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목目】 유공劉恭은 적미赤眉가 반드시 패할 줄을 알고, 은밀히 아우 유분자劉盆子에게 지시하여 옥새와 인끈을 돌려주고 사양하는 말을 익히게 하였다.
이날(정월 초하루) 크게 사람들이 모이자, 유분자가 용상에서 내려와 옥새와 인끈을 풀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이번에 현관縣官(천자天子)을 설치하였으나, 예전처럼 도둑질을 하고 있다. 이에 사방이 원망하고 한탄하여 다시는 우리를 믿고 귀의하지 않으니,
이는 모두 적임자가 아닌 나를 황제로 삼은
소치所致이다. 나는 원컨대 지위를 내놓아서
성현聖賢에게 길을 양보하려 하니
注+〈“원걸해골 피현성로願乞骸骨 避賢聖路”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현성賢聖에게 양보하겠다고 겸사로 말한 것이다., 반드시 나를 죽여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면 죽음을 피하지 않겠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서글피 탄식하였다.
注+이離는 피함이다.
번숭樊崇 등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
신臣이 형편없어서
폐하陛下를 저버렸으니, 청컨대 이후로는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청컨대 지금으로부터 이후는 감히 다시 방종하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하고는 함께 유분자를 안고서 옥새와 인끈을 채워주니,
유분자가 울부짖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모임을 파하고 나오자 각기 영문營門을 닫고 스스로 지키니, 삼보三輔 지역이 모두 한결같이 천자天子가 총명하다고 칭찬하고,
백성들이 다투어 장안長安으로 돌아와서 시장 거리가 거의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여 일이 지나자, 다시 나와서 예전처럼 크게 노략질을 하였다.
目
【
목目】
왕량王梁이 여러 번
조명詔命을 어기니
注+왕량王梁과 오한吳漢이 함께 단향檀鄕을 공격하였는데, 조명詔命을 내려 군사軍事를 일체 오한에게 맡겼으나, 왕량은 번번이 야왕野王의 병력을 징발하였다. 황제가 그가 조명詔命을 받들지 않는다 하여 칙령勅令을 내려서 소재한 현縣에 중지하게 하였으나, 왕량이 또다시 편의에 따라 진군하니, 이는 여러 번 조명을 어긴 것이다., 황제가 노하여 그를 주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사면하고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아 북쪽으로
기관箕關을 지키게 하고는
注+≪수경주水經注≫에 “기수濝水는 하동군 원현河東郡 垣縣 왕옥王屋의 서산 기계西山 濝溪에서 발원하여 산山을 끼고 동남쪽으로 흘러 옛 성城의 동쪽으로 지나가니, 바로 기관濝關이다.” 하였다. 송홍宋弘을
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송홍이 환담桓譚을 의랑議郞으로 천거하여 급사중給事中을 시켰는데, 황제가 환담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타게 하고 그의 요염하고 화려한 음악을 좋아하였다.
송홍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환담이 나올 때를 기다려서 조복朝服을 입고 부府에 앉아서는 관리를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환담이 오자 송홍은 자리를 내주지 않고 꾸짖었는데, 환담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니, 한참 뒤에야 비로소 보내주었다.
뒤에 여러 신하들이 크게 모였을 적에, 황제가 환담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타게 하였는데, 환담은 송홍을 보고 평상시의 태도를 잃었다. 황제가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묻자,
송홍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을 벗고 사죄하기를 “
신臣이 환담을 천거했던 이유는 충성과 정직함으로써 군주를 잘 인도하기를 바라서였는데, 조정으로 하여금
을 기뻐하게 하였으니, 이는
신臣의 죄입니다.” 하니, 황제는 용모를 고치고 사례하였다.
目
【
목目】
유주목 주부幽州牧 朱浮는 나이가 젊고 준걸스러운 재주가 있었다.
풍화風化의 자취를 장려하고 선비들의 마음을 거두고자 해서 명망 있는 선비들을 많이 불러오고 여러
군郡의 창고에 쌓여 있는 곡식을 꺼내어 그들에게 제공하였다.
注+“풍적風迹”은 풍화風化의 자취이다. 벽辟은 불러옴이다.
그러나 팽총彭寵은 “군대를 막 동원할 것이니, 관속을 많이 두어서 군용물자를 덜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에 주부가 여러 번 팽총을 참소하였는데,
상上은 그때마다 이것을 누설하여 팽총으로 하여금 듣게 해서 위협하고 두렵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황제가 팽총을 부르자 팽총이 더욱 스스로 의심하니, 그의 아내는 황제의 부르는 명을 받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하였다.
황제가 팽총의 종제從弟의 아들인 후란경后蘭卿을 보내 타이르자, 팽총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모반해서 주부를 계薊에서 공격하였다. 또 여러 사자使者를 보내서 경황耿況을 유인하려 하였는데, 경황이 그 사자를 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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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등우鄧禹가 풍암馮愔(풍암)이 배반한 뒤로부터 위엄과 명성이 차츰 깎이고 또 식량이 부족하여 여러 번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니, 귀순하여 따르던 자들이 날로 더욱 이산하였다.
황제는 마침내
편장군 풍이偏將軍 馮異를 보내 등우를 대신하게 하였는데, 황제는 이때
하남河南에 가서 풍이를 전송하며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남현河南縣은 하남군河南郡에 속했다.” 하였다. 다음과 같이 칙명을 내렸다. “
삼보三輔 지역이
왕망王莽과
경시更始의 난리를 만나고 게다가
적미赤眉와
연잠延岑의 추행을 겪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서 의지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
注+〈“중이적미重以赤眉”의〉 중重은 직용直用의 절切이니 더함이다. “의소依訴”는 의지하고 하소연함을 이른다. 장군이 이제 황제의 명을 받들어 여러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을 토벌하니,
영보營堡 중에 항복하는 자는 그들의 괴수를
경사京師로 보내고
注+보堡는 작은 성城이다.,
백성들을 해산하여 농사짓고 누에치게 하고, 진영과 성벽을 파괴하여 다시는 모이지 못하게 하라. 정벌은 굳이 땅을 경략하고 성城을 도륙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은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을 뿐이다.
장수들이 용감하게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경卿은 본래 관리와 군사들을 잘 통제하니, 스스로 몸을 닦고 삼갈 것을 생각하여 군현郡縣에 고통을 주지 말라.”
풍이가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받고는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이르는 곳마다 위엄과 신의를 펴니, 여러 도둑들이 대부분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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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삼보三輔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 성곽이 모두 비고, 유민들이 도처에 모여 진영과 성보를 만들어서 각각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의 곡식 등을 깨끗이 비웠다. 적미赤眉가 노략질하여도 얻을 것이 없자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는데, 병력이 아직도 20여만 명이 되었다.
황제가 후진侯進을 보내 신안新安에 주둔시키고 경감耿弇은 의양宜陽에 주둔시키고, 칙명을 내리기를 “적이 만약 동쪽으로 달아나면 의양宜陽의 군대를 데리고 신안新安에 모이고, 남쪽으로 달아나면 신안新安의 군대를 데리고 의양宜陽에 모이도록 하라.” 하였다.
풍이馮異가 화음華陰에서 적미와 만나 수십 합을 싸운 뒤에 5천여 명을 항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