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遼東徼外貊人이 冦邊이어늘 太守祭肜이 招降之하고
肜
이 又以財利
로 撫納鮮卑大都護偏何
하여 使招致異種
하여 絡繹款塞
注+偏何, 姓名. 往來不絶曰絡繹, 字通作落驛.하다
肜曰 審欲立功인댄 當歸擊匈奴하여 斬送頭首라야 乃信耳니라
偏何等이 卽擊斬匈奴하여 持頭詣郡하고 其後相攻에 輒送首級하여 受賞賜라
自是로 匈奴衰弱하여 邊無冦警하고 鮮卑, 烏桓이 竝入朝貢하다
肜은 爲人이 質厚重毅하고 撫夷狄以恩信이라 故로 皆畏而愛之하여 得其死力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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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요동遼東 변방 밖에 있는 맥족貊族 사람들이 변경을 침략하자, 태수 채융太守 祭肜(채융)이 불러 항복을 받았다.
채융은 또
재리財利로써
선비鮮卑의
대도호 편하大都護 偏何를 어루만지고 받아들여서 그로 하여금 다른 종족들을 초치하여 끊임없이 변방에 이르게 하였다.
注+편하偏何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끊이지 않고 왕래하는 것을 “낙역絡繹”이라 하니, ≪자통字通≫에는 낙역落驛으로 되어 있다.
채융이 〈편하 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공을 세우고자 한다면, 마땅히 돌아가 흉노匈奴를 공격해서 머리를 베어 보내야만 비로소 그대들을 믿을 것이다.” 하니,
편하 등이 즉시 흉노를 공격해서 참수하고 그 머리를 가지고 군郡에 나왔고, 그 뒤 서로 공격할 때마다 번번이 수급을 보내 상을 받았다.
이로부터 흉노가 쇠약하여 변경에는 흉노의 침략을 알리는 경고가 없어졌으며, 선비鮮卑와 오환烏桓이 함께 들어와 조공하였다.
채융은 인품이 질박하고 후덕하며 진중하고 굳세며, 이적夷狄들을 은혜와 신의로써 어루만졌다. 그러므로 오랑캐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여 사력을 다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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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마원馬援의 조카인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은 모두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한 협객과 교제하였다.
注+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은 모두 마여馬余의 아들이다. 경輕은 경박함을 이르고 협俠은 임협任俠을 이른다. 마원이 전에
교지交趾에 있을 적에 글을 보내 다음과 같이 경계하였다.
“나는 너희들이 남의 과실過失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들은 것과 같이하여, 귀로는 얻어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않기를 바라노라.
남의 장단점을 따지기 좋아하며 망령되이
정사政事와
법法을 함부로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내가 크게 싫어하는 바이니
注+“시비정법是非政法”은 시정時政을 비난함을 이른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 중에 이런 행실을 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노라.
용백고龍伯高는 후덕하고 두루 삼가서 입에 가릴 말이 없으며 겸손하고 절약하고 청렴하고 공정하여 위엄이 있으니, 내 그를 애지중지하여 너희들이 그를 본받기를 원하노라.
두계량杜季良은 기개가 높고 의義를 좋아해서 남의 근심을 근심해주고 남의 즐거움을 즐거워해주어서 아버지의 상喪에 손님을 초치함에 여러 군郡의 사람들이 모두 왔으니, 내 그를 애지중지하지만 너희들이 본받기를 원치 않노라.
용백고를 본받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가 될 것이니, 이른바 ‘큰 고니를 조각하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리를 닮는다.’
注+혹鵠(고니)은 호옥胡沃의 절切이니 새의 이름이다. 목鶩(집오리)은 망우亡遇와 막복莫卜의 두 가지 절切이니, 기를 수 있으나 높이 날지 못하는 것을 압鴨이라 하고, 야생으로 높이 나는 것을 목鶩이라 한다.는 것이지만, 두계량을 본받다가 이루지 못하면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를 닮는다.’는 것이다.” 용백고는
산도장山都長인
용술龍述이고, 두계량은
월기사마越騎司馬인
두보杜保이다.
注+산도山都는 현縣의 이름이니 남양군南陽郡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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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호씨胡氏(
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
양송梁松이
마원馬援의 편지 때문에 죄에 걸려 머리를 땅에 두드려 피를 흘리며 〈용서를 빈 것은〉 황제가 직접 본 바인데, 그로 하여금 역마를 타고 가서 마원을 문책하게 하고 대신 그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
注+“읍혈泣血”은 에는 유혈流血로 되어 있다.
또 마원은 호두산壺頭山에 진영을 칠 것을 청하고 경서耿舒는 충充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갈 것을 청하여 두 가지 일을 모두 올렸을 적에 황제가 마원의 계책을 따랐는데, 얼마 후 다시 경서의 말을 듣고서 마원이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을 허물하였으며, 게다가 무함하는 말이 또 양송의 입에서 나왔다.
황제가 평소 적을 헤아려서 승리할 적에는 만 리의 밖을 밝게 보았는데, 이 일에 있어서는 일의 마땅함을 여러 번 잃었으니, 이는 나이가 많아져서 지혜가 곤궁한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마원과 같은 훌륭한 신하에 있어서 끝을 잘 마치도록 보전해주지 못했으니, 군주의 덕에 누가 됨이 어찌 적다고 하겠는가.”
目
【
목目】
알자 종균謁者 宗均이
마원馬援의 군대를 감독하였는데
注+종宗은 성姓이다., 마원이
졸卒하자 군사 중에 역병으로 죽은 자가 태반이고,
만족蠻族들 또한 굶주리고 곤궁하였다.
종균이 이에 장수들과 상의하기를 “지금 길이 멀고 군사들이 병들어서 전투할 수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황제의 제명制命을 받들어 적을 항복시키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니, 장수들이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종균이 말하기를 “
충신忠臣은 국경을 나갔을 적에 국가를 편안히 할 수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하고는 마침내 제명을 사칭하여
복파사마 여충伏波司馬 呂种(여충)을 선발하여
수원릉장守沅陵長으로 임명하고
注+조調는 도제徒弟의 절切로 등용함이니, 〈“교제조矯制調”는〉 제명制命을 사칭하여 선발해서 등용함을 말한 것이다.
여충에게 명하여 조서를 받들고 오랑캐 진영으로 들어가서 은혜와 신의로써 타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군대를 무장하여 그 뒤를 따르니, 만이蠻夷가 놀라고 두려워해서 겨울 10월에 함께 그들의 대수大師(큰 우두머리)를 참수하고 항복하였다.
이에 종균이 적진으로 들어가서 그 군대를 해산하여 본군本郡으로 돌려보내고 장리長吏를 배치하고 돌아오니, 여러 만족蠻族이 마침내 평정되었다.
종균이 경사京師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황제의 제명을 사칭한 죄를 스스로 탄핵하자, 상上은 그의 공功을 가상히 여기고 맞이하여 금과 비단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