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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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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2권 중
漢 靈帝 光和 2년(179)~漢 靈帝 中平 6년(189)
己未年(179)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2권 중
한 영제漢 靈帝 광화光和 2년(179)~한 영제漢 靈帝 중평中平 6년(189)
기미년己未年(179)
二年이라 大疫하다
나라 효령황제 광화孝靈皇帝 光和 2년이다. 봄에 역병이 크게 유행하였다.
◑太尉橋玄하다
태위 교현太尉 橋玄이 파면되었다.
玄幼子遊門次라가 爲人所劫하여 登樓求貨어늘 不與하니
교현橋玄의 어린 아들이 문 앞에서 놀다가 어떤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여 〈인질로 붙들려〉 누대에 올라가 재물을 요구받았으나 교현이 주지 않았다.
司隷, 河南 圍守玄家호되 不敢迫이라 瞋目呼曰 姦人 無狀하니 豈以一子之命而縱國賊乎아하고 促令攻之하니 子死하다
사례교위司隷校尉하남윤河南尹이 교현의 집을 포위하고 지켰으나 감히 누대에 다가가지 못하였다. 교현이 눈을 부릅뜨고 고함치기를 “간사한 사람이 형편없이 나쁜 짓을 하니, 내 어찌 한 아들의 목숨 때문에 국가의 적을 풀어주겠는가.” 하고는 즉시 공격하도록 재촉하니, 마침내 아들이 죽었다.
因上言호되 天下 凡有劫質者 皆幷殺之하고 不得贖以財寶하여 開張姦路라하니 由是 劫質遂絶하다
교현이 이 일로 인하여 상언上言하기를 “천하天下에 무릇 사람을 위협하여 인질로 삼는 자를 모두 죽이고, 재화와 보물로써 속죄하게 하여 간사한 길을 열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이로 말미암아 위협하여 인질로 삼는 일이 마침내 사라졌다.
地震하다
지진地震이 있었다.
◑夏四月朔 日食하다
】 여름 4월 초하루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 환관인 왕보王甫복주伏誅되었다.
◑太尉段熲 有罪自殺하다
태위 단경太尉 段熲이 죄가 있어 자살하였다.
王甫, 曹節等 姦虐弄權하니 段熲 以輸貨 得太尉하여 阿附之하고
왕보王甫조절曹節 등이 간사하고 포악한 짓을 자행하면서 권력을 농단하니, 단경段熲이 이들에게 재화를 바치고 태위太尉의 벼슬을 얻고서 그들에게 아부하였다.
節, 甫父兄子弟 爲卿, 校, 牧, 守者 布滿天下하여 所在貪暴하고 養子吉 爲沛相하여 尤殘酷하니 視事五年 凡殺萬餘人이라
조절과 왕보의 부형父兄자제子弟 중에 교위校尉, 주목州牧군수郡守가 된 자가 천하에 널려 있어 도처에서 탐욕스럽고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고, 왕보의 양자養子왕길王吉패국沛國이 되어서 몹시 잔혹하였는데, 재임한 지 5년 동안에 모두 10,000여 명을 살해하였다.
尙書令陽球 常拊髀發憤曰 若陽球作司隷 此曹子安得容乎아하더니 旣而 果遷司隷하다
상서령 양구尙書令 陽球가 항상 넓적다리를 치면서 울분을 터뜨리며 말하기를 “만약 내가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된다면 이 환관들의 자식이 어찌 용납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얼마 후 과연 사례교위司隷校尉로 승진하였다.
甫使門生으로 於京兆界 辜榷官財物七千餘萬이어늘 京兆尹楊彪發之注+京兆, 屬司隷所部.하니 賜之子也
왕보王甫문생門生을 시켜 경조윤京兆尹의 경계에서 관청의 재물을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한 것이 7천여 만 이었는데, 경조윤 양표京兆尹 楊彪가 이 사실을 밝히니注+, 양표는 양사楊賜의 아들이다.
球奏甫, 熲等罪惡하여 悉收送洛陽獄하고 及甫子萌, 吉 自臨考之하여 五毒備極하니
양구陽球왕보王甫단경段熲 등의 죄악을 아뢰어서 그들을 모두 체포하여 낙양洛陽으로 보내고, 왕보의 아들인 왕맹王萌왕길王吉을 자신이 직접 고문하여 ‘다섯 가지 혹독한 형벌[오독五毒]’을 모두 적용하였다.
乃罵曰 前 奉事吾父子如奴러니 奴敢反汝主乎 父子悉死杖下하고 亦自殺하니
왕맹이 마침내 양구에게 욕을 하기를 “예전에는 네가 종처럼 우리 부자父子를 받들어 섬기더니, 이제는 종이 감히 네 주인을 배반하는가.” 하였다. 왕보의 부자가 모두 곤장을 맞고 죽었고 단경 또한 자살하니,
乃僵磔甫尸於夏城門하고 大署榜曰 賊臣王甫라하고 盡沒入其財産하고 妻子皆徙比景注+磔, 陟格切. 洛陽十二城門, 夏門位在亥.하다
마침내 하성문夏城門 밖에서 왕보의 시신을 능지凌遲하고 크게 을 써 붙이기를 ‘적신 왕보賊臣 王甫’라 하였다. 왕보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처자식은 모두 비경比景으로 귀양 보냈다.注+(찢다)은 척격陟格이다. 낙양洛陽의 12개의 성문城門 중에 하문夏門해방亥方에 자리하였다.
球遂欲以次 表誅節等하여 乃勅中都官從事曰注+中都官從事, 卽都官從事, 主察擧百官犯法者, 中興以後, 專令掊擊貴戚. 且先去權貴大猾이니 若公卿豪右 從事自辦之하라 何須校尉邪아하니
양구陽球가 차례로 표문表文을 올려 조절曹節 등을 주벌하고자 하여 마침내 에게 명하기를注+중도관종사中都官從事는 바로 도관종사都官從事백관百官 중에 을 범하는 자를 조사하여 검거하는 일을 주관하였는데, 나라가 중흥中興한 이후로는 오로지 귀척貴戚만을 비판하게 하였다. “우선 먼저 권귀權貴 중에 크게 간악한 자들을 제거해야 하니, 공경公卿 중의 호우豪右(세력을 부리는 자)는 종사從事가 직접 다스려라. 어찌 굳이 교위校尉인 내가 나설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節等 聞之하고 不敢出沐이러라 送虞貴人葬注+虞貴人, 順帝母.할새 見磔甫尸하고 慨然拭淚하고 直入省하여 白帝曰
조절 등은 이 말을 듣고 감히 휴가를 가지 못하였다. 마침 우귀인虞貴人의 장례를 치렀는데注+우귀인虞貴人순제順帝의 어머니이다., 이때 조절이 왕보王甫의 시신이 능지凌遲당하는 것을 보고는 개연慨然히 눈물을 닦고 곧바로 궁궐에 들어가서 황제에게 아뢰기를
陽球 故酷暴吏 好妄作하니 不宜使在司隷하여 以騁毒虐이니이다
“양구는 예로부터 혹독하고 포악한 관리입니다. 망녕된 행동을 좋아하니 그를 사례교위司隷校尉의 자리에 두어서 멋대로 혹독하고 포악한 짓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帝乃徙球爲衛尉하니 於是 曹節, 朱瑀等 權勢復盛이러라
황제가 마침내 양구를 옮겨 위위衛尉로 삼으니, 이에 조절曹節주우朱瑀 등의 권세가 다시 해졌다.
郞中審忠 上書하여 極言瑀等罪惡하고 請與考驗호되 有不如言이면 願受湯鑊之誅라한대 不報注+審, 姓也.하다
낭중 심충郞中 審忠이 글을 올려 주우朱瑀 등의 죄악을 지극히 말하고, 그들을 조사하여 진상을 밝히되 자신의 말과 같지 않으면 끓는 솥에 삶아 죽이는 주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청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답하지 않았다.注+이다.
중상시 여강中常侍 呂强을 봉하여 도향후都鄕侯를 삼았는데, 받지 않았다.
淸忠奉公하니 帝以衆例 封爲都鄕侯한대 固辭不受하고 因上疏曰
여강呂强이 청렴하고 충성스럽고 공정하게 봉직奉職하니, 황제는 여러 사람의 준례에 따라 그를 도향후都鄕侯로 봉하였는데 여강은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고는 인하여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宦官 品卑人賤이어늘 妄授茅土하여 開國承家 小人是用하니 陰陽乖剌 罔不由玆注+剌, 來曷切, 戾也. 謂陰陽不調順也.니이다
환관宦官인품人品이 낮고 천한데, 함부로 음양陰陽의 잘못됨이 모두 여기에서 연유합니다.注+래갈來曷로 어그러짐이니, 〈“괴랄乖剌”은〉 음양陰陽이 고르고 순하지 못함을 이른다.
采女數千衣食之費 日數百金이요 終年積聚 豈無憂怨이리오
채녀采女 수천 명이 입고 먹는 비용이 하루에 수백 이고, 또 1년 동안 이러한 비용이 모여 쌓여가니, 어찌 근심과 원망이 없겠습니까.
蔡邕 對問하여 毁刺貴臣하고 譏呵宦官이어늘 陛下不密其言하사 令群邪咀嚼하여 致邕刑罪하니이다
채옹蔡邕이 폐하의 질문에 대답하여 귀한 대신大臣을 비방하고 환관들을 비난하였는데, 폐하께서는 그 말을 비밀스레 지켜주지 않으시어 여러 간사한 자들로 하여금 이를 갈며 그를 미워하게 해서, 결국 채옹이 형벌과 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今群臣 皆以邕爲戒하니 臣知朝廷 不復得聞忠言矣니이다
지금 여러 신하들이 모두 채옹을 경계로 삼고 있으니, 은 장담컨대 조정에서 다시는 충언忠言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段熲 武勇冠世하고 勳烈獨昭러니 一身旣斃 而妻子遠播하니 天下惆悵하고 功臣失望注+播, 遷也.이라
단경段熲무용武勇이 당대에 제일이고 공렬功烈이 유독 찬란하였는데, 한 몸이 죽자 처자식이 멀리 귀양을 가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서글퍼하고 공신功臣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注+는 귀양 감이다.
宜徵邕受任하고 反熲家屬이면 則忠貞路開하고 衆怨弭矣리이다 帝知其忠而不能用하다
마땅히 채옹을 불러 직임職任를 맡기고 단경의 가속家屬들을 돌아오게 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충성되고 바른길이 열리고 여러 원망이 사라질 것입니다.” 황제는 그의 충성스러움을 알았으나 말을 채용하지는 못하였다.
詔黨錮從祖以下 皆釋之하다
조령詔令을 내려서 종조從祖 이하의 당고黨錮를 모두 풀어주게 하였다.
上祿長和海上言注+上祿縣, 屬武都郡. 和海, 姓名.호되 從祖兄弟 別居異財하니 恩義已輕이요 服屬疎末이어늘
상록현장 화해上祿縣長 和海상언上言하기를注+상록현上祿縣무도군武都郡에 속하였다. 화해和海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종조형제從祖兄弟들은 따로 살고 재물을 달리하니, 은의恩義가 가볍고 또 을 입는 친속親屬 중에 소원합니다.
而今黨人 錮及五族하니 乖謬常法이라한대 於是 黨錮自從祖以下 皆得解釋注+從祖, 緦麻服.하다
그런데 지금 당인黨人들은 금고禁錮오복五服을 입는 친족親族에게까지 미치니, 떳떳한 법에 위배됩니다.” 하였다. 이에 종조從祖 이하의 당고黨錮가 모두 풀리게 되었다.注+종조從祖시마복緦麻服이다.
中郞將張脩 殺匈奴單于러니 秋七月 徵下獄死注+坐不先請而擅誅殺.하다
중랑장 장수中郞將 張脩흉노匈奴선우單于를 죽였는데, 가을 7월에 불려와 하옥되어 죽었다.注+미리 조정에 청하지 않고 제멋대로 주살誅殺한 죄에 걸린 것이다.
】 겨울 10월에 사도 유합司徒 劉郃(유합), 소부 진구少府 陳球, 상서 유납尙書 劉納, 위위 양구衛尉 陽球를 죽였다.
郃兄侍中儵 死於陳, 竇之難이러니 至是하여 永樂少府陳球 復說郃曰注+永樂少府, 董太后宮官也.
】 처음에 유합劉郃의 형인 시중 유숙侍中 劉儵(유숙)이 진번陳蕃두무竇武의 난에 죽었는데, 이때에 영락소부 진구永樂少府 陳球가 다시 유합을 설득하기를注+영락소부永樂少府동태후董太后의 관원이다.
曹節等 放縱爲害하니 可表徙衛尉陽球하여 爲司隷하여 以次收節等誅之니라
조절曹節 등이 방종放縱하여 나라의 폐해가 되고 있으니, 표문表文을 올려 위위 양구衛尉 陽球를 옮겨서 사례교위司隷校尉로 삼아 차례로 조절 등을 구속하여 주살誅殺해야 한다.” 하였다.
郃曰 凶豎多耳目하니 恐事未會 先受其禍로라 尙書劉納曰 爲國棟梁하여 傾危不持하면 焉用彼相邪
유합이 말하기를 “흉악한 환관들은 정탐하는 이일耳日이 많으니, 일이 이뤄지기 전에 먼저 화를 입게 될까 두렵다.” 하였다. 상서 유납尙書 劉納이 말하기를 “나라의 동량棟梁이 되어서 ” 하니,
許諾하고 與陽球結謀러니 球小妻 程璜之女
유합이 허락하고는 양구陽球와 계책을 도모하였다. 양구의 소처小妻정황程璜의 딸이었다.
由是 節等 聞知하고 共白帝曰 郃等 交通書疏하여 謀議不軌라한대 帝大怒하여 郃及陳球, 劉納, 陽球 皆下獄死하다
조절 등이 그녀를 통해 이 사실을 들어 알고는 함께 황제에게 아뢰기를 “유합 등이 편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불궤不軌를 도모합니다.” 하니, 황제가 크게 노하였다. 이에 유합과 진구, 유납, 양구가 모두 하옥되어 죽었다.
巴郡板楯蠻하다
파군巴郡판순만板楯蠻이 배반하였다.
◑鮮卑寇幽, 幷하다
선비鮮卑유주幽州병주幷州를 침략하였다.
역주
역주1 宦者王甫伏誅……有罪自殺 : “王甫가 고문으로 죽었는데 ‘伏誅’라고 쓴 것은 그 죄를 바로잡은 것이다. 무릇 위에 사건을 쓰고 아래에 관명을 쓴 것은 그 일에 관직을 준 것이요, 위에 사건을 쓰고 아래에 죄를 쓴 것은 그 일을 죄책한 것이다. 梁冀를 伏誅했다고 썼는데 胡廣 등이 죄가 있다고 썼으면 호광이 양기의 黨임이 분명한 것이요, 왕보를 伏誅했다고 썼는데 段熲이 죄가 있다고 썼으면 단경이 왕보의 黨임이 분명한 것이다.[甫死考掠 書伏誅 正其罪也 凡上書事 下書官 官其事也 上書事 下書罪 罪其事也 梁冀書伏誅 胡廣等書有罪 則廣爲冀黨明矣 王甫書伏誅 段熲書有罪 則熲爲甫黨明矣]” ≪書法≫ “段熲은 漢나라에 있어서 功이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죄가 있다.’고 씀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그의 잘못이 환관들에게 아부하여 재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음에 있는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正道를 지키다가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君子가 그들이 조정을 일찍 떠나가지 않은 것을 한하였는데, 하물며 단경의 무리에 있어서랴. 〈죄가 있다고〉 써서 폄하함이 당연하다.[段熲在漢 功亦不少 然不免書有罪者 失在阿附宦寺 輸貨得官耳 當是之時 守正而斃者 君子猶恨其去之不早 況熲輩乎 書以貶之 宜矣]” ≪發明≫
역주2 京兆는……소속되었다 : 司隷校尉는 京師인 洛陽과 그 주변인 河南尹, 河內郡, 弘農郡, 河東郡, 그리고 長安과 그 주변인 京兆尹, 左馮翊, 右扶風을 관장한다.(≪後漢書≫ 〈百官志〉)
역주3 中都官從事 : 都官從事로 司隷校尉의 屬吏 중 하나이다. 사예교위의 직책은 京師와 그 부근의 불법을 규찰하지만 동시에 중앙의 관리들을 감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아래 從事가 12명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도관종사는 백관의 위법을 규찰을 담당하였다.(≪後漢書≫ 〈百官志〉)
역주4 封中常侍呂强爲都鄕侯 不受 : “무릇 爵位를 봉하고 관직을 제수함에 ‘받지 않았다.’고 쓴 것은 찬미하는 말인데 中常侍에게서 이를 보니, ≪資治通鑑綱目≫에서 깊이 인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趙高로부터 환관에게 ‘宦者’라고 쓰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오직 呂强에게는 쓰지 않고 관직을 쓴 것이다. ≪자치통감강목≫에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제수함에 ‘받지 않았다.’고 쓴 것이 19번인바, 謝恩肅拜하지 않은 것이 두 번이고 사양하여 돌려준 것이 한 번인데, 환관 중에 능히 사양한 자는 呂强뿐이다.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환관 중에 취할 만한 자가 세 사람이니, 여강은 어질었고 唐나라의 楊復光은 공로가 있었고 後唐의 張承業은 충성이 있었으니, 이들 말고는 취할 자가 없다.[凡封拜書不受 美辭也 而於中常侍見之 綱目所深予也 故自趙高以來 未有不書宦者 惟呂强不書 書其官 綱目封拜書不受 十有九 不拜二 讓還一 宦官能讓者 呂强而已 終綱目 宦官可取者三人 呂强以賢 楊復光以功 張承業以忠 舍是 無取焉耳]” ≪書法≫ “똑같이 內臣(환관)인데도, 이보다 앞서 單超 등에게 侯를 봉했을 때에는 宦者를 드러내어 썼는데, 지금 여기에서 呂强에게 ‘中常侍’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여강은 청렴하고 충성스럽고 공정하게 奉職한 충절이 있었고, 또 글을 올려 스스로 나열해서 환관에게 爵位를 봉하는 잘못을 자세히 말했으니, 진실로 조정의 기강을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힌 선초 등에 비할 자가 아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구별하여 다르게 여기고 특별히 ‘받지 않았다.’고 써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냈으니, 남이 선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허여한 뜻이 관직이나 지위에 차별을 두지 않은 것이 이와 같다. 이에 환관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한결같이 죽이려 한 것이 지나친 것임을 알 수 있다.[曰均之內臣也 前此單超等封侯 則揭宦者書之 今此呂强 乃書中常侍 何哉 强有淸忠奉公之節 且抗詞自列 備言封爵宦寺之非 固非超等濁亂朝綱之比 綱目別而異之 特書不受 以著其美 其樂予人爲善之意 不間流品如此 乃知不問是否 欲一槪殺之者過矣]” ≪發明≫
역주5 띠풀과 흙을 주어서 : 王이나 侯로 봉하는 것을 이른다. 옛날 天子가 王이나 侯를 分封할 때,代表되는 方位의 다섯 가지 색깔의 흙을 사용해서 壇을 쌓았는데, 封地가 있는 방위의 흙을 흰 띠풀에 싸서 주어서 봉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를 소유하고 사직을 세우는 징표로 삼은 데서 유래하였다.
역주6 나라를……등용하니 : 나라를 엶은 侯를 봉하여 제후를 삼는 것이고, 집안을 받음은 大夫를 삼음을 이른다. ≪周易≫ 師卦 上九爻辭에 “上九는 大君이 論功行賞의 命을 둠이니, 나라를 열고 집안을 받음에 小人을 쓰지 말라.[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하였는데, 程伊川의 ≪易傳≫에 “이는 大君(제왕)이 爵命으로 功이 있는 자에게 賞을 주는 것이다. ‘開國’은 봉하여 제후를 삼는 것이요, ‘承家’는 卿大夫를 삼는 것이다. 承은 받음이다. 小人은 비록 功이 있더라도 등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쓰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小人이 功이 있을 경우……金銀과 비단, 녹봉과 지위로 賞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와 집안을 소유하여 政事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大君 以爵命賞有功也 開國 封之爲諸侯也 承家 以爲卿大夫也 承 受也 小人者 雖有功 不可用也 故戒使勿用也……小人有功……賞之以金帛祿位 可也 不可使有國家而爲政也]” 하였다. 여기서는 이 ≪주역≫의 말을 원용하여 환관들에게 侯를 봉하고 높은 벼슬을 주는 잘못을 말한 것이다.
역주7 五服 : 親族의 멀고 가까움에 따른 다섯 가지 服을 입는 제도로, 첫 번째는 斬衰 3년과 齊衰 3년, 두 번째는 期年, 세 번째는 大功 9월, 네 번째는 小功 5월, 다섯 번째는 緦麻 3월이다. 대체로 부모에게는 3년, 조부모와 형제에게는 기년, 從兄弟(사촌형제)에게는 대공 9월, 再從兄弟(육촌형제)에게는 소공 5월, 三從兄弟(팔촌형제)에게는 시마 3월을 입는바, 위의 從祖兄弟는 재종형제로 소원한 친족에 해당한다.
역주8 : 저본에는 ‘十’으로 되어 있으나 ≪御批資治通鑑綱目≫의 武英殿本과 四庫全書本에는 ‘十二’로 되어 있다. 그러나 ≪後漢書≫ 〈靈帝本紀〉와 ≪資治通鑑≫에는 모두 ‘十月’로 되어 있다.
역주9 殺司徒劉郃少府陳球尙書劉納衛尉陽球 : “司徒 劉郃 등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고 일일이 나열하여 쓴 것은 그들의 죽음이 죄 때문이 아니고 또 그 직책을 잃지 않았음을 슬퍼한 것이요, 또 당시 군주의 잘못을 심하다고 여긴 것이다.[不曰殺司徒劉郃等 而列敍之者 哀其死不以罪 不失其職 且以甚當時之惡也]” ≪發明≫
역주10 나라가……있겠는가 : 相은 大夫에게 있어서는 家相(家臣)이고 제왕에게 있어서는 정승이다. ≪論語≫ 〈季氏〉에 冉有와 季路가 季孫氏의 家臣이 되었는데, 季孫氏가 顓臾(전유)라는 附庸國을 공격하여 그 땅을 차지하려 하였다. 孔子가 冉有와 季路에게 이것을 만류하라고 말씀하였으나 불가하다고 아뢰라 경계하신 말씀이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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