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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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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年(B.C. 208)
계사년(B.C. 208)
二年이라
[綱] 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2년이다.
楚懷王心元 趙王歇元 齊王田市元 燕王韓廣二 魏王豹元 韓王成元年이라
[目] 나라 회왕懷王 원년, 조왕趙王 조헐趙歇 원년, 제왕齊王 전시田市(전불) 원년, 연왕燕王 한광韓廣 2년, 위왕魏王 위표魏豹 원년, 한왕韓王 한성韓成 원년이다.
◯ 是歲 楚王勝趙王武臣齊王儋魏王咎 皆亡하니
이해에 초왕楚王 진승陳勝, 조왕趙王 무신武臣, 제왕齊王 전담田儋, 위왕魏王 위구魏咎가 모두 망하였다.
舊國이요 新國 凡六이라
오래된 나라가 하나이고, 새로 생긴 나라가 다섯이니 모두 여섯 나라이다.
冬十月 秦兵 圍沛公於豐이어늘 沛公 出戰破之하다
[綱] 겨울 10월에 나라 군사가 에서 패공沛公을 포위하자, 패공이 나가 싸워서 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沛公 旣破秦軍하고 令雍齒注+雍, 於容‧於用二切, 姓也. 齒, 其名. 守豐而之薛하니 齒降魏하다
[目] 패공沛公이 이미 나라 군대를 격파하고는, 옹치雍齒로 하여금 을 지키게 하고, 로 가니, 옹치가 나라에 항복하였다.注+어용於容어용於用이니, 성이다. 는 그의 이름이다.
十一月 章邯 追敗楚軍於澠池한대 周文 走死하다
[綱] 11월에 장한章邯(장함)이 민지澠池에서 나라 군사를 추격하여 패배시키자, 주문周文이 달아나다가 죽었다.
◑ 楚田臧 殺其假王吳廣하고 進與秦戰하야 敗死하다
[綱] 나라 전장田臧가왕假王오광吳廣을 살해한 다음, 나아가서 나라와 더불어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吳廣 圍滎陽한대
[目] 오광吳廣형양滎陽을 포위하자.
三川守李由拒之注+秦立三川郡, 初治洛陽, 後徙滎陽. 由, 斯之子也.하니 不能下러니
삼천三川의 군수인 이유李由가 항거하였는데,注+나라에서 삼천군三川郡을 세웠는데, 처음의 치소治所낙양洛陽이었으며, 뒤에 형양滎陽으로 옮겼다. 이유李由이사李斯의 아들이다. 오광이 이를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裨將田臧等 矯王令誅之하고 獻其首於王한대
그러자 비장으로 있던 전장田臧 등이 진왕陳王(진승陳勝)의 명령을 사칭하여 오광을 죽인 다음 그의 머리를 왕에게 바쳤다.
以臧으로 爲上將하야 西迎於秦軍이라가 戰死하다
왕이 전장을 상장으로 삼고서 서쪽으로 가서 나라 군사를 맞아 싸우게 하였는데, 전장이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趙將李良 弑其君武臣하다
[綱] 나라의 장수 이량李良이 그의 임금인 무신武臣을 시해하였다.
李良 已定常山하고 還報어늘 復使略太原한대
[目] 이량李良이 이미 상산常山을 평정하고서 돌아와 보고하자, 그로 하여금 다시 태원太原을 경략하게 하였다.
還請益兵이러니 道逢趙王姊하야
이량이 돌아와 군사를 더 주기를 요청하였는데, 오는 도중에 조왕趙王(무신武臣)의 누이를 만나게 되었다.
以爲王이라하야 伏謁道旁하니
이량이 그를 조왕이라고 여기고는 길가에 엎드려서 배알하였다.
王姊醉不知其將하고 使騎謝之한대
그러자 왕의 누이가 술에 취하여 이량이 장군인 줄 모르고, 기사를 시켜서 이량에게 감사를 표하게 하였다.
慙怒하야 殺王姊하고 遂襲邯鄲하야 殺趙王하다
그러자 조왕의 누이를 죽이고는 드디어 한단邯鄲을 습격하여 조왕을 죽였다.
趙人 多爲張耳陳餘耳目者 故二人 獨得脫하다
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장이張耳진여陳餘의 귀와 눈 노릇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들 두 사람만은 죽지 않고 달아날 수가 있었다.
秦嘉 起兵於郯注+秦, 姓也. 索隱曰 “郯, 音談. 東海郯縣, 古郯國也.”하다
[綱] 진가秦嘉에서 군사를 일으켰다.注+은 성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은 음이 이다. 동해군東海郡담현郯縣은 옛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 秦 益遣兵擊楚한대
[綱] 나라에서 더욱더 군사를 많이 보내어 나라를 공격하였다.
臘月 楚莊賈弑其君勝하야 以降於秦이러니
납월臘月(섣달)에 나라의 장가莊賈가 그 임금 진승陳勝을 죽이고 나라에 항복하였다.
呂臣 討賈殺之하고 復以陳爲楚하다
여신呂臣이 장가를 토벌하여 죽이고 다시 지역을 나라로 만들었다.
二世益遣長史司馬欣董翳하야 佐章邯擊楚柱國房君하야 殺之注+長史, 官名. 司馬, 姓, 欣, 名也. 項籍傳, 都尉董翳.하고
[目] 이세황제二世皇帝장사長史 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를 더 보내어 장한章邯을 도와 나라의 주국柱國을 공격하게 해서 그를 죽였다.注+장사長史는 관직 이름이다. 사마司馬는 성이고 은 이름이다. 《한서漢書》 〈항적전項籍傳〉에는 도위都尉 동예董翳라고 하였다.
又進擊張賀한대 賀死하다
그러고는 또다시 나아가 장하張賀를 공격하니, 장하가 패하여 죽었다.
臘月 楚王 至下城父하얀 其御莊賈殺之以降注+臘月, 建丑之月也. 曆家以運墓爲臘. 如漢火運, 火墓於戌, 故以大寒後戌日爲臘. 臘, 合也, 合祭諸神也. 又獵也, 以田獵所得禽獸祭. 夏曰淸祀, 殷曰嘉平, 周曰大蜡, 亦曰臘. 秦蓋改周臘而從殷之號. 父, 音甫. 師古曰 “下城父, 地名, 在沛郡城父縣東.” 莊, 姓也.하다
납월에 초왕楚王(진승陳勝)이 하성부下城父(하성보)에 이르렀는데, 그의 마부인 장가莊賈초왕楚王을 죽이고서 항복하였다.注+납월臘月이다. . 그러므로 대한大寒 뒤에 오는 술일戌日이라고 하였다. 은 합하는 것으로, 여러 들을 합하여 제사 지내는 것이며, 또 사냥하는 것으로, 사냥을 하여 잡은 짐승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청사淸祀라 하고, 나라에서는 가평嘉平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대사大蜡라고 하며, 또한 이라 하였다. . 는 음이 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하성부下城父는 지명으로, 패군沛郡 성부현城父縣(성보현)의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은 성이다.
故涓人呂臣 爲蒼頭軍起하야 攻陳殺賈하고 復以陳爲楚하고 葬勝於碭하고 諡曰隱王注+故, 舊也. 前爲此官而今不居者, 謂之故也. 蒼頭, 若赤眉之號, 以相識別也.이라하다
진승陳勝의 옛 시종관인 여신呂臣을 만들어 군사를 일으켜 땅을 공격해 장가를 죽이고, 다시 지역을 나라로 만들었으며, 진승을 땅에 장사 지내고 시호를 은왕隱王이라고 하였다.注+는 예전이라는 뜻이다. 전에 이 관직에 있었다가 지금은 그 관직에 있지 않은 것을 일러 라고 한다. 창두蒼頭적미赤眉의 호칭과 같은 것으로, 이런 모습을 하여 서로 식별한 것이다.
旣稱王 故人 皆往依之하고 妻之父 亦往焉이어늘
[目] 처음에 진승陳勝이 이미 왕이라고 칭하였을 적에 옛 친구들이 모두 가서 의지하였으며, 진승의 장인도 그를 찾아갔었다.
以衆賓待之하고 長揖不拜注+長揖者, 手自上而極下.한대
그때 진승이 그를 다른 손님들과 같은 예로 대우하여 길게 읍하기만 하고 절은 하지 않았다.注+장읍長揖(길게 읍하다)”은 손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끝까지 내리는 것이다.
妻之父 怒而去하다
그러자 장인이 노하여 떠나가 버렸다.
出入 愈益發舒하야 言勝故情이어늘
여러 빈객들이 출입을 하다가 진승과 더욱더 가깝게 지내어 편안해지게 되자, 진승의 옛날 일을 말하는 자가 있었다.
或曰 客愚無知하야 顓妄言輕威注+顓, 與專同. 輕威者, 言輕其爲君之威重也.로다 斬之하니
어떤 사람이 진승에게 “손님들이 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어서 제멋대로 망령된 말을 하여 왕의 위신을 가볍게 합니다.”注+(제멋대로 하다)은 과 같다. “경위輕威”는 임금이 된 사람의 중한 위엄을 경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니, 진승이 자신의 옛일을 말한 자를 참수하였다.
諸故人 皆引去러라
그러자 여러 친구들이 모두 몸을 거두어 떠나가 버렸다.
以朱防爲中正하고 胡武爲司過하야 主司群臣하야 以苛察爲忠하니
진승이 주방朱防중정中正으로 삼고 호무胡武사과司過로 삼아 여러 신하들을 감찰하게 하였는데, 이들은 가혹하게 감찰하는 것을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諸將 不親附하야 以及於敗注+中正‧司過, 皆官名. 苛, 音何, 細草也. 以喩煩雜也.하니라
이에 여러 장수들이 진승에게 친하게 붙지 않아서, 마침내 이로 인해 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注+중정中正사과司過는 모두 관직 이름이다. 는 음이 이니, 가느다란 풀이데, 이것으로 번잡함을 비유한다.
春正月 趙將張耳陳餘立趙歇爲王하다
[綱] 봄 정월에 나라의 장수 장이張耳진여陳餘조헐趙歇을 세워서 왕으로 삼았다.
張耳陳餘收散兵得數萬人하야 擊李良한대 敗走하다
[目] 장이張耳진여陳餘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수만 명을 얻어서 이량李良을 공격하였는데, 이량이 패하여 달아났다.
客有說之者曰 兩君 羇旅 難可獨立이니
어떤 빈객이 장이와 진여에게 유세하기를, “당신들 두 사람은 나그네일 뿐이니, 홀로 서서 왕이 되기는 어렵다.
立趙後하야 輔以誼하면 可就功注+誼, 與義同. 言求取六國時趙王後而立之, 以名義自輔助也. 就, 成也.이리라
그러니 나라 후손을 세워서 의리를 가지고 잘 보좌한다면 공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注+와 같으니, 육국六國 때의 조왕趙王의 후손을 찾아서 왕으로 세운 다음에 명분과 의리를 가지고 잘 돕는 것이다. 는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乃求得歇立之하야 居信都注+項羽改信都曰襄國. 漢復爲信都縣, 屬信都國. 後漢復曰襄國.하다
이에 조헐趙歇을 찾아서 그를 왕으로 세운 다음에 신도信都에 머물렀다.注+항우項羽신도信都를 고쳐서 양국襄國이라고 하였다. 나라 때 다시 신도현信都縣으로 만들어 신도국信都國에 소속시켰다. 후한後漢 때 다시 양국이라고 하였다.
秦嘉立景駒爲楚王하다
[綱] 진가秦嘉경구景駒를 세워서 초왕楚王으로 삼았다.
◑ 秦 攻陳下之한대
[綱] 나라가 지역을 쳐서 함락하였다.
呂臣 走得英布軍하야 還復取陳하다
여신呂臣이 달아나다가 영포英布의 군대를 만나 다시 돌아와서 지역을 취하였다.
六人也이라
九江王 英布九江王 英布
[目] 영포英布 땅 사람이다.
嘗坐法黥하야 論輸驪山注+布, 本姓英. 少時相云 “當刑而王.” 及壯, 坐法黥, 乃欣然曰 “幾是乎.” 因改姓黥, 以厭當之. 六, 春秋之六國也. 秦爲縣, 屬九江郡, 漢屬六安國. 論, 議法也. 輸者, 爲徒輸作也.하니
일찍이 법에 걸려 을 받고서 여산驪山으로 보내지게 되었다.注+경포黥布는 본래의 성이 인데, 젊은 시절에 관상을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형벌을 당하고서 왕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성함에 미쳐서 법에 연좌되어서 경형黥刑을 받게 되자 몹시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거의 맞아 들어간다.”라고 하고는, 이로 인하여 성을 으로 고쳤는데, 이는 남들이 싫어하는 것으로 성을 삼은 것이다. 은 춘추시대의 나라이다. 나라는 현으로 만들어 구강군九江郡에 소속시켰으며, 나라는 육안국六安國에 소속시켰다. 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는 형도로 만들어 보내서 노역시키는 것이다.
驪山之徒 數十萬人이라 布皆與其徒長豪傑 交通注+長, 知兩切.하야 迺亡之江中하야 爲群盜注+迺, 與乃同. 亡, 逃也. 之, 往也.러니
여산에 있는 형도刑徒의 수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는데, 영포는 그 형도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호걸 등과 서로 내통하고는,注+(우두머리)은 지량知兩이다. 마침내 그 무리들과 함께 양자강의 섬으로 도망쳐 가서 도적 떼가 되었다.注+(마침내)는 와 같다. 은 도망치는 것이다. 는 가는 것이다.
番陽令吳芮 甚得江湖間心하야 號曰番君注+春秋, 吳伐楚, 取番. 秦爲鄱陽縣, 屬九江, 漢屬豫章. 芮, 而銳切.이어늘 布往見之하니 其衆 已數千人이라
파양鄱陽의 현령인 오예吳芮강호江湖 사이에서 인심을 많이 얻어 번군番君(파군)이라고 불렸는데,注+춘추시대에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지역을 취하였다. 나라는 파양현鄱陽縣으로 만들어 구강九江에 소속시켰고, 나라는 예장豫章에 소속시켰다. 이예而銳이다. 영포가 가서 만나보니, 그 무리가 이미 수천 명이나 되었다.
番君 以女妻之하야 使將其兵擊秦하다
파군이 자신의 딸을 영포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영포로 하여금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치게 하였다.
沛公 得張良하야 以爲廏將하다
[綱] 패공沛公장량張良을 얻어서 으로 삼았다.
楚王景駒在留注+班志 “留縣, 屬楚國.”어늘 沛公 往從之할새
留侯 張良留侯 張良
[目] 초왕楚王 경구景駒 땅에 있었는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유현留縣초국楚國에 속한다.”고 하였다.패공沛公이 그를 찾아가 따랐다.
張良 亦聚少年百餘人하야 欲從駒라가 道遇沛公하야 遂屬焉한대
장량張良 역시 젊은 사람 100여 명을 모아서 경구를 따르려고 하였는데, 길을 가던 도중에 패공을 만나 드디어 패공의 휘하가 되었다.
以良爲廏將注+廏將, 官名, 蓋掌馬.하다
패공이 장량을 구장廏將으로 삼았다.注+구장廏將은 관직의 이름으로, 대개 말을 관장한다.
數以太公兵法으로說沛公注+數, 音朔. 太公兵法, 三卷. 說, 去聲.한대 善之하야 常用其策하더라
장량이 자주 태공太公의 병법을 가지고 패공에게 말하였는데,注+은 음이 이다. 은 3권으로 되어 있다. (설득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패공이 이를 좋게 여겨 항상 장량의 계책을 따라주었다.
與他人言 輒不省이라
장량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계책을 말하였을 때에는 그때마다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良曰沛公 殆天授라하고 遂從不去注+從, 去聲.하다
이에 장량이 말하기를, “패공은 아마도 하늘이 내려주신 듯하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패공을 따르고 떠나가지 않았다.注+(따르다)은 거성去聲이다.
駒使沛公으로 與秦交戰不利하고
[目] 경구景駒패공沛公으로 하여금 나라와 더불어 싸우게 하였는데,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攻碭拔之하야 得其兵六千人하니 與故合九千人이라
다시 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그곳에 있던 군사 6,000명을 얻었는데, 예전부터 데리고 있던 군사들과 합하니, 9,000명이나 되었다.
擊豐不下하다
다시 을 공략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項梁 擊楚王駒殺之하고
[綱] 항량項梁초왕楚王 경구景駒를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夏六月 立楚懷王孫心爲楚懷王하고 韓公子成爲韓王하다
여름 6월에 나라 회왕懷王의 손자인 을 세워 회왕懷王으로 삼았으며, 나라의 공자 한왕韓王으로 삼았다.
廣陵人召平 爲楚徇廣陵未下注+廣陵縣, 屬九江郡. 爲, 去聲.러니
[目] 광릉廣陵 사람 소평召平나라를 위하여 광릉廣陵을 경략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注+광릉현廣陵縣구강군九江郡에 속한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聞陳王敗하고 迺渡江하야 矯王令하야 拜項梁爲上柱國曰 江東 已定하니 急引兵西擊秦하라
진왕陳王(진승陳勝)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에 강을 건너간 다음, 왕의 명령을 사칭하여 항량項梁을 제수하여 상주국上柱國으로 삼고는 말하기를, “강동 지역은 이미 평정되었으니,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나라를 공격하라.”라고 하였다.
乃以八千人渡江而西하다
항량이 이에 8,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서 서쪽으로 갔다.
東陽少年 殺令하고 相聚得二萬人注+班志 “東陽縣, 屬臨淮郡.” 明帝分屬下邳, 後復分屬廣陵.이라 以故令史陳嬰 素謹信長者라하야 欲立以爲王注+漢儀注 “令吏曰令史, 丞吏曰丞史.”한대
[目] 동양東陽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동양현령東陽縣令을 살해하고는 서로 모여 있는 자들이 2만 명이나 되었는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양현東陽縣임회군臨淮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나라 명제明帝 때 나누어서 하비下邳에 속하게 하였으며, 뒤에 다시 나누어서 광릉廣陵에 속하게 하였다. 이들이 예전에 영사令史로 있던 진영陳嬰이 본래 근신謹信하는 장자長者라는 이유로, 그를 세워서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注+에 이르기를, “의 아전은 영사令史라 하고, 의 아전은 승사丞史라 한다.”라고 하였다.
嬰母曰 暴得大名 不祥注+暴, 猝也.이라
그러자 진영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갑작스럽게 큰 이름을 얻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注+은 갑자기라는 뜻이다.
不如有所屬이니 事成이면 猶得封侯 事敗라도 易以亡이니 非世所指名也니라
그러니 다른 사람의 휘하에 소속되는 것만 못하니, 그럴 경우 일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제후에 봉해질 수 있고, 일이 실패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乃謂軍吏曰 項氏 世世將家 有名於楚하니
진영이 이에 군리들에게 이르기를, “항씨項氏는 대대로 장군의 집안으로 나라 지역에 이름이 나 있다.
今欲擧大事인대 將非其人이면 不可注+言以不材之人爲將, 不可求勝也.
지금 대사를 거행하고자 한다면, 장차 이 사람이 아니면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注+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장수를 삼을 경우 승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我倚名族하면 亡秦 必矣리라 從之한대
우리들이 이름난 가문에 의지한다면, 반드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그 의견에 따랐다.
於是 嬰及英布蒲將軍 皆以兵屬梁하니 遂六七萬注+蒲, 姓也.이라
이에 진영陳嬰영포英布포장군蒲將軍이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항량項梁에게 소속되니, 군사의 숫자가 드디어 6, 7만 명이나 되었다.注+는 성이다.
梁曰 陳王首事戰不利하야 未聞所在注+首事, 謂最先起兵.어늘
항량이 말하기를, “진왕陳王(진승陳勝)이 가장 먼저 기병起兵하다가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여,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注+수사首事”는 가장 먼저 기병한 것을 이른다.
今秦嘉立景駒하니 大逆無道라하고
그런데 지금 진가秦嘉경구景駒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대역무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乃進擊殺嘉한대
그러고는 나아가서 진가를 쳐서 진가를 죽였다.
駒走死하다
경구는 달아나다가 죽었다.
至薛하니 沛公 往見之어늘 予兵하야
[目] 항량項梁에 이르렀을 때 패공沛公이 가서 만나보자, 항량이 패공에게 군병을 주었다.
還拔豐하고
이에 돌아와서 을 함락시켰다.
使項羽 攻襄城不下러니
항량이 또 항우項羽로 하여금 양성襄城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已拔 皆阬之하다
 范增 范增
그 뒤에 함락시키고 나서는 그 고을 사람들을 모두 땅에 파묻어 죽였다.
居鄛人范增 年七十好奇計注+鄛, 本作巢. 班志 “居巢縣, 屬廬江郡.”러니
[目] 거소居鄛 사람인 범증范增은 나이가 70세였으며, 기이한 계책을 쓰기를 좋아하였다.注+는 본래 로 되어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거소현居巢縣여강군廬江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往說梁曰 陳勝 敗固當注+言其計畫非是, 宜應敗也.이라
항량項梁을 찾아가서 유세하기를, “진승陳勝이 패망한 것은 참으로 당연합니다.注+그 계획이 옳지 않으므로 의당 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夫秦滅六國 楚最無罪하니
무릇 나라가 육국六國을 멸망시켰는데, 그 가운데 나라가 가장 죄가 없습니다.
自懷王入秦不反으로 楚人 憐之至今이라
회왕懷王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부터는 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를 가엽게 여기고 있습니다.
故楚南公曰 楚雖三戶 亡秦必楚注+故, 猶言所以也, 非謂故時之楚也. 南公, 南方之老, 六國時人. 謂楚人怨秦深, 但令有三戶在, 足以亡秦. 一說, 三戶, 地名. 南公識興廢之數, 知秦亡必於三戶, 故出言. 後項羽果渡三戶津, 破章邯軍, 邯降羽, 秦遂亡, 東濟因以爲地名, 恐是. 但於雖字, 文勢不順, 豈南公本指其地不欲顯言, 故爲疑似之語邪.라하니
그러므로 나라 이 말하기를, ‘나라가 비록 세 집만 남아 있더라도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반드시 나라일 것이다.’注+소이所以라는 말과 같으며, 옛날의 나라를 이르는 것은 아니다. 남공南公은 남쪽 지방에 사는 노인으로, 육국六國 시대의 사람이다. 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원망하는 것이 아주 깊어서 단지 세 집만 남아 있더라도 나라를 충분히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설一說에는, 삼호三戶는 지명이라고 한다. 남공南公흥성興盛하고 패망敗亡하는 운수를 잘 알아서 나라가 반드시 삼호三戶라는 곳에서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뒷날에 항우項羽가 과연 삼호진三戶津을 건너서 장한章邯의 군대를 격파하자, 장함이 항우에게 항복하여 나라가 드디어 망하였으며, 동제東濟가 이로 인하여 지명으로 삼았으니 아마도 이 설이 맞는 듯하다. 다만 자가 있어서 문세가 순하지 않으니, 이것은 어찌 남공南公이 본래 그 지명을 분명하게 가리켜 드러내놓고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비슷하게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今勝 首事하야 不立楚後而自立하니
지금 진승이 가장 먼저 기병起兵하고서 나라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자신이 서서 왕이 되었습니다.
其勢不長이라
이 때문에 그 형세가 길게 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今君 起江東 楚蠭起之將 皆爭附君者
지금 당신께서 강동江東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나라 지역에서 벌 떼처럼 일어난 여러 장수들이 모두 앞다투어 와서 당신에게 붙고 있습니다.
以君 世世楚將이라 爲能復立楚之後也注+蠭, 古蜂字. 蠭起, 如蠭之起, 言其衆也. 一說, 蠭, 與鋒同, 言鋒銳而起者. 爲, 去聲. 下爲人同.니라
이것은 당신 집안이 대대로 나라 장수를 지냈으므로, 능히 다시 나라 왕의 후손을 세워 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여겨서입니다.”注+자는 고자古字이다. “봉기蠭起”는 벌떼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많은 것을 이른다. 일설에 자는 자와 같은 뜻으로, 칼끝을 날카롭게 하여 일어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 구절에 나오는 ‘위인爲人’의 도 같다.라고 하였다.
然其言하야 乃求得懷王孫心於民間하니 爲人牧羊注+心, 名也.이어늘
항량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는, 마침내 초 회왕의 손자인 을 백성들 사이에서 찾아내었는데, 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양을 치고 있었다.注+은 이름이다.
六月 立以爲楚懷王하니 從民望也注+順民望, 以其祖諡爲號.
[目] 6월에 을 세워 나라 회왕懷王이라고 하니, 이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따른 것이었다.注+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따라서 그의 할아버지의 시호를 왕호로 삼은 것이다.
都盱眙하고 以陳嬰爲上柱國하고 自號武信君注+盱眙, 音吁怡. 班志 “盱眙縣屬臨淮郡.”하다
우이盱眙에 도읍하고, 진영陳嬰상주국上柱國으로 삼았으며, 항량項梁무신군武信君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注+우이盱眙는 음이 우이吁怡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우이현盱眙縣임회군臨淮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張良 說梁曰 君 已立楚後하니
장량張良이 항량에게 유세하여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이미 나라의 후손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韓諸公子 橫陽君成 最賢하니 可立爲王하야
나라의 여러 공자들 가운데 횡양군橫陽君 이 가장 어질어서 왕으로 세울 만합니다.
益樹黨이니라 從之하야
그러니 이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 우리 편을 더욱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하니, 항량이 그 말에 따랐다.
立爲韓王하고 以良爲司徒하야 西略韓地하고 往來爲游兵潁川注+潁川, 故韓地, 秦置郡.하다
이에 을 세워서 한왕韓王으로 삼고, 장량을 사도司徒로 삼아, 서쪽으로 가 나라 지역을 경략하게 하였으며, 이리저리 오가면서 영천潁川에서 유격병 역할을 하게 하였다.注+영천潁川은 옛 나라의 땅이며, 나라 때에 군을 두었다.
章邯 擊魏한대
[綱] 장한章邯나라를 공격하였다.
齊楚救之라가 齊王儋魏相巿 敗死하고 魏王咎 自殺하다
나라와 나라가 구원하다가 제왕齊王 전담田儋나라 정승 주불周巿은 패하여 죽고, 위왕魏王 위구魏咎는 자살하였다.
章邯 擊魏王於臨濟注+後漢志 “陳留郡平丘縣有臨濟亭.”한대 魏使周市 求救於齊楚하니
[目] 장한章邯위왕魏王임제臨濟에서 공격하였는데,注+후한서後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진류군陳留郡 평구현平丘縣임제정臨濟亭이 있다.”고 하였다.나라에서 주불周巿을 사신으로 보내어 나라와 나라에 구원해주기를 요청하였다.
齊王及楚將項 皆將兵隨市救魏注+它, 與他同. 項羽從兄之子.러니
이에 제왕齊王나라 장수 항타項它가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주불을 따라와서 나라를 구원하였다.注+와 같은 글자이다. 항우項羽의 종형의 아들이다.
章邯 夜銜枚하야 擊大破之하고 殺齊王及周市注+枚, 狀如箸, 橫衘之, 結紐而繞項, 所以止言語讙囂, 欲令敵人不知其來也.한대
그러자 장함이 한밤중에 를 하고 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제왕齊王 및 주불을 살해하였다.注+는 모양이 젓가락과 같다. 이를 가로로 입에 물린 다음 끈으로 묶어 목에 붙잡아 맨다. 이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여 적들로 하여금 다가가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魏王 爲其民約降이러니 約定 自燒殺하니
위왕魏王은 백성들을 위하여 항복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약속이 정해지자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其弟豹亡走楚注+豹, 咎從弟.어늘 楚予兵하야 復徇魏地하다
위왕魏王의 동생 위표魏豹나라로 도망해오자,注+위왕魏王 의 사촌 동생이다.나라에서는 그에게 군사를 주어, 나라 지역을 다시 경략하게 하였다.
齊人 立田假爲王하다
[綱] 나라 사람들이 전가田假를 세워서 왕으로 삼았다.
王建 弟也
[目] 전가田假제왕齊王 전건田建의 동생이다.
齊人 立以爲王而以田角田間으로 爲將相注+間, 角弟也. 角爲相, 間爲將.하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세워서 왕으로 삼고, 전각田角전간田間을 장수와 정승으로 삼았다.注+의 동생이다. 은 정승이 되고, 은 장수가 되었다.
秋七月 大霖雨注+霖, 音林, 雨三日以往爲霖.하다
[綱] 가을 7월에 장맛비가 크게 내렸다.注+은 음이 이니, 비가 3일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내리는 것을 이라고 한다.
◑ 齊王儋 弟榮 逐王假하고 立儋子巿하야 爲王而相之하다
[綱] 제왕齊王 전담田儋의 동생인 전영田榮이 새로 왕이 된 전가田假를 축출한 다음, 전담의 아들 전불田巿을 세워서 왕으로 삼고는,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 秦 下右丞相馮去疾左丞相李斯吏한대 去疾 自殺이어늘 要斬斯하야 夷三族하고
[綱] 나라가 우승상 풍거질馮去疾과 좌승상 이사李斯를 옥리에게 회부시켰는데, 풍거질은 자살하고, 이사는 허리가 잘리고 삼족이 멸족되었다.
以趙高爲中丞相하다
조고趙高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다.
二世數誚讓左丞相李斯호대 居三公位하야 如何令盜如此注+數, 音朔. 誚, 在肖切, 責也. 秦以丞相‧太尉‧御史大夫爲三公. 斯恐懼호대
[目]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자주 좌승상 이사李斯를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삼공三公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어찌하여 도적들로 하여금 이렇게 설치도록 내버려두는가?”注+은 음이 이다. 재초在肖이니, 꾸짖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승상丞相태위太尉어사대부御史大夫삼공三公이라 하였다.라고 하니, 이사가 두려워하였다.
重爵祿注+重, 愛惜也.하야 乃阿二世意하야 以書對曰 夫賢主者 必能行督責之術者也注+督, 察也. 督責, 察其罪, 責之以刑罰也.
그러면서도 작록爵祿을 중하게 여겨서注+은 아깝게 여기는 것이다. 이세황제의 뜻에 아부하여 글을 올려 대답하기를, “어진 군주는 반드시 독책督責하는 방도를 잘 행하는 법입니다.注+은 살피는 것이다. “독책督責”은 그 죄를 살펴서 형벌로써 꾸짖는 것이다.
故申子曰注+申子, 名不害. 有天下而不恣睢 命之曰 以天下 爲桎梏注+恣, 資二切. 睢, 呼季切. 恣睢, 謂肆情縱恣也. 桎, 音質. 梏, 古沃切. 桎梏, 械也. 在足曰桎, 在手曰梏.이라하니
그러므로 가 말하기를,注+신자申子는 이름이 불해不害이다.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것을 보고 천하로 질곡桎梏을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注+자이資二이다. 호계呼季이다. “자휴恣睢”는 제멋대로 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이다. (수갑)은 음이 이다. (차꼬)은 고옥古沃이다. “질곡桎梏”은 형구이다. 발에 채우는 것을 이라 하고, 손에 채우는 것을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夫不能行督責之術하야 專以天下自適注+適, 樂也.하고 而徒勞形苦神하야 以身徇百姓 若堯禹然이면 則是黔首之役이요 非畜天下者也
무릇 독책하는 방도를 행하여 천하를 가지고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注+은 즐기는 것이다. 한갓 형신形神을 수고롭히면서 자신의 몸을 백성을 위해서 바치기를 임금이나 임금처럼 한다면, 이것은 일반 백성의 일을 하는 것이지, 천하 사람들을 양육하는 천자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故謂之桎梏也
그러므로 그것을 일러 질곡桎梏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惟明主라야 能行督責하야 以獨斷於上則權不在臣下
오직 밝은 임금만이 능히 독책을 행하여 위에서 독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권한이 신하들에게 있지 않게 됩니다.
然後 能滅仁義之塗하며 絶諫說之辯하야 犖然行恣睢之心而莫之敢逆注+犖, 力角切, 卓犖超絶也.이니
그런 다음에야 능히 인의仁義의 도를 없앨 수 있고, 간하는 말을 끊을 수 있어서, 드러내놓고 자신의 뜻대로 다 행하더라도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게 될 것입니다.注+역각力角이니, 탁월하여 아주 뛰어난 것이다.
如此 群臣百姓 救過不給이어니 何變之敢圖리오
이와 같다면 뭇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에서 벗어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어찌 감히 변란을 도모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二世說하야
그러자 이세황제가 기뻐하였다.
於是 行督責益嚴하야 稅民深者爲明吏하고 殺人衆者爲忠臣하니
이에 독책을 더욱더 엄하게 행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는 자는 현명한 관리가 되고, 사람을 죽이기를 많이 한 자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었다.
刑者相半於道而死人 日成積於市
형벌을 받은 자가 길을 가는 사람 중에 반이나 되었으며, 죽은 사람의 시신이 날마다 저잣거리에 쌓였다.
秦民 益駭懼思亂하더라
그러자 나라 백성들이 더욱더 놀라고 두려워하여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郞中令趙高恃恩專恣하야 多以私怨殺人注+班表 “郞中令, 秦官, 掌宮殿掖門戶.” 臣瓚曰 “主郞內諸臣, 故曰郞中令.”이라 恐大臣 言之하야
[目] 낭중령郞中令 조고趙高이세황제二世皇帝의 은총을 믿고 제멋대로 굴면서 사적인 원한을 가지고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데,注+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낭중령郞中令나라의 관직 이름으로, 궁전의 액문掖門을 관장한다.”고 하였다. 은 말하기를, “행랑 안의 여러 신하들을 관장하므로 낭중령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신들이 그런 사실을 이세황제에게 말할까 봐 두려워하였다.
乃說二世曰 天子所以貴者 但以聞聲이요 群臣 莫得見其面也어늘
이에 이세황제를 꾀여서 말하기를, “천자가 귀한 까닭은, 단지 음성만을 들을 수 있고, 여러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今坐朝廷하야 譴擧有不當이면 則見短於大臣하리니 非所以示神明於天下也注+譴, 讁也. 譴擧, 猶言出陟. 當, 去聲. 見, 賢遍切.
그런데 지금 조정에 앉아서 사람을 올려주거나 내칠 적에 마땅치 않은 점이 있으면, 이것은 대신들에게 단점을 보이는 것으로, 천하에 신명함을 보이는 방도가 아닙니다.注+은 귀양 보내는 것이다. “견거譴擧”는 내쫓거나 올려주는 것이다. (마땅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보이다)은 현편賢遍이다.
不如深拱禁中하야 與臣及侍中習法者 待事하야 事來 有以揆之
그러니 금중禁中에 깊이 앉아 팔짱을 끼고서 저나 으로 법률에 익숙한 자들과 함께 일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이 올라온 뒤에 이를 헤아리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則大臣 不敢奏疑事하고 天下稱聖主矣注+斂手曰拱. 禁中者, 門戶有禁. 非侍御者, 不得入, 故曰禁中. 秦制, 侍中‧左右曹諸吏‧散騎‧中常侍皆加官, 所加, 或列侯‧卿大夫‧將軍‧將都尉‧尙書‧太醫‧太官令至郞中, 無員, 多至數十人. 侍中‧中常侍得入禁中. 揆, 求癸切, 度也.리이다
그럴 경우 대신은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아뢰지 못할 것이고, 천하 사람들은 모두 거룩한 황제라고 칭할 것입니다.”注+두 손을 마주잡고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이라고 한다. 금중禁中이란 것은 문호門戶금법禁法이 있는 것으로,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으므로 금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라의 제도에 시중侍中, 좌우조제리左右曹諸吏, 산기散騎, 중상시中常侍는 모두 을 하는데, 가관을 하는 바는 혹 열후列侯, 경대부卿大夫, 장군將軍, 장도위將都尉, 상서尙書, 태의太醫, 태관령太官令에서 혹 낭중郞中에 이르기까지로, 정원이 없으며, 많을 경우에는 수십 명이 되기도 한다. 시중侍中중상시中常侍는 금중에 들어갈 수가 있다. 구계求癸이니,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二世乃不坐朝廷하고 事皆決於高어늘
이세황제가 이에 조정에 앉아 있지 않고 〈금중禁中에 거하여〉 모든 일이 조고에 의해 결정되었다.
李斯以爲言한대 高乃見斯曰 關東群盜多而上 益發繇하야 治阿房宮注+繇, 與徭通. 發徭, 發興徭役也.하니
[目] 이사李斯가 어떤 일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조고趙高가 이사를 보고 말하기를, “함곡관函谷關의 동쪽 지역에 도적 떼가 많이 일어나는데도 황상皇上께서는 더욱더 요역을 일으켜 아방궁阿房宮을 짓고 계십니다.注+와 통용한다. “발요發徭”는 요역을 일으키는 것이다.
欲諫호대 爲位賤注+爲, 去聲. 下不爲同.이라
신이 이에 대해서 간하고 싶어도 지위가 낮기 때문에 간할 수가 없습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 도 같다.
此眞君侯之事
이것은 참으로 군후君侯(이사李斯)의 일입니다.
君何不諫 斯曰 上 居深宮하시니 欲見無間注+見, 行練切. 間, 居莧切, 隙也. 又讀曰閑, 餘暇也.이로다 高曰 請候上間하야 語君호리라
그런데 군후께서는 어찌하여 간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이사가 말하기를, “황상께서 깊은 궁궐 안에만 계시어서 뵙고자 해도 뵐 틈이 없습니다.”注+(뵈다)은 행련行練이다. 거현居莧이니, 틈이라는 뜻이다. 또한 으로 읽는데, 여가를 말한다.라고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황상께서 한가하실 때를 살펴서 당신에게 말해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於是 侍二世方燕樂婦女居前하야 使人告斯호대 可奏事矣라한대
이에 조고는 이세황제二世皇帝가 한창 잔치를 베풀어서 아녀자들이 앞에 잔뜩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사람을 시켜 이사에게 ‘일을 아뢰어도 괜찮겠다.’고 말해주었다.
斯至하야 上謁하니 如此者三이라 二世怒어늘
이사가 이르러서 황상을 배알하겠다는 말을 올렸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차례나 하였으므로, 이세황제가 노하였다.
高因曰 沙丘之謀 丞相 與焉이러니
조고가 이로 인하여 이세황제에게 아뢰기를, “사구沙丘의 모의에 승상이 참여하였습니다.
今陛下爲帝而丞相 貴不益하니 其意亦望裂地而王矣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황제가 되었으나, 승상의 귀함은 더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그 뜻은 역시 땅을 나누어 차지해서 왕 노릇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且其長男由守三川하니 楚盜皆其傍縣子
그리고 그의 장남인 이유李由삼천三川의 군수로 있는데, 지방에서 일어난 도적들이 모두 그의 이웃 고을에 살던 자들입니다.
以故 公行過三川注+傍縣, 近縣也. 李斯, 汝南上蔡人. 陳勝, 潁川陽城人. 汝南潁川相近也.하니 聞其文書相往來로대
이 때문에 도적들이 공공연히 삼천 지역을 지나다니고 있으며,注+방현傍縣”은 가까운 현이다. 이사李斯여남현汝南縣 상채上蔡 사람이고, 진승陳勝영천현潁川縣 양성陽城 사람인데, 여남汝南영천潁川은 서로 가깝다. 그들이 서로 문서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未得其審이라 故未敢以聞이로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 때문에, 감히 자세하게 아뢰지는 못하겠습니다.
且丞相 居外하야 權重於陛下니이다
그리고 승상은 바깥에 살고 있기 때문에 권한이 폐하보다도 더 중합니다.”라고 하였다.
二世乃使人按驗三川守與盜通狀注+案, 通作按, 考也, 驗也.한대
이세황제가 이에 사람을 시켜서 삼천의 군수가 도적들과 내통한 정상을 조사해보게 하였다.注+과 통용해서 쓰이니, 살펴보는 것이고, 시험해보는 것이다.
斯聞之하고 乃上書言高罪어늘 二世曰 趙君爲人 精廉彊力하야 下知人情하며 上能適朕하니 朕實賢之어늘
[目] 이사李斯가 그 소식을 듣고는 글을 올려 조고趙高의 죄에 대해 말하니,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말하기를, “조고는 사람됨이 아주 깨끗하고 힘이 있으며, 아래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고, 위로는 짐의 뜻을 능히 맞추어, 짐이 실로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다.
而君 疑之 何也
그런데 그대가 의심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且朕 非屬趙君이요 當誰任哉注+屬, 音燭, 委也. 下同.리오
그리고 짐이 조고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일을 맡기겠는가?”注+은 음이 이니, 맡기는 것이다. 아래 도 같다.라고 하였다.
斯又與右丞相馮去疾將軍馮劫으로 進諫曰 群盜竝起 皆以戍漕轉作 事苦하고 賦稅大也注+戍, 征戍也. 漕, 水運也. 轉, 陸運也. 作, 役作也. 事苦, 言其事勞苦也.
이사가 또 우승상 풍거질馮去疾과 장군 풍겁馮劫과 함께 나아가서 간하여 아뢰기를, “뭇 도적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모두가 수자리를 서고 조운漕運을 하고 전운轉運을 함에 있어서 일이 괴롭고 부세가 많기 때문입니다.注+는 정벌하는 것이다. 는 수로로 운반하는 것이고, 은 육로로 운반하는 것이다. 은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고事苦는 그 일이 수고롭고 괴로움을 말한다.
請且止阿房宮作者하고 減四邊戍轉하소서 二世曰 君 不能禁盜하고 又欲罷先帝所爲하니 是上無以報先帝 次不爲朕盡忠力이니
바라건대 아방궁阿房宮을 짓는 것을 중지하고, 사방 변경 지역에서 수자리를 사는 것과 전운을 하는 것을 줄이소서.”라고 하니, 이세황제가 말하기를, “그대가 도적들을 금지하지 못하고 또 선제께서 하시던 일을 파하고자 하니, 이것은 위로는 선제에게 보답할 뜻이 없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짐을 위해 충성과 힘을 다 바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何以在位리오
그러니 어찌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下吏按罪한대
그러고는 옥리에게 회부하여 죄를 따지게 하였다.
去疾劫 自殺하고 自負其辯하고 有功無反心하야 乃就獄注+負, 恃也.이어늘
그러자 풍거질과 풍겁은 자살하였으나, 이사는 스스로 자신의 말주변에 대해 자부하였으며, 공은 있고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하여, 옥으로 나아갔다.注+는 믿는 것이다.
二世屬高治之한대 責與由反狀하야 收捕宗族賓客하야 搒掠千餘하니
[目] 이세황제二世皇帝조고趙高에게 맡겨 이사李斯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조고는 이사가 이유李由와 더불어 모반한 상황을 들어 따지면서, 종족과 빈객들을 체포하여 1천 번이 넘도록 고문하였다.
斯自誣服하고
그러자 이사가 스스로 무복誣服하였다.
而從獄中上書하야 自陳前功하야 幸二世寤而赦之注+搒掠, 音彭亮, 謂篣擊而考問之也. 搒, 通作篣, 亦作榜. 自誣服, 謂自誣以反而服其罪也.러니
그러고는 옥중에서 글을 올려 전에 세운 공에 대해 스스로 진술하여, 이세황제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면해주기를 바랐다.注+방략搒掠”은 음이 팽량彭亮(방량)이며, 볼기를 치면서 고문하는 것이다. (볼기를 치다)은 과 통용하여 쓰이며, 또 으로도 쓰인다. “자무복自誣服”은 사실과는 반대로 스스로를 속이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다.
高使棄去不奏하고
그러나 조고가 관리를 시켜 이를 폐기해버리고 상주하지 못하게 하였다.
又使其客十餘輩 詐爲御史謁者侍中하야 更往來覆訊斯하야
그러고는 또 그의 문객 10여 명을 시켜서 거짓으로 어사와 알자와 시중 등이 되어 번갈아 오가면서 이사를 반복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斯更以實對어든 輒復搒之注+更, 平聲. 覆, 敷伏切, 審也. 訊, 音信, 問也.러니
그런데 이사가 다시 사실대로 대답하면, 그때마다 문득 볼기를 쳤다.注+(번갈아)은 평성平聲이다. 부복敷伏이니, 상세히 조사하는 것이다. 은 음이 이니, 캐묻는 것이다.
後二世使人驗斯한대 斯以爲如前이라하야 終不敢更言하고
그 뒤에 이세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이사를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사는 전과 같이 사실대로 답하면 매질을 할 것이라고 여겨, 끝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所使案三川守由者至則楚兵 已擊殺之矣
[目] 삼천三川 군수郡守 이유李由를 조사하러 간 사람이 그곳에 도착하였으나, 나라 군사가 이미 이유를 공격하여 죽인 뒤였다.
高皆妄爲反辭以相傅하야 遂具斯五刑論하야 要斬咸陽市注+傅, 音附, 相傅會也. 以辭語牽合曰傅會. 秦法, 當三族者, 皆先黥劓, 斬左右趾, 笞殺之, 梟其首, 葅其骨肉於市. 其誹謗詈詛者, 又先斷舌, 故謂之具五刑.하니
그러자 조고趙高가 모두 ‘망령되이 반란을 하였다.’는 말로 서로 부회하여, 드디어 이사李斯에 대해 을 갖추어 논하여, 함양咸陽의 저잣거리에서 허리를 잘랐다.注+는 음이 이니, 서로 부회傅會하는 것인데, 말로 끌어다가 합치는 것을 부회라고 한다. 나라의 법에 있어서 삼족을 멸족시키는 데 해당하는 경우에는 모두 먼저 자자刺字를 하고, 코를 베며, 좌우의 발꿈치를 자르고, 매질을 하여 죽이며, 그 목을 효수하고 그 뼈와 살을 시장에서 젓으로 담근다. 그리고 비방을 하거나 원망을 한 자는 또 먼저 혀를 자른다. 그러므로 오형五刑을 갖춘다고 한 것이다.
斯顧謂其中子曰注+中, 讀曰仲. 吾欲與若으로 復牽黃犬하야 俱出上蔡東門하야 逐狡兎인들 豈可得乎注+若, 汝也.리오
이사가 그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注+(가운데)은 으로 읽는다.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런 사냥개를 끌고 상채上蔡의 동쪽 문으로 나가서 날랜 토끼를 쫓고 싶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注+은 너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遂父子相哭而夷三族하다
그러고는 드디어 부자父子가 함께 통곡하였으며, 삼족이 멸족되었다.
二世乃以高 爲中丞相하야 事皆決焉注+諸官加中者, 多閹人也.하더라
이세황제가 이에 조고를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모든 일을 결정하게 하였다.注+여러 관직 가운데 앞에 자를 붙인 것은 대부분 환관이다.
章邯 擊破楚軍於定陶한대 項梁하다
[綱] 장한章邯나라 군대를 정도定陶에서 격파하였는데, 항량項梁이 죽었다.
項梁 再破秦軍하고 益輕秦有驕色注+通鑑 “項梁已破章邯於東阿, 引兵西, 比至定陶, 再破秦軍.”이어늘
[目]
.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이르기를, “항량項梁이 이미 동아東阿에서 장한章邯을 격파하고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와서 정도定陶에 이르러 재차 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라고 하였다.
宋義諫曰 戰勝而將驕卒惰者
이에 송의宋義가 간하여 말하기를, “전투에 이겼다고 하더라도 장수가 교만해지고 사졸이 나태해질 경우에는
하나니
패하는 법입니다.
今卒 少惰矣 秦兵 日益하니 爲君畏之하노라 弗聽이러니
지금 병졸들이 조금 나태해졌는데, 나라의 군사는 날로 불어나고 있으니, 신은 그대를 위하여 이를 두려워합니다.”라고 하였으나, 항량이 듣지 않았다.
二世悉起兵益章邯하야 擊楚軍大破之定陶한대어늘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모든 군사를 일으켜 장한章邯에게 주어 나라 군대를 치게 해서 정도定陶에서 크게 격파하였는데, 이때 항량이 죽었다.
懷王 徙都彭城하고 幷項羽呂臣軍하야 自將之하고
회왕懷王팽성彭城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항우項羽여신呂臣의 군사를 아울러서 직접 거느렸다.
號羽爲魯公하다
그러고는 항우項羽노공魯公이라고 호칭하였다.
楚立魏豹爲魏王하다
[綱] 나라에서 위표魏豹를 세워서 위왕魏王으로 삼았다.
◑ 章邯 擊趙하야 圍趙王於鉅鹿이어늘
[綱] 장한章邯나라를 쳐서 거록鉅鹿에서 조왕趙王을 포위하였다.
楚以宋義 爲上將軍하야 救之하다
그러자 나라가 송의宋義를 상장군으로 삼아 나라를 구원하였다.
章邯 以楚地兵 不足憂라하야 乃北擊趙하야 破邯鄲한대
[目] 장한章邯나라에 있는 군사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겨, 이에 북쪽으로 가서 나라를 공격하여 한단邯鄲을 격파하였다.
張耳以趙王으로 走鉅鹿이어늘 王離圍之注+秦, 滅趙, 置鉅鹿郡. 離, 翦之孫也.하다
장이張耳조왕趙王과 함께 거록鉅鹿으로 달아나자, 나라 장수 왕리王離가 이를 포위하였다.注+나라에서 나라를 멸망시키고 거록군鉅鹿郡을 두었다. 왕리王離왕전王翦의 손자이다.
陳餘北收兵得數萬人하야 軍其北하고 章邯 軍其南이러라
진여陳餘가 북쪽으로 가 군사를 거두어 모아 수만 명의 군사를 얻어 거록성鉅鹿城의 북쪽에 진을 치고, 장함은 그 남쪽에 진을 쳤다.
趙數請救於楚한대
나라에서 자주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구원해주기를 요청하였다.
楚王 聞宋義先策武信君必敗注+策, 料也. 武信君, 項梁也.하고 召與計事하고 大說之하야
나라 왕은 송의宋義무신군武信君(항량項梁)이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내었다는 말을 듣고는,注+은 헤아리는 것이다. 무신군武信君항량項梁이다. 그를 불러다가 함께 일을 헤아려보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因以爲上將軍하고 項羽 爲次將하고 范增으로 爲末將하야 以救趙할새
그러고는 인하여 송의宋義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항우項羽차장次將으로 삼았으며, 범증范增말장末將으로 삼아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義號 卿子冠軍이라하야 諸別將 皆屬焉注+卿子, 時相褒尊之稱, 猶言公子也. 一說 “卿者, 大夫之號. 子者, 子男之爵.” 冠, 古玩切. 冠軍, 言其在諸軍之上.하다
송의를 이라고 불렀으며, 여러 별장들은 모두 그 휘하에 속하였다.注+경자卿子”는 당시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 기리고 높이는 칭호로, 공자公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설에 “이라는 것은 대부大夫의 호칭이고, 라는 것은 자남子男의 작위이다.”라고도 하였다. (으뜸)은 고완古玩이다. “관군冠軍”이라는 것은 그가 여러 군대의 위에 있음을 말한다.
◑ 楚遣沛公伐秦하다
[綱] 나라에서 패공沛公을 보내어 나라를 정벌하였다.
楚懷王 與諸將約호대 先入定關中者 王之니라
[目] 처음에 나라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먼저 관중關中으로 들어가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是時 秦兵 尙彊하니 諸將 莫利先入關注+莫利, 不以入關爲利.호대
이때에는 나라 군사들이 아직도 강성하여, 여러 장수들이 먼저 함곡관函谷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롭지 않게 여겼다.注+막리莫利”는 관중關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獨項羽怨秦奮勢하야 願與沛公西注+怨秦, 謂怨秦之殺項梁也. 奮, 憤激也.어늘
그런데 유독 항우項羽만은 나라를 원망하여 기세를 떨쳐 일어나, 패공沛公과 함께 서쪽으로 가기를 원하였다.注+원진怨秦”은 나라가 항량項梁을 죽인 것을 원망하는 것을 이른다. 은 분격하는 것이다.
諸老將曰 羽慓悍猾賊注+慓, 與僄剽同, 疾也, 輕也. 悍, 勇也. 猾, 狡. 賊, 殘害也.하야
그러자 여러 노장老將들이 말하기를, “항우는 드세고 사나우며 교활하고 잔인합니다.注+와 같은 뜻으로, 빠른 것이고 가벼운 것이다. 은 용감한 것이다. 은 교활한 것이다. 은 잔악하게 해치는 것이다.
嘗攻襄城 襄城 無遺類하고 所過 無不殘滅하며
일찍이 양성襄城을 공격하였을 적에는 양성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게 하였으며,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쓸어버리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且楚數進取皆敗注+數進取, 言多所攻取.하니
그리고 나라에서 나라를 자주 공략하여 취한 바가 많았으나,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注+수진취數進取”는 공략하여 취한 바가 많다는 말이다.
不如更遣長者하야 扶義而西注+更, 改也. 長者, 長厚之人, 不嗜殺者. 扶義, 猶言杖義也.하야 告喩秦父兄이니
그러니 다시 장자長者를 보내어 의를 앞세우고 서쪽으로 나아가,注+은 고치는 것이다. 장자長者는 나이가 많고 후덕한 사람으로,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부의扶義(의를 앞세우다.)”는 장의杖義(의를 주장하다.)와 같다.나라의 부형들에게 유시하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秦父兄 苦其主久矣
나라의 부형들이 그들의 임금을 괴롭게 여긴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今誠得長者往하야 無侵暴하면 宜可下
지금 참으로 장자를 얻어 그곳으로 가게 하여, 난폭하게 침략하지 않으면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羽不可遣이요
그러니 항우項羽를 보내서는 안 됩니다.
獨沛公 素寬大長者 可遣이니이다
오직 패공沛公만이 본래 관대한 장자이니, 그를 보내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다.
乃遣沛公하야 收陳王項梁散卒하야 以伐秦하다
나라 왕이 이에 패공沛公을 보내어 진왕陳王항량項梁의 휘하에 있다가 흩어진 병졸들을 수습하여, 그들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이량이……노하여 : 《資治通鑑》에 “이량은 본래 귀한 신분인데, 왕의 누이에게 배알하고 일어나서 그 시종관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자, 시종관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천하가 秦나라를 배반하니, 현능한 사람들이 앞서서 자립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趙王은 본래 장군의 아래에서 나왔고, 이제 저 여자가 장군을 위해 수레에서 내려오지도 않으니 쫓아가서 죽이십시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2 房君 : 145쪽 역주 80) 참조.
역주3 蒼頭軍 : 머리에 푸른색 수건을 두른 군사를 말한다.
역주4 建丑月 : 臘月은 12월인데 建丑月이라 한 것은 建寅月을 歲首(1월)로 하는 夏나라 역법의 12월이라는 뜻이다. 秦나라는 建亥月을 歲首로 정하였으므로 납월은 建戌月이 된다. 따라서 秦나라의 1월과 12월은 夏나라 역법으로는 각각 10월과 9월에 해당한다.
역주5 曆家에서는……같다 : 運은 五行의 五運이고 墓는 終이나 衰의 의미이므로 運의 墓는 運이 다하거나 쇠한다는 것이다. 王者는 각각 해당하는 五行의 盛日을 祖日, 墓日을 臘日로 삼았다. 그러므로 水는 申에서 始하여 子에서 盛하고 辰에서 墓하므로 水行의 임금은 子祖와 辰臘으로 정하였고, 火는 寅에서 始하여 午에서 盛하고 戌에서 墓하므로 火行의 임금은 午祖와 戌臘으로 정하였다. 漢나라는 火德이므로 火가 戌에서 衰하므로 戌을 臘으로 삼은 것이다. 魏나라는 土德이므로 辰을 臘으로, 晉나라는 金德이므로 丑을 臘으로 삼았다. 《五洲衍文長箋散稿 天地篇 天文類 節候 寒食春秋二社伏臘辨證說》‧《後漢書 五禮儀志 高堂隆의 註》
역주6 秦나라에서는……따랐다 : 《史記》 〈秦始皇本紀〉에 “31년 12월 臘의 명칭을 고쳐 嘉平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7 黥刑 : 얼굴에 刺字를 하는 형벌이다.
역주8 廏將(구장) : 마구간을 관리하는 장수라는 뜻으로, 말을 관리하는 장수를 말한다.
역주9 太公兵法 : 《通鑑釋義》에 “太公은 姓이 姜이고 이름이 牙이니, 아마도 牙는 본래 字이고 尙이 이름인 듯하다. 그 선조가 呂 땅에 봉해지니 그 封地를 따랐기 때문에 呂尙이라 한 것이다. 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여상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 스승으로 삼고는 말하기를 ‘우리 선군인 太公(太王)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하고 인하여 太公望이라고 이름하였다. 太公의 兵法은 1질 3권이다.” 하였다.
역주10 漢儀注 : 後漢 衛宏이 편찬한 책으로 《漢舊儀》, 《漢官舊儀》라고도 한다. 漢代 관제를 기술한 책이다.
역주11 南公 : 南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南方의 노인이라는 설이다. 둘째는 당시의 道人이라는 설인데, 이 도인은 나라의 흥망에 대해서 잘 알아 秦나라를 멸망시킬 사람이 반드시 楚나라 사람일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셋째는 陰陽家에 속하는 학자라는 설로, 《南公》 13편을 지은 사람이라고 한다.
역주12 銜枚(함매) : 옛날 進軍할 때에 군졸이나 말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에 나무를 물리던 것을 말한다.
역주13 (佗)[它] : 저본에는 ‘佗’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它’로 바로잡았다.
역주14 申子 : 申不害를 가리킨다. 신불해는 전국시대 사람으로, 法家에 속하는 인물이다. 법가는 법률을 숭상하고 형벌을 엄하게 하여 法治를 통한 부국강병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儒家 쪽에서는 각박하고 은혜가 적은 정치로 평가한다.
역주15 侍中 : 秦나라에 처음 설치된 관직으로 정원이 없다. 丞相의 史가 되어 조정과 궁중을 왕래하며 황제에게 일을 아뢰었다. 漢代 황제 권력이 커지고 內朝가 강화되면서 핵심적인 관직이 되었다.
역주16 臣瓚 : 《漢書》를 註釋한 사람인데, 성씨와 관향은 상세하지 않다. 《類苑》에는 于瓚이라고 하였고, 《水經注》에는 薛瓚이라고 하였고, 《訓纂》에는 傅瓚이라고 하였다.
역주17 加官 : 본직 이외에 다른 관직을 겸하는 것이다. 아래 가관을 할 수 있는 직책은 《漢書》 〈百官表〉에 보인다.
역주18 不爲 : 174쪽 “次不爲朕盡忠力”의 不爲를 가리킨다.
역주19 : 175쪽 “二世屬高治之”의 屬을 가리킨다.
역주20 五刑 : 秦나라 이전에 五刑은 이마에 刺字하는 墨刑, 코를 베어내는 劓刑, 발을 자르는 刖刑, 생식기를 자르는 宮刑, 死刑인 大辟을 말한다. 秦漢代의 오형은 이와 다른데, 아래 訓義 ①에 보인다.
역주21 項梁이……있었다 : 이때 項梁이 齊나라 田榮 등과 함께 東阿에서 秦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전영은 齊나라로 돌아가서 왕인 田假를 내쫓고 田巿을 왕으로 세웠다. 이에 항량은 전영에게 사신을 보내 서쪽으로 진격할 것을 재촉하였으나 전영은 이를 돕지 않는다. 항량은 劉邦과 項羽에게 서쪽으로 진출하게 하였는데, 이들이 定陶를 공격하였으나 함락되지 않자 그곳을 버리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李由(李斯의 아들)의 秦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이유를 죽이고 회군하여 外黃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항량은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정도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史記 項羽本紀》
역주22 卿子冠軍 : 卿子는 당시의 美稱으로 公子와 같으며 冠軍은 군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송의가 당시 上將軍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이 생긴 것이다.
역주23 (又)[人] : 저본에는 ‘又’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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