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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1)

자치통감강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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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辰年(236)
十四年이라
魏靑龍四年이요 吳嘉禾五年이라
하다
一當五百注+文曰大泉五百, 徑一寸三分, 重十二銖.이러라
三月 吳婁侯張昭卒注+婁, 古縣也, 前漢屬會稽郡, 東漢分屬吳郡.하다
容貌矜嚴有威風하니 吳主權以下 皆憚之하니 年八十一이라 遺令幅巾素冠하고 斂以時服하다
夏四月 注+湔, 音翦, 縣名, 屬蜀郡. 汶讀與㟭同. 汶水, 卽㟭江水也. 㟭江, 出氐道西徼外㟭山, 東流歷都安縣.하다
◑武都氐王苻健注+杜佑曰 “氐者, 西戎別種, 漢武帝開武都郡, 排其種人, 分竄山谷, 或在上祿, 或在河‧隴左右. 魏武令夏侯淵討叛氐阿貴‧千萬等, 後因拔棄漢中, 遂徙武都之種於秦川, 是曰楊氐. 苻堅之先, 是曰苻氐, 楊氐‧苻氐同出略陽, 世爲婚姻.”하다
◑冬十月 有星孛于大辰하고 又孛于東方注+大辰者, 大火也, 大火與伐, 天之所以示民時早晩, 天下之所以取正, 故謂之大辰. 自亢八度, 至尾四度, 謂之大火. 一說, 自氐五度, 至尾九度, 曰大火之次, 於辰在卯.하다
魏高堂隆 上疏曰 古者將營宮室 宗廟爲先하고 居室爲後注+記曲禮之言.하니이다
今郊廟未定이어늘 而崇飾居室하여 士民失業하니이다
外人 咸云 宮人之用 與軍國之資略齊라하니 民不堪命하여 皆有怨怒注+齊, 等也.하니이다
夫采椽, 卑宮 唐, 虞, 大禹之所以垂皇風也注+采椽, 卽采來之木爲椽, 不加斷削也. 一說 “采櫟木也.” 玉臺, 瓊室 夏癸, 商辛之所以犯昊天也注+紂爲瓊室, 以瓊瑤飾之. 癸, 桀名. 辛, 紂名.
今宮室過盛하여 天彗章灼注+灼, 明也.하니 斯乃慈父懇切之訓이라
當崇孝子祗聳之禮注+祗, 敬也. 不宜有忽하여 以重天怒니이다
魏主叡不悅하니 侍中盧毓 進曰注+毓, 音育. 臣聞君明則臣直이라하니이다
古之聖王 惟恐不聞其過하니 此臣等所以不及隆也니이다 叡意乃解하다 植之子也
魏司空陳群하다
前後數上封事호되 輒削其草하니 雖子弟라도 莫知也
或譏其居位拱黙注+言拱手而已, 默無一言.이러니 及正始中 詔撰名臣奏議할새 朝士乃見群諫事하고 皆嘆息焉注+正始, 魏邵陵厲公年號.이러라
袁子曰注+通鑑, 曰上有論字. 或云 楊阜 豈非忠臣哉리오 人主之非 則勃然觸之하고 與人言 未嘗不道注+道者, 言之也.라하여늘
答曰 夫仁者 愛人이라 施之君이면 謂之忠이요 施之親이면 謂之孝
今爲人臣하여 直詆其君之非而播揚其惡하니 可謂直士 未爲忠臣也
若陳群則不然하여 談論終日 未嘗言人主之非하고 書數十上 外人不知하니 君子謂群於是乎長者矣라하니라
魏令公卿擧才德兼備之士하다
司馬㦤以兗州刺史王昶으로 應選注+昶, 丑兩切.하니 爲人謹厚하여 名其兄子曰黙, 曰沈이요
子曰渾, 曰深이라하고 爲書戒之曰 吾以四者爲名 欲汝曹顧名思義하여 不敢違也니라
夫物 速成則疾亡하고 晩就則善終하나니 朝華之草 夕而零落하고 松柏之茂 隆寒不衰 是以 君子戒於闕黨也注+論語, 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孔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竝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니라
夫能屈以爲伸하고 讓以爲得하고 弱以爲彊이면 鮮不遂矣니라 毁譽者 愛惡之原而禍福之機 不可輕也
人或毁己어든 當退而求之於身하여 若己有可毁 則彼言當矣 無可毁 則彼言妄矣
當則無怨於彼 妄則無害於身이니 又何報焉이리오 諺曰 救寒 莫如重裘 止謗 莫如自修라하니 斯言 善矣注+重, 直龍切.니라


丙辰年(236)
나라(蜀漢) 後主 建興 14년이다.
나라 明帝 曹叡 靑龍 4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嘉禾 5년이다.
】 봄에 나라가 大錢을 주조하였다.
大錢 하나가 500에 해당하였다.注+돈에 ‘大泉五百’이라 쓰여 있었는데, 지름이 1 3이고 무게가 12이다.
】 3월에 나라 婁侯 張昭하였다.注+는 옛 이니, 前漢 때에는 會稽郡에 속하였는데, 東漢 때에는 나뉘어 吳郡에 속하였다.
張昭容貌가 장엄하여 威風이 있으니, 吳主 孫權 이하가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이때 하니, 나이가 81세였다. 遺命을 하여 시신에 幅巾과 명주 관을 씌우고, 평상시 입는 의복으로 염하게 하였다.
】 여름 4월에 皇帝(後主)가 湔縣(전현)에 가서 汶水(민수)를 구경하고 열흘 만에 돌아왔다.注+은 음이 이니, 의 이름인데 蜀郡하였다. 과 같이 읽으니, 汶水는 바로 㟭江의 물줄기이다. 㟭江氐道의 서쪽 변방 밖 㟭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都安縣을 경유한다.
武都氐王 苻健이 항복하였다.注+杜佑가 말하였다. “西戎別種이니 武帝武都郡을 개설하고는 그 종족을 배척하자, 그들은 각기 산골짝으로 도망해서 혹은 上祿에 거주하고 혹은 의 좌우에 거주하였다. 武帝夏侯淵으로 하여금 배반한 氐族阿貴千萬 등을 토벌하고 뒤에 인하여 漢中을 버리고 마침내 武都에 있는 종족을 秦川으로 옮기니 바로 楊氐이다. 苻堅의 선조는 바로 苻氐이니, 楊氐苻氐는 똑같이 略陽에서 나와 대대로 혼인을 하였다.”
】 겨울 10월에 孛星大辰(대신)에 나타나고, 또 동방에 나타났다.注+大辰”은 大火星이니, 大火伐星은 하늘이 농사철의 이르고 느림을 보여주어 天下 사람들이 바름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辰이라 한 것이다. 亢宿 8로부터 尾宿 4까지를 大火라 이른다. 일설에는 氐宿 5로부터 尾宿 9까지를 大火之次라 하니, 12방위의 卯方에 있다.
나라 高堂隆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옛날 장차 宮室을 경영하려 할 적에는 宗廟가 맨 먼저이고 居室이 그 다음이 되었습니다.注+〈“將營宮室……居室爲後”는〉 ≪禮記≫ 〈曲禮〉의 말이다.
이제 郊廟를 정하지 않았는데 거실을 높이 꾸며서 士民이 부역에 동원되어 생업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外人들이 모두 말하기를 ‘궁인(궁녀)들의 비용이 軍國의 물자와 대략 비슷하다.’라고 하니, 이 때문에 백성들이 국가의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여 모두 원망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注+는 동등함이다.
注+采椽”은 곧바로 채집해온 나무로 서까래를 만들어서 자르거나 다듬지 않은 것이다. 일설에는 “떡갈나무를 채취하여 만든다.” 한다. 玉臺瓊室夏癸(桀王)와 商辛(紂王)이 하늘을 한 것입니다.注+紂王瓊室을 만들어서 붉은 으로 꾸몄다. 桀王의 이름이고, 紂王의 이름이다.
이제 궁실이 너무 지나치게 성대하여 하늘의 彗星이 분명하게 나타났으니,注+은 밝음이다. 이는 바로
마땅히 효자가 공경하여 받드는 를 높여야 할 것이요,注+恭敬함이다. 소홀히 함이 있어서 하늘의 노여움을 더해서는 안 됩니다.”
魏主 曹叡가 기뻐하지 않으니, 侍中 盧毓(노육)이 나와서 아뢰기를注+은 음이 이다.은 들으니, 君主가 현명하면 신하가 정직하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聖王들은 행여 자신의 잘못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으니, 이것이 들이 高堂隆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였다. 이에 조예의 기뻐하지 않는 마음이 마침내 풀렸다. 노육은 盧植의 아들이다.
나라 司空 陳群하였다.
陳群前後에 걸쳐 여러 번 封事疏를 올렸으나 번번이 그 草稿를 없애니, 子弟들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였다.
혹자는 그가 지위에 있으면서 팔짱만 끼고 침묵했다고 비난하였는데,注+〈“居位拱黙”은〉 팔짱을 끼고 있을 뿐, 침묵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正始 연간에 이르러 詔令을 내려 名臣들의 奏議들을 하게 하니, 조정의 선비들은 그제야 진군이 한 일을 보고 모두 감탄하였다.注+正始”는 나라 邵陵厲公(曹芳)의 연호이다.
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資治通鑑≫에는 ‘’자 위에 ‘’자가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楊阜는 어찌 忠臣이 아니겠는가. 君主가 잘못을 저지르면 발끈하여 저촉하고 사람들과 말할 적에 일찍이 군주의 잘못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였다.注+는 말함이다.
이에 나는 답하기를 ‘仁者는 남을 사랑한다. 이것을 君主에게 베풀면 이라 하고, 이것을 어버이에게 베풀면 라 하니,
지금 人臣이 되어서 곧바로 君主의 잘못을 비방하여 그 을 전파하고 드날리니, 정직한 선비라고 이를 수는 있으나 忠臣이라고 할 수는 없다.
陳群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아서 하루 종일 談論함에 일찍이 군주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고, 글을 수십 번 올림에 외부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지 못했으니, 군자들이 이르기를 「진군은 이처럼 長者이다.」라고 했다.’ 하였다.”
나라에서 公卿들로 하여금 재주와 을 겸비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다.
】 이때 司馬㦤兗州刺史 王昶(왕창)으로 선발에 하니,注+丑兩이다. 왕창은 인품이 근신하고 후덕하여 그 형의 아들의 이름을 이라고 하고 이라 하고,
물건이 속히 이루어지면 빨리 없어지고, 늦게 성취하면 끝을 잘 마치니, 아침에 꽃이 피는 풀은 저녁이면 꽃이 떨어지고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무성함은 한겨울 추위에도 쇠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君子闕黨을 경계한 것이다.注+論語≫ 〈憲問〉에
능히 굽힘을 폄으로 삼고 사양함을 얻음으로 삼고 약함을 강함으로 삼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 훼방과 칭찬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근원이요 의 기틀이니,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남이 혹 자기를 훼방하거든 마땅히 물러가서 자신에게 찾아보아 만약 자신이 훼방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저 말이 합당한 것이요, 훼방할 만한 것이 없으면 저 말이 망령된 것이다.
합당하면 저 사람을 원망할 것이 없고 망령되면 내 몸에 해로울 것이 없으니, 또 어찌 보복할 것이 있겠는가. 속담에 이르기를 ‘추위를 이기는 것은 갖옷을 겹으로 입는 것만 못하고, 비방을 그치게 하는 것은 스스로 행실을 닦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좋다.”注+(거듭, 더)은 直龍이다.


역주
역주1 吳鑄大錢 : “‘大錢’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난한 것이다. 이때 大錢 하나가 500錢에 해당한다고 썼으니, 輕重의 알맞음을 잃은 것이다. 大錢을 쓴 것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는데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大錢을 쓴 것이 6번이다.[書大錢 何 譏也 於是書大錢 一當五百 失輕重之中矣 書大錢始此 終綱目 書大錢六]” ≪書法≫
역주2 帝如湔……旬日而還 : “무릇 ‘觀’이라고 쓴 것은 비난한 것이니, 열흘 만에 돌아왔다고 쓴 것은 매우 비난한 것이다. 이 때문에 桓帝가 馮石의 부서에 갔을 때에 ‘머물러 술 마시기를 열흘 동안 했다.’라고 썼고, 後主가 汶水를 구경하였을 적에 ‘열흘 만에 돌아왔다.‘라고 썼으니, 모두 비난한 가운데 비난한 것이다.[凡書觀 譏也 旬日而還 甚譏之也 是故桓帝之幸馮石府 書留飮十日 後主之觀汶水 至旬日而還 皆譏之譏也]” ≪書法≫
“魯나라 군주(隱公)가 棠邑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구경한 일을 ≪春秋≫에 특별히 써서 비난하였다. 丞相 諸葛亮이 卒한 지 이때 미처 두 해가 되지 못하였는데, 後帝(後主)의 하는 바가 이미 이와 같았다. ‘汶水를 구경하고 열흘 만에 돌아왔다.’라고 썼으면 그가 國政을 소홀히 하여 버리고 안일과 놀이에 멀리 종사하여 社稷의 重함을 소홀히 하고 귀와 눈의 욕심을 방종하게 하였는데, 당시 大臣 중에 또한 능히 諫하여 그치게 한 자가 없었으니, 그 惡과 그 잘못이 모두 直筆의 사이에 자세히 나타난다. 비록 벼랑을 타고 올라오는 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 나라를 오랫동안 보유할 수 있었겠는가.[觀魚于棠 春秋特筆以譏之 丞相亮卒 至是未及再期 而後帝所爲已若此 書觀汶水 旬日而還 則其慢棄國政 遠事逸遊 忽社稷之重 縱耳目之慾 而當時大臣 亦無能諫止 其惡其失 皆具見於直筆之間矣 雖無緣崖之寇 尙能久有其國乎]” ≪發明≫
역주3 다듬지……것이요 : ≪韓非子≫ 〈五蠹〉에 “堯임금이 천하에 왕 노릇 할 적에 띠풀을 엮어 이엉을 만들어서 지붕을 하되 처마 끝을 자르지 않았고 다듬지 않은 나무로 서까래를 만들었다.[堯之王天下也 茅茨不翦 采椽不斵]”라고 보이며, 大禹는 禹王을 높여 칭한 것으로 禹王이 궁실을 낮게 한 일은 ≪論語≫ 〈泰伯〉에 보인다. 皇風은 帝王의 훌륭한 敎化를 이른다.
역주4 慈父의……가르침입니다 : 慈父는 인자한 아버지로 하늘을 가리키는바, ‘간절한 가르침’이란 天災地變과 凶兆인 孛星이나 彗星의 출현을 이른다. 옛날에 천재지변과 별자리들의 나쁜 징조는 하늘이 군주의 잘못을 깨우치기 위하여 내리는 간절한 경계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의 경계에 조심하여 잘못을 고치는 제왕을 孝子에 비유하였다.
역주5 袁子 : 袁準으로 자는 孝尼로 魏晉時代 인물이다. 儒學에 뛰어나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三國志≫ 〈魏書 袁渙傳〉의 注에 인용된 ≪袁氏世紀≫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6 이름을……생각하여 : 黙은 침묵을 지켜 말이 적은 것이고, 沈은 침착한 것이고, 渾은 渾厚(厚德)한 것이고, 深은 속이 깊은 것이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7 闕黨의……자이다 : 闕黨은 孔子가 거처하던 곳을 이른다. ‘명령을 전달한다.’는 것은 孔子가 그 童子에게 심부름을 시켜 명령을 전달하게 한 것이다. 禮에 동자는 귀퉁이에 앉고 제자리에 버젓이 앉지 않으며, 어른과 길을 걸을 때에 뒤따라가서 어른과 나란히 가지 않아야 하는데, 이 동자는 속히 이루고자 하여 그렇게 하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11)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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