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目] 요양姚襄의 부하들이 대부분 북쪽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자, 요양은 마침내 전진하여 허창許昌을 점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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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6월에 진주秦主부건苻健이 졸卒하니, 태자 부생苻生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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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부건苻健은 정사를 부지런히 하여 자주 공경公卿들을 맞이해서 정치하는 방도를 묻고 강론하였다. 까다롭고 포학하고 사치하게 다스린 조趙나라(후조後趙) 사람들의 뒤를 이어서 너그럽고 소탈하고 절약하고 검소한 풍조로 바꾸고 유학을 높이고 선비를 예우하니, 이로 말미암아 진秦나라(전진前秦) 사람들이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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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부건苻健은 이때 병이 위독하여 태사太師어준魚遵과 승상丞相뇌약아雷弱兒, 태부太傅모귀毛貴와 사공司空왕타王墮, 상서령尙書令양능梁楞(양능)과 복야僕射양안梁安, 단순段純 등을 데리고 와서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게 하고,
태자 부생苻生에게 이르기를 “여섯 오랑캐의 추장과 권력을 잡고 있는 대신들이 만약 너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든 마땅히 점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하였다.
부건이 졸卒하자, 부생이 즉위하여 대사면大赦免을 하고 개원改元을 하니,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상喪을 당한 지 1년이 넘지 아니하여 개원하는 것은 예禮가 아닙니다.”注+① 古禮에 人君이 薨하면 세자가 즉위하고, 1년이 넘은 뒤에 元年을 칭하였다. 하였다. 부생이 노하여 의논을 주관한 자를 추궁해서 마침내 단순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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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고명대신顧命大臣은 제왕의 지위를 이은 아들을 보도輔導하여 그의 우익羽翼이 되는 것인데, 부건苻健이 아들로 하여금 고명대신을 제거하도록 가르쳤으니, 능히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충不忠함을 알았으면 맡기지 말아야 할 뿐이다.
큰 권력을 맡기고 또 따라서 의심하면 난亂을 초래하지 않을 자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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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가을 9월에 진秦나라(전진前秦)가 그 후后인 양씨梁氏와 태부太傅모귀毛貴 등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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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중서감中書監호문胡文이 진주秦主부생苻生에게 말하기를 “근래 패성孛星이 대각성大角星에서 나타나고 형혹성熒惑星이 동정東井으로 들어갔으니,注+① 比(가깝다)는 近이다. 大角은 황제의 자리(帝座星)이고 東井은 秦나라의 분야이다. 3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나라에 큰 상喪이 있고 대신大臣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덕을 닦아 재앙을 물리치소서.” 하였다.
秦主苻生妄殺臣
부생이 말하기를 “황후皇后는 짐과 상대하여 천하에 군림하니 〈황후가 죽으면〉 큰 상喪에 응할 수 있고, 모태부毛太傅, 양거기梁車騎, 양복야梁僕射는 유조遺詔를 받아 정사를 보필하니, 대신에 응할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황후 및 모귀毛貴, 양능梁楞, 양안梁安을注+② 毛貴는 황후의 시아버지이고, 梁安은 황후의 아버지이다. 죽였다.
[목目] 양왕涼王장조張祚가 지나치게 포악하니, 상하上下의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고 분노하였다. 그런데 장조가 하주자사河州刺史장관張瓘의 강성함을 미워하여注+① 惡(미워하다)는 烏路의 切이다. 張駿은 河州를 설치하고 枹罕을 치소로 삼았다. 彊(강성하다)은 본음대로 읽는다.삭부索孚(삭부)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
이에 장관이 삭부를 참수하고 군대를 일으켜 주군州郡에 격문檄文을 돌리고는 장조를 폐하고 다시 장요령張曜靈을 세우자, 장군 송혼宋混이 만여 명의 병력을 모아 이에 호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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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장조張祚가 장요령張曜靈을 죽이자, 송혼宋混이 이 말을 듣고 장요령을 위하여 상喪을 발표하였다. 군대가 고장姑臧에 이르자 장관張瓘의 아우 장거張琚가 성문을 열고 이들을 받아들이니, 조장趙長 등은 죄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注+① 趙長은 張祚를 세울 것을 청한 자이다. 그러므로 죄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래서 각閣으로 들어와 장중화張重華의 어머니 마씨馬氏를 불러 장요령의 아우 장현정張玄靚을 세워 군주로 삼으니, 여러 장수들이 조장 등을 체포하여 죽였다.
장조는 평소 사람의 인심을 잃으니, 그를 위하여 싸우려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임을 당하니, 그 머리를 성안에 효시하고 모두 만세를 불렀다.
송혼과 장거가 장현정을 높여 대장군大將軍서평공西平公이라 칭하고 다시 건흥建興 43년을 칭하니,注+② 河西 張氏가 마침내 晉나라의 황실에 마음을 두어 建興 연호를 받들어 사용하였으나, 40여 년에 이르러 張祚가 흉악하고 사나워 건흥 42년을 고쳐 和平 원년이라 하였는데, 지금 다시 건흥 연호를 칭한 것이다. 이때 장현정이 겨우 7세였다.
장관張瓘이 도착하여 장현정을 양왕涼王으로 추대하고는 스스로 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상서령尙書令이 되고 송혼을 상서복야尙書僕射로 삼았다.
의 대등한 예의禮儀를 사용하고 모용준이 황제를 칭한 것을 비난하자,注+① 抗은 듦이다. 慕容氏와 段氏는 대대로 혼인하여 번갈아 생질과 외숙 관계가 되었다. 慕容儁은 段氏의 소생이다. 그러므로 段龕이 그와 더불어 中表 형제의 대등한 禮儀를 사용한 것이다. 모용준이 노하여 모용각慕容恪을 보내어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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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12월에 진秦나라(전진前秦)가 승상丞相뇌약아雷弱兒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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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뇌약아雷弱兒는 성품이 강직하였다. 복야僕射조소趙韶와 동영董榮이 정사를 어지럽힌다 하여 매번 조정에서 공공연히 이것을 말하였고 그들을 만날 때면 항상 이를 갈고 미워하였다.
조소와 동영이 진주秦主부생苻生에게 그를 참소하자, 뇌약아와 그의 9명의 아들과 27명의 손자를 죽이니, 이에 여러 강족羌族들이 모두 배반할 마음을 품었다.注+① 雷弱兒는 南安의 羌族 추장이다.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죽었으므로 여러 강족들이 모두 배반할 마음을 품은 것이다.
부생은 비록 양음諒陰(양암)에 있었으나 평소처럼 놀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칼을 차고 활을 휴대하고서 조정의 신하들을 만나보았고, 형구刑具인 쇠망치와注+② 錘는 傳追의 切이니, 쇠망치이다. 쇠사슬, 톱과 끌을 좌우에 비치하니,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해서 후비后妃와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하급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5백여 명을 죽였다.
역주
역주1세 마리……있다 :
이 내용은 ≪晉書≫, ≪魏書≫ 등에 보이는데, 자세한 해설은 찾을 수 없고, 단지 ≪册府元龜≫ 권225 〈僭僞部 世子〉에 “苻氏는 본래 氐族 사람이다. 苻洪이 苻徤을 낳고 부건이 苻生을 낳았기 때문에 ‘三羊’이라 하였고, 부생이 눈이 하나 없기 때문에 ‘五眼’이라 하였다.[苻氏 本氐人 洪生徤 徤生生 故曰三羊 生無一目 故曰五眼]”라는 注가 전한다.
역주3涼州弑其君祚……爲涼王 :
“張曜靈을 폐하고 張祚를 세운 자는 長史 趙長 등 여러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장조가 음탕하고 포악한 짓을 자행해서 國人들이 원망하고 분노하여 불안해하자, 그 徒黨들이 또다시 따라서 그를 죽였다. 장조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잃음이 이와 같았는데, 마침내 ‘弑’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涼州 사람들이 無道해서 장요령이 애당초 죄악이 없는데 폐출하고 세우는 것을 가벼이 하였다. 그러므로 장조가 죽었을 적에 도리어 군주를 시해하는 죄악을 온 나라 사람들에게 가한 것이다. 예컨대 ‘장조는 군주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는데 군주로 삼은 것은 양주 사람이기 때문이다.’라 말한 것과 같다. 장조를 군주로 삼고서 또다시 그를 죽였으니, 이는 한 州의 사람들이 모두 군주를 시해한 역적인 것이다. 무릇 이러한 종류는 모두 亂臣賊子의 당을 주벌함으로써 찬탈하고 죽이는 조짐을 막아서 발본색원하려는 의논이니, 만세의 경계가 된다. 이는 ≪春秋≫에서 ‘齊나라가 그 군주 商人을 시해했다.’고 쓴 것과 같은 뜻이다.[廢曜靈而立祚者 長史趙長諸人也 及祚爲淫虐 國人怨憤不安 其黨又從而殺之 祚之失衆如此 乃以弑書 何哉 涼州不道 曜靈初無罪惡 輕於廢立 故祚死 反以弑君之罪加之一國之人 若曰祚不足以爲君而君之者 涼州之人也 夫既君之而又殺之 是舉一州之人 皆弑君之賊爾 凡此類 皆以誅賊亂之黨 弭簒殺之漸 拔本塞源之論 爲萬世戒也 此與春秋書齊弑其君商人 同意]” ≪發明≫
역주4中表 형제 :
아버지 쪽의 고종사촌이나 어머니 쪽의 이종사촌을 아울러 일컫는 內外從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