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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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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年(B.C. 68)
계축년(B.C. 68)
二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지절地節 2년이다.
春三月 以霍禹爲右將軍하다
봄 3월에 곽우霍禹우장군右將軍으로 삼았다.
大司馬大將軍博陸侯霍光하다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 박륙후博陸侯 곽광霍光하였다.
大將軍光이어늘 車駕自臨問하고 爲之涕泣한대 上書謝恩하고 願分國邑하여 封兄孫山爲列侯어늘
[目]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의 병이 위독하므로, 거가車駕(대가大駕)가 직접 가서 문병하고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니, 곽광은 글을 올려 은혜에 사례하고 국읍國邑을 나누어 형의 손자인 곽산霍山열후列侯로 봉해줄 것을 청하였다.
卽日 拜光子禹하여 爲右將軍하다
〈황제는 이를 따르고〉 당일에 곽광의 아들 곽우霍禹우장군右將軍으로 임명하였다.
光薨커늘 諡曰宣成이라하고 賜葬具호되 如乘輿制度하고 置園邑三百家 長丞奉守注+長ㆍ丞, 皆官名. 하고 復其後世하고 疇其爵邑하여 世世無有所與注+復, 除其賦役也. 律, 非始封, 十減二. 疇, 有等也, 言不復減其爵邑. 與, 讀曰預, 謂復除其賦役, 世世無所干預. 하다
곽광이 죽자 시호를 선성宣成이라 하고, 장례 도구를 하사하되 황제가 타는 승여乘輿의 제도와 똑같게 하고 원읍園邑 3백 가호와 , 을 두어 묘소를 받들어 지키게 하였으며,注+은 모두 관명이다. 그의 후손에게 부역을 면제하고 관작과 봉읍封邑을 〈변경함이 없이〉 똑같게 하여 대대로 국가에서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다.注+은 부역을 면제한 것이다. 법률法律에 처음 봉한 자가 아니면 봉지封地 10분의 2를 감하였다. 는 같음이니, 관작과 봉읍封邑을 다시 줄이지 않음을 말한다. 로 읽으니, 부역을 면제해주고 대대로 국가에서 관예(간섭)하는 바가 없음을 이른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무릇 임금에게 올리는 글과 표문은 모두 봉함하지 않고 개봉하였으나, 은밀한 일을 말하게 되면 검은 주머니를 사용하였으니, 국가의 중요한 일을 말하면서 누설되지 않게 하려고 거듭 봉함해서 올렸으므로 봉사封事라고 칭한 것이다.
惟名與器 不可以假人이어늘 人臣而用天子之禮하니
인신人臣으로서 천자天子를 사용하였다.
宣帝過賜어늘 而霍氏受之 非也
이는 선제宣帝가 지나치게 하사한 것인데, 곽씨霍氏가 이것을 받았으니 잘못이다.
卒生禹, 雲, 山等僭亂之心하니 宣帝亦有以啓之歟인저
끝내 곽우霍禹곽운霍雲, 곽산霍山 등의 참람하고 반란하려는 마음을 품게 하였으니, 선제宣帝 또한 이것을 계도한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夏四月 以張安世 爲大司馬車騎將軍하여 領尙書事하다
[綱] 여름 4월에 장안세張安世대사마大司馬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아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魏相 上封事曰注+凡章表皆啓封, 其言密事, 得用皁囊, 言事而不欲宣泄, 重封上之. 故曰封事.聖王
[目] 위상魏相봉사封事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褒有德以懷萬方하고 顯有功以勸百寮 是以 朝廷尊榮이니이다
성왕聖王이 있는 자를 표창하여 만방萬方을 회유하고 이 있는 자를 드러내어 백관들을 권면하였으니, 이 때문에 조정이 높아지고 영화로웠던 것입니다.
今新失大將軍하니 宜顯明功臣以塡藩國이요 毋空大位以塞爭權이니이다
지금 막 대장군을 잃었으니, 마땅히 공신功臣을 드러내고 밝혀서 제후국[번국藩國]을 진무할 것이요, 높은 지위를 비워두지 말아서 권력을 다투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車騎將軍安世 忠信謹厚하고 國家重臣也
거기장군車騎將軍 장안세張安世는 인품이 충신忠信하고 후덕하며 국가의 중신重臣입니다.
宜尊其位니이다
마땅히 그 지위를 높여야 합니다.”
亦欲用之하니 安世深辭不能得이라
또한 그를 등용하고자 하니, 장안세가 굳이 사양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乃拜大司馬車騎將軍하여 領尙書事하다
마침내 대사마大司馬 거기장군車騎將軍을 제수하여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綱] 봉황이 지방에 내려앉으므로 크게 사면赦免하였다.
[綱] 곽산霍山봉거도위奉車都尉로 삼아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고 어사대부御史大夫 위상魏相급사중給事中으로 삼았다.
思報大將軍德하여 乃封光兄孫山하여 爲樂平侯하여 使以奉車都尉 領尙書事하니
[目] 이 대장군 곽광霍光의 은덕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여 마침내 곽광의 형의 손자인 곽산霍山낙평후樂平侯로 봉하여 봉거도위奉車都尉로서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魏相 因許廣漢하여 奏封事하여
위상魏相허광한許廣漢을 통하여 봉사封事를 올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言春秋 譏世卿注+公羊傳隱三年 “尹氏卒, 尹氏者, 何. 天子之大夫也. 其稱尹氏, 何. 貶. 曷爲貶. 譏世卿, 世卿, 非禮也.”하고惡宋三世爲大夫注+爲, 恐當作無. 公羊傳 “宋三世無大夫, 三世內娶也. 三世, 謂襄公ㆍ成公ㆍ昭公也. 內娶, 娶大夫女也. 言無大夫者, 禮不臣妻之父母, 國內皆臣, 無娶道. 宋以內娶, 故公族以弱, 妃黨益彊, 卒生篡弑, 故君子疾惡之.”及魯季孫之專權注+魯自季友立僖公, 行父逐東門氏, 意如逐昭公, 世專魯國, 至哀公, 惡季氏之偪而不能去, 遂孫于邾. 하여 皆危亂國家하니이다
“《춘추春秋》에 대대로 이 되는 것[세경世卿]을 비난하였고,注+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공隱公 3년에 “윤씨尹氏하니, 윤씨는 누구인가? 천자天子의 대부이다. 그를 윤씨라고 칭한 것은 어째서인가? 폄하한 것이다. 어찌하여 폄하하였는가? 세경世卿을 비판한 것이니, 세경世卿가 아니다.” 하였다.나라에 3대에 걸쳐 대부大夫가 없었던 것과注+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할 듯하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나라가 3대에 대부가 없었던 것은 3대가 국내에서 장가들었기 때문이다. 3대는 양공襄公성공成公소공昭公을 이른다. 국내에서 장가들었다는 것은 대부大夫의 딸에게 장가든 것이다. 3대에 대부가 없다고 한 것은 에 장인과 장모를 신하로 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국내가 모두 신하여서 대부에게 장가드는 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국내에서 장가들었기 때문에 공족公族이 약하고 의 친족이 더욱 강성해져서 끝내 찬시篡弑를 낳게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가 미워한 것이다.” 하였다.나라에 계손씨季孫氏가 권력을 독점한 것이注+나라는 계우季友희공僖公을 세운 때로부터 계손행보季孫行父(계문자季文子)가 동문씨東門氏를 축출하고 계손의여季孫意如(계평자季平子)가 소공昭公을 축출하는 등 대대로 나라의 국정을 전천專擅하였는데, 애공哀公에 이르러 애공은 계손씨季孫氏의 핍박함을 미워하였으나 제거하지 못하고 마침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모두 국가를 위태롭고 혼란하게 한 것을 미워하였습니다.
自後元以來 祿去王室하고 政由冢宰러니
후원後元 연간(B.C. 88~B.C. 87) 이래로 녹봉이 왕실에서 떠나고
今光死 子復爲右將軍하고 兄子秉樞機注+霍山, 去病之孫, 今言兄子, 誤矣. 樞機, 權要之官, 謂領尙書事也.하고 昆弟諸壻 據權勢하여 在兵官하고
지금 곽광이 죽자 아들이 다시 우장군右將軍이 되고 형의 아들이 추기樞機를 잡고 있으며,注+곽산霍山곽거병霍去病의 손자인데 지금 〈곽광霍光의〉 형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추기樞機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요직이니, 상서尙書의 일을 겸한 것을 이른다. 형제와 여러 사위가 권세를 점거하여 병력을 관장하는 요직에 있고,
夫人顯及諸女 皆通籍長信宮하여 或夜詔門出入하니 驕奢放縱하여 恐寖不制注+不制, 不可制御也.
부인 과 여러 딸이 모두 장신궁長信宮문적門籍을 통하여 혹은 밤중에 궁문宮門을 출입하니, 교만하고 사치하고 방종하여 점점 제재할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注+부제不制”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宜有以損奪其權하고 破散陰謀하여 以固萬世之基하고 全功臣之世니이다
마땅히 이들의 권력을 줄이고 빼앗으며 음모를 깨뜨리고 흩어서 만세의 기반을 견고히 하고 공신의 세대를 온전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又故事 諸上書者 皆爲二封하여 署其一曰副라하여 領尙書者 先發副封하여 所言 不善이어든 屛去不奏러니
[目] 또 고사에 상소하는 자들이 모두 두 을 만들어서 이 가운데 하나에는 부봉副封이라 쓰니, 상서尙書를 겸한 자가 먼저 부봉副封을 뜯어보아 말한 내용이 좋지 않으면 물리쳐버리고 아뢰지 않았다.
復因許伯하여 白去副封하여 以防壅蔽注+許伯, 卽許廣漢, 稱伯者, 蓋尊之也.하니 帝善之하여 詔相給事中하고 皆從其議하다
위상魏相이 다시 허백許伯(허광한許廣漢)을 통하여 부봉副封을 없애 〈군주의 총명을〉 엄폐하지 못하도록 아뢰니,注+허백許伯은 바로 허광한許廣漢이니, 이라고 칭한 것은 그를 높인 것이다. 황제가 이를 좋게 여겨 위상을 급사중給事中으로 임명하고 모두 그의 의논을 따랐다.
帝興于閭閻하여 知民事之囏難注+囏, 古艱字.이라 霍光旣薨 始親政事하여 厲精爲治注+厲, 勉力也.하여 五日一聽事하니
[目] 황제가 민간[여염閭閻]에서 나와 황제가 되어서 백성들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았는데,注+고자古字이다.곽광霍光이 죽자 처음으로 친정을 행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정치를 해서注+는 힘쓴다는 뜻이다. 5일에 한 번 정사를 들었다.
自丞相已下 各奉職奏事하여 敷奏其言이어든 考試功能하며 侍中, 尙書功勞當遷及有異善어든 厚加賞賜하여 至于子孫하고 終不改易注+至于子孫, 謂賞賜逮及子孫也. 終不改易, 言各久其職事也.하니라
그리하여 승상丞相으로부터 이하가 각기 직책을 받들어 수행하고 일을 아뢰었는데, 신하들이 좋은 말을 아뢰면 과 재능을 시험하였으며, 시중侍中상서尙書 중에 공로가 높아 마땅히 승진할 자와 특별히 잘한 자가 있으면, 많은 상을 하사하여 자손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직책을 오래 맡겨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注+지우자손至于子孫”은 을 줌이 자손에게까지 미침을 이르고, “종불개역終不改易”은 각각 그 직책과 일을 오래 맡긴 것을 말한다.
樞機周密하고 品式備具하니 上下相安하여 莫有苟且之意
추기樞機(기무機務)가 주밀하고 격식이 구비되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편안하여 구차한 뜻이 없었다.
及拜刺史守相 輒親見問하여 觀其所由하고 退而考察所行하여 以質其言注+質, 正也.하여 有名實不相應이면 必知其所以然이러라
자사刺史태수太守‧제후왕의 정승을 임명하게 되면 번번이 직접 만나보고 물어서 그 정사할 바를 관찰하고, 물러가면 그의 행하는 바를 고찰하여 말을 질정해서注+은 질정한다는 뜻이다.이 서로 응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까닭을 알아내었다.
常稱曰 庶民所以安其田里而亡歎息愁恨之心者 政平訟理也注+訟理, 言所訟見理而無寃滯也.일새니 與我共此者 其惟良二千石乎注+良, 循良也. 二千石, 謂郡守, 諸侯王相.인저
[目] 은 항상 말하기를 “서민들이 전택田宅을 편안히 하여, 탄식하고 시름겨워하고 한탄하는 마음이 없는 이유는 정사가 공평하고 송사가 잘 다스려지기 때문이니,注+송리訟理”는 송사가 제대로 다스려져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없음을 말한다. 나와 이것을 함께 하는 자는 오직 어진 이천석二千石(태수太守국상國相)일 것이다.注+순량循良(규칙을 지켜 잘 따름)이고, 이천석二千石태수太守와 제후왕의 정승을 이른다.
以爲太守 吏民之本이니數變易이면 則下不安이요 民知其將久 不可欺罔하여 乃服從其敎化
생각하건대, 태수太守는 관리와 백성의 근본이니 자주 바꾸면 아랫사람들이 편안하지 못하고, 백성들이 그가 장차 오래 재임할 것을 알면 속일 수가 없어서 마침내 그 교화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二千石 有治理效어든 輒以璽書勉厲하여 增秩賜金하고 或爵至關內侯라가
그러므로 이천석 중에 뛰어난 치적治績이 있으면, 번번이 옥새를 찍은 친서親書로 권면하여 품계를 더 올려주고 황금을 하사하였으며, 때로는 관작을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주기도 하였다.
公卿缺이면 則選諸所表하여 以次用之注+所表, 謂嘗蒙增秩ㆍ賜金ㆍ進爵所旌表者. 하니
공경公卿 중에 결원이 생기면 표창한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여 차례로 등용하였다.注+소표所表”는 일찍이 품계를 올려주고 금을 하사하고 작위를 올려주어 표창한 자를 이른다.
是故 漢世良吏 於是爲盛하여 稱中興焉注+中, 去聲, 又. 凡王室中否而復興, 謂之中興.이러라
이 때문에 한대漢代양리良吏(훌륭한 관리)가 이때에 많아서 중흥中興이라 일컬어졌다.注+(알맞다)은 거성去聲이고 또 〈(가운데)은〉 본음本音대로 읽는다. 무릇 왕실이 중간에 비색하다가 다시 일어남을 중흥中興이라 한다.
匈奴壺衍鞮單于死어늘 弟虛閭權渠單于立하다
[綱] 흉노匈奴호연제선우壺衍鞮單于가 죽자, 아우인 허려권거선우虛閭權渠單于(흉노의 제12대 선우)가 즉위하였다.
漢以匈奴不能爲寇라하여 罷塞外諸城하여 以休百姓注+塞外諸城, 如光祿塞ㆍ受降城ㆍ遮虜障等城, 是也.하니 單于喜하여 謀欲和親이러라
[目] 이때 나라에서는 흉노匈奴가 침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변방 밖에 있는 여러 의 수비군을 해산하여 백성들을 휴식하게 하니,注+새외제성塞外諸城(변방 밖의 여러 )”은 광록새光祿塞수항성受降城, 차로장遮虜障 등과 같은 이다.선우單于가 기뻐하여 화친하고자 하였다.
역주
역주1 명칭(官名)과……안 되는데 : 춘추시대 衛나라 孫桓子가 齊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였는데, 新築 사람 仲叔于奚가 그를 구해주어 곤경을 면하게 되었다. 뒤에 衛나라가 중숙우해에게 상으로 邑을 주려 하자, 그는 읍을 사양하면서 제후들이 쓰는 악기와 말 장식을 쓰게 해달라고 청하였고 衛나라는 그것을 허락해주었다. 孔子가 이를 듣고 말씀하기를, “애석하다. 名號와 器物은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成公 2年》
역주2 鳳皇 集魯 大赦 : “이때에 봉황을 3번 썼고, 다시 사면하면서 大를 더하였으니, 宣帝가 스스로 속임이 심한 것이다.[於是三書鳳凰 再爲之赦而加大焉 帝之自欺甚矣]” 《書法》
역주3 以霍山……相給事中 : “이는 특별히 쓴 것이다. 魏相이 給事中이 된 이래로 幾微의 일을 모두 황제를 사사로이 뵐 때에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劉章이 들어가 宿衛하자 呂氏의 권세가 나누어졌고, 위상이 給事中이 되자 霍氏가 권세를 잃었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모두 이것을 특별히 쓴 것이다.[特筆也 自相給事中 而幾事皆得以燕見言之矣 故劉章入宿衛 而呂氏之柄分 魏相給事中 而霍氏之權失 綱目皆特書之]” 《書法》
역주4 정권이……나왔는데 : 冢宰는 周나라 시대에 있었던 관직으로 우리나라의 吏曹判書와 같은데, 인사권은 물론이요 모든 권력을 쥐고 있어 지금의 총리와도 같았다. 漢代에는 총재란 명칭의 관직이 없었으나 당시 霍光이 大司馬 大將軍으로서 모두 권력을 장악하였으므로 그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5 如字 : 한 글자에 여러 독음이 있는 경우 本音대로 읽는 것을 이른다. 中은 ‘알맞다’ 또는 ‘맞히다’로 읽으면 去聲이고, ‘가운데’나 ‘중간’으로 읽으면 平聲이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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