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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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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年(143)
二年이라 夏四月 以趙沖爲護羌校尉하여 擊燒當羌하여 破之注+當, 當作何. 上年冬, 罕羌邑落五千餘戶, 詣趙沖降, 唯燒何種, 據參戀, 未下.하다
◑冬十一月 使匈奴中郞將馬寔 遣人刺吾斯하여 殺之하다
하다
涼州自九月以來 地百八十震하여 山谷拆裂하고 壞敗城寺하니 民壓死者 甚衆이러라
尙書令黃瓊 以左雄所上孝廉之選 專用儒學文吏하니 於取士之義 猶有所遺라하여
乃奏增孝悌及能從政者하여 爲四科하니 帝從之하다


계미년癸未年(143)
나라 효순황제 한안孝順皇帝 漢安 2년이다. 여름 4월에 조충趙沖호강교위護羌校尉로 삼아 소하강燒何羌을 격파하였다.注+은 마땅히 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겨울에 한강罕羌의 부락에 있는 5,000여 조충趙沖에게 와서 항복하였는데, 오직 소하燒何의 종족이 참련參戀을 점거하고서 항복하지 않았다.
】 겨울 11월에 사흉노중랑장 마식使匈奴中郞將 馬寔이 사람을 보내 오사吾斯를 찔러 죽였다.
】 지진이 있었다.
양주涼州는 9월 이래로 180번의 지진이 나서 산골짜기가 갈라지고 성사城寺(성의 관사)가 무너지니, 백성들 중에 압사壓死한 자가 매우 많았다.
효렴孝廉을 더하여 네 로 만들었다.
상서령 황경尙書令 黃瓊은, 가 오로지 유학儒學과 법조문을 익힌 관리를 등용하므로 선비를 선발하는 뜻에 오히려 부족한 바가 있다 하여,
마침내 효제孝悌종정從政을 잘하는 자를 더 보태어서 네 로 만들 것을 상주上奏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 地震 : “이때 涼州에는 9월부터 11월에 이르기까지 180번의 지진이 나서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매우 많았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지진을 쓴 것이 이때보다 잦은 적이 있지 않았다.[於是 涼州自九月至十一月 地一百八十震 民死甚衆 綱目書地震 未有數於此者矣]” ≪書法≫ 書法은 ‘筆法’이란 말과 같다. 朱子는 ≪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적에 孔子의 ≪春秋≫ 筆法을 따라 綱과 目으로 나누었는바, 綱은 ≪春秋≫의 經文을, 目은 ≪春秋左氏傳≫의 傳文을 따랐다. ≪資治通鑑綱目≫의 筆法을 밝힌 것으로는 劉友益(宋)의 ≪綱目書法≫, 尹起莘(宋)의 ≪綱目發明≫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책은 현재 淸나라 聖祖(康熙帝)가 엮은 ≪御批資治通鑑綱目≫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필법은 綱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특별히 이 ≪자치통감강목≫을 愛讀한 이유는 바로 이 필법에 있다. ≪어비자치통감강목≫에는 이외에도 汪克寬(元)의 ≪綱目凡例考異≫ 등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고 ≪강목서법≫과 ≪강목발명≫의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또한 陳濟(明)의 ≪資治通鑑綱目集覽正誤≫를 인용하여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각각 ≪書法≫, ≪發明≫, ≪正誤≫로 요약하여 표기하였다.
역주2 增孝廉 爲四科 : “‘더하여 네 科로 만들었다.’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난한 것이다. 예전에 家法으로 시험하고 牋奏(表文과 奏章)로 시험하는 두 科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孝悌와 從政을 더하여 네 科로 만들었다. 孝悌가 네 科의 하나가 되면 孝廉 두 글자는 모두 헛된 이름이니, 이를 쓴 것은 매우 비난한 것이다.[書增爲四科 何 譏也 前有試家法課牋奏二科矣 今復增孝悌從政爲四 孝悌居四科之一 則孝廉二字皆虛名也 書甚譏之]다” ≪書法≫
역주3 左雄이……선거 : 漢 順帝 陽嘉 원년(132)에 左雄의 주청으로 孝廉科에 나이 40 이상이 된 자만 천거하고, 諸生은 家法을 文吏는 牋奏로 시험하게 하였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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