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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때 대장군大將軍 왕봉王鳳이 권력을 행사하니, 상上이 겸양하여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일이 없었다.
좌우左右에서 일찍이 유향劉向의 작은아들 유흠劉歆을 천거하자, 황제는 그를 불러보고 기뻐하여 중상시中常侍를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불러 관복을 가져다가 입히고 벼슬을 제수하려 하는데,
注+중상시中常侍는 가관加官(겸직兼職)이니, 중상시中常侍는 금중禁中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이때에는 선비가 중상시를 하였는데, 동도東都(동한東漢)시대에 처음으로 순전히 환관을 등용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
대장군大將軍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注+효曉는 깨우쳐 알아듣도록 타이른다는 뜻이니, 〈“미효대장군未曉大將軍”은〉 일찍이 왕봉王鳳에게 깨우쳐 말해서 알게 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어찌 굳이 대장군大將軍에게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으나, 좌우左右에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간쟁하였다.
상上은 이에 왕봉에게 말하니, 왕봉이 불가하다 하여 마침내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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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왕장王章은 평소 성품이 강직하여 과감히 말하였다.
비록
왕봉王鳳에게 천거를 받았으나, 왕봉이 권력을 전단하는 것을 비난하여 왕봉을 친근하게 따르지 않고,
注+왕장王章이 정직하다 하여 경조윤京兆尹이 되었으니, 이는 왕봉王鳳이 천거한 것이다. 마침내
봉사封事하여 “일식의 나쁜 조짐은 모두 왕봉이 권력을 독점하여 군주의 총명을 가린 탓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불러 보고 맞이하여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천도天道가 매우 분명하여 선善한 사람을 돕고 악惡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며 상서祥瑞와 재이災異를 가지고 부효符效(징조)를 삼습니다.
폐하께서 계사繼嗣가 있지 않은 이유로 정도왕定陶王을 불러 가까이 하심은, 종묘宗廟를 받들고 사직社稷을 소중히 생각하시어 위로 천심天心에 순종하고 아래로는 백성百姓을 편안히 하기 위하신 것이니, 이는 올바른 의논이요 좋은 일입니다.
마땅히 상서祥瑞가 있어야 할 터인데, 무슨 이유로 재이災異를 불러오겠습니까.
재이災異가 나타남은 대신大臣이 정권을 독차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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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왕봉王鳳이 황제에게 아뢰어 왕상王商을 파직하고 뒤에 정도왕定陶王을 〈봉국으로〉 보낸 뒤로부터 상上은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였는데, 왕장王章의 말을 들은 뒤로는 감동하여 깨우쳐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서 왕장에게 이르기를 “경조윤京兆尹의 직언直言이 아니었다면 내 종묘사직의 계책을 듣지 못할 뻔하였다.
또 오직 현자賢者만이 현자賢者를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대는 한번 짐을 위하여 스스로 보필할 만한 자를 찾아보라.” 하였다.
이에 왕장은 낭사태수琅邪太守 풍야왕馮野王이 인품이 충신忠信하고 질박하고 정직하고 지모智謀가 유여有餘하다 하여 천거하였다.
상上은 태자太子 때부터 여러 번 풍야왕의 명성을 들었으므로 그에게 의지하여 왕봉을 대신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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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때에 여러 백성들이 왕장王章을 억울하게 여겨 조정을 비난하는 자가 많았다.
두흠杜欽은 왕봉王鳳의 잘못을 구원하고자 하여 다시 왕봉을 설득해서
“직언하고 극간하는 자를 천거하고, 현재 낭관郞官과 시종관侍從官들과 함께 자신의 뜻을 모두 펴되 지나간 옛날보다 더하여 분명히 사방에 보여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주상主上이 성스럽고 밝아 직언直言 때문에 아랫사람들을 죄주지 않는 것을 모두 알게 하십시오.” 하니, 왕봉이 그의 계책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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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설선薛宣은 군郡을 다스릴 적에 부임하는 곳마다 명성과 뛰어난 행적이 있었다.
설선의 아들 설혜薛惠가 팽성령彭城令이 되었는데, 설선이 일찍이 그 현縣을 지나가면서 내심 설혜가 재능이 없음을 알고는 관리의 일을 묻지 않았다.
혹자가 설선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설혜에게 관리의 직책을 가르쳐주고 경계하지 않습니까?” 하니, 설선이 웃으며 말하기를 “관리의 도리는 법령을 스승 삼으니 물으면 알 것이요, 능하고 능하지 않음은 본래의 자질에 달려 있으니 어찌 배울 수 있겠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