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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王虎以燕不會攻段遼하고 而自専其利라하여 伐之하고 又遣使四出하여 招誘民夷하여 得三十六城하고 遂進逼棘城하니 皝이 欲出亡이어늘
帳下將慕輿根이 諫曰 趙彊我弱하니 大王이 一舉足이면 則趙之氣勢遂成하여 不可復敵矣리이다
今固守堅城이면 其勢百倍니 事之不濟면 不失於走라 奈何望風委去하여 爲必亡之理乎잇가 皝이 乃止나 然猶懼形於色이러라
玄菟太守劉佩曰 事之安危 繋於一人하니 大王이 當自彊以厲將士요 不宜示弱이니이다
事急矣라 臣이 請出擊之하리니 縱無大捷이나 足以安衆이라하고 乃將敢死數百騎하고 出衝趙兵하여 所向披靡하여 斬獲而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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段遼 自密雲山으로 遣使求迎于趙러니 旣而中悔하여 復遣使于燕하다
趙王虎遣麻秋하여 帥衆迎之할새 勅秋曰 受降은 如受敵하니 不可輕也니라
燕王皝이 亦自將迎遼하니 遼密與燕으로 謀覆趙軍하다
皝이 遣恪하여 伏精騎於密雲山이라가 大敗秋兵하여 獲其司馬陽裕하고 盡得遼衆하다
待遼以上賓之禮하고 以裕爲郞中令이러니 久之에 遼謀反이어늘 皝이 斬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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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조趙나라(후조後趙) 태조太祖 석호石虎 건무建武 4년이다.
성成나라(성한成漢)가 국호國號를 한漢나라로 바꾸니, 중종中宗 이수李壽 한흥漢興 원년이다.
대代나라 고조髙祖 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 건국建國 원년이다.
옛날의 큰 나라(후조後趙)가 하나이고 작은 나라가 한漢나라(성한成漢)와 양涼나라(전량前涼) 둘이고 새로운 작은 나라(대代나라)가 하나이니, 합하여 참국僭國이 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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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조왕趙王 석호石虎는 연燕나라가 조趙나라(후조後趙)와 연합하여 단료段遼를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 그 이익을 독점했다 해서 연燕나라를 공격하였다. 또 사자使者를 보내어 사방으로 내보내어 연燕나라의 백성들과 오랑캐를 불러 유인해서 연燕나라의 36개 성을 얻고 마침내 전진하여 극성棘城을 압박하니, 모용황慕容皝이 나라 밖으로 도망하고자 하였다.
장하帳下의 장수 모여근慕輿根이 간하기를 “조趙나라는 강하고 우리는 약하니, 대왕이 한 번 발을 떼었다 하면 조趙나라의 강한 기세가 마침내 이루어져서 다시는 조趙나라를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견고한 성을 굳게 지키면 우리의 형세가 100배는 더 커질 것이니,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때 달아나도 늦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소문만 듣고 나라를 버리고 떠나가서 반드시 망할 이치를 만드십니까.” 하니, 모용황이 마침내 중지하였으나 오히려 두려움이 얼굴빛에 드러났다.
현토태수玄菟太守 유패劉佩가 말하기를 “일의 편안하고 위태로움은 군주 한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대왕은 마땅히 자신을 강하게 하여 장병들을 격려해야 하고 약함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사세가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신은 청컨대 나가 공격할 것이니, 비록 대승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죽기를 각오한 수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가 조趙나라 군영으로 돌진하니, 향하는 곳마다 적군을 쓰러트려서 참수하거나 사로잡아 돌아왔다.
이에 연燕나라 군대의 사기가 저절로 배가되었고, 비로소 모용황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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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모여근慕輿根 등이 밤낮으로 힘써 싸우자, 10여 일 만에 조趙나라 군대가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였다. 모용황慕容皝이 그의 아들 모용각慕容恪을 보내어 2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추격하게 하니,
조趙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여 3만여 수급首級을 참수하거나 사로잡았다. 조趙나라의 여러 군대가 모두 무너지고 오직 유격장군游撃將軍 석민石閔의 한 군대만 홀로 온전하였다.
석민은 본성本姓이 염冉이니 석호石虎가 길러 양자로 삼았는데, 날래고 용맹하여 전투를 잘하였으며, 책략策略이 많았다. 이에 석호가 여러 손자처럼 그를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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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도王導는 성품이 너그럽고 후덕하여 조윤趙胤, 가녕賈寧 등 여러 장수에게 직임을 맡겼는데, 이들이 대부분 법도를 받들어 따르지 않으니, 대신大臣이 이를 염려하였다. 유량庾亮이 치감郗鑒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상主上(진晉 성제成帝)이 8, 9세 때부터 성인成人이 될 때까지 궁궐에 들어가면 궁녀의 손에 있었고 궁궐에서 나오면 곁에는 오직 무관武官과 소인小人뿐이었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음과 구두를 따라서 배울 곳이 없었고 자문을 받을 적에는 일찍이 군자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진秦나라의
영정贏政이
注+① 秦나라 始皇帝의 이름이 政이다. 그 나라의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고자 하자, 천하가 오히려 이것이
불가不可함을 알았는데, 하물며 그 군주를 어리석게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이미 장성하신 나이신데, 〈
왕도王導가〉 머리를 조아려 정사를 돌려주지 않고 바로 지금
注+② 甫는 바로 지금이고, 시작이다. 사부師傅의 높은 지위에 거하여
무뢰無賴한
인사人士들을 많이 기르고 있으니,
선제先帝(
진晉 명제明帝)의 부탁(
고명顧命)을 받은
공公과
하관下官(자신에 대한 겸사)이 모두 몹시 간악한 자들을 소탕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제를 지하에서 뵙겠습니까.”
이에 함께 군대를 일으켜 왕도를 폐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치감이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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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이때 유량庾亮이 비록 바깥 진영鎭營에 있었으나, 멀리서 조정의 권력을 쥐고 있고, 이미 〈장강長江의〉 상류上流를 차지하여 강한 병력을 보유하니, 권세를 추종하는 자들이 대부분 그에게 귀의하였다.
왕도는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였는데, 일찍이 서풍이 불어 먼지가 일어나자 부채를 들어 자기 몸을 가리고 천천히 말하기를 “원규元規의 먼지가 사람을 오염시킨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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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단료段遼가 밀운산密雲山에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趙나라에서 자신을 맞이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윽고 중간에 〈잘못된 계책임을〉 뉘우치고 다시 사신을 연燕나라에 보내 자신을 맞이해줄 것을 청하였다.
조왕趙王 석호石虎가 마추麻秋를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단료를 맞이하게 할 적에 마추에게 당부하기를 “항복을 받아들일 적에는 적군의 공격을 받는 것과 똑같이 대비하여야 하니,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하였다.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이 또한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단료를 맞이하니, 단료는 은밀히 연나라와 더불어 조나라 군대를 전복시킬 것을 모의하였다.
모용황이 모용각慕容恪을 보내어 정예 기병을 밀운산에 매복시켰다가 마추의 군대를 크게 물리쳐서 그의 사마司馬 양유陽裕를 사로잡고 단료의 무리들을 다 차지하였다.
모용황은 단료를 상빈上賓의 예로 대우하고 양유를 낭중령郞中令으로 삼았는데, 오랜 뒤에 단료가 배반을 도모하자 모용황이 그를 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