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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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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申年(B.C. 205)
병신년(B.C. 205)
西楚二年 漢二年이라
서초패왕西楚霸王 2년, 한왕漢王 2년이다.
◑ 是歲 楚常山河南韓殷雍魏七國皆亡하니 凡二大國及代九江衡山臨江燕齊六小國爲八國이라
이해에 , 상산常山, 하남河南, , , , 등 일곱 나라가 모두 망하니, 무릇 두 대국과 , 구강九江, 형산衡山, 임강臨江, , 등 여섯 소국小國을 합하여 여덟 나라이다.
又趙王歇後元이요 代王陳餘 韓王信皆元年이요 而齊王假王廣代立하니 定十二國이라
조왕趙王 조헐趙歇이고, 대왕代王 진여陳餘, 한왕韓王 한신韓信은 모두 원년이며, 제왕齊王 전가田假제왕齊王 전광田廣이 연이어 서니 열두 나라가 정해졌다.
冬十月 西楚霸王項籍 弑義帝於江中하다
[綱] 겨울 10월에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양자강揚子江에서 의제義帝를 시해하였다.
項籍 使人趣義帝行注+趣, 讀曰促.하니 其大臣 稍稍叛之어늘
[目] 항적項籍이 사람을 시켜서 의제義帝의 행차를 재촉하니注+(재촉하다)은 으로 읽는다. 의제의 대신들이 하나둘씩 배반하였다.
乃密使吳芮黥布共敖 擊殺之江中하다
그러자 항적이 몰래 오예吳芮, 경포黥布(영포英布), 공오共敖를 시켜서 양자강揚子江 가운데에서 의제를 쳐서 죽이게 하였다.
陳餘以齊兵으로 襲常山하니 王耳走漢이어늘
[綱] 진여陳餘나라 병사를 가지고 상산常山을 습격하니 상산왕 장이張耳나라로 도망갔다.
代王歇 復爲趙王하야 立餘爲代王하다
대왕代王 조헐趙歇이 다시 조왕趙王이 되자, 진여를 세워서 대왕代王으로 삼았다.
田榮數負項梁하고 又不從楚擊秦이라 以故不封하고 陳餘不從入關이라 亦不封이러니
[目] 처음에 전영田榮이 자주 항량項梁을 배반하고 또 나라가 나라를 칠 때에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왕에 봉하지 않았고, 진여陳餘항우項羽를 따라서 함곡관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역시 왕에 봉하지 않았다.
或說羽曰 張耳陳餘 一體
항우의 빈객 중에 어떤 이가 항우를 설득하기를 “장이張耳진여陳餘는 한 몸입니다.
今耳王하니 餘不可不封이니라
지금 장이가 왕이니 진여를 봉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羽不得已하야 封之三縣하니 餘怒하야 使人說齊王榮曰 項羽爲天下宰不平하야
그러자 항우項羽가 부득이하여 3개의 을 봉해주니, 진여가 노하여 사람을 시켜서 제왕齊王 전영田榮을 설득하기를 “항우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盡王諸將善地하고 徙故王於醜地하니
자신의 여러 장수들은 모조리 좋은 땅에 왕 노릇 하게 해주고, 옛날 왕들은 나쁜 땅으로 옮겼습니다.
願大王 資餘兵하라
원컨대 대왕께서는 남은 병사를 제게 내어주십시오.
擊常山復趙王호리라
상산常山을 공격하여 조왕趙王을 복위시켜 놓겠습니다.”라고 하였다.
齊王 許之하야 共襲常山하니 耳亡走漢이어늘
제왕齊王이 허락하여 함께 상산을 공격하니, 장이가 나라로 도망갔다.
餘迎代王歇하야 復王趙한대 立餘爲代王하니 留傅趙王而使夏說 守代하다
진여가 대왕代王 조헐趙歇을 맞아서 다시 조왕趙王이 되게 하자, 조헐이 진여를 세워서 대왕代王으로 삼으니, 진여는 남아서 조왕趙王사부師傅가 되었으며 하열夏說을 시켜서 를 지키도록 하였다.
漢王 如陝하야 鎭撫關外父老하다
[綱] 한왕漢王섬현陝縣으로 가서 함곡관 밖의 부로들이 편안히 살도록 어루만지고 위로하였다.
◑ 河南王陽 韓王昌 降漢하다
[綱]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한왕韓王 정창鄭昌나라에 항복하였다.
◑ 十一月 立韓王孫信하야 爲韓王注+韓王孫, 通鑑作韓襄王孫.하다
[綱] 11월에 나라가 한왕韓王의 손자인 한신韓信을 세워서 한왕韓王으로 삼았다.注+한왕손韓王孫”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한양왕손韓襄王孫(나라 양왕襄王의 손자)’로 되어 있다.
◑ 漢王 還都櫟陽注+蓋自陝而還하다
[綱] 한왕漢王이 돌아와서 역양櫟陽(역양)에 도읍을 정하였다.注+대개 섬현陝縣에서 돌아온 것이다.
◑ 春正月 楚擊齊하니 王榮 敗走死어늘 楚復立田假爲齊王하다
[綱] 봄 정월에 나라가 나라를 치니 제왕齊王 전영田榮이 패하여 도망가다 죽거늘, 나라가 다시 전가田假를 세워서 제왕齊王으로 삼았다.
項羽所過 燒夷城郭室屋하고 阬其降卒하고 係虜老弱婦女하야 多所殘滅하니 齊民 相聚叛之하더라
陳平陳平
[目] 항우項羽가 지나가는 곳마다 성곽과 가옥을 불태워 평지로 만들고, 항복한 병졸을 생매장하였으며 늙은이와 어린이 그리고 부녀자들은 포로로 잡아들여서 잔학한 짓을 많이 하니 나라 백성들이 떼를 지어 반기를 들었다.
三月 漢王 渡河한대 魏王豹降이어늘 虜殷王卬하고 以陳平爲護軍中尉하다
[綱] 3월에 한왕漢王황하黃河를 건넜는데 위왕魏王 위표魏豹가 항복하거늘 은왕殷王 사마앙司馬卬을 포로로 잡고 진평陳平로 삼았다.
陽武人陳平 家貧好讀書러니
[目] 양무陽武 사람 진평陳平은 집이 가난한데도 책 읽기를 좋아하였다.
里中社 爲宰하야 分肉食 甚均注+其里名庫上. 周制, 大夫與民族居, 百家以上, 則其立一社. 秦漢以來, 雖非大夫, 民二十五家以上, 則得立社. 宰, 主切割肉.하니
마을의 에서 진평이 가 되어서 고기를 나누는데 매우 균등하게 하였다.注+동네의 이름은 고상庫上이다. 나라 제도에 대부大夫가 자기 겨레와 함께 사는데 100가구 이상이면 한 개의 를 설립하도록 되어 있었다. 진한秦漢 이래로 대부大夫가 아니더라도 백성이 25가구 이상이면 를 설립할 수 있었다. 는 고기 자르는 것을 주관하는 것이다.
父老曰 善
그러자 마을의 부로들이 감탄하여 “참으로 잘하네.
陳孺子之爲宰
진씨陳氏네 젊은이 노릇이여!”라고 하였다.
曰 嗟乎 使平得宰天下인댄 亦如是肉矣로리라
그러자 진평이 말하기를 “아아, 만약 내가 천하의 가 된다면 또한 이 고기를 나누는 것처럼 공평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事魏王咎하야 爲太僕注+班表 “太僕, 秦官, 掌輿馬.”이러니 不用이어늘 去事項羽어니
[目] 진평陳平위왕魏王 위구魏咎를 섬겨서 태복太僕이 되었는데注+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태복太僕나라의 관직으로서 여마輿馬를 관장한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지 않자 나라를 떠나 항우項羽를 섬겼다.
殷王 羽使平擊降之하니 還拜都尉하고 賜金二十鎰이러니
은왕殷王이 배반하자 항우가 진평을 시켜 쳐서 항복하도록 하였는데, 진평이 돌아오자 도위都尉에 제수하고 20을 하사하였다.
及漢下殷 羽怒하야 將誅定殷將吏한대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나라가 나라를 함락시키자 항우가 노하여 나라를 평정하였던 군관들을 주살하려고 하였다.
하야 乃封其金與印하야 使使歸羽하고 乃挺身仗劒하야 間行歸漢注+挺, 待鼎切, 抜也.하야 因魏無知求見王한대
진평이 두려워하여 곧바로 하사받은 금과 인장을 봉인하여 사자를 시켜서 항우에게 돌려보내고, 자신은 몸을 빼어 칼 한 자루에 의지하여 사잇길로 가서 나라에 귀순하고注+대정待鼎이니 빼어낸다는 뜻이다.위무지魏無知를 통하여 왕을 뵙기를 구하였다.
與語說之하야 問居楚何官 曰爲都尉러니이다 卽拜都尉하야 使參乘典護軍하니
[目] 한왕漢王진평陳平과 더불어 이야기해보고 기뻐하여, “나라에서 무슨 관직에 있었는가?”라고 물으니, 진평이 “도위都尉였습니다.”라고 하니, 즉시 도위에 제수하여 을 시키고 감호監護하는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諸將 盡讙注+典, 掌也. 護, 監領也. 讙, 音喧, 譁然不服之聲.이어늘 聞之하고 益厚平하더라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들 시끄럽게 떠들며 불평하자,注+은 맡는다는 뜻이며, 는 감독하고 거느린다는 뜻이다. 은 음이 인데 시끄럽게 떠들며 승복하지 않는 소리이다. 왕이 그것을 듣고는 더욱 진평을 후대하였다.
周勃等 言於王曰 陳平 雖美注+句. 如冠玉하니 其中 未必有也注+冠玉, 飾冠以玉, 光好外見, 中無所有也.
[目] 주발周勃 등이 왕에게 말하기를 “진평陳平이 비록 잘생겼지만注+여기서 를 뗀다. 관에 붙이는 옥처럼 겉만 번지르르하니 속은 분명히 비었을 것입니다.注+관옥冠玉”은 관을 꾸미는 옥인데 광채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나지만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居家時 嘗盜其嫂注+盜, 猶私也.하고 今爲護軍하야 多受諸將金하나니 反覆亂臣也
집에 있을 때 형수와 사통한 일이 있으며注+는 사통과 같은 뜻이다. 지금 호군護軍이 되어서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금을 많이 받으니 진평은 반복무상한 난신입니다.
願王 察之하소서
원컨대 왕께서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召讓魏無知한대 無知曰 臣所言者 能也 王所問者 行也
[目] 왕이 위무지魏無知를 불러서 나무라니, 위무지가 말하기를 “신이 말씀드린 바는 그의 능력이었고, 왕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그의 행실입니다.
今有尾生孝己之行이라도 而無益勝負之數 何暇用之乎注+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孝己, 殷高宗之子, 以孝行著.잇가
지금 미생尾生이나 효기孝己 같은 훌륭한 행실이 있더라도 승부를 겨루는 데 보탬이 없다면, 왕께서는 어느 겨를에 그들을 쓰겠습니까?”注+미생尾生이 여자와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고 물이 부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의 기둥을 껴안고 있다고 죽었다. 효기孝己나라 고종高宗의 아들인데 효행孝行으로 유명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召讓平曰 先生 事魏不中하고 事楚而去注+中, 去聲.하야 今又從吾游하니 信者 固多心乎
왕이 진평陳平을 불러 나무라기를 “선생이 나라를 섬겼으나 맞지 않았고, 나라를 섬겼으나 도망하여注+(맞다)은 거성去聲이다. 지금 또 나에게 와서 벼슬하니 ?”라고 하였다.
曰 魏王 不能用臣이라 故去하고 項王 不能信人하야 所任愛非諸項이면 卽妻之兄弟注+所任愛, 謂所任用親愛者.
진평陳平이 말하기를 “위왕魏王은 저를 쓸 만한 능력이 없었던 까닭에 떠났고, 항왕項王은 능히 사람을 믿지 못하여 맡기고 사랑하는 바가 여러 항씨項氏가 아니면 바로 처의 형제들입니다.注+소임애所任愛(맡기고 사랑하는 바)”는 관직을 맡기고 친애하는 대상을 말한다.
聞漢王 能用人하고 故來歸
저는 한왕漢王께서 능히 사람을 쓸 줄 안다는 말을 들었기에 와서 귀순한 것입니다.
然躶身來하니 不受金이면 無以爲資注+躶, 郞果切, 赤體也. 平亡渡河, 船人見美丈夫獨行, 疑其亡將, 腰下當有寶器金玉, 目之, 欲殺平. 平恐, 乃解衣臝而佐刺船. 船人知其無有, 乃止.
그러나 맨몸으로 왔으니 금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注+낭과郞果이니 벌거숭이란 뜻이다. 진평陳平이 도망하여 황하黃河를 건너는데, 사공이 미끈하게 생긴 남자가 혼자서 가는 것을 보고는, 도망가는 장군이니 허리춤에 당연히 금은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여 진평을 주시注視하다가 죽이려고 하였다. 진평이 두려워서 즉시 옷을 벗어버리고 노 젓는 것을 도왔다. 그러자 사공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만두었다.
誠臣畫計有可采者인댄 願大王 用之하시고 使無可用者인댄 金具在하니
진실로 저의 계책이 채용할 만하면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를 쓰시고, 쓸 만하지 않다면 금이 모두 그대로 있습니다.
請封輸官하고 得乞骸骨注+人臣委身以事君, 身非我有, 故於其乞退也, 謂之乞骸骨.하야지이다
청컨대 봉인하여 관으로 돌려보내고, 해골이나마 거두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注+신하는 자신의 몸을 맡겨서 임금을 섬기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해골을 구걸한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乃謝平厚賜之하고 拜護軍中尉하야 盡護諸將하니 諸將乃不敢復言하더라
왕이 곧바로 진평에게 사과하고 후하게 물자를 내렸으며,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제수하여 여러 장수들을 모두 감독하게 하니, 여러 장수들이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다.
漢王 至洛陽하야 爲義帝發喪하고 告諸侯討項籍하다
[綱] 한왕漢王낙양洛陽에 이르러 의제義帝를 위하여 발상發喪하고 제후에게 고하여 항적項籍을 토벌하였다.
漢王 至洛陽新城하니 三老董公 遮說曰注+秦制, 十亭一鄕, 鄕有三老, 掌敎化. 董公, 秦世隱士, 其名未詳. 說, 音稅. 橫道自言曰遮說. 順德者하고 逆德者하나니 兵出無名이면 事故不成注+名者, 伐有罪.이라
[目] 한왕漢王낙양洛陽신성新城에 이르니, 삼로三老동공董公이 길을 막고 유세하기를注+나라 제도에 10만구정이 1이며 향에는 삼로三老가 있어서 교화를 담당하였다. 동공董公나라 때의 은자인데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는 음이 이니, 길을 막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차설遮說라고 한다. “덕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덕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나니, 군사를 출정시키는 데 명분이 없다면 그것 때문에 일이 성공하지 못합니다.注+명분이라는 것은 죄 있는 자를 정벌하는 것이다.
曰 明其爲賊이라야 敵乃可服이라하니
그러므로 ‘그가 역적이 된 이유를 명확하게 해야만 적들을 승복시킬 수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項羽無道하야 放殺其主하니 天下之賊也注+放, 謂遷義帝於郴. 殺, 謂殺之江中.
항우項羽가 무도해서 그 군주를 내쫓아 시해하였으니 천하의 역적입니다.注+이란 의제義帝침현郴縣으로 옮긴 것이고, 이란 의제義帝양자강揚子江 가운데서 죽인 것이다.
夫仁不以勇이요 義不以力注+以, 用也. 己有仁, 天下歸之, 可不用勇而天下自服. 己有義, 天下奉之, 可不用力而天下自定.하나니 大王 宜率三軍하야 爲之素服하고 以告諸侯而伐之 則四海之內 莫不仰德하리니
무릇 어진 사람은 무용武勇을 쓰지 않고 의로운 사람은 무력武力을 쓰지 않으니,注+는 쓴다는 뜻이다. 내게 인애仁愛가 있으면 천하가 나에게 돌아오니 무용武勇을 쓰지 않아도 천하가 스스로 복종하고, 내게 의리가 있으면 천하가 나를 받드니 무력을 쓰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평정이 된다. 대왕이 마땅히 삼군三軍을 인솔하여 의제義帝를 위하여 소복素服을 입고 제후에게 알려서 정벌하면 온 세상에 대왕의 덕을 우러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三王之擧也니라
이것은 바로 삼왕三王의거義擧입니다.”라고 하였다.
於是 漢王 發喪하야 哀臨三日注+臨, 去聲. 衆哭曰臨.하고 告諸侯曰 天下共立義帝하야 北面事之러니 今項羽弑之하니 大逆無道
[目] 이에 한왕漢王발상發喪하여 모두 3일 동안 애통하게 곡을 한 후에注+거성去聲이다. 여럿이 모여서 곡하는 것을 이라고 한다. 제후들에게 고하기를 “천하가 함께 의제義帝를 옹립하여 북면北面하여 섬겼는데 이제 항우項羽가 시해하였으니 대역무도한 일이다.
寡人 悉發關中兵하며 收三河士注+三河, 謂河南‧河東‧河內也.하야 願從諸侯王하야 擊楚之殺義帝者注+諸侯王, 謂諸侯及王也.하노라
이에 과인이 관중關中의 병사를 모두 일으키고 삼하三河의 사졸을 전부 거두어서注+삼하三河하남河南, 하동河東, 하내河內를 말한다. 제후들과 왕들을 따라 나라에서 의제를 시해한 자를 치고자 하노라.”注+제후왕諸侯王이란 제후와 왕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天下苦秦하야 諸侯竝起하니 名其師者曰 誅無道秦 可矣러니
“천하가 나라에게 고통을 당하다가 제후가 함께 일어났으니 그 군사를 일으킨 명분으로 무도한 나라를 주멸한다고 한 것은 문제가 없다.
今秦 已滅 諸侯各有分地어늘 而漢 又起兵하니 雖曰 項羽爲政不平이나 顧亦伸己私忿耳 非義兵也注+分, 扶問切.러니
그러나 지금 나라가 이미 멸망하였고 제후들은 각각 나누어진 땅을 가졌는데, 나라가 또 병사를 일으켰으니 비록 항우項羽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돌아보건대 또한 자신의 사사로운 분노를 풀려고 한 것일 뿐이요 의로운 군대는 아니었다.注+(부분)은 질문抶問이다.
及董公 獻言하야 漢王 大臨然後 項羽弑君之罪 無所容於天地之間 而天下歸於漢王 可坐而策矣
그런데 동공董公이 진언하여 한왕漢王이 크게 발상發喪하고 애도한 뒤에야, 임금을 시해한 항우의 죄가 천지간에 용납될 곳이 없어서 천하가 한왕에게 돌아온 것임을 앉아서도 미루어 알 수 있게 되었다.
故隨何陳此義而下九江하고 酈生 陳此義而下全齊하니
따라서 수하隨何가 이 의리를 가지고 설득하여 구강九江(영포英布)을 항복시켰고, 역생酈生이 이 의리를 가지고 설득하여 나라 전체를 항복시켰다.
於是 楚人 背無所倚하고 右斷其臂하니 雖欲不亡이나 不可得矣니라
이에 나라 사람들이 배후에는 의지할 곳이 없고 자신의 오른팔이 잘렸으니, 아무리 망하지 않으려고 한들 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夏四月 齊王榮弟橫 立榮子廣爲王하고 擊王假走之하다
[綱] 여름 4월에 제왕齊王 전영田榮의 동생 전횡田橫이 전영의 아들 전광田廣을 세워서 왕으로 삼고 왕 전가田假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 漢王 率五諸侯兵하야 伐楚入彭城이러니 項籍 還破漢軍하고 以漢太公呂后歸하다
[綱] 한왕漢王이 다섯 제후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하여 팽성彭城으로 들어갔는데, 항적項籍이 도리어 나라의 군사를 격파하고 나라의 태공太公여후呂后를 잡아서 돌아왔다.
項羽雖聞漢東이나 欲遂破齊而後擊漢이라
[目] 항우項羽가 비록 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라를 깨뜨리고 나서 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以故漢王 得率五諸侯兵凡五十六萬人하야 伐楚注+五諸侯, 謂常山王張耳, 河南王申陽, 韓王鄭昌, 魏王豹, 殷王卬. 一說 “張耳奉頭鼠竄, 安得有兵. 蓋陳餘其一也.”하고
이 때문에 한왕漢王이 다섯 제후의 군사 모두 56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할 수 있었다.注+다섯 제후는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 한왕韓王 정창鄭昌, 위왕魏王 위표魏豹, 은왕殷王 사마앙司馬卬인데, 일설一說에 “장이張耳는 쥐새끼처럼 도망쳐왔는데 어찌 군사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대개 진여陳餘가 다섯 제후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彭越 收魏地得十餘城注+項羽倂王梁‧楚, 徙魏王豹於河東, 號西魏王. 今越所下十餘城, 皆梁地也.
이러니 至是將其兵三萬人歸漢하야 請立魏後어늘
팽월彭越나라 땅을 수복하여 10여 성을 얻었는데注+항우項羽나라와 나라를 아울러 왕이 되고, 위왕魏王 위표魏豹하동河東으로 옮겨서 서위왕西魏王이라고 호칭하였다. 지금 팽월彭越이 복속시킨 10여 개의 성은 모두 대량大梁의 땅에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그 병사 3만 명을 데리고 나라에 귀부하여 나라에 후손을 세워줄 것을 청하자,
漢王曰 西魏王豹 眞魏後라하고 乃以彭越 爲魏相國하야 將其兵略梁地하고
한왕이 말하기를, “서위왕西魏王 위표魏豹가 진정한 나라의 후손이다.”라고 하고, 팽월을 나라 상국相國으로 삼아서 그 병사를 거느리고 대량大梁의 땅을 빼앗도록 하였다.
遂入彭城하야 收其貨寶美人하야 日置酒高會러니
한왕이 드디어 팽성彭城으로 들어가서 보화와 미녀를 거두어들이고 날마다 성대한 주연을 베풀었다.
羽聞之하고 自以精兵三萬으로 還擊破漢軍하니 漢軍 入穀泗及睢水注+穀‧泗二水, 皆在沛郡彭城. 睢, 音雖. 水經注 “睢水出陳留縣西蒗蕩渠, 東過沛郡相縣.” 又逕彭城郡之靈壁東而東南流.하야 死者二十餘萬人이라 水爲不流러라
[目] 항우項羽가 이런 소식을 듣고는 스스로 정병精兵 3만 명을 데리고 돌아와 나라 군사를 격파하니, 나라 군사가 〈나라 군사에게 밀려서〉 곡수穀水, 사수泗水수수睢水(수수)로 들어갔는데注+곡수穀水사수泗水 두 강은 모두 패군沛郡팽성彭城에 있다. 는 음이 인데 《수경주水經注》에 “수수睢水진류현陳留縣의 서쪽 낭탕거蒗蕩渠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패군沛郡상현相縣을 지난다.”고 하였고, 또 팽성군彭城郡 영벽靈壁 동쪽을 지나서 동남쪽으로 흘러간다고 하였다. 죽은 자가 20여만 명이나 되어 물이 막혀 흐르지 않았다.
圍漢王三匝이러니 會大風晝晦어늘
한왕漢王을 삼중으로 포위하였는데 마침 큰바람이 불어 대낮이 그믐처럼 캄캄하였다.
乃得與數十騎 遁去하야
한왕이 그제야 수십 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갈 수 있었다.
欲過沛收家室이라가 道逢子盈及女하야 載以行注+女, 卽魯元公主.하고 而太公呂后 爲楚軍所獲하니 諸侯復背漢與楚하다
패현沛縣을 지나면서 가족을 수습하려고 하다가 길에서 아들 과 딸을 만나 그들을 싣고 갔으며,注+딸은 즉 노원공주魯元公主이다.태공太公여후呂后나라 군사에게 붙잡히니 제후들이 다시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붙었다.
間往從呂后兄周呂侯於下邑하야 收其兵注+周呂侯, 名澤. 周呂, 封邑名. 班志 “下邑縣屬梁國. 梁國, 秦碭郡, 漢改焉.”하다
왕이 샛길로 여후의 오빠 주려후周呂侯가 있는 하읍下邑으로 쫓아가서 그 병사를 거두었다.注+주려후周呂侯의 이름은 이고 주려周呂는 책봉된 읍의 이름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읍현下邑縣양국梁國에 속하는데 양국梁國나라 탕군碭郡이고 나라 때 고쳤다.”고 하였다.
항우項羽가 팽성彭城을 공격하다항우項羽가 팽성彭城을 공격하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盤水 可奉而志難持 六馬 可調而氣難御注+奉, 讀曰捧. 天子五路駕六馬. 使漢王 於是時 兢兢業業하야 如初入關中見羽鴻門則亦何至於敗哉리오
“쟁반에 가득한 물은 받들 수 있지만 지조는 지키기 어렵고, 여섯 마리 말은 길들일 수 있으나 기분은 제어하기 어려우니,注+(받들다)은 으로 읽는다. 천자의 다섯 종류 수레는 6마리 말로 끈다. 만약 한왕漢王이 이 당시에 진중하고 조심하여 처음 관중關中에 들어갔을 때와 홍문鴻門에서 항우項羽를 만났던 때와 같이 했다면 어찌 패배하는 데 이르렀겠는가?
今志不持而氣爲帥하야 狃於小勝而逸欲 生焉하니 是以至於此耳
이제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기분을 장수로 삼아서 작은 승리에 만족하여 안일한 마음과 욕심이 생겼으니, 이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且是行也 直欲破羽之國都歟인댄 則宜亟還滎陽하야 以主待客 可也 若欲致羽而與戰歟인댄 則宜分部諸將하야 據險邀擊 可也어늘
또 이번에 출정할 때에 곧장 항우의 국도國都를 격파하려고 하였다면, 마땅히 빨리 형양滎陽으로 돌아와서 주병主兵을 거느리고 객병客兵을 기다리는 것이 옳았을 것이고, 만약 항우를 불러들여 한번 싸우고자 하였다면, 마땅히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배치하여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여 맞받아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今乃淹留引日하야 肆志寵樂而群臣 亦寂無諫者하니 豈良平諸公 不在行歟
그런데 지금 그대로 머물러 시일을 끌면서 마음껏 향락을 즐겼으나 여러 신하도 또한 조용히 있고 아무도 간하는 자가 없었으니, 어찌 장량張良진평陳平제공諸公이 이번 출정에 있지 않았는가.
嗚呼危哉로다
아아 위태로웠도다.”
漢王 遣隨何使九江하다
[綱] 한왕漢王수하隨何를 보내어 구강九江에 사신을 가게 하였다.
項羽擊齊 徵兵九江한대 黥布稱疾하고 遣將將數千人往하고
[目] 처음에 항우項羽나라를 칠 때에 구강九江에서 병사를 징발하였는데, 경포黥布(영포英布)가 병을 핑계 대고 장수를 시켜서 군사 수천 명을 거느리고 가게 하였다.
及漢 入彭城 布又不佐楚 羽由是怨之러니
나라가 팽성彭城에 들어왔으나 경포가 또 나라를 돕지 않았으므로 항우가 이 때문에 경포를 원망하였다.
至是하야 漢王 西過梁地할새 問群臣曰 吾欲捐關以東하야 等棄之하노니 誰可與共功者注+捐關以東, 謂不自有其地, 將以與人, 令其立功共破楚也. 等棄之者, 言捐以與人, 與棄等也.
이때에 이르러 한왕漢王이 서쪽으로 대량大梁 땅을 지나가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내가 함곡관 동쪽의 땅을 떼어서 버리는 것과 같이 하고자 하니, 누가 나와 함께 을 세울 수 있겠는가?”注+연관이동捐關以東(함곡관의 동쪽을 떼어서 버린다.)”은 그 땅을 자신이 갖지 않고 장차 남에게 주어서 그로 하여금 공을 세워 함께 나라를 격파한다는 것이다. “등기지等棄之(버리는 것과 같다.)”란 떼어서 남에게 주는 것이 마치 버리는 것과 같이 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자,
張良 曰 九江 與楚有隙하고 彭越 與齊反梁地하니 此兩人 可急使而漢將 獨韓信 可屬大事當一面이니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구강九江나라와 틈이 있고 팽월彭越나라와 함께 대량 땅에서 항우에 반기를 들고 있으니 이 두 사람을 급히 쓸 수가 있고, 나라 장수 중에는 유독 한신韓信만이 대사를 맡겨서 한쪽의 방면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捐之此三人이면 則楚 可破也리이다
이 세 사람에게 떼어준다면 나라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謂左右曰 孰能爲我使九江하야 令倍楚留項王數月
왕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구강에 사신을 가서 나라를 배신하여 항왕項王을 몇 달간 묶어두게 할 수 있겠는가?
我取天下可以百全이리라 謁者隨何請使어늘 遣之注+隨, 姓也.하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천하를 취하는 일이 완전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자, 알자謁者 수하隨何가 사신 가기를 청하니 왕이 그를 보냈다.注+는 성이다.
五月 漢王 至滎陽하다
[綱] 5월에 한왕漢王형양滎陽에 이르렀다.
至滎陽하니 諸敗軍 皆會하고 蕭何發關中老弱未傅者하야 悉詣滎陽하니 漢軍 復大振注+傅, 著也. 言著名籍給公家徭役也. 古者, 二十而傅, 三年耕有一年儲, 故二十三而後役之. 五十六免, 就田里. 未二十爲弱. 過五十六爲老.이라
[目] 왕이 형양滎陽에 이르니 여러 패배한 군사들이 모두 모였고, 모두 형양으로 보내니 나라의 군사가 다시 크게 일어났다.注+는 기록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병적에 이름을 기록하여 공가公家요역徭役에 공급하는 것이다. 옛날에 20세가 되면 병적에 이름을 기록하고 3년을 경작하여야 1년 비축할 수 있으므로 23살 이후에 요역을 하고, 56세가 되면 면제되어 전리田里로 돌아간다. 20세가 안 된 사람을 이라 하고, 56세가 넘은 사람을 라고 한다.
楚以故 不能過滎陽而西하니 遂築甬道屬之河하야 以取敖倉粟注+築甬道, 恐敵抄其糧運, 故夾築垣墻, 以通餉道. 括地志 “敖山在鄭州滎陽西十五里, 秦置大倉於此, 故名敖倉.”하다
나라가 이 때문에 형양을 거쳐서 서쪽으로 진군하지 못하니 나라가 드디어 용도甬道를 세워서 황하黃河에 연결하여 오창敖倉의 곡식을 가져왔다.注+축용도築甬道(용도甬道를 쌓는다.)”는 운송하는 군량을 적이 빼앗는 것을 두려워하여 길의 양쪽 가에 담장을 쌓아서 군량 보급로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오산敖山정주鄭州 형양滎陽 서쪽 15리에 있는데 나라가 이곳에 큰 창고를 두었던 까닭에 오창敖倉으로 이름했다.”고 하였다.
魏王豹叛漢하다
[綱] 위왕魏王 위표魏豹나라를 배반하였다.
◑ 漢王 還櫟陽하야 立子盈爲太子하다
[綱] 한왕漢王역양櫟陽으로 돌아와서 아들 을 세워서 태자로 삼았다.
◑ 關中하야 人相食하다
[綱] 관중關中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 秋八月 漢王 如滎陽하고 命蕭何守關中하야 立宗廟社稷하다
[綱] 가을 8월에 한왕漢王형양滎陽으로 가고 소하蕭何에게 명하여 관중關中을 지켜서 종묘와 사직을 세우게 하였다.
如滎陽하고 命蕭何하야 侍太子守關中하야 爲法令約束하고 立宗廟社稷하고
[目] 왕이 형양滎陽으로 가고, 소하蕭何에게 명하여 태자를 모시고 관중關中을 지키며 법률과 규정을 만들고 종묘와 사직을 세우게 하였다.
事有不及奏決者어든 輒以便宜施行하고 上來以聞注+俟主上來還, 乃以施行之事聞奏.하니 計關中戶口하야 轉漕調兵하야 以給軍하야 未嘗乏絶注+調, 徒吊切.이러라
미처 상주하여 결정하지 못한 일이 있거든 즉시 상황에 따라 편의대로 시행하고 주상이 왔을 때 보고하게 하니,注+주상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 곧 시행한 일을 보고하는 것이다. 소하는 관중의 호구 수를 계산하여 수레와 뱃길로 군량을 운송하고 병사를 조련하여 군대에 조달해서 부족하지 않게 하였다.注+調(조련하다)는 도조徒吊이다.
漢韓信 擊魏하야 虜王豹하고 遂北擊趙代하다
[綱] 나라 한신韓信나라를 공격하여 왕 위표魏豹를 포로로 잡고 드디어 북쪽으로 나라와 나라를 공격하였다.
使酈生으로 說魏王豹하고 且召之한대 豹不聽曰 漢王 慢而侮人하야 罵諸侯群臣 如罵奴耳 吾不忍復見也하노라
[目] 나라가 역생酈生으로 하여금 위왕魏王 위표魏豹를 설득하고 또 불렀는데, 위표가 따르지 않고 말하기를 “한왕漢王이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겨서 제후와 신하들을 마치 종놈처럼 꾸짖으니 내가 차마 다시 만나지 못하겠노라.”라고 하였다.
於是 漢王 以韓信爲左丞相하야 與灌嬰曹參으로 俱擊魏하다
이때에 한왕漢王한신韓信을 좌승상으로 삼고 관영灌嬰조참曹參과 함께 나라를 치게 하였다.
問食其호대 魏大將 誰也 對曰 柏直注+柏, 姓也.이러이다
왕이 역이기酈食其에게 묻기를 “나라의 대장이 누구냐?”라고 하니, “백직柏直입니다.”注+은 성이다.라고 대답하였다.
王曰 是口尙乳臭 安能當韓信注+乳臭, 言其少不經事, 弱不任事, 若未離乳保之懷者.이리오
왕이 말하기를 “그는 입에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았으니 어찌 능히 한신을 당하겠는가.注+유취乳臭(젖비린내)”란 어려서 경험이 없고, 약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하니, 유모의 품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騎將 誰也 曰 馮敬이러이다
기병의 대장은 누구인가?”라고 하니, “풍경馮敬입니다.”라고 하였다.
曰 雖賢이나 不能當灌嬰호리라
“그가 비록 현명하기는 하지만 관영은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步卒將 誰也 曰 項它이러이다
보졸의 대장은 누구인가?”라고 하니, “항타項它입니다.”라고 하였다.
曰 不能當曹參이니 吾無患矣로다
왕이 “조참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니, 내가 근심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亦問魏得無用周叔爲大將乎 曰 柏直也러라
[目] 한신韓信이 또 “나라가 주숙周叔을 등용하여 대장으로 삼지 않겠는가?”라고 물으니, 역이기酈食其가 “백직柏直입니다.”라고 하였다.
曰 豎子耳라하고 遂擊虜豹定魏地하다
한신이 “어린애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나라를 쳐서 위표魏豹를 포로로 잡고 나라 땅을 평정하였다.
請兵三萬人하야 願以北擧燕趙하고 東擊齊하고 南絶楚糧道라한대 遣張耳與俱하니
한신이 “군사 3만 명을 주시면 북쪽으로 나라와 나라를 함락하고 동쪽으로 나라를 공격하며 남쪽으로 나라의 군량미 운송로를 끊어버리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장이張耳를 보내어 함께 가게 하였다.
九月 破代兵하고 禽夏說하다
9월에 나라 병사를 깨고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
역주
역주1 : 楚 懷王의 楚나라이다.
역주2 後元年 : 張耳를 세워서 常山王으로 삼고 趙나라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때 陳餘가 상산왕 장이를 습격하자 장이가 도망갔기 때문에 다시 代王 趙歇을 趙王으로 삼았다. 그래서 後元年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3 護軍中尉 : 秦漢代 임시로 설치한 관직으로서 護軍中尉, 혹은 護軍徒尉라고 하였다. 각 장령 사이의 관계를 감찰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역주4 : 토지신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말한다.
역주5 : 제사를 지낸 후에 고기를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으므로 후에 총재 재상과 같이 가장 중요한 관직을 일컫게 되었다.
역주6 參乘 : 임금의 수레에 함께 타서 임금을 모시는 직책이다.
역주7 신의가……가집니까 : 춘추시대 齊나라 晏嬰이 靈公과 莊公과 景公을 각각 섬긴 것을 두고, 梁丘據가 “어진 사람은 원래 이렇게 마음이 많은 것인가.[仁人固多心乎]”라고 묻자, 안영이 “하나의 마음으로는 100명의 군주를 섬길 수 있고, 100개의 마음으로는 한 명의 군주도 섬길 수가 없다.[一心可以事百君 百心不可以事一君]”라고 대답한 내용이 漢나라 孔鮒가 지은 《孔叢子》 〈詰墨〉에 나온다. 漢 高祖(劉邦)의 말은,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의당 한 명의 군주만을 섬겼어야 하는데 여러 군주를 바꾼 것은 신의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진평에게 신의가 없다고 힐문한 것이다.
역주8 蕭何가……동원하여 : 병적에 등기가 안 된 사람은 아직 徭役 즉 군대에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소하는 군대에 동원되는 23세~56세 이외의 23세 미만과 56세 이상의 인원에 대해서도 모두 동원하여 漢 高祖가 있는 滎陽으로 보냈다는 뜻이다.
역주9 漢나라……평정하였다 : 漢王이 漢中에서 나와 三秦이 다스리던 關中을 평정했을 때 雍王 章邯만이 廢丘에 의지하여 저항하고 있었다. 漢나라는 폐구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나머지 군대는 동쪽으로 출진하였다. 한왕이 彭城에서 크게 패한 뒤 다시 내실을 다지면서 후방에서 계속 저항하던 장함을 공격하여 폐구를 함락시키고 雍 땅을 평정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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