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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王述은 매번 관직을 받을 때마다 가식적인 겸양을 하지 않았고 사양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尙書令이 되자, 아들 王坦之가 故事를 들어 마땅히 사양해야 한다고 아뢰자, 왕술이 말하기를 “너는 내가 이 관직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다만 능히 겸양하는 것이 본래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였다.
왕술이 말하기를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어찌하여 다시 겸양하겠느냐. 사람들은 네가 나보다 낫다고 말하지만, 내가 살펴보건대 너는 정녕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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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처음에 沈充의 아들 沈勁이 자기 아버지가 逆亂에 죽었다 하여 마음속으로 功을 세워 옛 수치를 설욕하고자 하였으나, 나이 30이 넘어도 형벌 받은 집안이라는 이유로 벼슬을 얻지 못하였다.
注+①
그런데 燕나라 사람이 洛陽을 핍박하였을 때 陳祐가 낙양성을 지켰는데, 군대가 2천 명에 불과하였다.
심경은 스스로 표문을 올려 진우의 부하가 되어 힘을 바칠 것을 청하자, 조정에서는 조령을 내려 長史에 보임해서 스스로 壮士들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심경은 천여 명을 얻어 출발해서 여러 번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공격하여 燕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낙양에는 양식이 바닥나고 援助가 끊기니, 진우는 스스로 낙양성을 지킬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注+② 度(헤아리다)은 徒洛의 切이다. 마침내 許昌을 구원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심경에게 5백 명을 남겨주어 낙양성을 지키게 하였다.
심경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뜻이 있었는데, 이제 기회를 얻었다.
注+③ ‘致命’은 목숨을 바침을 이르니, ‘授命’이라는 말과 같다.” 하였다.
悅希가 군대를 이끌고 하남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모두 점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