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瓘曰 我跨據三州
하여 帯甲十萬
이요 西苞蔥嶺
하고 東距大河
하니 伐人有餘
어든 況於自守
리오 何畏於秦
注+三州, 謂涼․河․沙, 張茂及張駿所分置者也.고
負, 殊曰 貴州山河之固 孰若崤, 函이며 民物之饒 孰若秦, 雍이리오 杜洪, 張琚 因趙氏成資하여 有囊括關中 席卷四海之志러니 先帝戎旗西指에 (水)[冰]消雲散하여 旬月之間에 不覺易主라
主上이 若以貴州不服이라하여 赫然奮怒하여 控弦百萬이 鼓行而西하면 未知貴州將何以待之니잇고
瓘
이 笑曰 兹事
는 當决之於王
이니 非身所了
注+了, 決也.로라
負, 殊曰 涼主雖英睿夙成이나 然年在幼冲하니 國家安危 繫君一舉耳니이다
瓘이 懼하여 乃以玄靚之命으로 遣使稱藩於秦하니 秦이 因玄靚所稱官爵而授之하다
目
[목目] 단감段龕의 아우 단비段羆(단비)가 날래고 용감하고 지모가 있었는데, 단감에게 말하기를 “모용각慕容恪은 용병用兵을 잘하고 게다가 병력이 많으니, 만약 그가 황하를 건너오는 것을 내버려두어 전진하여 광고廣固의 성 아래에 이르게 되면 우리가 비록 항복을 청하려 하더라도 될 수 없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청컨대 형은 굳게 지키십시오. 저는 정예병을 거느리고 황하에서 막겠습니다. 제가 다행히 싸워 승리하면 형이 대병력大兵力을 인솔하여 뒤를 이으십시오. 만약 제가 승리하지 못하면 일찍 항복하여 오히려 천호후千戶侯가 되는 기회를 잃지 않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단감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단비가 굳이 청하여 마지않으니, 단감이 노하여 그를 죽였다.
모용각이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황하를 건너오니, 단감이 병력을 거느리고 나가 맞이하여 싸웠는데, 모용각이 단감을 대파하였다. 단감의
왕우王友인
벽려울辟閭蔚이
注+① 友는 官名이다 段龕이 스스로 齊王이라 칭했으므로 王友의 관직을 둔 것이다. 辟閭는 複姓이다. 상처를 입자 모용각이 그의 어짊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찾았는데, 이미 죽고 난 뒤였다.
단감이 돌아와 성을 굳게 지키니, 모용각이 군대를 전진하여 포위하였다.
目
[
목目]
진秦나라
진왕晉王 부류苻柳가
참군參軍 염부閻負와
양수梁殊를
양주涼州에 사신으로 보내자,
장관張瓘이 그를 만나보고 말하기를 “나는
진晉나라(
동진東晉)의 신하이다. 신하는 국경 밖의 교제가 없으니,
注+① ≪禮記≫ 〈檀弓 上〉에 “옛날 大夫는 脯 10마리의 선물도 국경을 나가지 않았다.” 하였고, 또 〈郊特牲〉에 “신하된 자가 밖으로 사귐을 두지 않는 것은 감히 임금에게 두 마음을 품지 못해서이다.” 하였다. 두
군君이 무엇을 하러 왔는가?” 하였다.
염부와 양수가 말하기를 “진왕晉王이 군君과 나라를 이웃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와서 우호를 닦으려는 것이니, 군은 어찌 괴이하게 여기십니까?” 하였다.
장관이 말하기를 “우리가 충성을 다하여
진晉나라를 섬긴 지가 지금 6
대代가 되었다.
注+② 〈“吾盡忠事晉 於今六世矣”는〉 張軌, 張寔, 張茂, 張駿, 張重華, 張曜靈, 張祚가 7대가 되는데 지금 6대라고 말한 것은 장조를 배척하여 代數에 넣지 않은 것이다. 정동장군征東將軍 부류苻柳와
注+③ 이때 苻柳가 征東大將軍이 되었다. 사신使臣을 통하면 이는 위로
선군先君의 뜻을 어기고 아래로 선비와 백성들의 절개를 훼손하는 것이니, 어찌 되겠는가?” 하였다.
염부와 양수가 말하기를 “
진晉나라가 쇠미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양涼나라의
선왕先王이
북면北面하여 두
조趙나라(
전조前趙․
후조後趙)를 섬긴 것은
注+④ 〈‘涼之先王 北面二趙’는〉 張茂가 前趙에게 藩臣을 칭하고 張駿이 後趙에게 번신을 칭한 것이다. 오직 기미를 알아서입니다.
지금 대진大秦의 위엄과 덕이 막 성盛하니, 양왕涼王이 만약 스스로 하서河西 지방에서 왕 노릇 하고자 하면 우리 진秦나라의 적수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기고자 한다면 어찌 진晉나라를 버리고 진秦나라를 섬겨서 길이 복록을 보존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하였다.
目
[
목目]
장관張瓘이 말하기를 “내가 세
주州의 땅을
注+① 세 州는 涼州, 河州, 沙州를 이르니, 張茂와 張駿이 나누어 설치한 지역이다. 점거하여 갑옷을 입은 군사가 10만이고 서쪽으로
총령蔥嶺을 포괄하고 동쪽으로 황하에 이르니, 남을 공격함도 충분한데 하물며 스스로 지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어찌
진秦나라를 두려워하겠는가?” 하니,
염부閻負와 양수梁殊가 말하기를 “귀주貴州의 산하山河의 험고함이 어찌 우리 진秦나라의 효산崤山과 함곡관函谷關만 하겠으며, 백성과 물건의 풍부함이 어찌 우리 진주秦州 지방과 옹주雍州 지방만 하겠습니까. 두홍杜洪과 장거張琚는 조씨趙氏가 이루어놓은 물자를 의뢰하여 관중關中을 주머니에 넣고 사해四海를 석권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선제先帝(부건苻健)의 군대 깃발이 서쪽을 향하자, 얼음이 녹듯 구름이 흩어지듯 와해되어 열흘에서 한 달 사이에 주인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주상(부생苻生)이 만약 귀주貴州가 복종하지 않는다 하여 혁연赫然히 분노하시고 강한 활을 쏠 수 있는 백만의 군대가 북을 치며 출동하여 서쪽으로 전진한다면 귀주가 장차 무엇을 가지고 여기에 대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장관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 일은 마땅히
양왕涼王(
장현정張玄靚)의 결재가 있어야 하니, 내가 결단할
注+② 了는 결단함이다.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였다.
염부와 양수가 말하기를 “양주涼主가 비록 일찍 영명하고 지혜로운 품성을 갖추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리니, 국가의 안위安危가 군君의 한 번 조처措處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장관은 두려워하여 마침내 장현정의 명의名義로 사신을 보내어 진秦나라(전진前秦)에 번신藩臣을 칭하니, 진秦나라는 장현정이 칭했던 관작을 그대로 수여하였다.
目
[목目] 연燕나라 장수들이 광고廣固를 급히 공격할 것을 청하자, 모용각慕容恪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병의 형세는 마땅히 느슨히 해야 할 경우가 있고 마땅히 급히 서둘러야 할 경우가 있으니, 만약 피아彼我의 세력이 대등하고 밖에 적의 강한 원조가 있어서 앞뒤의 우환이 있을까 두려우면 공격을 급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강하고 적이 약하고 적이 외부의 원조가 없으면 마땅히 적을 옭아매고 지켜서 적이
자멸自滅하기를 기다려야 하니, 병법에 ‘병력이 적보다 10배이면 적을 포위하고 5배이면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注+① ≪孫子≫에 이르기를 “용병하는 방법은 10배이면 적을 포위하고 5배이면 적을 공격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많은 병력으로 적은 적을 공격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10배가 많은 경우에는 적을 포위할 수 있고 5배가 많은 경우에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단감段龕의 군대가 아직 많고 배반할 마음이 있지 않으며 지금 견고한 성을 의지하고 항거해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힘을 다하고 있으니, 우리가 정예병精銳兵을 총동원하여 저들을 공격하면 짐작하건대 수십 일이면 함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반드시 우리의 사졸들을 많이 죽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중원에 전쟁하는 일이 있은 이래로 군대를 잠시도 쉬지 못하였으니, 나는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가볍게 군대를 사용하여 또다시 죽게 하겠는가. 적의 땅을 점령하는 것이 중요하니, 굳이 속히 공을 이루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군중軍中에서는 이 말을 듣고는 모두 감동하고 기뻐하였다.
目
[목目] 모용각慕容恪이 이에 높은 담장과 깊은 참호를 만들어 지키니, 단감段龕은 성에 올라가 스스로 지켰는데, 땔감을 채취하는 길이 끊겨서 성안의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단감이 얼굴을 내놓고 두 손을 뒤로 묶고 나와 항복하자, 모용각이 새로운 백성들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고 제齊 지역을 모두 평정하였다. 단감은 끝내 모용준慕容儁에게 살해되었고 단감의 무리 3,000명을 함께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