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魏主子攸之出也에 單騎而去하니 侍衛後宮이 按堵如故라 顥가 一旦得之하여 號令己出하니 四方이 想其風政이라
而顥遽驕怠하여 近習이 干政하고 日夜縱酒하여 不恤軍國하다 所從南兵이 陵暴市里하니 朝野失望이러라
髙子儒
가 自洛陽出從子攸
注+① 子儒, 道穆兄也.러니 子攸
가 問之
한대 子儒曰 顥
가 敗在旦夕
하리니 不足憂也
니이다
爾朱榮
이 馳見子攸於長子
한대 子攸
가 卽日南還
할새 榮
이 爲前驅
하니 旬日之間
에 兵衆
이 大集
注+② 爾朱榮旣至, 魏主有所倚以攻顥, 故卽日南還.이러라
顥
가 既得志
에 與臨淮王彧安豐王延明
으로 謀叛梁
호되 以事難未平
이라하여 藉陳慶之兵力
이라 故外同内異
하여 言多猜忌
注+③ 難, 乃旦切.하다
慶之亦密爲之備하여 説顥曰 今遠來至此하여 未服者가 尙多하니 彼若知吾虛實하여 連兵四合하면 將何以禦之리오 宜更請兵於梁이니이다
顥欲從之러니 延明이 曰 慶之兵已難制어늘 今更增其衆이면 寧肯復爲人用乎아 大權이 一去에 動息이 由人이니 魏之宗廟가 於斯墜矣리라
顥
가 乃不用慶之言
한대 軍副馬佛念
이 謂慶之曰
注+④ 凡一軍有主有副. 將軍
이 功髙勢重
하여 爲魏所疑
하고 一旦變生不測
이면 可無慮乎
아
不若乘其無備하여 殺顥據洛이니 此千載一時也라한대 慶之不從하다
顥가 先以慶之爲徐州刺史하니 慶之固求之鎭이어늘 顥가 心憚之하여 不遣이러라
目
【目】 元顥가 梁國을 함락하니, 北魏 都督 楊昱이 滎陽을 점거하거늘 陳慶之가 그를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는데, 元天穆 등이 형양에 이르렀다.
梁나라 士卒이 모두 두려워하였는데, 진경지가 안장을 풀고 말을 먹이며 將士들을 깨우치기를 “諸君들이 북위 사람들의 父兄을 죽이며 그들의 子女를 노략질한 것이 많으니, 원천목의 병사들은 모두 원수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병사는 겨우 7천이고 오랑캐는 병사는 30여만 명이나 되니 오늘 오직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워야만 마침내 살아날 수 있다. 마땅히 아직 군대가 다 도착하지 않았을 때에 빨리 성을 빼앗아 점거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북을 치니 將士들이 개미 떼처럼 성벽에 붙어서 침입하여 양욱을 잡았다.
諸將들이 그를 죽이기를 청하였는데,
注+① ‘蟻附’는 將士들이 城에 붙어서 올라가는 것이 마치 개미가 나무와 돌로 된 장벽에 붙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원호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梁主(蕭衍)가 袁昻의 충성을 자주 말하였다고 하니, 지금 어찌 〈북위의 충신인〉 양욱을 죽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注+② 楊昱이 北魏에 항복하지 않은 것은 袁昂이 梁나라에 항복하지 않은 것과 같음을 말한다. 袁昂의 일은 齊 和帝(蕭寶融) 中興 원년(501)에 보인다.
조금 뒤에 원천목 등이 병사를 이끌고 형양성을 포위하였는데, 진경지가 힘써 싸워서 원천목을 격파하고 진군하여 虎牢를 함락하였다.
目
【目】 魏主 元子攸가 낙양을 떠나려고 할 적에 가야할 곳을 알지 못하였는데 혹자가 長安으로 갈 것을 권하자
中書舎人 髙道穆이 말하기를 “關中이 황폐해졌으니 어찌 다시 갈수 있겠습니까. 元顥의 병사들이 많지 않고 빈틈을 타서 깊이 들어왔으니 폐하께서 만약 친히 宿衛兵을 이끌고서 성을 등지고 한 차례 전쟁을 하시고 신들이 死力을 다하면 원호를 반드시 격파할 것입니다.
혹은 승부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우려되시면 車駕가 황하를 건너서 元天穆과 爾朱榮을 불러 병사를 이끌고 나가 토벌하게 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이 萬全의 계책입니다.” 하였다. 元子攸가 마침내 河内로 달아났다.
目
【目】 臨淮王 元彧과 安豐王 元延明이 백관을 거느리고 魏主 元顥를 맞이하였다. 원호가 洛陽에 들어가서 陳慶之를 車騎大將軍으로 삼았다. 楊椿이 당시에 낙양에 있었는데, 원호가 마음에 그를 꺼렸으나 인망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죽이지는 못하였다.
혹자가 양춘에게 도망칠 것을 권하였으나 양춘이 말하기를 “내가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바로 앉아서 天命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였다.
元天穆이 大梁城을 빼앗았는데, 원호가 진경지에게 공격하게 하였다.
注+① 大梁은 곧 陳留 浚儀縣이다.
원천목이 장차 북쪽으로 달아나려고 하니, 郎中 温子昇이 말하기를 “원호가 막 낙양에 들어와서 人情이 편안하지 못하니 그를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京邑(낙양)을 평정하여 大駕를 받들어 맞이하는 것은
이 거행한 일입니다. 이곳을 버리고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가려고 하니 저으기 大王을 위하여 이를 애석하게 여깁니다.”라고 하였는데, 원천목이 그 계책을 쓰지 않았다.
注+② 지난해에 北魏가 元天穆을 太尉로 삼고 上黨王의 爵位를 하사하였다.
〈北魏의〉 費穆이 虎牢關을 공격하여 함락시킬 지경에 이르렀을 때 원천목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진경지에게〉 항복하였다. 진경지는 大梁城으로 진격하여 함락시켰다. 진경지는 수천 군사를 데리고 銍縣에서 출발하여 낙양에 이르기까지 모두 32개의 성을 빼앗고 47번을 싸웠는데 향하는 곳마다 모두 이겼다.
注+③ 銍은 作乙의 切이다. 銍縣은 漢나라 때에는 沛郡에 소속하였고, 魏나라(曹魏)와 晉나라 때에는 譙郡에 소속하였다. 지난해에 元顥가 北魏 銍城을 습격하여 점거하였다.
원호가 黃門郎 祖瑩에게 명하여 편지를 써서 원자유에게 보내기를 “朕이 울면서 梁朝에 병사를 출동해줄 것을 청했던 것은 맹세코 치욕을 갚는 데에 있소. 바로 爾朱榮에게 죄를 묻고 卿을 호랑이 아가리에서 꺼내려고 했을 뿐이오.”라고 하였다. 황하 남쪽의 州郡이 대부분 원호에게 귀부하였다.
齊州刺史 沛郡王 元欣이 문무 관리들을 모아서 어디를 따를지 의론하였는데,
注+④ 元欣은 元羽의 아들이다.
軍司 崔光韶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注+⑤ 崔光韶는 崔亮의 사촌 아우이다. “원호가 梁나라에게 지휘를 받고 怨讐의 병사를 이끌고서 宗國(북위)을 전복하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북위의 賊臣亂子입니다. 어찌 大王의 집안일로만 이를 갈아 원망할 뿐이겠습니까.
저 下官 등은 모두 조정의 돌봄을 받았으니 감히 우러러 〈대왕께서 원호에게 투항한다는 말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무리들이 모두 옳다고 하였다. 원흔이 마침내 원호가 보낸 사자의 목을 베었다.
注+⑥ ‘朝眷’은 조정의 은혜와 돌봄을 받은 것을 말한다.
目
【目】 魏主 元子攸가 洛陽을 떠날 때에 單騎로 가니 侍衛와 後宮은 예전처럼 편안하게 있었다. 원호가 하루아침에 낙양을 얻고 號令이 자기에게서 나오자 사방의 백성들은 美風의 정치를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호는 갑자기 교만하고 나태해져서 윈호를 가까이 모시는 소인들이 정치에 관여하였고 밤낮으로 술을 방종히 마시며 軍國의 사무를 걱정하지 않았다. 따라온 南兵(梁나라 군사)들이 市街와 마을 사람들을 능멸하며 포악하게 구니 朝野가 실망하였다.
髙子儒는 낙양에서부터 원자유를 따랐다.
注+① 髙子儒는 髙道穆의 형이다. 원자유가 묻자 고자유가 말하기를 “원호의 패배가 아침저녁 사이에 있을 것이니 걱정거리가 못 됩니다.”라고 하였다.
爾朱榮이 말을 달려 長子에서 원자유를 알현하였다. 원자유가 그날로 남쪽으로 돌아갈 적에 이주영이 선봉이 되니, 열흘 사이에 병사들이 크게 모였다.
注+② 爾朱榮이 이르고 나자 魏主(元子攸)는 의지하는 곳이 있어 元顥를 공격하였으므로 그날 남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원호가 뜻을 이루고 나자 臨淮王 元彧과 安豐王 元延明과 함께 梁나라를 배반할 것을 도모했는데, 병란이 아직 평정되지 못하였다 하여 陳慶之의 兵力에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겉으론 함께 하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여 猜忌하는 말이 많았다.
注+③ 難(난리)은 乃旦의 切이다.
진경지 역시 은밀하게 그들을 방비하며 원호를 설득하기를 “지금 〈梁나라에서부터〉 멀리 와서 이곳 낙양에 이르렀기 때문에 승복하지 않는 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저들이 만약 우리의 虛實을 알아 병사들을 연합하여 사방에서 모여들면 장차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다시 양나라에 병사를 청구해야 합니다.”라고 하니,
원호가 그의 말을 따르려고 하였는데, 원연명이 말하기를 “진경지의 병사들을 이미 제압하기 어려운데 지금 다시 병사를 더해주면 어찌 다시 남에게 부림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大權이 한 번 떠나면 일거일동이 남에게서 결정되니, 北魏의 宗廟가 여기에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호가 결국 진경지의 말을 듣지 않자, 軍副將 馬佛念이 진경지에게 말하기를
注+④ 무릇 1軍에는 主將이 있고 副將이 있다. “장군께서 공이 높고 세력이 중하여 魏나라(원호)에게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예측할 수 없는 변고가 생기면 근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방비가 없는 틈을 타서 원호를 죽이고 낙양을 점거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은 천 년에 한 번 오는 기회입니다.”라고 하였으나 진경지가 따르지 않았다.
원호가 이전에 진경지를 徐州刺史로 삼았는데, 진경지가 서주로 가서 鎭守할 것을 굳게 요구하였다. 원호가 마음속으로 그를 꺼려서 서주로 보내지 않았다.
目
【目】 爾朱榮의 병사가 도착할 때에 陳慶之는 北中城을 지키고 元顥는 南岸을 점거하였다.
注+① 〈南岸은〉 河橋의 남쪽 언덕이다. 진경지가 3일에 11번을 싸워서 자기의 군사들 중에 죽거나 상한 자가 매우 많았다. 夏州 義士들이 원호를 위하여 河中渚를 지키고 있다가 이주영과 내통하여 河橋를 파괴하여 공을 세울 것을 이주영에게 청하였다.
注+② ≪水經注≫에 “河中渚 위에 河平侯祠가 있고, 황하의 남쪽 연안에 하나의 비석이 있는데 쓰기를 ‘洛陽의 북쪽 경계이다.’ 하였다.” 하였다. 생각하건대 이 中渚는 바로 唐나라 시대에 河陽의 中潬城인 듯하다.
그러나 河橋을 파괴할 때에 미쳐 이주영의 병사가 도착하지 못하니, 원호는 하교를 파괴한 자들을 모두 죽였다. 이에 이주영은 이미 失望을 하였고 또 배가 없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후일에 병사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는데,
黃門郎 楊侃이 말하기를 “大王께서 并州를 출발하는 날에 이미 夏州 義士들이 밀모하여 와서 내응할 것을 알았단 말입니까. 經略을 널리 펴서 帝室을 바르게 회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병사를 쓸 적에 어찌 〈병사들이〉 흩어지면 다시 결집하고서 상처가 나으면 다시 싸우게 한 적이 없단 말입니까.
더구나 지금은 손실된 것이 없는데, 어찌 한 가지 일이 순조롭지 않다고 해서 여러 모책을 갑자기 폐기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방의 백성들이 우러러보며 公의 이러한 거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注+③ ‘顒顒’은 우러러 바라보는 것이다. 뜻은 喁喁과 같다.
만약 아직 공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군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가면 민심이 실망하여 제각기 떠날 뜻을 품을 것이니, 승부의 소재를 알 수 없습니다.
뗏목을 많이 만들고 그 사이에 배를 써서 수백 리 안에 모두 〈황하를〉 건너갈 형세를 만드는 것만 못하니, 원호에게 막을 곳을 알지 못하게 하다가 하루아침에 건너가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④ 작은 뗏목을 桴라고 하고, 큰 뗏목을 筏이라고 한다. 두 가지는 모두 대나무와 나무를 엮어서 만들어 江河에 띄워 물건을 운반하는 것이다.
髙道穆이 말하기를 “지금 만약 북쪽으로 돌아가서 원호에게 다시 병사들을 불러들여 완전하게 모이게 한다면 새끼 뱀을 길러 뱀을 만들게 되어 後悔莫及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⑤ 逸書에 “새끼 뱀 때 죽이지 않으면, 큰 뱀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글의 뜻으로 본다면 ‘虺’를 작은 뱀으로 여긴 것이다. 이주영이 마침내 爾朱兆에게 賀拔勝과 함께 뗏목을 묶어 타고 밤에 황하를 건너가게 하였다.
注+⑥ 爾朱兆는 爾朱榮의 조카이다.
원호는 군대가 무너져 근거지를 잃어 휘하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진경지가 무리를 거두어 軍陣을 결성하여 돌아갔다. 이주영이 그를 추격하니 진경지의 군사가 죽고 흩어져 거의 전멸하였다. 이에 〈진경지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沙門이 되어 샛길을 통해 建康으로 돌아갔다.
中軍大都督 楊津이 殿中에 들어가 숙직하여 宮庭을 청소하고 府庫를 봉쇄하고, 魏主 元子攸를 北邙으로 나가 맞이하고서 謝罪하며 눈물을 흘렸다. 원자유가 마침내 洛陽에 들어와서 이주영에게 天柱大將軍을 더해주었다.
注+⑦ 天柱는 이전에 이런 호칭이 없었는데, 魏主가 爾朱榮의 공이 높은 것으로 해서 특별히 이 관직을 설치하여 총애한 것이다.
원호가 臨潁縣에 도착하여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注+⑧ 臨潁縣은 漢나라 이래로 潁川郡에 속하였다. 元彧이 다시 스스로 魏主(원자유)에게 돌아갔고, 元延明이 梁나라로 달아났다.
진경지가 북위에서 양나라로 돌아왔을 적에 특별히 北人을 중시하였는데 朱异가 그 이유를 묻자
注+⑨ 异는 음이 異이다. 〈진경지가〉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大江 이북이 모두 戎狄의 고을이라고 생각했는데 洛陽에 이르고 나서 마침내 衣冠과 人物이 江東에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찌 그들을 경시하겠는가.”라고 하였다.
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