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6)

자치통감강목(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戌年(A.D.2)
임술년(A.D.2)
二年이라 黃支國 獻犀牛하다
[] 나라 효평황제孝平皇帝 원시元始 2년이다. 봄에 황지국黃支國에서 무소[서우犀牛]를 바쳤다.
黃支 在南海中하니 去京師三萬里注+黃支國, 在日南之南.
[] 황지국黃支國남해南海 가운데에 있으니, 경사京師와의 거리가 3만 리이다.注+황지국黃支國일남국日南國의 남쪽에 있다.
王莽 欲耀威德故 厚遺其王하여 令遣使貢獻하다
왕망王莽은 위엄과 공덕을 과시하고자 하였으므로, 그 국왕에게 후하게 물건을 보내서 그로 하여금 사자使者를 보내 〈무소를〉 바치게 하였다.
[] 월수군越嶲郡(월수군)에서 황룡黃龍장강長江 가운데에서 놀았다는 보고를 올렸다.
太師光等 咸稱莽功德 比周公하니 宜告祠宗廟라한대
[] 태사太師 공광孔光 등은 모두 말하기를 “왕망王莽의 공덕이 주공周公에 견줄 만하니, 마땅히 종묘宗廟에 고유하고 제사하여야 한다.” 하였다.
大司農孫寶曰
대사농大司農 손보孫寶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周公 上聖이요 召公 大賢이로되
주공周公은 최고의 성인聖人이요 소공召公대현大賢이었는데도,
尙猶有不相說하여 著於經典이나 兩不相損注+說, 讀曰悅. 經典, 謂書君奭篇. 兩不相損, 言俱有令名也.하니이다
두 분의 공덕이 서로 훼손되지 아니하였습니다.注+(기뻐하다)은 로 읽는다. 경전經典은 《서경書經》 〈주서周書 군석君奭을 이른다. “양불상손兩不相損”은 두 분에게 모두 훌륭한 명성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今風雨未時하고 百姓不足이어늘 每有一事 群臣同聲하니 得無非其美者注+同聲, 言雷同阿附, 妄說福祥也. 得無非其美者, 言此非朝廷美事也. 一曰 “謂所美非美也.”잇가
지금 비바람이 제때에 내리지 않고 백성들이 풍족하지 못한데, 매번 한 가지 일이 있으면 여러 신하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찬동하니, 이것이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注+② “동성同聲”은 부화뇌동하고 아첨해서 함부로 복과 상서를 말한 것이다. “득무비기미得無非其美”는 이것은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일설에 “아름답게 여김이 아름다움이 아님을 이른다.” 하였다.
大臣 皆失色이러니 甄邯 卽時承制하여 罷議者하다
이때에 대신大臣들이 모두 실색하였는데, 진감甄邯이 즉시 제명制命을 받들어서 의논하는 자들을 제지하였다.
寶遣吏迎母라가 母道病하여 留弟家하고 獨遣妻子러니
마침 손보가 관리를 보내어 어머니를 맞이해오다가 어머니가 도중에 병환이 나서 아우의 집에 머물고 처자만 보냈다.
司直陳崇 劾奏寶하여 事下三公하니
사직司直 진숭陳崇이 손보를 탄핵하여 아뢰자 이 일을 삼공三公에게 회부하였는데,
卽訊寶 對如章이라
나아가 손보를 신문하니, 〈진숭이 자신을〉
坐免하여 終於家注+訊, 音信. 卽訊, 就問之也. 如章, 具如所奏之章也.하니라
손보는 이 죄에 걸려 면직되어 집에서 죽었다.注+은 음이 이니, “즉신卽訊”은 나아가 신문한 것이다. “여장如章”은 상주上奏한 글과 모두 같은 것이다.
帝更名衎注+衎, 音侃.하다
[] 황제가 이름을 (간)으로 바꾸었다.注+은 음이 이다.
◑大司空崇한대 以甄豐爲大司空注+崇謝病免, 以避王莽.하다
[] 대사공大司空 왕숭王崇이 면직되자, 견풍甄豐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注+왕숭王崇이 병으로 사직을 청하여 면직된 것은 왕망王莽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紹封宗室及功臣後하여 爲王, 侯者 百餘人이러라
[] 종실宗室공신功臣의 후손을 뒤이어 봉하여, 가 된 자가 백여 명이었다.
◑大旱, 蝗하다
[] 크게 가물고, 황충의 재해가 있었다.
王莽 白太后호되 宜衣繒損膳하여 以示天下注+衣, 去聲.라하고
[] 왕망王莽태후太后에게 아뢰기를 “마땅히 명주옷을 입고 음식 수를 줄여서 천하에 검소함을 보여야 합니다.” 하고는注+(입다)는 거성去聲이다.,
莽亦素食하고 上書하여 願出錢百萬하고 獻田三十頃하여 付大司農하여 助給貧民이니이다
자신도 소식素食을 하고 상서上書하여 “돈 1백만 을 내놓고 전지田地 30을 바쳐서 대사농大司農에게 맡겨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줄 것을 원합니다.” 하였다.
於是 公卿 皆效慕焉하니라
이에 공경公卿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 본받았다.
隕石于鉅鹿二하다
[] 거록鉅鹿에 두 개의 운석이 떨어졌다.
[] 대부大夫 공승龔勝병한邴漢이 사직하고 돌아갔다.
光祿大夫楚國龔勝 太中大夫琅邪邴漢 以王莽專政이라하여 皆乞骸骨注+邴, 姓也, 與丙同.하다
[] 광록대부光祿大夫초국楚國 사람 공승龔勝태중대부太中大夫낭야琅邪 사람 병한邴漢왕망王莽이 정권을 독점한다 하여 모두 치사致仕를 청하였다.注+(병)은 이니, 과 같다.
令太后策詔之曰 朕 愍以官職之事 煩大夫注+愍, 憐也.하노니 大夫其修身守道하여 以終高年하라하고
왕망은 태후太后로 하여금 책서策書를 내려 “짐이 관직의 일로 대부大夫에게 번거롭게 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노니注+은 민망히 여긴다는 뜻이다., 대부들은 몸을 닦고 를 지켜서 높은 연세를 마치도록 하라.”고 명하게 하고는,
皆加優禮而遣之하다
모두 우대하는 예를 더하여 보냈다.
梅福 亦知莽必簒漢하고 一朝 棄妻子去하여 不知所之
[] 매복梅福 또한 왕망王莽이 틀림없이 나라를 찬탈할 것임을 알고는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가서,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人傳以爲仙이러니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 전하였는데,
其後 人有見福於會稽者하니 變姓名하여 爲吳市門卒云注+會稽郡, 時治吳縣.이러라
그 뒤에 어떤 사람이 회계會稽에서 매복을 보았는바, 성명姓名을 바꾸어 지역 시장의 문지기[문졸門卒]가 되었다 하였다.注+회계군會稽郡은 이때에 오현吳縣치소治所로 하였다.
秋九月晦 日食하다
[] 가을 9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匈奴單于遣女하여 入侍太皇太后하다
[] 흉노匈奴선우單于가 딸을 보내어 들어와 태황태후太皇太后를 모시게 하였다.
王莽 欲悅太后以威德至盛하여 異於前하여
[] 왕망王莽이 위엄과 공덕이 지극히 성하여 예전보다 다르다는 것으로 태후太后를 기쁘게 하려 하였다.
乃風單于하여 令遣王昭君女須居次云하여 入侍太后하니
그리하여 마침내 선우單于에게 넌지시 말해서 선우로 하여금 왕소군王昭君의 딸인 수복거차須卜居次 을 보내 들어와 태후를 모시게 하니,
所以賞賜之 甚厚注+須(十)[卜], 其夫家氏族. 居次, 女號, 若漢言公主. 云, 其名.하니라
이 때문에 선우에게 과 하사품을 매우 많이 내렸다.注+수복須卜은 그 남편의 집안 씨족이고, 거차居次는 여자의 칭호로 나라에서 말하는 공주公主와 같으며, 은 그녀의 이름이다.
頒四條於匈奴하다
[] 흉노匈奴에게 네 가지 조항을 반포하였다.
車師後王姑句 去胡來王唐兜 亡降匈奴注+句, 音鉤. 姑句, 名也. 去胡來王, 婼羌國王號. 唐兜, 其王之名也. 去胡來者, 義取去胡而來降漢也. 婼, 音兒, 又而遮切.하니 單于受之하고 上書言狀이라
[] 차사후왕車師後王 고구姑句거호래왕去胡來王 당두唐兜가 도망하여 흉노匈奴에 항복하니注+는 음이 이니, 고구姑句(고구)는 이름이다. 거호래왕去胡來王(아)강국왕羌國王의 칭호이고, 당두唐兜는 그 왕의 이름이다. 거호래去胡來는 오랑캐를 버리고 와서 나라에 항복하였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는 음이 이고 또 이차而遮이다., 선우單于가 이들을 받아들이고 글을 올려 이 사실을 통지하였다.
詔遣使責讓한대 單于叩頭謝罪하고 執二虜하여 還付使者하고 因請其罪注+二虜, 姑句及唐兜也. 因請其罪, 爲二虜, 請於漢, 求釋其背叛之罪也.하다
나라에서 조령詔令을 내려 사신을 보내어 선우를 책망하자, 선우는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두 오랑캐를 붙잡아서 사자使者에게 돌려주고, 인하여 이들의 배반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하였다.注+② “이로二虜”는 고구姑句당두唐兜이다. “인청기죄因請其罪”는 두 오랑캐를 위하여 나라에 청해서 그 배반한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不聽하고 詔會西域諸國王하고 陳軍하여 斬以示之注+欲以懲後, 使不敢叛.하다
왕망은 이를 듣지 않고 조령을 내려 서역西域의 여러 국왕들을 모아놓고 병력을 진열한 다음 이들을 목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注+③ 〈“참이시지斬以示之”는〉 뒷사람을 징계하여 감히 배반하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乃造四條하여 中國人亡入匈奴者 烏孫亡降匈奴者 西域諸國佩中國印綬降匈奴者 烏桓降匈奴者 皆不得受하고
이에 네 가지 조항을 만들어서 중국中國 사람으로서 도망하여 흉노에 들어간 자와 오손烏孫 사람으로서 도망하여 흉노에 항복한 자, 서역西域 여러 나라의 사람으로서 중국의 인수印綬를 차고 흉노에 항복한 자, 오환烏桓 사람으로서 흉노에 항복한 자들을 모두 받지 못하게 하였다.
遣使雜函封하여 付單于하여 令奉行注+雜函封, 謂與璽書同一函而封之也.하고
그리고 사자를 보내어 새서璽書와 함께 이것을 봉함해서 선우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받들어 시행하게 하고는注+④ “잡함봉雜函封”은 황제의 옥새를 찍은 글과 한 에 넣어 함께 봉함함을 이른다.,
因收故宣帝所爲約束하여 封函還注+宣帝與匈奴約, 長城以南, 漢有之, 長城以北, 匈奴有之, 有降者, 不得受. 今莽以約束未明, 故頒四條而收舊所爲約束也.하다
인하여 옛날 선제宣帝가 만들었던 약속을 회수하여 봉함해서 가지고 오게 하였다.注+⑤ 〈“인수고선제소위약속因收故宣帝所爲約束”은〉 선제宣帝흉노匈奴장성長城 이남은 나라가 소유하고 장성長城 이북은 흉노匈奴가 소유하되, 항복하는 자가 있으면 받지 않는다고 약속하였었는데, 지금 왕망王莽은 이 약속이 분명하지 못하다 하여 네 조항을 반포하고 옛날 만든 약속을 회수한 것이다.
莽奏令中國으로 不得有二名注+公羊春秋傳, 譏二名, 故莽效之.하고
[] 이때에 왕망王莽이 아뢰어 중국中國의 사람들로 하여금 두 글자의 이름을 갖지 못하게 하고注+,
因使使者하여 以風單于하니
인하여 사자使者를 시켜서 선우單于에게 넌지시 말하게 하였는데,
單于上書하고 更名曰知라하니
선우가 글을 올리고 이름을 ‘’라고 바꾸었다고 하니,
大說하여 白遣使答諭하고 厚賜焉하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여 태후太后에게 아뢰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답하여 타이르고 후하게 하사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越嶲郡……江中 : “‘올렸다[上]’는 것은 무엇인가. 의심하는 말이니, 올린 글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龍’이라고 쓴 것이 13번인데 다만 여기에서만 ‘上’이라고 썼고, 桓帝 永康 원년에 ‘〈龍을〉 말했다.’고 썼는바, 이는 모두 의심한 말이다.[上者 何 疑辭也 若曰其所上之辭云爾 終綱目書龍十三 惟此書上 桓帝永康元年 書言 皆疑之之辭也]” 《書法》
역주2 서로……있으나 : 《書經》 〈周書 君奭〉은 周公이 召公을 위해 지은 글이라 한다. 孔安國은 小序에서 “소공이 太保가 되고 주공이 太師가 되어 成王을 도와 左右가 되자, 소공이 기뻐하지 않으므로 주공이 〈君奭〉을 지었다.[召公爲保 周公爲師 相成王爲左右 召公不說 周公作君奭]”라고 보인다. 左右는 陜 지역을 나누어 두 伯으로 만들어서 東을 左라 하였는데 주공이 이곳을 다스리고, 西를 右라 하였는데 소공이 이곳을 다스렸다 한다. 君奭의 君은 소공에 대한 존칭이고 奭은 소공의 이름이며, 주공의 이름은 旦인바, 소공 또한 周나라의 宗室이다.
역주3 탄핵한……대답하였다 : 《資治通鑑》에 “孫寶가 대답하기를 ‘나이가 70이어서 정신이 흐려져 모친을 공양하는 은정은 쇠하고 처자만을 보살핀 것이 〈자신을 탄핵한〉 글과 같다.’고 했다.[寶對曰 年七十 誖眊 思衰共養 營妻子 如章]” 하였다.
역주4 大夫龔勝……罷歸 : “‘致仕를 청하므로 보내어 돌아갔다.[請老遣歸]’라고 쓴 경우가 있고, ‘병으로 사직하여 돌아갔다.[謝病歸]’라고 쓴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 ‘請’과 ‘謝’를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곧바로 ‘罷歸’라고 써서 두 분의 勇退를 나타낸 것이다. ‘기미를 앎이 그 神과 같다.’는 것은 두 분을 이른 것이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곧바로 ‘罷歸’라고 쓴 것은 여기 한 번뿐이다.[有書請老遣歸者矣 有書謝病歸者矣 此其不書請謝 何 直書罷歸 見二子之勇退也 知幾其神乎 二子之謂矣 終綱目直書罷歸者 一而已]” 《書法》 “孔子가 말씀하시기를 ‘나라에 道가 있을 적에 祿만 먹고 나라에 道가 없을 적에 祿을 먹는 것이 恥辱이다.’ 하셨다. 이때를 당하여 역적인 王莽이 정권을 도둑질하여 찬탈할 형세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무릇 조정에서 지위를 맡고 있는 자들은 왕망을 따르면 失節하는 치욕이 있고 왕망을 어기면 살육을 당하는 화가 있었다. 두 분이 漢나라에 있어서 비록 지위는 三公이 아니었으나 또한 國祿을 먹었다. 이 당시 기우는 나라를 붙들고 위태로운 나라를 유지함에 이미 그 힘을 쓸 곳이 없고, 오직 조용히 몸을 이끌고 물러나서 행여 신하의 절개를 보전함이 있을 뿐이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이 일에 대해 ‘大夫인 龔勝과 邴漢을 파직했다.[罷大夫龔勝邴漢]’라고 쓰지 않고, ‘大夫인 공승과 병한이 사직하고 돌아갔다.[大夫龔勝邴漢罷歸]’라고 쓴 것은 두 분의 떠나감이 조정에서 축출당한 것이 아니요 바로 두 분이 스스로 떠나간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분은 기미를 본 지혜와 몸을 깨끗이 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할 만하니, 孔光 등이 행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孔子曰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當是時也 莽賊竊柄 簒勢已成 凡任於朝者 從之則有失節之羞 違之則有殺戮之禍 二子在漢 雖位非三事 然亦食其祿矣 扶顚持危 旣無所用其力 獨有從容引退 庶幾保全臣節爾 綱目於此 不曰罷大夫龔勝邴漢 而曰大夫龔勝邴漢罷歸者 所以見二子之去 非朝廷逐之 乃二子自去也 然則二子可謂有見幾之智潔身之美 異乎孔光輩所爲矣]” 《發明》
역주5 (十)[卜] : 저본에는 ‘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주석과 함께 ‘卜’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春秋公羊傳에……것이다 : 《春秋》 定公 6년조에 “겨울에 季孫斯와 仲孫忌가 군대를 거느리고 運을 포위했다.[冬 季孫斯仲孫忌 帥師圍運]” 하였는데, 《春秋公羊傳》에 “이는 仲孫仲忌이니, 어찌하여 仲孫忌라고 썼는가. 두 글자의 이름을 비판한 것이니, 두 글자의 이름은 禮가 아니다.[此仲孫仲忌也 曷爲謂之仲孫忌 譏二名 二名非禮也]”라고 보인다.

자치통감강목(6)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