌注+六陌, 在馬嵬山西.할새 軍士未食 促令速進하여 自旦戰至暮 斬獲甚衆하고 絃絶矢盡호되 救兵不至
左右勸處退한대 處按劍하고 曰 是吾效節致命之日也라하고 遂力戰而死하다 朝廷 雖以尤肜이나 而亦不能罪也注+尤, 過也.러라
秋七月 雍, 秦 旱疫하다
米斛萬錢이러라
九月 以王戎爲司徒하다
高逸圖 王戎高逸圖 王戎
戎爲三公하여 與時浮沈하여 無所匡救하고 委事僚寀하여 輕出遊放注+寀, 此宰切. 同官爲僚, 同地爲寀.하며
性復貪吝하여 園田 徧天下 每自執牙籌하여 晝夜會計하여 常若不足이러라
家有好李러니 賣之 恐人得種하여 常鑚其核注+鑽, 祖官切, 刺也.하고 凡所賞拔 專事虛名이라
阮咸之子瞻 嘗見戎한대 問曰 聖人 貴名敎하고 老莊 明自然하니 其旨異同 瞻曰 將無同注+將無, 猶言無乃‧得無之類, 將無同, 其意蓋言同也. 不直云同, 而云將無同者, 晉人語度自爾也. 意以爲是而未敢自主也.이리이다
咨嗟良久 遂辟之하니 時人 謂之三語掾注+三語, 指將無同三字.이라하니라
是時 王衍 爲尙書令하고 樂廣 爲河南尹이러니 皆善淸談하고 宅心事外하여 名重當世하니 朝野爭慕效之注+宅, 居也.러라
與弟澄으로 好題品人物하니 擧世以爲儀準이러라 神情明秀
少時 山濤見之하고 曰 何物老嫗生寧馨兒이나 誤天下蒼生者 未必非此人也注+寧, 音寗, 又平聲, 猶言如此. 馨, 語助也.라하니라
沖約淸遠하여 與物無競하고 每談論 以約言析理하여 厭人之心이로되 而其所不知 黙如也注+析理, 謂約言以分別義理, 如破木然. 厭, 於叶切, 伏也.러라
凡論人 必先稱其所長하니 則所短不言自見이러라
澄及阮咸 咸從子脩 胡毋輔之, 謝鯤, 王尼, 畢卓 皆以任放爲達하여 醉狂裸體 不以爲非注+毋, 音無. 胡毋, 複姓. 任者, 任物之自然. 放者, 縱其心而不制.러라
輔之嘗酣飮하니 其子謙之 厲聲呼之하여 曰 彦國 年老하니 不得爲爾라하니 輔之歡笑하고 呼入共飮注+彦國, 輔之字.하니라
比舍郞 釀熟注+比, 近也. 釀, 醞也.이러니 因夜至甕間하여 盜飮이라가 爲掌酒者所縛이라 明旦 視之하니 乃畢吏部也注+卓甞爲吏部郞.
聞而笑之하고 曰 名敎內 自有樂地하니 何必乃爾오하니라
何晏等 祖述老, 莊하고 立論하여 以爲天地萬物 皆以無爲本하니
無也者 開物成務하여 無往不存者也注+何晏之旨, 以爲 “事事物物, 自無而有. 無者, 物之未生, 事之未形見者也.” 故曰 “無者開物成務.” 陰陽 恃以化生하고 賢者恃以成德이라
無之爲用 無爵而貴矣라하니 衍等 愛重之 由是 士大夫皆尙浮誕하여 廢職業이러라
裴頠著崇有論하여 以釋其蔽하니 曰 利欲 可損而未可絶有也 事務 可節而未可全無也
談者 深列有形之累하고 盛稱空無之美하여 遂薄綜世之務하고
賤功利之用注+綜, 子宋切, 機縷也. 綜世之務, 謂整理當世之事, 使皆有紀, 若機之有錯綜.하며 高浮遊之業하고 卑經實之賢注+經實, 謂有經世之實用者.하니 人情所徇 名利從之
於是立言 藉於虛無 謂之玄妙하고 處官 不親所職 謂之雅遠하고 奉身 散其廉操 謂之이라
悖吉凶之禮하고 忽容止之表하며 瀆長幼之序하고 混貴賤之級하여 無所不至
夫萬物之生 以有爲分者也注+物之未生, 則有無未分, 旣生而有, 則與無爲已分矣. 非事也로되 而制事必由於心하니 不可謂心爲無也
非器也로되 而制器必須於匠하니 不可謂匠非有也
由此而觀하면 濟有者 皆有也 虛無 奚益於已有之群生哉리오하니라이나 習俗已成하여 頠論 亦不能救러라
索頭猗㐌 西略諸國하다
猗㐌度漠北하여 巡西略諸國하니 降附者三十餘國注+旣度漠北, 遂西行, 略取諸國.이러라


丁巳年(297)
[] 나라 孝惠皇帝 元康 7년이다. 봄 정월에 將軍 周處齊萬年과 싸워 패하여 죽었다.
[] 齊萬年梁山에 주둔하였는데, 병력이 7만이었다.注+漢書≫ 〈地理志〉에 “扶風好畤縣梁山이 있다.” 하였다. 梁王 司馬肜夏侯駿周處로 하여금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게 하니,
주처가 말하기를 “군대는 후속 부대가 이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패하니, 이 몸이 죽을 뿐만이 아니라 국가에 치욕을 초래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사마융과 하후준은 다그쳐 보냈다.
주처가 제만년을 六陌에서 공격할 적에注+六陌馬嵬山 서쪽에 있다. 병사들이 밥을 먹기도 전에 사마융이 빨리 출전하도록 재촉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싸워 적을 참수하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고, 활줄이 끊어지고 화살이 다 떨어졌으나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
좌우에서 주처에게 후퇴할 것을 권하였으나 주처는 검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충절을 다하고 목숨을 바칠 때이다.” 하고는 마침내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조정에서는 비록 사마융을 나무랐으나 또한 죄주지 못하였다.注+는 허물이다.
[] 가을 7월에 雍州秦州에 가뭄이 들고 역병이 유행하였다.
[] 〈곡식이 귀하여〉 쌀 한 이 1만 이었다.
[] 9월에 王戎司徒로 삼았다.
[] 王戎三公이 되어 세상 사람들과 부침하여 황제의 잘못을 바로잡은 바가 없었고 동료들에게 일을 맡기고는 마음대로 나가 놀고 방탕하였으며,注+此宰이니, 같이 벼슬하는 것을 라 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라한다.
성품이 또 탐욕스럽고 인색해서 그의 田園이 온 천하에 두루 퍼져 있었다. 매번 직접 牙籌(상아 주판)를 잡고서 밤낮으로 會計하여 항상 부족한 듯이 여겼다.
집에 좋은 오얏이 있었는데 이것을 팔 적에 남이 좋은 종자를 얻을까 두려워 항상 씨에 구멍을 뚫었고,注+祖官이니, 뚫음이다. 사람을 칭찬하고 선발할 적에 오로지 허황된 명성을 높이 샀다.
阮咸의 아들 阮瞻이 일찍이 왕융을 찾아가 보았는데, 왕융이 묻기를 “聖人名敎를 귀하게 여겼고 老子莊子는 자연을 밝혔는데, 그 뜻이 다른가? 같은가?” 하니, 완첨이 말하기를 “아마도 같지 않겠습니까.”注+將無”는 無乃, 得無라고 말함과 같은 따위이니, “將無同”은 그 뜻이 대개 같음을 말한 것이다. 곧바로 ‘’이라고 말하지 않고 ‘將無同’이라고 말한 것은 나라 사람들의 말하는 태도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짐작하건대 옳다고는 생각하나 감히 자신 있게 주장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왕융은 한동안 감탄하고는 마침내 그를 辟召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일러 ‘三語掾注+三語”는 ‘將無同’ 세 글자를 가리킨다.이라 하였다.
[] 이때 王衍尙書令이 되고 樂廣河南尹이 되었는데, 淸談을 잘하고 마음이 세속의 일에서 초탈하여 명성이 당세에 두터우니, 朝野의 사람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본받았다.注+은 거함이다.
왕연은 아우 王澄과 함께 인물을 품평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온 세상이 이것을 儀準(본보기)으로 삼았다. 왕연은 정신과 마음이 밝고 빼어났다.
젊었을 때에 山濤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어떤 老嫗(늙은 할미)가 이와 같은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의 蒼生을 그르칠 자는 틀림없이 이 사람일 것이다.”注+이고 또 平聲이니, 如此라는 말과 같다. 은 어조사이다. 하였다.
악광은 성품이 담박하고 검약하여 깨끗하고 원대하여 남과 다툼이 없었고, 매번 담론할 적에 요약된 말로 이치를 분석해서 사람들 마음을 굴복시켰으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침묵하였다.注+析理”는 요약된 말로 義理를 분석하기를 나무를 쪼개듯이 함을 말한다. 於叶이니, 굴복시킴이다.
언제나 사람을 논할 적에 반드시 먼저 그의 장점을 칭찬하니 그의 단점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났다.
[] 王澄阮咸, 완함의 從子阮脩胡毋輔之, 謝鯤王尼畢卓이 모두 자유분방함을 통달함으로 여겨서 술에 취하고 옷 벗고 있는 것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았다.注+이니, 胡毋複姓이다. 은 물건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고, 은 마음을 풀어놓아 제재하지 않는 것이다.
호무보지가 일찍이 술을 실컷 마셨는데, 그의 아들 胡毋謙之가 큰 소리로 부르기를 “彦國이 많이 늙었으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니, 호무보지가 기뻐하여 웃고는 불러 들어오게 하여 함께 술을 마셨다.注+彦國胡毋輔之이다.
畢卓의 이웃에 사는 郞官이 술을 빚었는데, 술이 익자注+는 가까움이다. 은 술을 빚음이다. 필탁이 밤에 술동이 사이로 가서 몰래 술을 마시다가 술을 관장하는 자에게 포박을 당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살펴보니, 바로 畢吏部였다注+〈“畢吏部”는〉 畢卓이 일찍이 吏部이 되었다.
樂廣이 듣고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名敎 안에 본래 즐거운 경지가 있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 처음에 何晏 등이 ≪老子≫와 ≪莊子≫를 祖述하고 이론을 세워 이르기를 “천지의 만물이 모두 를 근본으로 삼으니,
라는 것은 물건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어주어서 가는 곳마다 존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注+何晏의 뜻은 “모든 일과 물건이 에서 생겨나니, 는 물건이 아직 생겨나지 않고 일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는 물건을 열고 일을 이룬다.”라고 한 것이다. 이 이것에 의지하여 化生하고, 賢者가 이것에 의지하여 덕을 이룬다.
그러므로 作用은 벼슬이 없어도 귀한 것이다.” 하니, 王衍 등이 이 말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사대부들이 모두 浮幻虛誕을 숭상하여 職業(직무)을 폐하였다.
[] 裴頠가 〈崇有論〉을 지어서 그 폐해를 해소하고자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利欲은 덜 수는 있으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事務는 줄일 수는 있으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談論하는 자들이 有形의 폐해를 깊이 나열하고 空無의 아름다움을 매우 칭찬하여, 마침내 經世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功利의 쓰임을 천시하며注+子宋이니, 베틀의 올이다. “綜世之務”는 當世의 사무를 정리함에 베틀에 날실과 씨실이 교착함이 있는 것과 같아 모두 기강이 있게 함을 이른다. 부화하고 방탕한 일을 높이 여기고 經世實用하는 어진 이를 비하하니,注+經實”은 經世의 실용이 있음을 이른다.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바에 명예와 이익이 뒤따른다.
이에 글을 쓸 적에는 虛無를 바탕으로 삼는 것을 ‘玄妙하다.’ 하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맡은 직책을 친히 다스리지 않는 것을 ‘고아하고 원대하다.’ 하고, 자신의 몸을 받들 적에 청렴과 지조를 돌보지 않는 것을 ‘曠達하다.’ 한다.
그러므로 길흉의 를 무너뜨리고 행동거지의 儀表를 소홀히 하며, 長幼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귀천의 등급을 혼란하게 하여 못 하는 짓이 없다.
만물의 태어남은 에서 나누어지는 것이다.注+〈“夫萬物之生 以有爲分者也”는〉 물건이 아직 생기기 전에는 가 나누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생겨 존재하면 와 이미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일이 아니지만 일은 반드시 마음을 말미암아 만들어지니 마음을 라고 할 수가 없고,
匠人器物이 아니지만 기물은 반드시 장인을 통해서 만들어지니 장인을 일러 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를 이루는 것은 모두 이니, 虛無가 이미 존재하는 여러 백성들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의 習俗이 이미 이루어져서 배외의 〈숭유론〉도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 索頭部 拓跋猗㐌(탁발의타)가 서쪽으로 여러 나라를 공략하였다.
[] 拓跋猗㐌漠北을 건너와서 서쪽 지역을 순행하며 여러 나라를 공략하니, 항복하여 그에게 붙은 나라가 30여 개였다.注+이미 漠北으로 건너갔다가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여러 나라를 공략하여 점령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將軍周處及齊萬年戰敗 死之 : “‘死之’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충절을 인정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死之’라고 쓴 것이 54번인데 晉나라에 13번을 썼다.(周處, 劉沈, 嵇紹, 譙登, 庾珉 등, 吉朗, 辛賓, 段匹磾, 譙王 司馬氶, 卞壼, 桓彝, 沈勁, 吉挹) ‘세상이 혼란하면 충신을 안다.’는 말이 참으로 옳다.[書死之 何 予節也 終綱目書死之五十四 而晉世書十有三(周處 劉沈 嵇紹 譙登 庾珉等 吉朗 辛賓 段匹磾 譙王氶 卞壼 桓彝 沈勁 吉挹) 世亂識忠臣 信哉]” ≪書法≫
역주2 (廣)[曠] : 저본에는 ‘廣’으로 표기되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曠’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3)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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