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越騎校尉王敬則이 潛自結於道成하니 道成이 命敬則하여 陰結昱左右楊玉夫楊萬年陳奉伯等하여 使伺機便이러니
至是
에 昱乘露車
하고 與左右
로 於臺岡賭跳
注+露車, 車上無覆蓋. 臺岡, 意即臺城之來岡也. 賭跳者, 賭跳躑, 以高者爲勝也.라가 仍往靑園尼寺
하여 晚至新安寺
하여 偷狗飲酒醉還
注+孝武寵姬殷貴妃死, 爲之立寺. 貴妃子子鸞封新安王, 故以新安爲寺名.이어늘
玉夫萬年이 刎其首하니 奉伯袖之하고 稱勅開門하여 出與敬則한대 敬則馳詣領軍府하니 道成이 戎服乘馬而出이어늘 敬則等이 從入宮殿中하여
聞昱已死
하고 咸稱萬歲
하더라 道成以太后令
으로 召諸大臣入議
할새 道成謂劉秉曰 此使君家事
니 何以斷之
注+使, 疏吏切. 秉, 道憐之孫. 道憐, 高祖弟也.오 秉未答
이어늘
道成須髯盡張하고 目光如電하니 秉曰 尙書衆事를 可以見付요 軍旅處分을 一委領軍이라 道成讓袁粲한대 粲不敢當이어늘 王敬則이 拔刃跳躍曰 天下事 皆應關蕭公이니 敢有開一言者면 血染敬則刀하리라하고
仍手取白紗帽하여 加道成首하고 令即位曰 事須及熱이라 道成正色呵之한대 褚淵曰 非蕭公이면 無以了此라하니 道成乃下議하여 迎立安成王이러라
秉出逢從弟韞하니 問曰 事當歸兄邪아하니 曰 已讓領軍矣라 韞拊膺曰 兄肉中 詎有血邪아 今年族矣로다
遂以太后令으로 數昱罪惡하여 追廢爲蒼梧王하다 儀衛至東府門하니 安成王이 令門者로 勿開하고 以待袁司徒粲至하여 乃入即位하니 時年十一이라
以道成爲司空錄尙書事驃騎大將軍하여 出鎭東府하고 劉秉爲尙書令하고 袁粲鎭石頭라 秉始謂尙書萬機本이니 以宗室居之면 則天下無變이라하더니
旣而道成兼總軍國
하여 布置心膂
하고 與奪自專
하니 褚淵
이 素相憑附
하고 秉粲
은 閤手仰成矣
注+閤手者, 高拱充位而無所爲, 兩手若有所閤也.러라
粲性沖靜하여 每有朝命에 常固辭어늘 不得已乃就職이러니 至是에 知蕭道成有不臣之志하고 陰欲圖之하여 即日受命하다
目
粲謀矯太后令하여 使韞伯興으로 帥宿衛兵하여 攻道成於朝堂하니 回等帥所領爲應이라
劉秉等竝赴石頭할새 本期夜發이러니 秉恇擾不知所爲하여 晡後即束裝하고 盡室犇石頭하니 粲驚曰 何事遽來오 今敗矣로다
道成聞之
하고 使王敬則
으로 殺韞及伯興
하고 蘇烈等據倉城拒粲
注+倉城, 石頭倉城也.하니 王蘊聞秉走
하고 歎曰 事不成矣
로다
道成遣戴僧靜하여 助烈等攻粲하니 秉踰城走어늘 粲下城하고 謂其子最曰 本知一木不能支大廈之崩이나 但以名義至此로라
僧靜踰城獨進하니 最以身衛粲이어늘 僧靜直前斫之하니 粲謂最曰 我不失忠臣이요 汝不失孝子라하고 遂父子俱死하니 百姓哀之하여 爲之謠曰 可憐石頭城이여 寧爲袁粲死언정 不作褚淵生이라하더라
秉父子亦爲追者所殺
하니 黃回遂不敢發
하다 粲簡淡平素
하여 無經世才
하고 好飲酒
吟諷
하여 身居劇任
호되 不肯當事
하고
主事每往諮決
하면 或高詠對之
하고 閑居高臥
하여 門無雜賓
하니 物情不接
이라 故及於敗
注+主事, 尙書省主事也, 尙書諸曹各有主事.하니라
目
道成이 謂參軍江淹曰 天下紛紛하니 君謂何如오 淹曰 成敗在德이요 不在衆寡니 公이 雄武有奇略하고 寬容而仁恕하며 賢能畢力하고 民望所歸하며 奉天子以伐叛逆하니 五勝也요
彼志銳而器小하고 有威而無恩하며 士卒解體하고 搢紳不懷하며 懸兵數千里而無同惡相濟하니 五敗也라 雖豺狼十萬이라도 終爲我獲이 必矣리라
行南徐州事劉善明이 言於道成曰 攸之包藏禍心이 於今十年이라 性旣險躁하고 才非持重하여 而起事累旬에 遲迴不進하니
一則暗於兵機
하고 二則人情離怨
하고 三則有掣肘之患
하고 四則天奪其魄
注+掣, 尺制切, 挽也. 肘, 陟柳切, 臂節也. 掣肘, 謂慮張敬兒等襲其後也.이라
本慮其剽勇輕速에 掩襲未備하여 決於一戰이러니 今六帥齊奮하고 諸侯同擧하니 此籠中之鳥耳라
目
[목目] 월기교위越騎校尉 왕경칙王敬則이 몰래 스스로 소도성蕭道成과 교분을 맺었는데, 소도성이 왕경칙에게 명을 내려 유욱劉昱의 좌우에 있는 양옥부楊玉夫, 양만년楊萬年, 진봉백陳奉伯 등과 몰래 결탁하여 기회를 엿보도록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유욱이
노거露車를 타고 주위 사람들과
대강臺岡에서 높이 뛰는 것으로 내기를 하고
注+① 露車는 수레 위에 덮개가 없는 수레이다. 臺岡은 臺城에서 이어진 언덕인 듯하다. “賭跳”는 뛰는 것으로 내기를 걸어 높이 뛰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이어서
청원靑園의
이사尼寺로 가서 저녁 늦게
신안사新安寺에
注+② 孝武帝의 寵姬였던 殷貴妃가 죽자 그를 위해 절을 세워주었다. 貴妃의 아들 劉子鸞을 新安王에 봉하였기 때문에 절의 이름을 新安이라고 한 것이다. 도착하여 개를 훔쳐 술을 마시고 취해서 돌아왔다.
양옥부와 양만년이 유욱의 머리를 베니, 진봉백이 소매에 넣고는 칙명이라고 하면서 문을 열게 하여 나가서 왕경칙에게 주었다. 왕경칙이 영군부領軍府로 달려가니, 소도성이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나오자 왕경칙 등이 소도성을 따라 궁전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유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만세를 불렀다. 소도성이 태후의 명령으로
대신大臣들을 불러들여 의논을 하였는데, 소도성이
유병劉秉에게 말하기를 “이는 그대 집안의 일이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라고 하니
注+③ 使(사신)는 疏吏의 切이다. 劉秉은 劉道憐의 손자인데, 유도련은 高祖(劉裕)의 아우이다. 유병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도성의 수염이 쭈뼛해지고 눈에서 빛이 나자, 유병이 말하기를 “상서대尙書臺의 여러 일을 맡겨주시고, 군대에 관한 일을 모두 영군領軍에게 위임하겠다.”라고 하였다. 소도성이 원찬袁粲에게 양보를 하였는데, 원찬이 감당하지 못하자, 왕경칙이 칼을 빼들고 펄쩍펄쩍 뛰며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모두 응당 소공蕭公이 관장해야 할 것이니, 감히 한 마디라도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내 칼이 피로 물들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어서 손으로 백사모白紗帽를 가져다가 소도성의 머리에 씌우고 즉위하게 하면서 말하기를 “일은 뜨거울 때 이루어야 합니다.”라고 하니 소도성이 정색을 하며 꾸짖자, 저연褚淵이 말하기를 “소공蕭公이 아니면 이 일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소도성이 논의를 결정하여 안성왕安成王을 맞이하여 옹립하기로 하였다.
유병이 나가서 사촌 동생 유온劉韞을 만났는데, “오늘의 일은 당연히 형님의 공으로 돌아가겠지요?”라고 묻자 유병이 대답하기를 “이미 영군領軍에게 양보하였네.”라고 하였다. 유온이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형님의 몸속에 어찌 피가 남아 있겠습니까. 올해에 멸족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태후의 명령으로 유욱의 죄악을 열거하고 뒤이어 폐위하여 창오왕蒼梧王으로 삼았다. 의위儀衛가 동부문東府門에 이르자, 안성왕이 문지기에게 문을 열지 말도록 하고 사도司徒 원찬이 올 때가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즉위하니 당시 나이가 11세였다.
소도성을 사공司空 녹상서사錄尙書事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삼아 나가서 동부東府를 진수鎭守하게 하고, 유병을 상서령尙書令으로 삼고, 원찬에게는 석두石頭를 진수鎭守하게 하였다. 유병이 처음에 상서대尙書臺는 만기萬機의 근본이라 종실이 그 자리에 있으면 천하의 일이 변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얼마 뒤에 소도성이
군국軍國의 일을 겸하여 총괄하여 자신의 심복들로 배치하고 여탈의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하니 저연은 평소 서로 의지하는 사이라 붙어 있었고, 유병과 원찬은 손을 놓고
注+④ “閤手”는 높이 팔짱을 낀 채 자리만 채우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니, 두 손을 포개는 것처럼 한 것이다. 일이 이루어지는 대로 지켜보았다.
원찬은 성품이 진중하고 조용하여 조정의 명이 있을 때마다 늘 고사를 하다가 부득이하여 직분에 나아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소도성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은밀히 그를 도모하고자 그날 명을 받았다.
目
[목目] 이흔李訢이 현조顯祖(탁발홍拓跋弘)를 섬겨 상서尙書가 되어 범표范檦를 믿고 등용하였다. 이흔의 동생 이영李瑛이 간언하기를 “범표는 안색으로 남에게 굽신거리며 재물로 남의 마음을 사서 덕의德義를 경시하고 권세와 이익을 중시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달콤하고, 그의 행동을 살피면 남을 해치니, 일찍 끊어내지 않으면 뒤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흔이 상서
조흑趙黑과 관계가 좋지 않아 그의 죄를 발고하니 조흑이 폄출되어
문사門士가
注+① 北魏에는 宰士와 門士가 있었는데, 재사는 술과 음식을 담당하고, 문사는 문을 지켰다. 되었다. 조흑이 그를 원망하여 그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고 식사량이 줄어들었다. 해를 넘겨서 다시 조정에 들어가 인재 선발을 관장하여
풍태후馮太后에게 이흔의 전횡을 아뢰니,
풍태후馮太后가 이흔을 내쳐서
서주자사徐州刺史로 삼았다.
범표는 풍태후가 이흔을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흔이 외부에서 반란을 도모하였다고 고발하였다. 태후가 이흔을 불러들여 상황을 묻고 범표를 데려와 사실을 증명하게 하니,
이흔이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차마 나를 무고할 수 있는가?”라고 하니, 범표가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흔이 분개하여 탄식하기를 “내가 이영을 말을 듣지 않았으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조흑이 다시 중간에 이흔의 죄를 조작하여 그를 죽인 뒤에 잠자고 먹는 일을 예전처럼 하였다.
目
[
목目] 예전에
소도성蕭道成이
세자世子 소색蕭賾에게
注+① 蕭道成이 桂陽王(劉休範)의 난리를 평정하고 나서 縣公으로 작위를 올려주었고, 蕭賾을 世子로 삼았다. 영주郢州의 일을 대행하게 하여 무기를 잘 수리하여
심유지沈攸之를 대비하게 하였는데, 소색을 불러
좌위장군左衛將軍으로 삼으려고 하자, 소색이
사마司馬 유세륭柳世隆을
注+② 柳世隆은 柳元景의 아우의 아들이다.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고는 말하기를
“심유지가 하루아침에 변란을 일으켜 하구夏口의 함선을 불태우고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오면 제압하지 못할 것이니, 만약 심유지가 머물러 영성郢城을 공격하게 할 수 있다면 필시 별안간에 함락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내부에 있고 내가 외부에 있으면, 반드시 적들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심유지가 군사를 일으키자 소색이
심양尋陽에 이르니, 군사들이 빠른 속도로
건강建康으로 달려가고자 하였다. 소색이 말하기를 “심양은 중류에 위치하여
기전畿甸에 아주 가까우니,
분구湓口에 주둔하여 안으로 조정을 지키고 밖으로
하수夏首를
注+③ 夏首는 夏水의 입구이다. 원조하여 유리한 지세를 보전하고 점거하여 서쪽과 남쪽을 제압한다면 오늘 이 기회는 하늘이 마련해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자가 성이 협소하여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니 좌중랑장左中郎將 주산도周山圖가 말하기를 “지금 중류를 점거하여 사방의 후원이 되고 있으니, 작은 일 때문에 그 일을 어렵게 할 수 없다. 군사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강과 산이 모두 성과 해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색이 이에 진희왕晉熙王 유섭劉燮을 받들고 분구湓口를 진수鎭守하니 소도성이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정말 내 아들답구나.”라고 하였다.
目
[
목目]
원찬袁粲이 태후의 명령을 위조하여
유온劉韞과
복백흥卜伯興으로 하여금
숙위병宿衛兵을 이끌고
조당朝堂에서
소도성蕭道成을 공격할 계획을 도모하니
황회黃回 등이 부하들을 이끌고 호응을 하였다.
袁粲
유병劉秉 등이 함께 석두石頭로 갈 적에 본래 밤에 군대를 출동시키자고 약속을 하였는데, 유병이 두렵고 어지러워 어찌할 줄을 몰라 포시晡時가 지나자 즉시 군장을 꾸리고는 온 가족을 데리고 석두로 달아나니, 원찬이 놀라 말하기를 “무슨 일로 급히 온 것이오? 이제 실패하고 말았소.”라고 하였다.
소도성이 그 소식을 듣고
왕경칙王敬則으로 하여금 유온과 복백흥을 죽이게 하고,
소열蘇烈 등은
창성倉城을
注+① 倉城은 이다. 점거하여 원찬에게 대항하게 하였다.
왕온王蘊이 유병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일이 실패로 끝나겠구나.”라고 하였다.
소도성이 대승정戴僧靜을 보내어 소열 등을 도와 원찬을 공격하게 하니 유병이 성을 넘어 도망치자 원찬이 성벽에서 내려와 그의 아들 원최袁最에게 말하기를 “본래 나무 하나로는 무너지는 큰 집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을 알았지만, 명분과 의리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라고 하였다.
대승정이 성을 넘어 홀로 진격하니 원최가 몸으로 원찬을 호위하였으나 대승정이 곧바로 전진하여 그를 베었다. 원찬이 원최에게 말하기를 “나는 충신의 직분을 잃지 않았고, 너는 효자의 직분을 잃지 않았구나.”라고 하고는 마침내 부자가 함께 죽으니, 백성들이 그들을 애도하며 노래하기를 “가련하구나, 석두성石頭城이여. 차라리 원찬처럼 죽을지언정, 저연褚淵처럼 살지는 않아야 하네.”라고 하였다.
유병 부자도 추격하던 자에게 죽임을 당하니 황회가 결국 감히 군사들을 움직이지 못했다. 원찬은 간소하고 담박하며 평범하고 소박하여 세상을 경륜하는 재주가 없었고, 음주를 좋아하고 시를 읊조리는 것을 좋아하여 몸은 요직要職에 있었으나 일을 맡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다.
주사主事가
注+② 主事는 尙書省의 主事이니, 상서성의 諸曹에 각각 主事를 두었다. 매번 와서 자문을 하고 결정할 때에도 어떤 경우에는 소리 높여 읊조리며 그를 대하였고, 한가할 때는 편안히 누워 있어 집에는 잡된 손님이 없었으니, 세상 물정을 접하지 않았기에 패망에 이른 것이다.
目
[목目] 소도성蕭道成이 참군參軍 강엄江淹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어지러우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니, 강엄이 말하기를 “성공과 패배는 덕에 달려 있는 것이지, 군대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영웅다운 무공에다 기이한 지략을 소유하였고, 관용을 베풀고 인자하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이 힘을 다하고, 백성들의 바람이 귀의하며, 천자를 받들어 역적을 정벌하니 이것이 다섯 가지 승리의 요인입니다.
저들은 뜻은 예리하나 국량이 작고, 위엄은 있으나 은혜가 없으며, 사졸들은 몸과 마음이 떠났고, 관리들은 지지하지 않으며, 외로운 군대가 적진에 깊이 들어가 수천 리 떨어져 있는데도 함께 악을 행하여 서로 돕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다섯 가지 패배요인입니다. 비록 10만의 용맹한 군사가 있더라도 끝내는 필시 우리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행남서주사行南徐州事 유선명劉善明이 소도성에게 말하기를 “심유지沈攸之가 난리를 일으킬 마음을 품은 지 지금 십 년째입니다. 성품이 음험하고 조급하며 자질이 신중하지 못하여 반역을 일으킨 지 수십 일이 지났는데도 지체하며 전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군사에 관한 일에 어둡고, 둘째는 인심이 떠나고 원망하며, 셋째는 팔뚝을 잡아끄는 걱정이 있고
注+① 掣는 尺制의 切이니, 끌어당김이다. 肘는 陟柳의 切이니, 팔의 관절이다. “掣肘”는 張敬兒 등이 그 후미를 습격할까 우려함을 말한 것이다., 넷째는 하늘이 그의 혼백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그의 용감하고 날랜 군사들이 신속하게 와서 미처 대비하지 못한 우리를 습격하여 한 차례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되리라 염려했었는데, 지금은 육수六帥가 일제히 분발하고 제후들이 함께 일어나고 있으니, 심유지는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은 처지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