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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처음에 황제가
원릉原陵(
광무제光武帝의 능)과
현절릉顯節陵(
명제明帝의 능)을 위하여
현읍縣邑을 만들고자 했었는데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유창劉蒼이
상소上疏하여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삼가 보건대,
광무황제光武皇帝께서는 몸소 검약한 행실을 실천하시고 사람의 시작(태어남)과 끝(죽음)의 구분을 깊이 살피시어 부지런하고 간곡히 하여 장례의 제도를 말씀하셨고
注+분分(구분)은 부문扶問의 절切이다.,
효명황제孝明皇帝는 대효大孝로 선왕의 법도를 어기지 않으시어 받들어 시행하셨으니, 겸손한 덕이 이에 성대합니다.
어리석은
신臣은 생각건대,
원읍園邑을 처음 만든 것이 강한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注+진 시황제秦 始皇帝를 여산驪山에 장례하고는 3만 가호를 옮겨서 여읍驪邑을 일으켰는데, 서한西漢(전한前漢)에서 이것을 따라 여러 능陵에 모두 능읍陵邑을 일으켰다가 원제元帝 때에 이르러서야 중지하였다. 옛날에는 조그마한
구롱丘隴(
봉분封墳)도 드러내어 밝히고자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능읍陵邑을 축조하고 성곽을 건설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注+≪예기禮記≫에 “옛날에는 묘를 쓰되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하였으므로, “드러내어 밝히고자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도都’라 한다. 부郛(부)는 외곽이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선제先帝의 성심聖心을 어기고 아래로는 무익한 일을 만들어서 국가의 재정을 허비하고 백성들을 동요시킬 것이니, 이는 화기和氣를 불러오고 풍년을 기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유우有虞(
순舜)의 지극한 효성을 이행하시고
조고祖考의 깊은 생각을 추념하소서.
注+우순虞舜이 어버이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유우지지성有虞之至性”이라고〉 말한 것이다. 신 유창臣 劉蒼은 진실로 두 황제의 순수한 덕의 아름다움이 무궁한 후세에 드러나지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황제가 이에 중지하였다.
이로부터 조정에 의심스러운 정사가 있을 때마다 황제는 번번이 파발마를 보내 유창에게 자문하였는데, 유창이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여 모두 가납嘉納을 받았다. 이때에 훙薨하니, 시호를 헌獻이라 하였다.
중부中傅가 동평왕東平王이 건무建武 연간 이래로 글을 올려 아뢴 것들을 봉함하여 올리니, 황제가 모두 모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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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여러 마씨馬氏가 죄를 얻게 되자, 두씨竇氏가 더욱 귀하고 번성하여 황후皇后의 오라비인 두헌竇憲과 아우인 두독竇篤이 빈객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이에 제오륜第五倫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두헌이
의 친척으로
금병禁兵을 관장하여 궁문을 출입함에 나이가 젊고 뜻이 아름다우며 자신을 낮추고 겸양하여
선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귀척들의 문하에 출입하는 자들은 대부분 잘못이 있고 금고禁錮를 당한 사람이 많고, 검약함을 지키고 가난함을 편안히 여기는 절도를 지닌 사람은 더욱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번갈아 가며 서로 상대방을 선양하고 치켜세워서 그 문에 구름처럼 모이니, 이로 인해 교만함과 방종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삼보三輔 지역에서 의논하는 자들은, 심지어 ‘
귀척貴戚으로서 폐하고 금고를 당한 자는 마땅히 다시 귀척으로 씻어내야 하니, 이는 숙취를 해소할 때에는 마땅히 술로써 해야 하는 것과 같다.’
注+술을 많이 마셔서 병病이 든 것을 정酲이라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어리석은 신臣은 원컨대, 폐하와 중궁中宮께서 두헌 등을 엄하게 신칙申飭하시어 문을 닫고 스스로 본분을 지켜서 함부로 사대부士大夫들과 사귀지 말게 하소서. 화환禍患의 싹이 트기 전에 막아서 두헌으로 하여금 영원히 복록을 보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臣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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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인신人臣의 죄 중에 군주를 속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속이는 신하를 미워한다. 장제章帝가 두헌竇憲을 책망한 것은 잘하였다.
그러나 끝내 두헌을 죄주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간신이 어떻게 징계되겠는가. 군주가 신하에 대하여는 병통이 그의 간악함을 알지 못함에 있으니,
만일 혹 간악함을 알고도 주벌하지 못해서 신하가 군주를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면 방종하여 돌아보는 바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선善한 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것과 악惡한 줄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군주가 깊이 경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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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황제가 반초班超의 충성을 알고는 마침내 이읍李邑을 크게 꾸짖고 하여금 반초에게 가서 지휘를 받게 하자, 반초는 즉시 이읍을 보내 오손烏孫의 시자侍子를 거느리고 경사京師에 돌아가게 하였다.
서간徐幹이 반초에게 이르기를 “이읍이 예전에 그대를 훼방하여 서역西域의 일을 실패시키려 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조서詔書를 이용해서 그를 여기에 붙들어두고 다시 다른 관리를 보내 시자侍子를 호송하게 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반초가 말하기를 “이 말이 어찌 이리도 비루한가. 이읍이 나를 훼방했기 때문에 지금 보내는 것이다. 사람이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아 잘못이 없다면, 어찌 남의 말을 걱정하겠는가. 내 마음을 쾌하게 하기 위하여 그를 붙들어두는 것은 충신忠臣이 아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