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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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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年(61)
신유년辛酉年(61)
四年이라 하다
나라 현종 효명황제顯宗 孝明皇帝 영평永平 4년이다. 봄에 황제가 하내河内에 갔는데, 미처 하내河內에 도착하기 전에 되돌아왔다.
帝近出하여 觀覽城第하고 欲遂校獵河内注+城, 雒陽城也. 第, 宅也.러니 東平王蒼 上書諫한대 帝覽奏하고 卽還宮하다
】 황제가 가까이 외출하여 성안의 제택第宅을 구경하고 하내河内에 가서 사냥하고자 하였는데注+낙양성雒陽城이다. 는 저택이다., 동평왕 유창東平王 劉蒼이 글을 올려 간하자, 황제가 아뢴 글을 보고 즉시 환궁하였다.
冬十月 司徒丹 司空魴하니 以范遷爲司徒하고 伏恭爲司空注+恭, 湛之兄子也.하다
】 겨울 10월에 사도 곽단司徒 郭丹사공 풍방司空 馮魴이 면직되니, 범천范遷사도司徒로 삼고 복공伏恭사공司空으로 삼았다.注+복공伏恭복담伏湛의 형의 아들이다.
◑陵鄉侯梁松 下獄死注+松嗣父統爵, 爲陵鄕侯.하다
능향후 양송陵鄉侯 梁松이 하옥되어 죽었다.注+양송梁松이 아버지 양통梁統의 관작을 이어서 능향후陵鄕侯가 되었다.
坐怨望하여 縣飛書誹謗하여 下獄死注+松, 數爲私書, 請託郡縣, 發覺免官, 遂懷怨望. 縣讀曰懸.하다 爲太子 太中大夫鄭興子衆 以通經知名注+知名者, 有名於時, 人皆知之也.이라
양송梁松이 익명으로 남을 원망하여 비방하는 글을 써서 게시한 죄에 걸려 하옥되어 죽었다.注+양송梁松이 자주 사사로운 편지를 만들어 군현郡縣에 청탁하다가 발각되어 면직되자, 마침내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게시하다)은 으로 읽는다. 처음에 태자太子였을 적에, 태중대부 정흥太中大夫 鄭興의 아들 정중鄭衆은 경서에 통달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注+지명知名”은 당시에 명망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는 것이다.
太子及山陽王荆 因梁松하여 以縑帛請之한대 衆曰 太子 儲君이니 無外交之義 漢有舊防하니 藩王 不宜私通賓客이니라
태자와 산양왕 유형山陽王 劉荆이 양송을 통하여 비단을 가지고 가서 만나주기를 청하자, 정중이 말하기를 “태자는 저군儲君이니 밖으로 남과 사귀는 의리가 없고, 나라에는 옛 금령禁令이 있으니 번왕藩王은 마땅히 사사로이 빈객과 통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松曰 長者意 不可逆이니라 衆曰 犯禁觸罪 不如守正而死라하고 遂不往이러니
양송이 말하기를 “장자長者(태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하니, 정중이 말하기를 “법금法禁을 범하고 죄에 저촉되는
鄭衆(≪古聖賢像傳略≫)鄭衆(≪古聖賢像傳略≫)
것은 정도正道를 지키다가 죽는 것만 못하다.” 하고는 마침내 가지 않았다.
及松敗 賓客 多坐之호되 唯衆 不染於辭하니라
뒤에 양송이 실패하자 빈객들이 대부분 이 일에 연좌되었으나, 오직 정중은 옥사에 연관되지 않았다.
우전于窴(우전)이 사차왕 현莎車王 賢을 공격하여 죽였다.
莎車王賢 以兵威 逼奪于窴, 大宛, 嬀塞王國하고 使其將守之注+嬀塞國, 塞種, 臨嬀水而居者, 因以爲國名.러니 于窴人 殺其將君德하고 立大人休莫霸爲王이어늘
사차왕 현莎車王 賢이 군대의 위엄으로 우전국于窴國, 대완국大宛國, 규새국嬀塞國(규새국)을 핍박하여 빼앗고 자기 장수를 보내 그곳을 지키게 하였는데注+규새국嬀塞國은 변방의 종족으로 규수嬀水(아무다리아강) 가까이 사는 자들이니, 인하여 국명國名으로 삼은 것이다., 우전의 사람들이 그의 장수인 군덕君德을 죽이고 대인大人휴막패休莫霸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率諸國兵擊之라가 大爲休莫霸所敗하여 脱身走還하다 休莫霸進圍莎車라가 中流矢死어늘 于窴人 復立其兄子廣德爲王하다
이에 이 여러 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다가 휴막패에게 크게 패하여 겨우 몸만 빠져나와 도망해 돌아왔다. 휴막패가 전진하여 사차莎車를 포위하였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자, 우전의 사람들이 다시 그의 형의 아들인 광덕廣德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廣德父 先拘在莎車러니 乃歸其父하고 以女妻之하여 與之和親하다
이보다 앞서 광덕의 아버지가 사차에 구속되어 있었는데, 이 광덕의 아버지를 돌려보내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서 그와 화친하였다.
是歲 于窴王廣德 將諸國兵하고 攻莎車하여 誘莎車王賢하여 殺之하고 并其國하다
이해에 우전왕 광덕이 여러 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사차를 공격하여 사차왕 현을 유인해서 죽이고는 그 나라를 겸병하였다.
匈奴發諸國兵하여 圍于窴하니 廣德 請降이라 匈奴立賢質子不居徴하여 爲莎車王이러니
흉노匈奴가 여러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우전을 포위하니, 광덕이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흉노는 인질로 잡혀 있던 의 아들인 불거징不居徴을 세워 사차왕으로 삼았는데,
廣德 又攻殺之하고 更立弟齊黎하여 爲莎車王하다
광덕이 또다시 그를 공격하여 죽이고 다시 아우 제려齊黎를 세워서 사차왕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 帝如河内 不至而還 : “옛날 仲虺(중훼)가 成湯의 德을 찬미할 적에 간언을 따르고 어기지 않으며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은 것을 첫 번째로 칭찬하였다. 허물이란 사람들이 면치 못하는 것이니, 남의 말을 잘 듣고 용감하게 빨리 고치는 것은 바로 盛德의 일이 되는 것이다. 顯宗이 光武帝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지가 이때 4년이었는데, 지난해 여름 北宮의 役事에 鍾離意가 上疏하자, 즉시 大匠에게 명하여 궁궐을 짓는 것을 중지하게 하였고, 금년 봄 사냥하러 나갈 때에 東平王(劉蒼)이 간언을 올리자 황제가 상주문을 보고 즉시 돌아왔으니, 이 또한 간언을 따르고 어기지 않으며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은 뜻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 앞에서는 ‘北宮을 크게 일으켰는데, 얼마 후에 파하였다.’라고 썼고, 여기에서는 ‘황제가 河内에 갔는데, 미처 河內에 도착하기 전에 되돌아왔다.’라고 썼으니, 모두 그 허물을 고친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다. 顯宗과 같은 자는 이에 前古에 광채가 있는 것이다.[昔 仲虺美成湯之德 以從諫弗咈 改過不吝 爲首稱 蓋過者 人所不免 惟能聽人之言而勇於亟改 乃爲盛德之擧爾 顯宗繼體 至是四載 去夏北宮之役 鍾離意上疏 卽敇大匠止作 今春校獵之行 東平王進諫 帝覽奏卽還 此亦從諫弗咈改過不吝之意也 故綱目前書大起北宮 旣而罷之 此書帝如河内 不至而還 皆所以著其改過之美 若顯宗者 於是乎有光前古矣]” ≪發明≫ 仲虺는 湯王의 左相으로, 그가 탕왕의 덕을 찬미한 내용은 ≪書經≫ 〈商書 仲虺之誥〉에 보인다.
역주2 于窴……殺之 : “蠻夷가 서로 죽인 일은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쓴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가 죽였기 때문이다. 漢나라가 莎車王 賢을 都護로 삼은 뒤로부터, 다시 중간에 중지시켰는데도 賢은 여전히 도호를 사칭하여 西域이 그 폐해를 크게 입었다. 이에 賢이 于窴國을 빼앗았다가 우전국이 그를 공격해서 죽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漢나라의 병통으로 여겼기 때문에 쓴 것이다.[蠻夷相殺 不書 此何以書 漢殺之也 自漢以賢都護 雖復中寢 而賢猶詐稱 西域大被其害 於是 奪于窴國 于窴攻殺之 以是爲漢病也 故書]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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