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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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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年(124)
갑자년甲子年(124)
三年이라 春正月 班勇 擊走匈奴田車師者하니 西域 復通하다
나라 효안황제 연광孝安皇帝 延光 3년이다. 봄 정월에 반용班勇거사車師(거사)에서 수렵하는 흉노匈奴를 공격하여 패주시키니, 서역西域의 길이 다시 통하였다.
班勇 至樓蘭하여 以鄯善歸附라하여 特加三綬注+三綬, 謂兼三官累印綬而服之也. 或云 “三綬, 疑當作王綬.”하니 龜玆王白英 乃率姑墨, 温宿하고 自縛詣勇注+白英, 龜玆王之名.이어늘
반용班勇누란樓蘭에 이르러 선선鄯善귀부歸附했다 해서 특별히 삼수三綬를 하사하니注+삼수三綬는 세 관직을 겸하여 여러 개의 인수印綬를 차는 것을 이른다. 혹자는 이르기를 “삼수三綬는 마땅히 왕수王綬(인수印綬)가 되어야 할 듯하다.” 하였다., 구자왕 백영龜玆王 白英이 마침내 고묵姑墨온숙温宿을 거느리고 스스로 포박하여 반용에게 와서 항복하였다.注+백영白英구자왕龜玆王의 이름이다.
因發其兵하여 到車師前王庭하여 擊走匈奴於伊和谷하다 於是 前部始復開通이어늘하여 屯田柳中하다
반용은 이를 인하여 그의 병력을 징발해서 차사전왕車師前王의 조정에 이르러 흉노匈奴이화곡伊和谷에서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이에 전부前部(차사전왕국車師前王國)의 길이 비로소 다시 개통되자, 반용이 군대를 돌려 돌아와 유중柳中에서 둔전屯田을 하였다.
二月 帝東巡이라가 三月할새 하고 遣歸故郡하니 自殺하다
】 2월에 황제가 동쪽으로 순행하였다가 3월에 돌아올 적에 미쳐 에 들어가기도 전에 책서策書를 내려 태위 양진太尉 楊震인수印綬를 거두고 옛 으로 보내어 돌아가게 하니, 양진이 자살하였다.
樊豐等 見楊震連諫不從하고 無所顧忌하여 遂詐作詔書하여 調發司農錢穀, 大匠見徒材木하여 各起冢舍, 園池注+見, 形甸切. 徒, 供徭作者.
번풍樊豐 등은 양진楊震이 연달아 하였으나 황제가 따르지 않음을 보고는 염려하고 꺼리는 바가 없어서 마침내 조서詔書를 조작하여 대사농大司農이 관장하는 돈과 곡식, 장작대장將作大匠이 현재 관장하는 공인工人들과 재목을 징발하여 각각 재실齋室[총사冢舍]과 원지園池를 조성하였다.注+(현재)은 형전形甸이다. 는 요역에 제공된 자이다.
復上疏曰 臣備台輔 不能調和陰陽하여 去年十二月四日 京師地動하니 其日 戊辰이니 三者皆土
양진이 다시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이 외람되게도 태보台輔[삼공三公]의 인원수를 채우고는 있으나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하지 못하여 지난해 12월 4일에 경사京師의 땅이 진동하였는데, 그날의 일진은 무진戊辰인바, 이 세 가지가 모두 입니다.
位在中宮하니 中臣近官持權用事之象也注+戊干ㆍ辰支, 皆土也, 幷地動, 故言三者.니이다 陛下以邊境未寧이라하사 躬自菲薄하사 宮殿垣屋傾倚 枝拄而已어시늘
그 위치가 에 있으니, 이는 중신中臣(내신內臣, 환관宦官)과 근신近臣이 권력을 잡고 용사用事하는 입니다.注+, 아울러 땅이 진동하였기 때문에 ‘세 가지’라고 말한 것이다. 폐하께서는 변경이 아직 편안하지 못하다 하시어 몸소 봉양하시기를 박하게 하여 궁전의 담장과 지붕이 기운 것을 겨우 기둥으로 지탱하게 할 뿐인데,
而親近倖臣 驕溢踰法注+倚, 斜也. 拄, 竹柱切.하니 唯陛下 奮乾剛之德하여 棄驕奢之臣하사 以承皇天之戒하소서
가까이 있는 행신倖臣들이 교만하고 방자하여 법도를 넘으니注+는 기욺이다. (지탱하다)는 죽주竹柱이다., 부디 폐하께서는 건강乾剛을 떨쳐 교만하고 사치한 신하들을 버리시어 황천皇天의 경계를 받드소서.”
震言 轉切하니 帝旣不平이요 而豐等憤怨이러라
양진의 말이 더욱 간절하니, 황제가 이미 불평不平하였고 번풍 등은 분노하고 원망하였다.
趙騰 上書하여 指陳得失한대 帝發怒하여 欲誅騰이어늘
】 이때 마침 조등趙騰상서上書하여 정사政事의 득실에 대해 지적하자 황제가 노하여 조등을 죽이고자 하였는데,
救之曰 殷, 周哲王 小人怨詈 則還自敬德注+還, 反也.하니 乞全騰命하여 以誘芻蕘輿人之言注+輿, 衆也.하소서
양진楊震이 그를 구원하면서 아뢰기를 “注+은 도리어이다. 바라건대, 조등의 목숨을 온전히 하여 꼴 베고 나무하는 평범한 백성들까지도 말을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하소서.注+輿는 무리이다.” 하였다.
帝不聽하고 竟殺之하다 及帝東巡 太尉部掾高舒 得豐等所詐下詔書하고 具奏하여 須行還上之하니 豐等 惶怖注+漢公府諸曹掾, 各有分部. 須, 待也. 行, 如字. 謂待車駕行還, 上言其事.러라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조등을 죽였다. 황제가 동쪽으로 순행할 적에 태위부太尉部연리掾吏고서高舒번풍樊豐 등이 거짓으로 꾸며서 내린 조서詔書를 얻고는 사건의 정상情狀장주章奏에 자세히 갖추어 쓰고서, 행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장주章奏를 올리려고 하니, 번풍 등이 몹시 두려워하였다.注+나라 공부公府제조諸曹연리掾吏가 각각 부서部署에 나누어 있었다. 는 기다림이다. 은 본음대로 읽으니, 〈“수행환상지須行還上之”는〉 거가車駕의 행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이 일을 상언上言함을 이른다.
太史言星變逆行이라하니 遂共譖震云 自趙騰死後 深懷怨懟하고 且鄧氏故吏 有恚恨心이라한대 帝然之注+震初鄧騭辟之, 故曰故吏.러니
마침 태사太史가 ‘별에 재변災變이 있어서 역행逆行한다.’고 말하자, 번풍 등은 마침내 함께 양진을 참소하여 말하기를 “양진은 조등이 죽은 뒤로부터 원망하는 마음을 깊이 품었고 또한 등씨鄧氏의 옛 관리로서 분하고 한스러워하는 마음이 있다.” 하니, 황제는 그 말을 옳게 여겼다.注+양진楊震을 처음에 등즐鄧騭벽소辟召하였기 때문에 ‘〈등씨鄧氏의〉 옛 관리’라고 한 것이다.
及還京師 便時太學注+便時, 取日時之便. 且於太學, 待吉時而後入也. 故曰便時.할새 卽其夜 遣使者하여 策收震太尉印綬하니 於是 柴門絶賓客注+柴門, 柴塞其門也.하다
황제가 경사京師로 돌아와 태학太學에서 길시吉時를 택할 적에注+편시便時”는 일시日時의 편함을 취한 것이다. 우선 태학太學에서 길시吉時를 기다린 뒤에 에 들어가므로 ‘편시便時’라 한 것이다. 곧바로 그날 밤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책서策書를 내려 양진에게 태위 인수太尉 印綬를 거두게 하니, 양진이 이에 문에 섶나무를 쌓아놓고 빈객들을 사절하였다.注+시문柴門”은 섶나무를 쌓아 그 문을 막은 것이다.
豐等 復惡之하여 令耿寶 奏震恚望注+望, 怨也.이라한대 有詔遣歸故郡이러니
번풍樊豐 등은 다시 양진楊震을 미워하여 경보耿寶로 하여금 ‘양진이 분노하고 원망한다.’注+은 원망함이다.고 아뢰게 하니, 조령詔令을 내려 양진을 옛 으로 보내어 돌아가게 하였다.
至城西几陽亭注+震, 弘農華陰人. 城西, 雒陽城西也. 本傳, 几作夕.하여 乃慷慨謂其諸子門人曰 死者 士之常分이니
양진은 낙양성雒陽城의 서쪽 궤양정几陽亭에 이르러注+양진楊震홍농군 화음현弘農郡 華陰縣 사람이다. “성서城西”는 낙양성雒陽城의 서쪽이다. 양진의 본전本傳에는 ‘’가 ‘’으로 되어 있다. 마침내 비분강개하여 여러 아들과 문인들에게 이르기를 “죽음이라는 것은 선비의 떳떳한 분수이다.
吾蒙恩居上司하여 疾姦臣狡猾而不能誅하고 惡嬖女傾亂而不能禁하니 何面目復見日月이리오
내가 은혜를 입고 상사上司에 있으면서 간신들의 교활함을 미워하였으나 주벌하지 못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들이 나라를 망치고 혼란하게 함을 미워하였으나 금지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해와 달을 보겠는가.
身死之日 以雜木爲棺하고 布單被 裁足蓋形하여 勿歸冢次하고 勿設祭祀하라하고 因飮酖而卒하다
이 몸이 죽는 날에 잡목雜木으로 을 짜고 베로 만든 홑이불로 염습하되 형체만 감쌀 정도로 재단해서 선영으로 돌아가 장례하지 말고 제사 지내지 말라.” 하고는 인하여 을 마시고 죽었다.
弘農太守移良 留停震喪하여 露棺道側하고 謫震諸子하여 代郵行書하니 道路皆爲隕涕注+移, 姓也. 郵, 境上行書舍也. 此言使震諸子, 代驛吏, 傳行文書也. 爲, 去聲.러라
홍농태수 이량弘農太守 移良이 양진의 상여를 강제로 머물게 하여 을 길가에 드러나게 하고, 양진의 아들들을 처벌해서 역리驛吏를 대신하여 문서文書를 돌리게 하니, 도로에 행인들이 모두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注+이다. 는 경계의 근처에 문서文書를 돌리는 집이다. 이는 양진楊震의 아들들로 하여금 역리驛吏를 대신하여 문서文書를 돌리게 함을 말한 것이다. 〈“위운체爲隕涕”의〉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太僕來歷曰 耿寶傾側姦臣하여 傷害忠良하니 禍將至矣라하니라
태복 내력太僕 來歷은 말하기를 “경보가 간신에게 기울어져서 충량忠良한 신하를 상해하니, 가 장차 이를 것이다.” 하였다.
胡氏曰 安帝三公 無出震之右者 然大臣 以道事君하다가 合則留하고 違則去하나니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안제安帝삼공三公 중에 양진楊震보다 더 뛰어난 자가 없었다. 그러나 대신大臣로써 군주를 섬겨서 가 맞으면 머물고 가 어긋나면 떠나가야 하는데,
震以三公之尊으로 兩奏一乳媼而不能動하니 宜去久矣注+乳媼, 卽帝乳母王聖也. 至是極言하여 遂取殺身之禍하니
양진은 존귀한 삼공三公으로서 한 유모乳母에 대해 두 번이나 아뢰었으나 군주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였으니, 떠나가야 한 지가 오래되었다.注+유온乳媼”은 바로 황제의 유모인 왕성王聖이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지극히 말하여 마침내 몸을 죽이는 를 자초하였다.
忠則忠矣 然其燭理不明而處義不精하니 亦不足稱也已로다
충성스럽기는 충성스러우나 이치를 봄이 밝지 못하고 에 처함이 정밀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
夏四月 閬中山注+閬中縣, 屬巴郡, 臨閬中水, 因以爲名.하다
】 여름 4월에 낭중현閬中縣이 무너졌다.注+낭중현閬中縣파군巴郡에 속하니, 낭중수閬中水에 임하였으므로 인하여 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秋八月 以耿寶爲大將軍하다
】 가을 8월에 경보耿寶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았다.
◑九月 廢太子保하여 爲濟陰王하다
】 9월에 태자 유보太子 劉保를 폐위하여 제음왕濟陰王으로 삼았다.
王聖, 江京, 樊豐等 譖太子乳母王男, 厨監邴吉等하여 殺之注+王男, 乳母之姓名. 厨監, 主飮食.하니 太子歎息이라
왕성王聖강경江京, 번풍樊豐 등이 태자太子유모乳母왕남王男주감厨監(음식 관리인)인 병길邴吉 등을 참소하여 죽이니, 태자가 탄식하였다.
京, 豐하여 乃與閻后 讒太子하니 帝怒하여 召公卿하여 議廢太子한대 耿寶等 皆以爲當廢라하다
강경과 번풍이 두려워하여 마침내 염후閻后와 함께 태자를 참소하니注+왕남王男유모乳母성명姓名이다. 주감厨監은 음식을 주관하는 자이다., 황제가 노하여 공경公卿들을 불러서 태자의 폐위에 대해 의논하였는데, 경보耿寶 등이 모두 마땅히 폐위해야 한다고 하였다.
太僕來歷 與太常桓焉, 廷尉張皓 議曰注+焉, 郁之子也.經說 年未滿十五 過惡 不在其身이라하고
태복 내력太僕 來歷태상 환언太常 桓焉정위 장호廷尉 張皓와 함께 의논을 올리기를注+환언桓焉환욱桓郁의 아들이다.경서經書에 말하기를 ‘나이가 아직 15세가 되지 않았으면 잘못과 죄악이 그 몸에 있지 않다.’ 하였고,
且男, 吉之謀 皇太子容有不知리니 宜選忠良保傅하여 輔以禮義 廢置事重하니 此誠聖恩所宜宿留注+宿留, 猶停留也.라호되
또한 왕남과 병길의 모의를 황태자皇太子가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땅히 충량忠良한 사람을 선발하여 태자의 보부保傅로 삼아서 예의禮義로써 보필해야 할 것입니다. 태자를 폐치廢置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니, 이는 진실로 성은聖恩에 있어서 마땅히 정지해야 할 것입니다.”注+숙류宿留(정지하다)”는 정류停留와 같다. 하였으나,
不從하고 遂廢太子하여 爲濟陰王하여 居德陽殿西鍾下注+德陽殿, 在北宮掖庭中. 西鍾下, 謂西廂下懸鍾之所也.하다
따르지 않고 마침내 태자를 폐위하여 제음왕濟陰王으로 삼아서 덕양전德陽殿 서쪽 이 매달려 있는 아래에 거처하게 하였다.注+덕양전德陽殿북궁北宮액정掖庭 안에 있다. “서종하西鍾下”는 서쪽 행랑 아래에 을 매달아놓은 곳을 이른다.
來歷 乃要結光祿勳祋諷 宗正劉瑋 將作大匠薛皓 侍中閭丘弘, 陳光, 趙代, 施延 太中大夫朱倀等十餘人하여
내력來歷이 마침내 광록훈 대풍光祿勳 祋諷(대풍), 종정 유위宗正 劉瑋, 장작대장 설호將作大匠 薛皓, 시중 여구홍侍中 閭丘弘, 진광陳光, 조대趙代, 시연施延, 태중대부 주창太中大夫 朱倀 등 10여 명과 결합하여
俱詣鴻都門하여 證太子無過注+閭丘, 複姓. 施, 姓也. 倀, 丑良切. 鴻都, 門名.한대 帝使中常侍 詔曰 父子一體 天性自然이니
함께 홍도문鴻都門에 나아가서 태자太子가 허물이 없음을 증명하였는데注+여구閭丘복성複姓이고, 이다. 倀축량丑良이다. 홍도문鴻都門은 문 이름이다., 황제는 중상시中常侍를 시켜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아비와 자식은 한 몸으로 이는 천성天性의 자연스러움이다.
以義割恩 爲天下也어늘 歷, 諷等 不識大典하고 而共爲讙譁하여 外見忠直而内希後福注+見, 賢遍切.이라
내가 의리로써 은혜를 베어냄은 천하를 위한 것인데, 내력과 대풍 등이 국가의 큰 법을 알지 못하고 함께 시끄럽게 떠들어서 밖으로는 충직함을 나타내고 안으로는 후일의 을 바라고 있다.注+(드러내다)은 현편賢遍이다.
朝廷 廣開言路故 且一切假貸하노니 若懷迷不反이면 當顯明刑書호리라
조정이 언로를 크게 열고 있기 때문에 우선 모두 다 용서하노니, 만약 혼미한 마음을 고집하고서 되돌리지 않으면 마땅히 분명하게 국법에 따라 징치懲治하겠다.” 하였다.
皓先頓首曰 固宜如明詔호리이다한대 怫然廷詰皓曰注+怫然, 憤鬱之見於色者. 屬通諫何言이완대 而今復背之注+屬, 之欲切, 近也. 通, 同也. 謂近日相要結而同入進諫者, 所言如何, 而今乃違背前約.
설호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진실로 마땅히 밝은 조령詔令대로 하겠습니다.” 하니, 내력이 불연怫然히 성을 내며 조정에서 설호를 질책하기를注+불연怫然(불연)”은 분함과 답답함이 얼굴빛에 나타난 것이다. “근일에 서로 약속하여 함께 들어가 간언을 올리기로 한 것이 어떠한 내용이기에 지금 다시 배반하는가.注+(촉)은 지욕之欲이니 가까움이고, 은 함께함이다. 〈“속통간하언 이금부배지屬通諫何言 而今復背之”는〉 ‘근일에 서로 결합하여 함께 들어가 간언을 올리기로 한 것이 어떠한 내용이기에 지금 마침내 이전의 약속을 배반하느냐.’라고 이른 것이다.
大臣 乗朝車하여 處國事 固得輾轉若此乎注+輾轉, 言其反覆也.아하다 乃各稍自引起호되 獨守闕하여 連日不肯去어늘
대신大臣이 조정의 수레를 타고 국사國事를 처리함에 진실로 번복하기를 이와 같이 해도 되는가.”注+전전輾轉”은 번복함을 말한다. 하였다. 마침내 각자 차츰차츰 몸을 일으켜 떠나갔으나 내력은 홀로 궁궐을 지키며 여러 날을 계속하여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尙書令陳忠 劾奏歷等하니 乃免歷兄弟官하고 削國租하고 黜歷母武安公主하여 不得會見하니 歙之孫也注+削國租, 謂削其征羌國租也. 光武以歷曾祖歙, 有平羌隴之功, 改汝南當鄕縣, 爲征羌國以封之. 武安縣, 屬魏郡. 公主, 顯宗女也.
상서령 진충尙書令 陳忠이 내력 등을 탄핵하여 아뢰니, 황제는 마침내 내력 형제의 관직을 파면하고 봉국封國의 조세를 삭감하며 내력의 어머니인 무안공주武安公主(명제明帝의 딸)를 축출하여 에 들어와 진현進見(진현)하지 못하게 하였다. 내력은 내흡來歙(내흡)의 손자이다.注+삭국조削國租”는 정강국征羌國의 조세를 삭감함을 이른다. 광무제光武帝내력來歷의 증조 내흡來歙을 평정한 이 있다 하여, 여남군 당향현汝南郡 當鄕縣을 고쳐 정강국征羌國으로 삼아 그를 하였다. 무안현武安縣위군魏郡에 속하였다. 공주公主현종顯宗(명제明帝)의 딸이다.
是月晦 日食하다
】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地震, 大水, 雨雹하다
】 지진이 발생하고 홍수가 지고 우박이 내렸다.
역주
역주1 未入宮 策收太尉震印綬 : “‘미쳐 宮에 들어가기도 전에’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급함을 나타낸 말이니, 황제가 참소를 믿음이 과감하였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것을 쓴 것이다. 이 때문에 ‘12월 그믐에 魏其侯 竇嬰을 죽였다.’고 쓴 것은 武帝의 잔인함을 드러낸 것이고, ‘미쳐 宮에 들어가기도 전에 策書를 내려 太尉 楊震의 印綬를 거두었다.’고 쓴 것은 安帝의 급함을 드러낸 것이다.[未入宮 何 急辭也 帝之信讒果矣 故特筆書之 是故書十二月晦 殺魏其侯竇嬰 所以志武帝之忍 書未入宮 策收太尉震印綬 所以志安帝之急]” ≪書法≫ “楊震이 어둡고 용렬한 군주를 섬겨서 기미를 보고 떠나가지 못하였으니, 그가 죽임을 당한 것은 마땅하다. 비록 그렇지만 이것은 양진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만약 漢나라 조정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당시에 청렴결백하며 충성스럽고 정직함이 양진보다 더 나은 자가 없었는데, 마침내 간쟁하다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에게 거슬려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 安帝가 여러 원숭이(小人輩)를 보호하고 사랑하기를 心腹을 보호하듯이 하였으니, 양진이 비록 충성을 바치고 절개를 다하고자 하더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황제가 돌아올 적에 미쳐 宮에 들어가기도 전에 策書를 내려 印綬를 거두었다.’고 쓴 것은 황제가 양진을 죽이기를 급히 함이 이와 같음을 나타낸 것이다. 혼란함에 임한 군주는 小人이 있는 것만 알고 君子가 있음을 알지 못하여 행여 좋은 곡식이 잡초를 해칠까 두려워하듯이 하니, 슬프다.[楊震事昏庸之主 不能見幾而作 其死宜矣 雖然 此爲震言也 若夫自漢朝言之 則當時淸白忠正 無出震右 乃以諫諍忤嬖倖而死 是時安帝保愛群狙 如護心腹 震雖欲納忠效節 不可得已 綱目書帝還 未入宮 策收印綬 所以見帝急於殺震如此 臨亂之君 知有小人而不知有君子 惟恐嘉穀之害稂莠也 哀哉]” ≪發明≫
역주2 中宮 : 이는 九宮 중에 中央에 위치한 宮을 가리킨다. 아홉 개의 方位라는 뜻의 九宮은 洛書의 수에 근본을 둔 것으로, 중앙의 수 5는 五行의 土에 해당한다.
역주3 天干인……土이고 : 天干ㆍ地支와 五行에 있어 甲ㆍ乙과 寅ㆍ卯는 木으로 위치가 東方에 해당하고, 丙ㆍ丁과 巳ㆍ午는 火로 위치가 南方에 해당하고, 戊ㆍ己와 丑ㆍ辰ㆍ未ㆍ戌은 土로 위치가 中央에 해당하고, 庚ㆍ辛과 申ㆍ酉는 金으로 위치가 西方에 해당하고, 壬ㆍ癸와 亥ㆍ子는 水로 위치가 北方에 해당한다.
역주4 殷나라와……공경하였습니다 : ≪書經≫ 〈周書 無逸〉에 周公이 成王에게 “혹시라도 고하기를 ‘소인들이 너를 원망하고 너를 꾸짖는다.’ 하거든 크게 스스로 德을 공경하여, 원망하는 잘못을 짐의 잘못이라 하소서.[厥或告之曰 小人怨汝詈汝 則皇自敬德 厥愆曰 朕之愆]”라고 한 말에 보인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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