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태후太后가 여러 여씨呂氏를 세워 왕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왕릉王陵은 말하기를 “고제高帝께서 백마白馬를 잡아 맹세하기를 ‘유씨劉氏가 아닌데 왕이 되거든 천하가 함께 공격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였고,
진평陳平과 주발周勃은 말하기를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자제子弟들을 왕으로 봉하셨으니, 지금 태후께서 제制를 칭하시는 상황에서 여러 여씨呂氏를 왕으로 봉한다 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정에서 물러가자, 왕릉이 진평과 주발을 꾸짖기를 “처음 고제와 피를 바르고 맹약할 적에 그대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가?
注+삽啑은 삽歃과 같으니, 조금 마시는 것이다.
지금 태후의 뜻에 아첨하여 맹약을 배반하고자 하니,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고제를 뵙겠는가?” 하니, 진평과 주발이 말하기를 “태후의 면전에서 잘못된 일을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는 것은 우리가 그대만 못하고, 사직社稷을 온전히 하여 유씨劉氏의 후손을 안정시키는 것은 그대가 또한 우리만 못하다.” 하였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이미 지나간 입장에서 논한다면
왕릉王陵이
진평陳平과
주발周勃만 못한 것이 당연하지만,
注+〈“고야固也”는〉 참으로 이와 같이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만일
태후太后가 죽지 않고 진평과 주발이 먼저 죽었다면 이 말을 어찌하겠는가.
가령 태후가 여러 여씨呂氏를 왕으로 봉할 것을 의논할 적에 장상將相과 대신大臣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반대하였다면 태후가 또한 어떻게 홀로 그 뜻을 행할 수 있었겠는가.
진평과 주발이 이를 허락하였는데도 또 몇 개월이 지난 뒤에 다시
장석張釋을 보내어
대신大臣들을 넌지시 타이른 뒤에야 비로소 여러 여씨들을 왕으로 삼았으니, 지난번에 진평과 주발이 태후의 뜻에 아첨한 죄가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注+장석張釋은 내시이다. 풍風(풍간하다)은 풍諷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논하기를,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신하들의 관계는 서로 힘으로 이겨서 신하로 삼았을 뿐이니, 그의 신하가 되었던 것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참으로 복종해서 신하가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절의節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니, 뒤에 성공成功한 것도 요행일 뿐이다.
인신人臣의 의리는 마땅히 왕릉을 정도正道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훌륭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