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13)

자치통감강목(1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1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辰年(296)
六年이라 以張華爲司空하다
◑夏 匈奴郝度元하다
匈奴郝度元 與馮翊, 北地, 馬蘭羌, 盧水胡 俱反하여 殺北地太守注+北地有馬蘭山, 羌居其中, 因爲種落之名, 時蓋屬馮翊‧北地二郡界也. 盧水胡, 居安定界.하다
征西大將軍趙王倫 信用嬖人孫秀하여 與雍州刺史解系 爭軍事注+解系, 姓名.하니 朝廷 徵倫還하고 以梁王肜代之注+肜, 宣帝子也, 泰始元年, 受封.하다
系表請誅秀以謝氐, 羌이어늘 張華以告肜하여 使誅之러니 秀友人 爲之說肜하여 得免하다
遂用秀計하여 深交賈, 郭하니 賈后大愛信之 因求錄尙書事어늘 張華, 裴頠固執不可라하니 倫, 秀由是怨之러라
秋八月 秦雍氐羌齊萬年이어늘 冬十一月 遣將軍周處等하여 討之하다
御史中丞周處 彈劾 不避權威러니 梁王肜 嘗違法이어늘 處按劾之하다
至是하여 秦, 雍氐, 羌 悉反하여 其帥齊萬年 僭帝號하고 圍涇陽注+涇陽縣, 前漢屬安定郡, 後漢‧晉省.이어늘
詔以處爲建威將軍하여 隷安西將軍夏侯駿하여 以討之하다
中書令陳準 曰 駿及梁王 皆貴戚이요 非將帥之才
進不求名하고 退不畏罪注+景懷皇后, 夏侯氏也, 故駿爲外戚.하며 周處 忠直勇果하여 有仇無援하니
宜詔孟觀하여 以精兵萬人으로 爲處前鋒이면 必能殄寇리이다
不然이면 梁王 當使處先驅하고 而不救以陷之리니 其敗必也리이다
朝廷 不從하다 萬年 聞處來하고 曰 周府君 有文武才하니 若專斷而來 不可當也어니와 或受制於人이면 此成禽耳라하니라
關中 饑疫하다
◑十二月 略陽氐楊茂搜 據仇池하다
略陽淸水氐楊駒 始居仇池하니 仇池方百頃이요 其旁平地二十餘里
四面 斗絶而高하여 爲羊腸蟠道三十六囘而上注+略陽縣, 漢屬天水郡, 後漢改天水郡, 爲漢陽郡. 獻帝初平四年, 分漢陽‧上郡, 置永陽郡, 魏改爲廣魏郡, 武帝泰始中, 更名略陽郡. 淸水縣, 前漢屬天水郡, 後漢志省, 晉志復見. 仇池, 漢書地理志所謂天池大澤, 在武都郡武都縣西, 水經註所謂瞿塘者也. 蟠, 蒲官切, 蟠道, 道路蟠曲.이러니 至其孫千萬하여 附魏하여 封爲百頃王하다
千萬孫飛龍 浸彊盛하여 徙居略陽하여 以其甥令狐茂搜爲子하다
茂搜避齊萬年之亂하여 帥部落하고 還保仇池하여 自號輔國將軍, 右賢王하니
關中人士避亂者 多依之 茂搜迎接撫納하고 欲去者 衛護資送之러라


丙辰年(296)
[] 나라 孝惠皇帝 元康 6년이다. 봄에 張華司空으로 삼았다.
[] 여름에 匈奴 郝度元(학도원)이 배반하였다.
[] 匈奴 郝度元馮翊北地, 馬蘭에 있는 羌族盧水胡族들과 함께 배반하여 北地太守를 살해하였다.注+北地馬蘭山이 있는데 羌族들이 그 안에 거주하고 인하여 種落(종족 부락)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이때 아마도 馮翊北地의 경계에 속한 듯하다. 盧水胡族安定의 경계에 거주하였다.
征西大將軍 趙王 司馬倫이 총애하는 사람 孫秀의 말을 신용하여 雍州刺史 解系와 군대의 일을 다투니,注+解系는 사람의 성명이다. 조정에서는 사마륜을 불러 들어오게 하고 梁王 司馬肜(사마융)으로 대신하게 하였다.注+司馬肜宣帝의 아들이니, 泰始 원년(265)에 封地를 받았다.
해계가 表文을 올려 손수를 주살해서 氐族羌族에게 사과할 것을 청하자, 張華가 이것을 사마융에게 알려서 그로 하여금 손수를 주살하게 하였는데, 손수의 친구가 그를 위하여 사마융을 설득해서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사마륜이 마침내 손수의 계책을 따라 賈氏郭氏와 깊이 결탁하니, 賈后가 손수를 크게 사랑하고 신임하였다. 손수가 이로 인하여 錄尙書事가 될 것을 요구하였으나 장화와 裴頠가 불가하다고 고집하니, 사마륜과 손수가 이 때문에 그들을 원망하였다.
[] 가을 8월에 秦州雍州氐族羌族齊萬年이 배반하자, 겨울 11월에 장군 周處 등을 보내어 토벌하게 하였다.
[] 처음에 御史中丞 周處가 관리들을 탄핵할 적에 권력이 있고 위세가 높은 자를 피하지 않았다. 梁王 司馬肜이 일찍이 법을 위반하자, 주처가 조사하여 탄핵하였다.
이때에 秦州, 雍州氐族羌族이 모두 배반하여 그들의 장수인 齊萬年이 황제의 칭호를 참칭하고 涇陽을 포위하자,注+涇陽縣前漢 때에는 安定郡에 속하였는데, 後漢나라 때에는 없앴다.
詔令을 내려서 주처를 建威將軍으로 삼아 安西將軍 夏侯駿에게 예속되어 토벌하게 하였다.
이에 中書令 陳準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후준과 梁王(사마융)은 모두 貴戚 출신으로 장수의 재목이 아닙니다.
나가 싸워도 명예를 바라지 않고 후퇴하여도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注+景懷皇后夏侯氏이므로 夏侯駿을 외척이라고 한 것이다. 주처는 사람이 충직하고 용맹하고 과감하여 그를 미워하는 원수만 있고 후원해주는 이가 없으니,
마땅히 孟觀에게 조령을 내려서 정예병 1만 명으로 주처의 선봉대가 되게 하면 반드시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왕이 마땅히 주처로 하여금 선봉이 되게 하고 구원하지 아니하여 죽음에 빠트릴 것이니, 틀림없이 실패할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제만년은 주처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周府君文武의 재주가 있으니, 만약 자신이 專斷하여 오면 내가 당할 수 없지만 혹 남에게 제재를 받으면 이는 사로잡힐 뿐이다.” 하였다.
[] 關中 지방에 기근이 들고 역병이 유행하였다.
[] 12월에 略陽氐族楊茂搜仇池를 점거하였다.
[] 처음에 略陽 淸水氐族楊駒가 처음 仇池에 거주하였는데, 구지는 사방 넓이가 100이고 그 부근의 평평한 땅이 20여 리이며,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지대가 높아서 의 창자처럼 굽은 길이 36번을 돌아 올라갔다.注+略陽縣나라 때에는 天水郡에 속하였고, 後漢 때에는 천수군을 고쳐 漢陽郡이라 하였다. 後漢 獻帝 初平 4년(193)에 漢陽上郡을 나누어 永陽郡을 설치하였고, 나라 때에는 이것을 고쳐 廣魏郡이라 하였으며, 武帝 泰始 연간에 略陽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淸水縣前漢 때에는 천수군에 속하였는데, ≪後漢書≫의 〈地理志〉에는 없으며, ≪晉書≫ 〈地理志〉에는 다시 보인다. 仇池는 ≪漢書≫ 〈地理志〉에 이른바 ‘天池大澤’이라는 곳이니, 武都郡 武都縣 서쪽에 있었는바 ≪水經註≫에 이른바 ‘瞿塘’이라는 곳이다. 蒲官이니, 蟠道는 도로가 굴곡진 것이다. 그의 손자 楊千萬에 이르러 나라에 복속하여 百頃王에 봉해졌다.
양천만의 손자 楊飛龍이 점점 강성해져서 略陽으로 옮겨 거주하고 생질인 令狐茂搜를 양자로 삼았다.
楊茂搜(영호무수)가 齊萬年의 난리를 피하여 부족을 거느리고 구지로 돌아와 살면서 스스로 輔國將軍 右賢王이라 칭하니,
關中의 사람 중에 피난간 자들이 대부분 그에게 귀의하였다. 양무수가 이들을 영접하고 어루만져 받아들였으며, 떠나가고자 하는 자들은 호위하여 물자를 주어 떠나보냈다.



자치통감강목(13)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