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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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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年(189)
기사년己巳年(189)
六年이라 春二月 皇甫嵩 擊王國하여 大破之하다
나라 효령황제 중평孝靈皇帝 中平 6년이다. 봄 2월에 황보숭皇甫嵩왕국王國을 공격하여 대파大破하였다.
董卓 謂皇甫嵩曰 陳倉 危急하니 請速救之하노이다 嵩曰 不然하다 百戰百勝 不如不戰而屈人兵이라
동탁董卓황보숭皇甫嵩에게 이르기를 “진창陳倉이 위급하니 속히 구원하기를 청합니다.” 하자, 황보숭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승리하는 것이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만 못하다.
是以 先爲不可勝하여 以待敵之可勝이라 陳倉 雖小 城守固備하니 未易可拔이요
이 때문에 먼저 적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놓고서 적을 공격하여 이길 틈을 기다리는 것이다. 진창陳倉이 비록 작으나 성의 수비가 견고하게 갖춰졌으니 쉽게 함락할 수가 없고,
王國 雖彊이나 攻陳倉不下하면 其衆 必疲하리니 疲而擊之 全勝之道也니라
왕국王國이 비록 강하나 진창陳倉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하면 그 무리가 반드시 피곤할 것이니, 피곤할 때에 공격하는 것이 완전하게 승리하는 길이다.”
攻陳倉八十餘日이로되 不拔하고 疲敝解去어늘 進兵擊之한대
왕국王國진창陳倉을 공격한 지 80여 일이 지났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피폐하여 포위를 풀고 떠나가자, 황보숭皇甫嵩이 진군하여 공격하였다.
卓曰 窮寇勿迫이요 歸衆勿追注+司馬兵法之言.니이다 嵩曰 不然하다 前吾不擊 避其銳也 今而擊之 待其衰也
동탁董卓이 말하기를 注+〈“궁구물박 귀중물추窮寇勿迫 歸衆勿追”는〉 의 말이다. 하니, 황보숭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지난번에 내가 공격하지 않은 것은 그 예봉銳鋒을 피한 것이요, 지금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사기가 쇠퇴함을 기다렸던 것이니,
所擊疲師 非歸衆也 國衆且走하여 莫有鬪志하니 以整擊亂이요 非窮寇也라하고 遂獨進하여
공격하는 대상은 피폐한 적의 군대요 돌아가는 무리가 아니다. 또 왕국의 군대가 우선 도망하여 싸울 마음이 없으니, 우리의 정돈된 군대로 혼란한 적을 공격하는 것이요 궁지에 몰린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連戰大破之하여 斬首萬餘級하니 大慙恨하여 由是 與嵩有隙하다
황보숭이 마침내 홀로 진군하여 연달아 싸워 대파해서 1만여 명의 수급을 베었다. 동탁이 크게 부끄럽고 한스러워 이로 말미암아 황보숭과 틈이 생기게 되었다.
三月 劉虞討漁陽賊하여 斬張純하니 餘衆 降散하다
】 3월에 유우劉虞어양漁陽을 토벌하여 장순張純의 목을 베니, 남은 무리가 항복하고 흩어졌다.
劉虞到部하여 遣使至鮮卑中하여 告以利害하고 責使送張擧, 張純首하고 厚加購賞하니 丘力居等 聞虞至하고하여 各遣譯自歸하다
유우劉虞에 도착하여 사자使者선비鮮卑에게 보내 이해利害를 말하게 하고 사자에게 장거張擧장순張純의 수급을 보내라고 요구하고 후하게 현상금을 거니, 구력거丘力居 등은 유우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해서 각각 역관譯官을 보내 스스로 귀순하였다.
虞罷諸屯兵하고 但留公孫瓚하여 將萬人하여 屯右北平하니 三月 純客 殺純하여 送首於虞하다
유우가 모든 주둔병을 해산하고 공손찬公孫瓚만을 남겨 10,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우북평右北平에 주둔하게 하니, 3월에 장순의 문객門客이 장순을 살해하여 수급을 유우에게 보냈다.
志欲掃滅烏桓이나 而虞欲以恩信招降하니 由是 有隙하다
공손찬은 내심 오환烏桓을 깨끗이 멸망시키고자 하였으나, 유우는 은혜와 신의로써 불러 항복시키고자 하니, 이 때문에 두 사람이 틈이 생겼다.
夏四月朔 日食하다
】 여름 4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卽拜劉虞爲太尉注+卽拜者, 就拜之也.하다
】 현지에 나아가서 유우劉虞를 제수하여 태위太尉로 삼았다.注+즉배卽拜”는 현지에 나아가서 제수한 것이다.
◑遣大將軍進하여 討韓遂하다
대장군 하진大將軍 何進을 보내 한수韓遂를 토벌하게 하였다.
蹇碩 忌大將軍進하여 與諸常侍 共說帝하여 遣進西擊韓遂한대 帝從之하다
건석蹇碩대장군 하진大將軍 何進을 시기하여 여러 상시常侍들과 함께 황제를 설득해서 하진을 보내 서쪽으로 한수韓遂를 공격하게 하자,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知其謀하고 奏遣袁紹하여 收徐, 兗二州兵하여 須還而西하여 以稽行期하다
하진은 건석의 계책을 알고는, “원소袁紹를 보내 서주徐州연주兗州의 병력을 수합하게 하고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서쪽으로 출정하겠습니다.”라고 아뢰어 출행出行하는 시기를 늦추었다.
帝崩注+壽, 三十四.하니 皇子辯 卽位하여 尊皇后曰皇太后라하니 太后臨朝하고 封皇弟協하여 爲陳留王
하다
】 황제가 하니注+향년이 34세였다., 황자 유변皇子 劉辯이 즉위하여 황후皇后(하태후何太后)를 높여 황태후皇太后라 하였다. 태후太后임조臨朝하고 황제 유협皇弟 劉協을 봉하여 진류왕陳留王으로 삼았다.
帝數失皇子러니 何后生辯하니 養於道人史子眇家하여 號曰史侯注+道人, 謂有道術之人.라하고 王美人 生協하니 董太后自養之하여 號曰董侯라하다
】 처음에 황제는 여러 번 황자皇子를 잃었는데, 하후何后유변劉辯을 낳으니 도인道人사자묘史子眇의 집에서 길러서 사후史侯라고 불렀고注+도인道人도술道術이 있는 사람을 이른다., 왕미인王美人유협劉協을 낳으니 동태후董太后가 직접 길러서 동후董侯라고 불렀다.
群臣 請立太子한대 帝以辯 輕佻無威儀라하여 欲立協이로되 猶豫未決注+佻, 田聊切, 輕也.이러라
여러 신하들이 태자太子를 세울 것을 청하자, 황제는 유변의 성질이 경박하고 조급하여 위의威儀가 없다 하여 유협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注+전료田聊이니, 가벼움이다.
疾篤하여 屬協於蹇碩하니 欲先誅何進而立協注+通鑑 “帝崩于嘉德殿. 碩時在內, 欲先誅何進而立協.”하여 使人迎進이어늘
마침 황제의 병환이 위독하여 유협을 건석蹇碩에게 부탁하였는데, 건석은 먼저 하진何進을 주살하고 유협을 세우고자 하여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황제가 가덕전嘉德殿에서 하니, 건석蹇碩이 이때 궁내에 있으면서 먼저 하진何進을 주살하고 유협劉協을 세우고자 했다.” 하였다. 사람을 시켜 하진을 맞이해오게 하였다.
이러니 碩司馬潘隱 迎而目之한대하여 馳歸營하여 引兵入屯百郡邸하고 稱疾不入注+天下郡國百餘, 皆置邸京師, 謂之百郡邸者, 百郡摠爲一邸也.하다
하진이 가려고 하였는데, 건석의 사마司馬반은潘隱이 하진을 맞이하면서 눈짓을 하자, 하진이 놀라서 말을 달려 본영本營으로 돌아와 병력을 인솔하고 백군저百郡邸에 들어가 주둔하고는, 병을 칭탁하고 궁중宮中에 들어가지 않았다.注+천하天下의 100여 개의 군국郡國이 모두 경사京師에 저택을 두고 백군저百郡邸라고 칭하였으니, 백군百郡이 모두 한 저택을 마련한 것이다.
卽位하니 年十四 太后臨朝하고 封協爲陳留王하니 年九歲러라
유변이 즉위卽位하니, 나이가 14세였다. 태후太后임조臨朝하고 유협을 봉하여 진류왕陳留王으로 삼으니, 나이가 9세였다.
以袁隗爲太傅하여 與大將軍進으로 參錄尙書事하니 하다
원외袁隗(원외)를 태부太傅로 삼아서 대장군 하진大將軍 何進과 함께 녹상서사錄尙書事에 참여하게 하니, 하진이 환관 건석蹇碩을 체포하여 죽였다.
旣秉政 忿蹇碩圖己러니 袁紹因勸進하여 悉誅諸宦官하니
하진何進이 정권을 잡고 나서 건석蹇碩이 자기를 죽이려고 도모한 것에 분노하고 있었는데, 원소袁紹가 인하여 하진에게 여러 환관들을 모두 주살할 것을 권하였다.
以袁氏累世貴寵하고 而紹與從弟術 皆爲豪傑所歸라하여 因信用之注+袁安爲司空․司徒, 子敞爲司空, 孫湯爲司空․司徒․太尉, 湯子逢爲司空, 少子隗亦爲三公, 是累世貴寵也.하고,
하진은 원씨袁氏가 여러 대에 걸쳐 신분이 귀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원소와 그의 종제從弟원술袁術이 모두 호걸豪傑들이 귀의하는 인물이라 하여, 그들을 믿고 등용하였다.注+원안袁安사공司空사도司徒가 되었고, 아들 원창袁敞사공司空이 되었고, 손자 원탕袁湯사공司空사도司徒태위太尉가 되었고, 원탕袁湯의 아들 원봉袁逢사공司空이 되었고, 작은아들 원외袁隗 또한 삼공三公이 되었으니, 이것이 여러 대가 신분이 귀하고 총애를 받은 것이다.
荀攸, 鄭泰等十餘人하여 與同腹心注+攸, 爽之從孫也.하다 不自安하여 與趙忠等으로 謀誅進이러니
하진은 또 지모가 있는 선비인 하옹何顒(하옹)과 순유荀攸, 정태鄭泰 등 20여 명을 널리 불러와서 더불어 함께할 심복으로 삼았다.注+순유荀攸순상荀爽종손從孫이다. 이에 건석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해서 조충趙忠 등과 함께 하진을 주살할 것을 모의하였다.
中常侍郭勝 同郡人이라 以告進하니 使黃門令으로 收碩誅之하고 因悉領其屯兵하다
중상시 곽승中常侍 郭勝은 하진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 사실을 하진에게 알리니, 하진이 황문령黃門令으로 하여금 건석을 체포하여 주살하게 하고, 인하여 건석의 둔병屯兵을 모두 통솔하였다.
五月 遷孝仁皇后於河間하니 驃騎將軍董重 自殺하고 六月 하다
】 5월에 효인황후孝仁皇后(동태후董太后)를 하간河間으로 옮기니, 표기장군 동중驃騎將軍 董重이 자살하였고, 6월에 효인황후가 갑자기 하였다.
驃騎將軍董重 與何進으로 權勢相害하니 中官 挾重爲助 董太后每欲參干政事어늘 何太后輒禁塞之하니
표기장군 동중驃騎將軍 董重하진何進과 권세를 다투어 서로 충돌하였는데, 중관中官들은 동중의 세력을 믿고 그를 도왔다. 동태후董太后가 정사에 참여하려 할 때마다 하태후何太后가 번번이 금하여 막으니,
董后忿詈曰 汝今輈張하여 怙汝兄耶注+輈, 音舟. 輈張, 猶彊梁也. 兄, 謂進也. 吾勅驃騎하여 斷何進頭 如反手耳니라
동태후董太后가 분노하며 꾸짖기를 “네가 지금 네 오라비(하진)를 믿고 행패를 부리느냐.注+(행패를 부리다)는 이니, “주장輈張(소란을 피우며 행패를 부리다)”은 강량彊梁이라는 말과 같다. 오라비는 하진何進을 이른다.표기장군驃騎將軍(동중)에게 명하여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하진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다.” 하였다.
何太后告進한대 與三公으로 共奏孝仁皇后交通州郡하여 辜較財利注+較, 讀曰榷.하니이다
하태후何太后가 이 사실을 하진에게 고하자, 하진이 삼공三公과 함께 아뢰기를 “효인황후孝仁皇后주군州郡들과 서로 통하여 부정하게 재리財利를 착취합니다.注+(이익을 독점하다)은 으로 읽는다.
故事 藩后不得留京師하니 請遷宮本國注+藩后, 謂平帝母衛姬. 王莽攝政, 恐其專權, 后不得留在京師, 故以爲故事也.하노이다
注+번후藩后평제平帝의 어머니 위희衛姬를 이른다. 왕망王莽섭정攝政했을 때에 그녀가 권력을 독점할까 두려워해서, 이 때문에 경사京師에 머물러 있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사故事라 한 것이다.” 하였다.
擧兵圍驃騎府하여 收重免官한대 自殺하고 董后憂怖暴崩하니 民間 由是 不附何氏러라
하진이 군대를 동원하여 표기장군驃騎將軍를 포위해서 동중을 체포하여 관직을 파면하자, 동중은 자살하고 동태후董太后는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갑자기 하니, 민간民間에서 이 때문에 하씨何氏를 따르지 않았다.
葬文陵注+陵, 在洛陽西北二十里.하다
영제靈帝문릉文陵에 장례하였다.注+문릉文陵낙양洛陽 서북쪽 20리에 있다.
何進 懲蹇碩之謀하여 稱疾하여 不入陪喪하고 又不送山陵하다
하진何進건석蹇碩과 같은 음모가 또다시 있을까 두려워하여 병을 칭탁하고서, 궁중宮中에 들어가 을 모시지 않고 또 산릉山陵에 장송하지도 않았다.
大水하다
】 홍수가 졌다.
역주
역주1 궁지에……합니다 : “窮寇勿迫 歸衆勿追”는 현전하는 ≪司馬法≫에 없고, 다만 ≪孫子≫ 〈軍爭〉에 “歸師勿遏 圍師必闕 窮寇勿迫(돌아가는 군대는 막지 말고,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한쪽을 비워주고, 궁지에 몰린 적은 급박하게 몰아붙이지 말라.)”이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2 司馬兵法 : ≪司馬法≫을 가리킨다. ≪사마법≫은 春秋時代 齊나라의 名將 司馬穰苴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周나라 이후 春秋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전수되어온 兵書의 集大成이라 할 것이다. 사마양저의 병서까지도 포함되어 원래는 155편의 巨帙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散佚되고 5편 1권만 전하는바, 武經七書에도 들어 있다.
역주3 帝崩……爲陳留王 : “賀善의 贊에 말하였다. ‘靈帝가 환관을 믿고 忠賢을 죽이자, 당시 나타난 變異 중에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일찍이 없었던 것이 네 가지이니, 뱀이 황제가 앉는 자리에 나타나고 검은 구름과 푸른 무지개가 궁전의 뜰에 떨어지고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였다. 또 큰 역병을 다섯 번 썼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큰 역병을 쓴 것 중에〉 절반을 차지하였으니, 황제는 이를 보고 變故인 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罼圭苑을 만들고 후궁에 여러 가게를 만들고 400尺의 樓觀을 세우고 萬金堂을 만들고 銅人을 주조하고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社稷이 장차 전복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항상 〈용렬한 군주를〉 말하기를 「桓帝와 靈帝이다.」라고 하는데, 靈帝가 桓帝보다 더 심하였다.’[賀善贊曰 靈帝信宦豎 殺忠賢 當時變異有終綱目所無者四 蛇見御座 黑氣靑虹墮殿庭 雌鷄化雄 而又五書大疫 居綱目半 帝亦可以知變矣 方且作罼圭 作列肆 起四百尺觀 造萬金堂 鑄銅人 土木盛興 不知社稷之將覆 人有恒言曰桓靈 靈又甚於桓也]” ≪書法≫ ○劉辯을 어찌하여 太子라고 쓰지 않았는가. 일찍이 太子로 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에 蹇碩이 몰래 劉協을 세울 것을 도모하였으니, 일이 조용할 수 없었다. 兩漢을 통틀어 ‘皇子가 卽位했다.’고 쓴 것이 한 번뿐이다.[○辯何以不書太子 未嘗立爲太子也 於是蹇碩潛謀立協 事有不能從容者矣 兩漢書皇子卽位者 一而已]” ≪書法≫
역주4 進收宦者蹇碩 誅之 : “蹇碩을 주살했다고 썼는데, 何進이 체포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하진이 전횡했기 때문이다.[蹇碩書誅矣 其書進收 何 進專也]” ≪書法≫ “何進이 사사로운 분노 때문에 蹇碩을 죽였으므로 하진이 체포했다고 쓴 것이다. 그러나 건석 또한 ‘誅’라고 쓰임을 면치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 환관의 무리들은 皇室을 망쳐서 죄악이 가득히 쌓였으니, 바로 하늘의 토벌이 마땅히 가해져야 하고 王法에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어찌 그가 하진의 사사로운 분노 때문에 죽었다는 이유로 마침내 그 죄를 감해줄 수 있겠는가. 書法이 이와 같으니, 애당초 지나친 것이 아니다.[何進以私忿殺蹇碩 故曰進收 然碩亦不免書誅 何哉 此曹斵喪帝室 罪盈惡積 正天誅所宜加 王法所不赦者 豈得以其死於私忿之故 而遂末減其罪乎 書法若此 初非過也]” ≪發明≫
역주5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6 后暴崩 : “‘暴崩’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孝仁皇后의 궁을〉 옮긴 자(何進)를 허물한 것이다.[書暴崩 何 咎遷之者也]” ≪書法≫ “孝仁皇后가 본래 國母는 아니었으나 何皇后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래도 시어머니가 되는데, 효인황후의 宮을 옮기고 두렵게 해서 죽게 한 것이 옳은가. 그러므로 효인황후에게 ‘崩’이라고 쓴 것은 그녀가 母后임을 인정한 것이다. 母后임을 인정하였는데 그녀를 옮겨서 갑자기 죽게 하였으니, 그 죄를 거의 말로 다할 수가 없다. 후일에 賊臣들이 이것을 구실 삼아서 〈何太后를 욕한 것이〉 마땅하다.[孝仁本非國母 然自何后言之 猶爲其姑云爾 而遷之怖之 使之至於殞滅可乎 故夫后以崩書者 是予其爲母后也 予其爲母后 而遷之 至於暴亡者 其罪殆有不可言者矣 宜乎他日賊臣 得以藉口也]” ≪發明≫
역주7 故事에……청합니다 : 靈帝의 生母인 효인황후를 河間의 解瀆亭으로 보낼 것을 청한 것이다. 靈帝 劉宏은 肅宗(章帝)의 아들인 河間孝王 劉開의 증손으로, 부친인 劉萇과 조부인 劉淑이 대대로 解瀆亭侯에 봉해졌는데, 桓帝가 죽고 後嗣가 없어 迎立되자, 영제는 生父인 유장을 孝仁皇이라 하고 생모인 董氏를 愼園貴人이라 하였다. 이후 동씨가 孝仁皇后가 되었다. 따라서 董太后(孝仁皇后)는 원래로 보면 藩后인 것이다. 이 내용이 본서 175쪽과 180쪽에 각각 보인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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