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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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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年(B.C. 74)
정미년(B.C. 74)
元平元年이라
[綱] 나라 효소황제孝昭皇帝 원평元平 원년이다.
春二月 減口賦錢什三注+漢儀注 “民年七歲至十四, 出口賦人二十三錢. 二十錢, 以食天子. 其三錢者, 武帝加口賦, 以補車ㆍ騎ㆍ馬.”하다
봄 2월에 구부전口賦錢을 10분의 3으로 줄였다.注+한의주漢儀注》에 “백성의 나이 7세로부터 14세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구부전口賦錢 23을 내게 하였는데, 20전은 천자天子에게 바치고, 3전은 무제武帝가 구부전을 더 거두어 전거戰車기병騎兵과 말의 비용을 보조하게 하였다.” 하였다.
◑ 有流星 하다
[綱] 유성流星이 달처럼 큰 것이 있었는데, 여러 유성들이 모두 따라서 서쪽으로 갔다.
◑ 夏四月 帝崩注+壽二十一.하다
[綱] 여름 4월에 황제가 하였다.注+향년이 21세였다.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황후皇后조령詔令을 받들어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맞이해서 장안長安에 왔다.
六月 入卽位하고 尊皇后曰皇太后라하다
그리하여 6월에 들어와 즉위하고 황후皇后를 높여 황태후皇太后라 하였다.
帝崩하니 無嗣하고 武帝子獨有廣陵王胥
[目] 황제가 하니 후사後嗣가 없고, 이때 무제武帝의 아들 중에 오직 광릉왕廣陵王 유서劉胥가 있었다.
群臣 欲立之러니 胥本以行失道하여 先帝所不用이라
여러 신하들이 그를 황제로 세우고자 하였는데, 유서劉胥는 본래 행실이 법도를 잃어 선제先帝가 등용하지 않은 자였다.
大將軍光 不自安注+漢書廣陵王傳 “胥壯大, 好倡樂逸游, 力扛鼎, 空手搏熊彘猛獸, 動作無法度.”이러니 郞有上書言호되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은 스스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였는데,注+한서漢書》 〈광릉왕전廣陵王傳〉에 “유서劉胥는 몸이 장대壯大하고 광대놀이와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힘이 구정九鼎을 들 수 있고 맨손으로 곰과 돼지와 맹수를 잡았는데, 동작에 법도가 없었다.” 하였다.낭관郞官이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周太王 廢太伯, 立王季하시고 文王 舍伯邑考, 立武王注+伯邑考, 文王長子.하시니 唯在所宜
나라의 태왕太王장자長子태백太伯을 폐하고 왕계王季를 세웠으며, 문왕文王은 장자인 백읍고伯邑考를 버리고 무왕武王을 세웠으니,注+백읍고伯邑考문왕文王장자長子이다. 오직 마땅한 바에 달려 있습니다.
雖廢長立少라도 可也 廣陵王 不可以承宗廟니이다
장자를 폐하고 작은 아들을 세우더라도 괜찮으니, 광릉왕에게 종묘宗廟를 받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卽日承皇后詔하여 迎昌邑王賀하여 詣長安邸注+長安邸, 長安之昌邑邸也.하니 昌邑哀王髆之子
곽광은 당일로 황후皇后조령詔令을 받들어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맞이해서 장안長安의 저택에 나오게 하니,注+장안저長安邸(장안長安의 저택)”는 장안長安에 있는 창읍왕昌邑王의 저택이다. 유하는 창읍애왕昌邑哀王 유박劉髆의 아들이다.
素狂縱하여 動作無節하여 武帝之喪 游獵不止하니라
평소 방종하여 동작에 절도가 없어서 무제武帝상중喪中에도 놀러 다니고 사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中尉王吉 諫曰
[目] 중위中尉 왕길王吉창읍왕昌邑王에게 다음과 같이 하였다.
大王 不好書術而樂逸游하여數以耎脆之玉體 犯勤勞之煩毒注+耎, 而兗切, 柔也. 脆, 此芮切, 易斷也.하시니 非所以全壽命之宗也 又非所以進仁義之隆也注+宗, 尊也. 隆, 高也.니이다
대왕大王은 서책과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편안히 노시는 것을 좋아하여, 취약한 옥체玉體를 가지고 자주 근로勤勞하는 번뇌와 우수憂愁를 범하시니,注+이연而兗이니 부드러움이고, 차예此芮이니 자르기 쉬움이다. 수명의 높음을 온전히 하는 방법이 아니고 또 인의仁義의 높음에 나아가는 방도가 아닙니다.注+은 높임이고, 은 높음이다.
夫廣厦之下 細旃之上注+廣厦 大屋也. 旃, 氈也. 明師居前하고 勸誦在後하여 上論唐虞之際하고 下及殷周之盛하여 考仁聖之風하고 習治國之道하여訢訢焉發憤忘食하여 日新厥德하며 休則俛仰屈伸以利形하고 專意積精以適神注+形, 形體也. 適, 和也.이니이다
큰 궁궐 아래와 고운 털방석 위에注+광하廣厦는 큰집(큰 궁궐)이다. (모직물)이다. 현명한 스승이 앞에 있고 권하여 글을 읊는 자가 뒤에 있어서, 위로는 의 시대를 논하고 아래로는 함을 말하여, 어질고 성스러운 유풍遺風을 상고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익혀서, 서로 즐겁게 분발하여 밥 먹는 것도 잊어서 날로 그 을 새롭게 하며, 휴식할 때면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들며 몸을 굽히고 펴서 신체를 이롭게 하고, 한마음으로 정성을 쌓아 정신을 화합하게 하여야 합니다.注+형체形體이고, 은 화합함이다.
大王 誠留意如此하시면 則心有堯舜之志하고 體有喬松之壽하여 福祿臻而社稷安矣注+王喬ㆍ赤松子, 皆古仙人也.리이다
대왕大王께서 진실로 유념하여 이와 같이 하시면, 마음은 의 생각을 간직하고 몸은 왕교王喬적송자赤松子의 수명을 간직해서 복록福祿이 이르러 사직社稷이 편안할 것입니다.注+왕교王喬적송자赤松子는 모두 옛날 신선神仙이다.
皇帝仁聖하사 至今思慕未怠注+皇帝, 謂昭帝也. 言武帝晏駕未久, 故尙思慕.하여 於宮館, 囿池, 弋獵之樂 未有所幸하시니 大王 宜夙夜念此하여 以承聖意니이다
승하하신 황제(소제昭帝)께서는 어질고 성스러워서 지금까지 선황제先皇帝(무제武帝)를 사모하고 태만하지 않으시어,注+황제皇帝소제昭帝를 이른다. 무제武帝승하昇遐한 지 오래지 않으므로 소제昭帝가 아직도 무제武帝를 사모함을 말한 것이다.궁관宮館과 동산과 연못과 사냥하는 즐거운 자리에 일찍이 행차하신 적이 없으셨으니, 대왕大王께서는 마땅히 밤낮으로 이것을 생각해서 성상聖上의 뜻을 받드셔야 할 것입니다.
諸侯骨肉 莫親大王하니 於屬則子 於位則臣이라
제후왕諸侯王골육骨肉 중에 대왕大王보다 친한 분이 없으니, 친족으로는 자식이고 지위로는 신하입니다.
一身而二任之責 加焉하니 恩愛行義孅介有不具者하여 於以上聞이면 非饗國之福也注+孅, 與同. 介, 通作芥.니이다
한 몸에 두 책임이 가해졌으니, 은혜와 사랑과 훌륭한 행실 중에 조금이라도 갖추어지지 못한 것이 있어서 위로 황후께 알려지면, 나라를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注+(가늘다)은 과 같고, (작다)는 와 통한다.
乃下令曰 中尉甚忠하여 數輔吾過라하고 使賜牛肉, 酒脯
은 이에 명령을 내리기를 “중위中尉가 매우 충성스러워서 나의 잘못을 자주 보필한다.” 하고는, 사람을 보내 소고기와 술과 를 하사하였다.
而放縱自若注+薄析曰脯, 而施薑桂曰 脩.하니라
그러나 방종함은 그대로였다.注+얇게 찢은 것을 라 하고, 방망이질하여 생강과 계피를 넣은 것을 단수腶脩라 한다.
郞中令龔遂 忠厚剛毅하고 有大節注+龔, 音恭, 姓也.하여 內諫爭王하고 外責傅相하며 引經義하여 陳禍福호되 至於涕泣하여 蹇蹇亡已注+蹇蹇, 不阿順之意. 하니라
[目] 낭중령郞中令 공수龔遂는 인품이 충후忠厚하고 강직하며 굳세고 큰 절개가 있어서,注+은 음이 이니, 이다. 안으로는 에게 간쟁하고 밖으로는 의 스승과 재상들을 책망했으며, 경전經典의 뜻을 인용하여 화복禍福을 말하되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며 굽힘 없이 직언해 마지않았다.注+건건蹇蹇”은 아첨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嘗與騶奴宰人으로 游戲無度注+騶, 導車而撝訶者也. 宰人, 掌膳食者也.어늘 遂入見王하고 涕泣厀行曰 大王 知膠西王所以亡乎注+厀, 通作膝. 膠西王, 謂易王端也. 잇가 王曰 不知也로라
이 일찍이 추노騶奴(추종하는 하인) 및 재인宰人들과 함께 무절제하게 놀고 희롱하였는데,注+는 수레를 인도하면서 벽제辟除하는 자이고, 재인宰人은 반찬과 음식을 관장하는 자이다. 공수가 들어가 을 뵙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으로 기어가서 아뢰기를 “대왕大王께서는 교서왕膠西王이 망한 이유를 아십니까?”注+(무릎)은 과 통한다. 교서왕膠西王역왕易王 유단劉端을 이른다. 하니, 은 “알지 못한다.” 하였다.
공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臣聞膠西王 有諛臣侯得하여 王所爲儗於桀紂어늘 而得以爲堯舜注+儗, 與擬同, 比也.이라한대說其諛하여 常與寢處하여 唯得所言하여 以至於是注+唯用得之邪言, 故至亡.하니이다
이 듣건대 교서왕에게는 아첨하는 신하 후득侯得이란 자가 있어서 의 하는 짓이 와 비견되는데도 후득은 이라고 치켜세웠는데,注+와 같으니, 비견함이다.은 그의 아첨을 좋아해서 항상 함께 잠자고 거처하며 오직 후득이 말하는 것을 따라서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注+〈“유득소언唯得所言 이지어시以至於是”는〉 오직 후득侯得의 간사한 말을 따랐기 때문에 망하게 된 것이다.
今大王 親近群小하여漸漬邪惡하시니 存亡之機 不可不愼注+漸, 子廉切, 流入也. 漬, 前智切, 浸潤也.이니이다
지금 대왕大王께서 소인小人들을 매우 가까이하여 점점 사악함에 물드시니, 국가가 보존되고 멸망하는 기미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注+자렴子廉이니 흘러들어감이고, 전지前智이니 젖어듦이다.
請選郞通經有行義者하여 與王起居하여 坐則誦詩書하고 立則習禮容이면 宜有益이리이다
은 청컨대 낭관郞官 중에 경전에 달통하고 훌륭한 행실이 있는 자를 선발해서 과 함께 기거起居하게 하여, 앉아서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외우고 서서는 예의禮儀의 용모를 익히신다면, 마땅히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許之한대 遂乃選郞中十人하여 侍王이러니 數日 皆逐去하다
이 이를 허락하자, 공수가 낭관 중에 열 사람을 뽑아 을 모시게 하였는데, 은 수일 만에 모두 쫓아보냈다.
嘗見大白犬하니 頸以下似人하고 冠方山冠이어늘
[目] 이 일찍이 백색의 큰 개를 보았는데, 목 아래가 사람과 같고 방산관方山冠을 쓰고 있었다.
以問遂注+上冠, 去聲, 下冠同. 方山冠, 其制前高七寸, 後高三寸, 長八寸, 以五采縠爲之, 樂舞人所服.한대 遂曰 此天戒 言在側者 盡冠狗也注+言王左右之人, 皆不識禮義, 若狗而冠也.
이것을 공수龔遂에게 물으니,注+위의 (관을 쓰다)은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관구冠狗도 같다. 방산관方山冠은 그 제도가 앞은 높이가 7촌이고 뒤는 높이가 3촌이고 갓끈의 길이가 8촌이며 오색의 비단으로 만드니, 악공樂工과 춤추는 사람들이 착용하였다. 공수가 말하기를 “이는 하늘의 경계이니, 임금의 곁에 있는 자가 모두 관을 쓴 개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注+〈“재측자在側者 진관구야盡冠狗也”는〉 좌우左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예의禮義를 알지 못하여 마치 개가 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去之則存하고 不去則亡矣리이다
이들을 제거하면 나라가 보존되고,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하였다.
又見大熊호되 左右莫見이어늘
또 큰 곰을 보았는데, 좌우左右의 측근들은 보지 못하였다.
以問遂한대 遂曰 山野之獸 來入宮室이면 宮室將空이니 危亡象也니이다
이것을 공수에게 물으니, 공수가 대답하기를 “산과 들에 있는 짐승이 궁궐로 들어왔으면 궁궐이 장차 비게 될 것이니, 위태로움과 망할 형상입니다.” 하였다.
仰天嘆曰 不祥 何爲數來 遂叩頭曰
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상서롭지 못함이 어찌 이리도 자주 온단 말인가?” 하니, 공수가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臣不敢隐忠하여數言危亡之戒하여 大王不說하시니 夫國之存亡 豈在臣言哉잇가
이 감히 충성스러움을 숨기지 못해서 위태로움과 멸망의 경계를 자주 말씀드려 대왕大王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나라의 보존과 멸망이 어찌 신의 말에 달려 있겠습니까.
願王 內自揆度하소서
원컨대 께서는 안으로 스스로 헤아리소서.
大王 誦詩三百五篇하시니 人事浹하고 王道備注+浹, 孑牒切, 洽也, 徹也.
대왕大王이 《시경詩經》 305편을 외시니, 《시경》에는 사람의 일이 두루 갖추어져 있고 왕자王者가 구비되어 있습니다.注+혈첩孑牒이니, 흡족함이고 통함이다.
王之所行 中詩一篇何等也注+中, 去聲, 當也. 言王所行, 皆不合法度, 王自謂當於何詩之文也.잇고
께서 행하시는 일이 《시경》의 어느 한 편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注+거성去聲이니, 해당함이다. 의 행하는 바가 모두 법도法度에 부합되지 않으니, 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시경詩經》의 어느 의 글에 해당하느냐고 말한 것이다.
大王 位爲諸侯王하사 行汙於庶人注+汙, 濁穢也.하시니 以存하고 以亡하니
대왕大王은 지위가 제후왕諸侯王이 되시어 행실이 서인庶人과 같이 혼탁하시니,注+는 혼탁하고 더러움이다. 이대로 하여 보존되기는 어렵고 이대로 하여 망하기는 쉽습니다.
宜深察之라호되
마땅히 깊이 살피소서.”
終不改하니라
그러나 은 끝내 고치지 않았다.
及徵書至 夜漏未盡一刻이어늘
[目] 경사京師에서 을 부르는 편지가 창읍昌邑에 이르렀을 적에, 밤중에 물시계가 아직 1이 남아 있었다.
以火發書注+刻漏法, 以銅爲渴烏, 狀如鉤曲, 注水以浮刻漏之箭. 律曆志 “立晷儀, 下漏刻, 以追二十八宿.”하고 日中發하여晡時 至定陶注+晡, 日加申.하니 行百三十五里하여 從者馬死相望이라
이 촛불을 밝혀 편지를 뜯어보고는注+각루법刻漏法은, 구리로 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갈고리처럼 굽었고, 물을 부어 각루刻漏의 화살촉을 띄운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구의晷儀를 세우고 누각漏刻을 내려서 28宿를 따른다.” 하였다. 그날 중으로 출발하여 저물녘에 정도定陶에 이르니,注+는 해가 신시申時에 이르는 것이다. 하루에 135리를 가서 수행하는 자들의 말이 죽어 서로 이어졌다.
王吉 奏書戒王曰
왕길王吉이 글을 올려 에게 다음과 같이 경계하였다.
臣聞高宗 諒闇三年不言이라하니이다
今大王以喪徵하시니 宜日夜哭泣悲哀而已 愼無有所發注+發, 謂興發衆事.이니이다
지금 대왕大王께서 국상國喪으로 인해 부름을 받고 가시니, 마땅히 밤낮으로 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만 해야지, 절대로 일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注+은 여러 가지 일을 일으킴을 이른다.
大將軍 仁愛勇智忠信之德 天下莫不聞하니 願大王 事之敬之하여 政事 一聽之하시고 大王 垂拱南面而已니이다
대장군大將軍(곽광霍光)의 인애仁愛와 용맹과 지혜와 충신忠信천하天下 사람들이 들어 모르는 이가 없으니, 원컨대 대왕大王께서는 그를 섬기고 그를 공경해서 정사를 한결같이 그에게 맡기시고, 대왕大王께서는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서 남면南面하시기를 바랍니다.”
到霸上 大鴻臚郊迎하고 騶奉乘輿車어늘
[目] 패상霸上에 이르자, 대홍려大鴻臚가 교외에서 맞이하고 추종꾼이 승여거乘輿車(제왕이 타는 수레)를 받들었다.
使遂參乘이러니 至廣明東都門하여 遂曰 禮犇喪 望見國都哭하니 此長安東郭門也注+三輔黃圖 “宣平門, 長安城東出地頭第一門, 其外郭, 名東都門.”니이다
공수龔遂로 하여금 함께 수레를 타게 하였는데, 광명廣明동도문東都門에 이르러 공수가 “에 달려갈 적에는 국도國都를 바라보고 하니, 이곳은 장안長安의 동쪽 외곽문입니다.”注+삼보황도三輔黃圖》에 “선평문宣平門장안성長安城 동쪽으로 나가는 첫 번째 이니, 그 외곽外郭동도문東都門이라 한다.” 하였다. 하고 아뢰었다.
王曰 我嗌痛하여 不能哭注+嗌, 音隘, 咽喉也.이로라
그러나 은 “나는 목이 아파 곡하지 못한다.”注+는 음이 이니, 목구멍이다. 하고 거절하였다.
至城門하여 遂復言한대 王曰 城門 與郭門等耳라하다
성문城門에 이르러 공수가 다시 말하자, 은 “성문城門은 외곽문과 같을 뿐이다.” 하고 또다시 거절하였다.
且至未央宮東闕하여 遂曰 昌邑帳 在是하니 大王 宜下車하여 鄉闕西面伏하여 哭盡哀止注+帳, 弔哭帳也.니이다 王曰 諾다하고하여 哭如儀하다
장차 미앙궁未央宮 동쪽 대궐에 이르게 되자, 공수가 아뢰기를 “창읍왕昌邑王 저택邸宅의 장막이 이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대왕大王께서는 마땅히 수레에서 내려 대궐을 향해 서쪽을 바라보고 엎드려서 하여 슬픔을 극진히 하셔야 합니다.”注+은 조문하고 곡하는 장막이다. 하니, 은 “알겠다.” 하고는 이곳(장막)에 이르러 예의禮儀를 따라 곡을 하였다.
六月 受璽綬하고 襲尊號하다
6월에 은 황제의 옥새玉璽와 인끈을 받고 존호尊號를 이어받았다.
葬平陵注+平陵, 屬右扶風, 在長安西北七十里.하다
[綱] 소제昭帝평릉平陵에 장례하였다.注+평릉平陵우부풍右扶風에 속하니, 장안長安의 서북쪽 70리 지점에 있다.
창읍왕昌邑王이 죄가 있으므로,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태후太后에게 아뢰어 폐위하였다.
昌邑王 淫戲無度하고 昌邑官屬 皆徵至長安하여 超擢拜官한대
[目] 창읍왕昌邑王은 음탕하여 멋대로 즐기는 것이 한도가 없고, 창읍의 관속들을 장안長安으로 모두 불러서 크게 높여 관직을 제수하였다.
龔遂諫請逐之호되 不聴이라
공수龔遂가 간쟁하고 이들을 축출할 것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太僕丞張敞 亦上書曰 天子以盛年으로 初卽位하시니 天下莫不拭目傾耳하여 觀化聴風注+拭, 音式. 言改易視聽, 欲急聞見善政化也.이어늘
태복승太僕丞 장창張敞 또한 글을 올려 아뢰기를 “천자天子께서 젊은 나이로 처음 즉위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눈을 씻고 귀를 기울여서 훌륭한 교화를 보고 들으려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注+(씻다)은 음이 이니, 〈“천하막불식목경이天下莫不拭目傾耳 관화청풍觀化聴風”은〉 사람들의 보고 들음을 바꾸어서 훌륭한 정치의 교화를 급히 듣고 보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國輔大臣未褒 而昌邑小輩先遷하니 過之大者也니이다 又不聴하다
나라를 보필하는 대신大臣(곽광霍光)이 아직 포상을 받지 않았는데 창읍의 낮은 관속들이 먼저 승진하니,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였으나, 역시 듣지 않았다.
大將軍光 憂懣하여 以問故吏大司農田延年注+懣, 悶‧滿二音, 煩懣也.한대 延年曰 將軍 爲國柱石注+柱者, 梁下之柱. 石, 承柱之礎也. 言大臣負國重任, 如屋之柱及其石也.하니 審此人不可인댄 何不建白太后하고 更選賢而立之注+建白, 立議而白之也.잇고
[目]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이 이 때문에 근심하고 고민하여 옛날 부하로 있던 대사농大司農 전연년田延年에게 물으니,注+滿 두 가지 음이 있으니, 번민하는 것이다. 전연년이 대답하기를 “장군將軍이 국가의 주석柱石이 되었으니,注+는 들보 아래의 기둥이고, 은 기둥을 받드는 주춧돌이니, 〈“주석柱石”은〉 대신大臣이 국가의 중요한 임무를 지고 있는 것이 집의 기둥과 주춧돌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 사람(사왕嗣王)이 불가함을 참으로 아신다면 어찌 의논을 정하고 태후太后에게 아뢰어 다시 어진 사람을 가려서 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注+건백建白”은 의논을 정하여 아뢰는 것이다. 하였다.
光曰 今欲如是로되 於古 嘗有此不注+光不涉學, 故有此問也. 不, 讀曰否. 延年曰 伊尹相殷 廢太甲하여 以安宗廟한대 後世稱其忠하니 將軍 若能行此 亦漢之伊尹也니이다
곽광이 말하기를 “지금 이와 같이 하고자 하나, 옛날에 이미 이러한 일이 있었는가?”注+곽광霍光이 학문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로 읽는다. 하고 물으니, 전연년이 대답하기를 “이윤伊尹나라의 정승이 되어 보필할 적에 태갑太甲을 폐위하여 종묘宗廟를 편안히 하자, 후세에 그의 충성을 칭송하고 있으니, 장군이 만약 이것을 행하신다면 또한 나라의 이윤입니다.” 하였다.
乃引延年給事中하고 陰與張安世圖計注+給事中, 給事禁中也, 西漢以爲加官. 圖, 謀也.하다
곽광은 마침내 전연년을 데려다가 급사중給事中을 시키고 은밀히 장안세張安世와 계책을 도모하였다.注+급사중給事中금중禁中에서 일하는 것이니, 서한西漢에서는 가관加官(겸직)으로 삼았다. 는 도모함이다.
出遊할새 光祿大夫夏侯勝 當乘輿前하여 諫曰 天久陰而不雨하니 臣下有謀上者
[目] 이 놀러 나갈 적에 광록대부光祿大夫 하후승夏侯勝승여乘輿의 앞을 가로막고 간쟁하기를 “하늘이 오랫동안 흐리고 비가 내리지 않으니, 신하 중에 을 도모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陛下出欲何之닛고하여 縛勝屬吏하다
폐하陛下께서는 어디로 나가고자 하십니까?” 하니, 이 노하여 하후승을 포박하여 옥리獄吏에게 맡겼다.
讓安世하여 以爲泄語라하나 安世 實不言注+泄, 先列切, 漏也.이라
곽광霍光장안세張安世에게 말을 누설했다고 꾸짖었으나, 장안세는 실로 말하지 않았다.注+선렬先列이니, 누설한다는 뜻이다.
乃召問勝하니 對言在鴻範傳注+鴻, 與洪通. 凡書非正經者, 謂之傳. 漢儒作洪範傳, 以五事應五行. 其傳曰 “皇之不極, 厥罰常陰, 時則下人有伐上者.”하니이다
이에 하후승을 불러 물으니, 하후승이 대답하기를 “이러한 내용이 《홍범전洪範傳》에 나와 있습니다.”注+과 통하니, 무릇 책 중에 정경正經이 아닌 것을 이라 이른다. 나라 학자들이 《홍범전洪範傳》을 지어서 다섯 가지 일을 오행五行에 대응시켰는데, 이 《홍범전》에 이르기를 “황제가 을 세우지 않으면 그 벌로 항상 날이 흐리니, 이때에는 아랫사람 중에 을 해치려는 자가 있다.” 하였다. 하였다.
光, 安世大驚하여 以此 益重經術士하니라
곽광과 장안세는 크게 놀라 이 때문에 경학經學하는 선비를 더욱 소중히 여겼다.
旣定議 召丞相, 御史, 將軍, 列侯, 中二千石, 大夫, 博士하여 會議未央宮할새
[目] 이미 의논을 결정한 다음, 승상丞相어사御史, 장군將軍열후列侯, 중이천석中二千石대부大夫, 박사博士들을 불러 미앙궁未央宮에서 회의하였는데,
光曰 昌邑王 行昏亂하여 恐危社稷하니 如何
곽광霍光이 말하기를 “창읍왕昌邑王이 혼란한 짓을 자행하여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니,
群臣 皆驚鄂失色하여 莫敢發言注+鄂, 逆各切, 凡言鄂者, 皆謂阻礙不依順也. 後, 字作愕, 其意亦同.이러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경악하여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注+(놀라다)은 역각逆各이니, 무릇 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막혀서 따르고 순종하지 않음을 이른다. 뒤에는 자로 썼으니, 그 뜻이 또한 같다.
延年 離席按劍曰注+離, 力智切.
전연년田延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을 어루만지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떠나다)는 역지力智이다.
先帝屬將軍以幼孤하시고 寄將軍以天下 以將軍忠賢하여 能安劉氏也
선제先帝께서 장군에게 어린 군주를 부탁하시고 장군에게 천하를 맡기셨으니, 이는 장군이 충성스럽고 어질어서 능히 유씨劉氏를 편안히 할 수 있으리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今群下鼎沸하고 社稷將傾注+沸, 方未切, 涌出貌. 鼎沸, 如㸑鼎沸也.하며 且漢之傳諡常爲孝者 以長有天下하여 令宗廟血食也注+漢家相傳謚號, 皆加一字.
지금 아랫사람들이 솥에 물이 끓는 듯 비난하고 사직社稷이 장차 기울게 되었으며,注+방미方未이니, 물이 솟아 나오는 모양이다. “정비鼎沸”는 솥에 불을 때어 물이 끓는 것과 같은 것이다.나라의 전해오는 시호에 항상 라 칭한 것은 천하를 영구히 소유하여 종묘宗廟로 하여금 혈식血食(제사를 받다)하게 하려 한 것입니다.注+나라는 전해오는 시호에 모두 한 자를 가하였다.
如漢家絶祀 將軍雖死 何面目見先帝於地下乎
그런데 만일 나라의 제사가 끊긴다면 장군이 비록 죽으나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선제先帝를 뵙겠습니까.
今日之議 不得旋踵注+言宜速決.이니 群臣後應者 臣請劍斬之호리이다
오늘의 의논은 발길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사안이 급박하니,注+〈“부득선종不得旋踵”은〉 마땅히 속히 결단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여러 신하 중에 뒤늦게 호응하는 자가 있으면 으로 목을 베겠습니다.”
謝曰 九卿責光 是也注+時, 延年爲大司農, 故曰九卿.라하니 於是 議者皆叩頭曰 唯大將軍令注+言一聽之也.호리이다
곽광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구경九卿(전연년田延年)이 나를 책망하신 말씀이 옳다.”注+이때 전연년田延年대사농大司農이었으므로 구경九卿이라 칭한 것이다. 하니, 이에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오직 대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注+〈“유대장군령唯大將軍令”은 대장군의 명령을〉 한결같이 따름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卽與群臣으로 俱見白太后注+見, 形甸切.한대 太后乃幸未央承明殿하여 詔諸禁門하여 毋內昌邑群臣注+未央宮, 有承明殿. 毋, 禁止之辭. 하고 安世將羽林騎하여 收縛二百餘人하여 皆送廷尉詔獄하다
[目] 곽광霍光이 즉시 여러 신하들과 함께 태후太后를 뵙고 아뢰니,注+(뵙다)은 형전形甸이다. 태후는 마침내 미앙궁未央宮승명전承明殿으로 행차하여, 여러 금문禁門조령詔令을 내려 창읍왕昌邑王의 여러 신하들을 들이지 못하게 하였으며,注+미앙궁未央宮승명전承明殿이 있었다. 는 금지하는 말이다. (들이다)은 으로 읽으니, 아래 도 같다.장안세張安世우림羽林기병騎兵을 거느리고 창읍왕의 관속 200여 명을 포박해서 모두 정위廷尉조옥詔獄으로 송치하였다.
敕左右하여 謹宿衛하라
곽광은 좌우의 부하들에게 신칙하여 “숙위宿衛를 철저하게 하라!
卒有物故自裁 令我負天下有殺主名注+卒, 讀曰猝. 裁, 猶引決, 謂自殺也.이라하다
만일 이 갑자기 죽거나 자살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천하에 군주를 시해했다는 악명을 얻게 될 것이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인결引決이라는 말과 같으니, 자살함을 이른다. 하였다.
太后盛服坐武帳中하니 侍御數百人 皆持兵하고 期門武士 陛戟陳列殿下注+期門, 屬光祿勳, 掌執兵送從. 武帝爲微行, 與勇力之士, 期諸殿門, 故曰期門. 武士, 力士也. 陛戟, 謂持戟列陛側.하고 群臣 以次上殿하여 召昌邑王하여 伏前聴詔하다
태후太后성복盛服을 입고 무장武帳 안에 앉아 있으니, 시어侍御하는 자 수백 명이 모두 병기를 잡고 있고, 기문期門무사武士가 섬돌 곁에서 창을 잡고 전각 아래에 진열하였으며,注+기문期門”은 광록훈光祿勳에 속하였으니, 병기를 잡고 호송할 때 수행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무제武帝가 미행할 적에 용맹스럽고 힘이 있는 장사들과 대궐 문에서 만나기로 기약하였으므로 기문期門이라 하였다. “무사武士”는 역사力士이다. “폐극陛戟”은 세 갈래 창[]을 잡고 섬돌 곁에 나열함을 이른다. 여러 신하들이 차례로 승명전에 올라오니 창읍왕昌邑王을 불러다가 앞에 엎드려 조령詔令을 받게 하였다.
尙書令 讀奏曰
[目] 상서령尙書令주문奏文(아뢰는 글)을 다음과 같이 읽었다.
丞相臣敞等 昧死言하노이다
승상丞相 양창楊敞 등은 죽을죄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孝昭皇帝 早棄天下어시늘 遣使徵昌邑王하여 典喪服斬衰注+典喪, 言爲喪主也. 衰, 與縗同, 不緝曰斬衰. 러니
효소황제孝昭皇帝께서 일찍 천하를 버리셨으므로, 사자를 보내 창읍왕昌邑王을 불러와서 상주喪主가 되어 참최복斬衰服을 입게 하였습니다.注+전상典喪”은 상주喪主가 됨을 말한다. 와 같으니, 상복의 아래 단을 꿰매지 않은 것을 참최斬衰라 한다.
無悲哀之心하여 廢禮誼하고 居道上 不素食하며 使從官으로 略女子, 載衣車하여內所居傳舍注+居道上, 謂初被徵在路上時也. 素食, 菜食無肉也.하며 受璽大行前하고 就次하여 發璽不封注+漢初, 有三璽. 天子之璽, 自佩. 信璽ㆍ行璽, 在符節臺. 人主之喪曰大行, 不反之辭也. 大行前, 謂昭帝柩前也. 次, 謂喪次. 發, 開封也. 璽旣國器, 常當緘封, 而於大行前受之, 退遷所次, 遂爾發漏, 更不封之, 令凡人皆見, 言不重愼也.하며
그런데 창읍왕은 슬퍼하는 마음이 없어서 예의禮誼를 폐하였고, 오는 도중에 소식素食을 하지 않고 따르는 관원으로 하여금 여자를 데려오게 하여 의복을 싣는 수레에 태워 거처하는 전사傳舍(여관)로 들였으며,注+거도상居道上(도로 위에 한다.)”은 처음 부름을 받고 노상路上에 있을 때를 말한다. “소식素食”은 채소를 먹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대행大行의 앞에서 옥새를 받고는 자신이 머무는 상차喪次로 가지고 가서 옥새를 열어놓고 봉함封緘하지 않았습니다.注+나라 초기에 세 옥새玉璽가 있었으니, 천자지새天子之璽는 황제 자신이 차고 천자신새天子信璽천자행새天子行璽부절대符節臺에 보관해두었다. 군주의 대행大行이라 하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행전大行前(대행大行의 앞)”은 소제昭帝영구靈柩 앞을 이른다. 상차喪次를 이르고, 봉함封緘을 여는 것이다. 옥새는 국가國家기물器物이니 항상 봉함해야 하는데, 대행大行 앞에서 옥새를 받고는 물러가 상차喪次로 돌아가서 마침내 그대로 열어두어 다시 봉함하지 않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옥새를 모두 보게 하였으니, 신중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從官 更持節하여 引內昌邑騶宰, 官奴하여 與居禁闥內敖戲注+騶宰, 卽騶奴ㆍ宰人. 敖, 敖遊也. 戲, 音禧.하고 發樂府樂器하여 擊鼓, 歌吹하여 作俳倡注+俳, 諧戲也. 倡, 樂人也.하며 召內泰壹, 宗廟樂人하여 悉奏衆樂注+武帝祠泰壹, 用樂舞, 召歌兒, 作二十五弦及空侯瑟, 又采詩夜誦, 有趙ㆍ代ㆍ秦ㆍ楚之謳. 宗廟樂, 有文德ㆍ昭德ㆍ文始ㆍ五行之舞ㆍ嘉至ㆍ求至ㆍ登歌ㆍ休成之樂ㆍ房中祠樂ㆍ安世樂ㆍ昭容樂ㆍ禮容樂, 其員, 八百二十九人.하고 與孝昭皇帝宮人蒙等으로 淫亂注+蒙, 宮人名.하니이다
수행하는 관원들은 또 부절符節을 갖고 가서 창읍昌邑추종騶從재인宰人관노官奴들을 데려와서 그들과 함께 금중禁中 안에 거처하면서 놀고 희롱하였으며,注+추재騶宰”는 바로 추노騶奴(추종하는 하인)와 재인宰人이다. 는 놀이이다. (희롱하다)는 음이 이다.악부樂府악기樂器를 꺼내다가 북을 치고 악기를 불고 노래하면서 온갖 유희와 광대놀이를 하였고,注+는 온갖 유희이고, 악공樂工이다.태일泰壹(태일太一)과 종묘宗廟의 악공들을 불러들여 여러 음악을 모두 연주하였으며,注+무제武帝태일泰壹을 제사할 적에 악무樂舞를 사용하면서 노래하는 아이를 불러 25줄의 현악기와 공후슬空侯瑟을 만들었고, 또 를 채집하여 밤에 노래 부르게 하니, 의 노래가 있었다. 종묘악宗廟樂문덕文德, 소덕昭德, 문시文始, 오행지무五行之舞, 가지嘉至, 구지求至, 등가登歌, 휴성지악休成之樂, 방중사악房中祠樂, 안세악安世樂, 소용악昭容樂, 예용악禮容樂이 있었으니, 그 인원이 829명이다.효소황제孝昭皇帝의 궁녀인 등과 음란한 짓을 하였습니다.”注+은 궁녀의 이름이다.
太后曰 止注+令且止讀奏.하라
태후太后가 말하기를 “그만하시오.注+는〉 우선 주문奏文을 읽지 말라고 한 것이다.
爲人臣子하여 當悖亂如是邪
사람의 신자臣子가 되어서 어찌 도리에 어긋나고 혼란한 짓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이오.” 하였다.
離席伏이어늘 尙書令 復讀曰
[目] 창읍왕昌邑王이 자리를 떠나 엎드려 있자, 상서령尙書令이 다시 주문奏文을 다음과 같이 읽었다.
祖宗廟祠 未擧어늘 爲璽書하여 使使者持節하여 以三太牢 祠昌邑哀王園廟호되 稱嗣子皇帝注+時在喪服, 故未祠宗廟, 而私祭昌邑哀王也. 賀入繼大宗, 不當於昌邑哀王稱嗣子. 皇帝旣於禮, 悖三年不祭之義, 又悖爲人後者爲之子之義.하며
조종祖宗종묘宗廟 제사를 아직 거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창읍왕은 옥새를 찍은 교서敎書를 만들어서 사자使者를 시켜 을 가지고 창읍昌邑에 가서 세 태뢰太牢를 가지고 창읍애왕昌邑哀王원묘園廟에 제사하되 축문祝文에 자신을 ‘사자황제嗣子皇帝’라 칭하였으며,注+이때 상복喪服 중에 있었으므로 아직 종묘宗廟에 제사하지 못하였는데, 창읍왕昌邑王이 사사로이 창읍애왕昌邑哀王을 제사한 것이다. 유하劉賀가 들어와 대통大統을 이었으니, 창읍애왕昌邑哀王에게 사자嗣子라고 칭해서는 안 된다. 황제(창읍왕昌邑王)는 에 3년 동안 제사하지 않는 의리를 어겼고, 또 남의 양자養子가 된 자는 그의 아들이 되는 의리를 위반한 것이다.
受璽以來二十七日 使者旁午持節하여 詔諸官署徵發 凡一千一百二十七事注+旁, 如字. 一縱一橫, 爲旁午, 猶言交橫也.
황제의 옥새를 받은 이래로 27일 동안에 사자가 종횡으로 을 가지고 가서 여러 관서官署들에 명하여 징발한 것이 모두 1,127가지 일이었습니다.注+(두루)은 본음대로 읽는다. 한 번 세로로 하고 한 번 가로로 함을 “방오旁午”라 하니, 교횡交橫(서로 종횡縱橫하다)이라는 말과 같다.
荒淫迷惑하여 失帝王禮誼하고 亂漢制度어늘
주색에 빠지고 미혹되어 제왕의 예의를 잃었고 나라의 제도를 혼란시켰습니다.
臣敞等數進諫이나 不變更하고 日以益甚하니 恐危社稷하여 天下不安이라
그러므로 양창楊敞 등은 자주 간언을 올렸으나 고치지 않고 날로 더욱 심해지니,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하여 천하가 불안할까 두려웠습니다.
臣敞等 謹與博士議하니 皆曰 五辟之屬 莫大不孝注+五辟, 卽五刑也. 宗廟重於君王하니 不可以承天序하여 奉祖宗廟하고 子萬姓이니 當廢라하니이다
그리하여 양창 등은 삼가 박사博士들과 의논하였는데, 모두들 말하기를 ‘오벽五辟(오형五刑)의 등속 중에 죄가 불효보다 큰 것이 없고注+오벽五辟은 바로 이다. 종묘가 군왕보다 더 소중하니, 창읍왕은 하늘의 순서를 이어서 조종의 종묘를 받들고 만백성을 사랑할 수가 없어 마땅히 폐위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臣請有司以一太牢 具告祠高廟하노이다
유사有司가 한 태뢰太牢로 사유를 갖추어 고묘高廟에 고하여 제사할 것을 청합니다.”
皇太后詔曰 可라하다
황태후가 조령詔令을 내려 “그렇게 하라.” 하였다.
令王起拜受詔하고 脫其璽組하여 奉上太后하고 扶王下殿하여 出金馬門하여 就乘輿副車하다
[目] 곽광霍光으로 하여금 일어나 절하고서 조령詔令을 받게 하고, 옥새와 옥새의 끈을 벗겨 태후太后에게 받들어 올리고, 을 부축하여 승명전承明殿을 내려가서 금마문金馬門을 나가 승여乘輿부거副車로 나아가게 하였다.
送至邸하여 謝曰 王行 自絶於天注+行, 去聲.하니 臣寧負王이언정 不敢負社稷이라
곽광은 을 전송하여 창읍왕昌邑王의 저택에 이르러 사죄하기를 “의 행실이 스스로 하늘을 끊으시니,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다.은 차라리 을 저버릴지언정 감히 사직社稷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願王 自愛하라하고
원컨대 은 스스로 몸을 아끼소서.”
涕泣而去하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떠났다.
群臣 奏請徙王賀房陵注+房陵縣, 唐爲房州.하니 詔歸賀昌邑하고 賜湯沐邑二千戶하고 國除하여 爲山陽郡하다
여러 신하들이 창읍왕 유하劉賀방릉房陵으로 옮길 것을 주청하자,注+방릉현房陵縣나라에서는 방주房州라 하였다.조령詔令을 내려 유하를 창읍으로 돌려보내고 탕목읍湯沐邑 2천 호를 하사하였으며, 나라를 없애어 산양군山陽郡으로 삼았다.
昌邑群臣 坐在國時 不擧奏王罪過하여 令漢朝不聞知하고 又不能輔道하여 陷王大惡注+道, 讀曰導.이라하여 皆下獄하여 誅殺二百餘人하고
[目] 창읍왕昌邑王의 여러 신하들은, 봉국에 있을 적에 의 죄와 허물을 들어 아뢰지 아니하여 나라 조정으로 하여금 들어서 알지 못하게 하였고, 또 을 제대로 보도輔導하지 못하여 을 큰 죄악에 빠뜨렸다 하여,注+(인도하다)는 로 읽는다. 모두 옥리에게 회부하여 200여 명을 주살誅殺하였다.
唯中尉吉 郞中令遂 得減死하여 髡爲城旦하다
오직 중위中尉 왕길王吉낭중령郞中令 공수龔遂는 사형을 감면하여 머리를 깎고 을 하게 하였다,
師王式 繫獄當死러니 使者責曰 師何以無諫書
사부師傅 왕식王式은 감옥에 갇혀 사형의 죄에 해당하였는데, 사자使者가 왕식을 꾸짖기를 “의 사부는 어찌하여 에게 간한 글이 없었는가?” 하니,
對曰 臣以詩三百五篇으로 朝夕授王할새 至於忠臣孝子之篇하여는 未嘗不爲王反復誦之也하고
왕식이 대답하기를 “이 《시경詩經》 305편을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을 가르칠 적에, 충신과 효자를 읊은 시편詩篇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왕을 위해 반복하여 읊지 않은 적이 없었고,
至於危亡失道之君하여는 未嘗不流涕爲王深陳之也호니 臣以三百五篇諫이라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망하게 하는 를 잃은 군주의 시편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눈물을 흘리며 을 위해 깊이 말씀드리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은 《시경詩經》 305편을 가지고 간하였다.
是以無諫書라하여늘 亦得減死論하다
이 때문에 간하는 글이 없는 것이다.” 하였으므로, 또한 사형을 감면하는 것으로 논죄論罪하였다.
以太后省政하니 宜知經術注+省, 視也.이라하여 白令夏侯勝으로 用尙書授太后하고 遷勝長信少府注+長信, 皇太后宮名, 少府職掌其宮事. 本名長信詹事, 景帝更名長信少府.하다
곽광霍光은, 태후太后가 정사를 보살펴야 하니 마땅히 경학經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注+은 살펴봄이다. 태후에게 아뢰어 하후승夏侯勝으로 하여금 《상서尙書》를 태후에게 가르치게 하고, 하후승을 장신소부長信少府로 승진시켰다.注+장신長信황태후皇太后 이름이니, 소부少府가 이 궁중의 일을 관장하였다. 본래 이름은 장신첨사長信詹事였는데, 경제景帝장신소부長信少府로 이름을 바꾸었다.
[綱] 가을 7월에 무제武帝증손曾孫유병이劉病已(병이)를 맞이하여, 유병이가 들어와 즉위하고, 황태후皇太后를 높여 태황태후太皇太后라 하였다.
衛太子納史良娣하여 生子進하니 號史皇孫注+史, 姓也. 娣, 音弟. 漢制, 太子有妃ㆍ有良娣ㆍ有孺子, 凡三等. 進, 名也, 以外家姓稱之, 故曰史皇孫.이요 皇孫 納王夫人하여 生子病已하니 號皇曾孫注+已, 止也. 蓋以夙遭屯難而多病苦, 故名病已, 欲其速差也.이라 生數月 遭巫蠱事하여
[目] 처음에 위태자衛太子사량제史良娣를 들여서 아들 유진劉進을 낳으니 사황손史皇孫이라 하였고,注+이다. 는 음이 이다. 나라 제도에 태자太子가 있고 양제良娣유자孺子가 있어서 모두 세 등급의 처첩이 있었다. 은 이름이다. 외가外家으로 칭해졌기 때문에 사황손史皇孫이라 한 것이다.사황손史皇孫왕부인王夫人을 들여서 아들 유병이劉病已를 낳으니 황증손皇曾孫이라 하였는데,注+는 그침이다. 일찍 환난患難을 만나고 질병이 많았기 때문에 이름을 병이病已라 하였으니, 이 속히 낫기를 바란 것이다. 태어난 지 수개월 만에 무고巫蠱의 옥사를 만났다.
太子男女妻妾 皆遇害하고 獨皇曾孫在하나 亦坐收繫郡邸獄注+郡邸獄, 屬大鴻臚, 治天下郡國上計者. 此蓋巫蠱獄收繫者衆, 故曾孫寄在郡邸獄.이러니
태자太子의 아들딸과 처첩妻妾이 모두 살해되었으나 유독 황증손皇曾孫만이 살아 있었는데, 또한 체포되어 에 갇혀 있었다.注+군저옥郡邸獄대홍려大鴻臚에 속하니, 천하天下군국郡國상계上計(회계會計)를 다스리는 곳이다. 이는 무고巫蠱의 옥사에 체포되어 구속된 자가 많았으므로 증손曾孫군저옥郡邸獄에 구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故廷尉監丙吉 受詔治獄注+監者, 廷尉之官屬. 丙, 姓也.할새 心知太子無事實하고 重哀皇曾孫無辜注+重, 直用切, 又也.하여 擇謹厚女徒胡組, 郭徵卿하여 令乳養호되 日再省視注+輕罪, 男子守邊一歲, 女子輭弱, 不任守, 復令作於官, 亦一歲, 故班史謂之“女徒復作.” 復作者, 復爲官作, 滿其本罪月日.하다
옛날 정위감廷尉監병길丙吉조령詔令을 받아 옥사를 다스릴 적에注+연위延尉의 관속이다. 이다.태자太子가 반역한 사실이 없음을 마음속으로 알았고, 황증손皇曾孫이 죄 없음을 더욱 가엾게 여겨서,注+(거듭)은 직용直用이니, ‘또’라는 뜻이다. 삼가고 후덕한 여도女徒(죄를 짓고 복역하는 여인)인 호조胡組곽징경郭徵卿을 선발하여 이들로 하여금 젖을 먹여 기르게 하고는, 매일 두 번씩 살펴보았다.注+가벼운 남자男子는 변경에서 1년 동안 수자리를 살고, 여자女子는 몸이 연약하여 변경을 지킬 수 없으므로 다시 관청에서 일하게 하였는데 또한 1년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한서漢書》 〈선제기宣帝紀〉에 “여도복작女徒復作”이라 하였으니, 복작復作이란 다시 관청에서 일하여 본래 죄의 월일月日(형기)을 채우는 것이다.
望氣者 言長安獄中 有天子氣注+晉天文志 “天子氣內赤外黃, 四方所發之處, 當有王者. 若天子欲有遊往處, 其地亦先發此氣, 或如城門, 隱隱在氣霧中, 或氣象靑衣人無手, 在日西, 或如龍馬, 或雜色鬱鬱衝天者, 皆帝王之氣.”라한대 武帝遣使者하여 分條中都官詔獄繫者하여 無輕重 一切皆殺之注+條, 謂疏錄之. 長安中諸官獄, 三十六所, 非一人所能治, 故分使疏錄之.하다
[目] 하는 자가 말하기를 “장안長安의 감옥 가운데 천자天子운기雲氣(구름)가 있다.”注+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천자天子(제왕帝王)의 운기雲氣는 안은 붉고 밖은 누르니, 사방의 나타나는 곳에는 마땅히 왕자王者가 나오게 된다. 만약 천자天子가 유람하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이 지역에도 또한 먼저 천자天子의 운기가 나타나는데, 혹은 성문城門이 은은하게 안개 속에 있는 듯하고, 혹은 운기가 손이 없는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으로 해의 서쪽에 있고, 혹은 용마龍馬와 같고, 혹은 여러 색깔이 빽빽하게 모여 하늘을 향하니, 이는 모두 제왕帝王운기雲氣이다.” 하였다. 하니, 무제武帝사자使者를 보내 중도관中都官조옥詔獄에 갇혀 있는 자들을 나누어 조목조목 기록해서 죄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일체 모두 죽이게 하였다.注+는 조목조목 기록함을 이른다. 장안長安 가운데 여러 관청의 감옥이 36개여서 한 사람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내 조목조목 기록하게 한 것이다.
夜到郡邸獄이어늘 閉門不納曰 他人無辜死者 猶不可어든 況親曾孫乎아하니 使者不得入하고 還以聞한대
그리하여 사자使者가 밤중에 군저옥郡邸獄에 이르렀는데, 병길丙吉은 감옥 문을 닫고 들여보내지 않으며 말하기를 “타인을 죄 없이 죽이는 것도 불가한데, 하물며 황제의 친증손親曾孫이란 말인가.” 하니, 사자使者가 감옥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 보고하였다.
武帝亦寤曰 天使之也라하고 因赦天下하다
무제武帝 또한 깨닫고 말하기를 “하늘이 시킨 것이다.” 하고는 인하여 천하에 죄인들을 사면赦免하였다.
聞史良娣有母貞君及兄恭하고 乃載皇曾孫付之하다
[目] 병길丙吉사량제史良娣의 어머니 정군貞君과 오라비 사공史恭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황증손皇曾孫을 수레에 태우고 가서 이들에게 맡겼다.
有詔掖庭養視하고 上屬籍宗正注+上, 上聲. 詔勅掖庭養視之, 始令宗正著其屬籍.하다
뒤에 조령詔令을 내려 황증손을 액정掖庭에서 길러 보살피게 하고, 종정宗正에게 속적屬籍(종실보적宗室譜籍)에 올리게 하였다.注+(올리다)은 상성上聲이다. 조칙詔勅을 내려 액정掖庭에서 길러 보살피게 하고, 처음으로 종정宗正으로 하여금 그 속적屬籍에 기록하게 한 것이다.
掖庭令張賀 嘗事衛太子 思顧舊恩하여 哀曾孫하여 奉養甚謹하고 欲以女孫妻之注+掖庭令, 屬少府, 職掌後宮ㆍ貴人ㆍ采女事. 賀幸於衛太子, 太子敗, 賓客皆誅. 安世上書, 爲賀請, 得下蠶室, 後爲掖庭令.하다
이때 액정령掖庭令 장하張賀가, 일찍이 위태자衛太子를 섬겼기 때문에 태자太子의 옛 은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여, 황증손을 가엾게 여겨서 매우 극진하게 봉양하고, 손녀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다.注+액정령掖庭令소부少府에 속하였으니, 후궁後宮귀인貴人과 여자를 뽑아 들이는 일을 관장하였다. 장하張賀위태자衛太子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태자太子가 실패하자 빈객賓客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장안세張安世가 글을 올려 장하를 위해 죄를 감면해줄 것을 청하니, 〈이 장하를〉 에 내려 부형腐刑(궁형宮刑)을 받게 했는데, 뒤에 액정령掖庭令으로 삼았다.
賀弟安世爲右將軍하여 輔政이러니 怒曰 曾孫 乃衛太子後也 勿復言予女事注+予, 讀曰與.하라하다
장하의 아우 장안세張安世우장군右將軍이 되어 국정을 보필하고 있었는데, 노하여 말하기를 “증손曾孫은 바로 위태자衛太子의 후손이니, 다시는 그에게 손녀딸을 주는 일을 말씀하지 말라.”注+(주다)는 로 읽는다. 하였다.
暴室嗇夫許廣漢 有女어늘 賀以家財聘之注+暴室, 屬掖庭令, 取暴曬爲名, 蓋主織作練染之署. 其屬官, 有嗇夫一人, 以閹宦爲之. 廣漢坐法, 腐爲宦者, 作嗇夫也.하다
이때 폭실暴室색부嗇夫허광한許廣漢에게 딸이 있었는데, 장하가 자기 집의 재물을 주어 그녀를 맞이해오게 하였다.注+폭실暴室액정령掖庭令에 속하니, 비단을 햇볕에 말리는 뜻을 취하여 이름하였는바, 비단을 짜서 물들이는 일을 주관하던 관서이다. 그 관속에 색부嗇夫 한 사람을 두었는데 환관宦官으로 임명하였다. 허광한許廣漢이 법에 연좌되어서 부형腐刑을 받고 환관宦官이 되어 색부가 된 것이다.
曾孫 因依倚廣漢兄弟及史氏注+廣漢有兩弟, 曰舜, 曰延壽.하여 受詩於東海澓中翁注+澓, 音伏, 姓也. 中, 讀曰仲. 中翁, 字也. 或云, 中翁名也.하니 高材好學이라
증손은 이로 인하여 허광한의 형제와 사씨史氏 집안에 의지하여 살며注+허광한許廣漢에게 두 아우가 있었으니, 허순許舜허연수許延壽이다.동해東海 복중옹澓中翁에게 《시경詩經》을 배웠는데,注+은 음이 이니, 이다. 으로 읽으니, 중옹中翁이다. 혹자는 중옹中翁이 이름이라고 하였다. 재주가 높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이나 亦喜游俠하여 鬪鷄走馬하여 上下諸陵하고 周徧三輔하니 以是 具知閭里姦邪 吏治得失注+上, 上聲, 下奏上同. 下, 去聲. 諸陵皆據高敞地爲之, 縣卽在其側. 帝每周游, 往來諸陵縣, 去則上, 來則下, 故言上下諸陵.하니라
그러나 또한 유협游俠을 좋아해서 투계鬪鷄를 하고 말을 달려 여러 에 오르내리고 삼보三輔 지방을 두루 다녔으니, 이 때문에 마을의 간사한 자들과 관리들의 다스림의 잘잘못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注+(오르다)은 상성上聲이니, 아래의 주상奏上도 같다. (내려오다)는 거성去聲이다. 여러 은 모두 높고 밝은 곳에 의거하여 만들었는데, 은 바로 그 곁에 있었다. 선제宣帝가 매번 놀러 나갈 적에 여러 을 왕래하여 가면 올라가고 오면 내려왔으므로 “상하제릉上下諸陵(여러 을 오르내렸다.)”고 말한 것이다.
及是 奏記光曰
[目] 이때에 이르러 병길丙吉이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하여 곽광霍光에게 올렸다.
今社稷, 宗廟群生之命 在將軍之一擧
“지금 사직社稷종묘宗廟와 백성들의 목숨이 장군將軍의 한 조처에 달려 있습니다.
竊伏聽於衆庶호니 其所言諸侯宗室在列位者 未有所聞也 而武帝曾孫名病已 在掖庭外家者 今十八九矣注+出郡邸獄, 歸在外家史氏, 後入掖庭耳.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제후와 종실로서 지위에 있는 자 중에는 알려진 바가 없고, 무제武帝증손曾孫으로 이름이 병이病已인 자가 액정掖庭외가外家에 있는데 지금 나이가 18, 9세가 되었다 합니다.注+〈“재액정외가在掖庭外家”는〉 군저옥郡邸獄에서 나와 외가外家사씨史氏에게로 갔고 뒤에 액정掖庭에 들어간 것이다.
通經術하고 有美材하며 行安而節和注+行, 去聲.라하니 願將軍 詳大義하고 參以蓍龜하여 先使入侍하여 令天下昭然知之 然後 決定大策하면 天下幸甚注+蓍, 所以筮. 龜, 所以卜. 侍, 謂侍太后.이니이다
그는 경학經學을 달통하고 아름다운 재질이 있으며 행실이 침착하고 절도가 온화하다고 하니,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원컨대 장군은 대의大義를 살펴보고 시초점蓍草占과 거북점으로 참작하여 먼저 들어와 황태후皇太后를 모시게 해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알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 대책大策을 결정하시면 천하天下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注+는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고, 는 거북껍질로 점을 치는 것이다. 태후太后를 모심을 이른다.
七月 會丞相以下하여 議定所立할새
[目] 7월에 곽광霍光승상丞相 이하를 모아 황제로 세울 인물을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였는데,
遂上奏曰 孝武皇帝曾孫病已 年十八 師授詩‧論語‧孝經하고 躬行節儉하며 慈仁愛人하니
마침내 상주上奏하기를 “효무황제孝武皇帝증손曾孫병이病已가 나이 18세에 스승에게 《시경詩經》과 《논어論語》‧《효경孝經》을 배우고, 몸소 근검절약을 행하며 인자하고 사람을 사랑하니,
可以嗣孝昭皇帝後하여 承祖宗하고 子萬姓이니이다 皇太后詔曰可라하다
효소황제孝昭皇帝의 뒤를 이어서 조종祖宗을 받들고 만백성을 사랑할 만합니다.” 하니, 황태후皇太后조령詔令을 내려 “그렇게 하라.” 하였다.
遣宗正德하여 迎曾孫하여 就齋宗正府注+德, 楚元王曾孫劉辟彊子.하고
곽광霍光종정宗正유덕劉德을 보내 증손曾孫을 맞이해서 종정부宗正府에 나아가 재계하게 하였다.注+유덕劉德초원왕楚元王증손曾孫유벽강劉辟彊의 아들이다.
明日 入未央宮하여見太后하여 封爲陽武侯注+先封侯者, 不欲立庶人爲天子也.러니 群臣 奏上璽綬하여 卽皇帝位하고 謁高廟하다
다음 날 미앙궁未央宮에 들어와 태후太后를 뵙고는 양무후陽武侯에 봉해졌는데,注+먼저 로 봉한 것은 서인庶人천자天子로 세우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신하들이 황제의 옥새玉璽인수印綬를 올려 황제의 지위에 오르고 고묘高廟에 배알하였다.
侍御史嚴延年 劾奏호되 大將軍光 擅廢立主하니 無人臣禮 不道니이다
[目] 시어사侍御史엄연년嚴延年곽광霍光을 탄핵하여 아뢰기를 “대장군大將軍 곽광이 제멋대로 군주를 폐하고 세웠으니, 신하의 가 없어 부도不道합니다.” 하였다.
奏雖寢이나 然朝廷 肅然敬憚之하니라
그의 아룀이 비록 시행되지는 못하였으나 조정이 숙연肅然히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하다
[綱] 사면赦免하였다.
◑ 丞相敞커늘 以蔡義爲丞相하다
[綱] 승상丞相 양창楊敞하였으므로 채의蔡義승상丞相으로 삼았다.
義以明經으로 給事大將軍莫府러니 昭帝召見說詩하고 擢光祿大夫하다
[目] 채의蔡義경학經學에 밝아서 대장군大將軍 막부幕府급사給事가 되었는데, 소제昭帝가 불러보아 《시경詩經》을 해설하게 하고 광록대부光祿大夫로 발탁하였다.
數歲 爲丞相하니 年八十餘 貌似老嫗
몇 년 뒤에 승상丞相이 되었는데, 나이가 80이 넘어 모습이 늙은 할미와 같았다.
議者謂光호되 置宰相 用可專制者니이다 光曰 以爲人主師當爲宰相이니 何謂云云고하니라
의논하는 자가 곽광霍光에게 이르기를 “재상宰相을 둘 적에는 전제專制할 수 있는 자를 등용해야 합니다.” 하니, 곽광이 대답하기를 “군주의 스승이 마땅히 재상이 되어야 하니, 어찌 이리이리 말하는가.” 하였다.
冬十一月 立皇后許氏하다
[綱] 겨울 11월에 허씨許氏황후皇后로 세웠다.
公卿 議立皇后할새 皆心擬霍將軍女호되 亦未有言이러니 乃詔求微時故劍한대 大臣 知指하고 白立許倢伃爲皇后하다
[目] 공경公卿황후皇后를 세울 것을 의논할 적에 모두 마음속에 곽장군霍將軍(곽광霍光)의 딸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또한 말하지 못하였는데, 이 마침내 조령詔令으로 미천했을 때에 차던 옛 을 찾아오게 하니, 대신大臣들은 의 뜻을 알아차리고 아뢰어 허첩여許倢伃를 황후로 세웠다.
霍光以后父廣漢 刑人이니 不宜君國이라하여 歲餘 乃封爲昌成君하다
곽광이 허황후許皇后의 아버지인 허광한許廣漢은 형벌 받은 사람이니 나라의 군주가 될 수 없다고 하여,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창성군昌成君으로 봉하였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宣帝側微 已娶許氏하니 旣登大寶 則天下母也注+側微, 側陋微賤時.어늘
선제宣帝가 미천할 적에 이미 허씨許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이미 대보大寶(보위寶位)에 올랐으면 그 부인은 바로 천하天下의 어머니(황후皇后)인 것이다.注+측미側微”는 누추하고 미천할 때이다.
公卿 乃舍之하고 而心屬光女하니 不逆理乎
그런데 〈공경公卿들이 황후皇后를 세울 것을 의논할 적에 모두〉 그녀를 버리고 곽광霍光의 딸에게 마음을 두었으니, 이치를 거스른 것이 아니겠는가.
光雖未言이나 而意欲其然也하니 以其不封許廣漢으로 則知其慍許后之立矣
곽광도 비록 말하지는 않았으나 뜻에 그러하기를 바랐으니, 허광한許廣漢을 즉시 봉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그가 허황후許皇后가 선 것을 서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妻顯邪謀 蓋肇於此하니 此霍氏之所以覆宗也歟인저
가 아마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니, 이것이 곽씨霍氏종족宗族전복顚覆된 이유일 것이다.”
하고 初置屯衛注+漢太后常居于長樂宮, 太皇太后以其昌邑之廢, 居于未央宮, 今宣帝旣卽位, 復歸長樂宮.하다
[綱] 태황태후太皇太后장락궁長樂宮으로 돌아가고, 처음으로 둔위屯衛를 설치하였다.注+나라 태후太后는 항상 장락궁長樂宮에 거처하였는데, 태황태후太皇太后창읍왕昌邑王이 폐위된 일로 미앙궁未央宮에 거처하다가 이제 선제宣帝가 즉위하자 다시 장락궁長樂宮으로 돌아간 것이다.
역주
역주1 大如月……皆隨西行 : “建元 2년(B.C. 139)에 ‘별이 〈크기가〉 해와 같았다.’고 썼었는데, 이때 다시 ‘流星이 달처럼 큰 것이 있었다.’고 썼으니, 모두 큰 異變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에는 쓰지 않은 것을 《자치통감강목》에서 특별히 썼는데, 과연 한 달이 넘어 국가에 國喪이 있었다.[建元二年 書有星如日矣 於是復書流星大如月 皆大異也 故通鑑不書 綱目特書之 果踰月而國有大喪矣]” 《書法》
역주2 大將軍光……皇太后 : “賀善賛이 말하였다. ‘昭帝가 즉위한 초년에 즉시 使者를 보내어 백성들의 고통을 물었고, 뒤이어 「백성들을 구휼하여 곡식의 종자와 양식을 꾸어주었다.」고 썼고, 또 「꾸어준 것을 거두지 말고 금년의 田租를 면제했다.」고 썼고, 또 「말[馬]을 공출하지 말라고 명했다.」고 썼고, 또 「백성의 고통을 물었다.」고 썼고, 또 「榷酤官을 파했다.」고 썼고, 또 「口賦錢을 줄여주었다.」고 썼으니, 그런 뒤에 양식이 모두 소모된 궁핍한 백성들이 비로소 살려는 의욕을 갖게 되었다. 이에 昭帝는 武帝의 뜻을 잘 이은 황제라고 이를 수 있고, 霍光 또한 어진 政丞이라고 이를 만하다.’
○ ‘皇后의 詔令을 받들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전횡하여 군주를 세웠다는 명목으로 霍光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兩漢의 세대에 ‘迎’이라고 쓰고 ‘立’이라고 쓴 것이 열 번인데, ‘皇后의 詔令을 받았다.’고 쓴 것은 오직 곽광뿐이다.[賀善賛曰 昭帝初元 卽遣使問民疾苦 繼書賑貸種食 又書所貸勿收 除今年租 又書令勿出馬 又書問民疾苦 又書罷榷酤官 又書減口賦錢 然後虛耗之民 始有生意 昭帝於是可謂善繼矣 光亦賢相矣哉 ○ 承皇后詔 何 不以專立君累光也 兩漢之世 書迎書立者十 書承皇后詔 惟光而已]” 《書法》
역주3 (殲)[纖] : 저본에는 ‘殲’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纖’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棰)[捶] : 저본에는 ‘棰’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捶’로 바로잡았다.
역주5 (服)[腶] : 저본에는 ‘服’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腶’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考)[狗] : 저본에는 ‘考’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狗’로 바로잡았다.
역주7 [纓] : 저본에는 ‘纓’이 없으나, 《後漢書》 〈輿服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8 殷나라……않았다 : 諒闇은 天子가 居喪하는 곳의 명칭이라 하나 뜻은 자세하지 않다. 亮陰‧亮闇으로도 표기한다. 王吉이 인용한 말은 《禮記》 〈喪服四制〉에 보이는데, 殷나라 高宗 武丁이 양암에 거처하며 先帝의 삼년상을 예법대로 마친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9 渴烏 : 물을 넣어두는 굽은 통이다.
역주10 昌邑王……奏太后廢之 : “昌邑王 劉賀가 이미 尊位에 올랐는데, 아직도 ‘昌邑王’이라고 쓴 것은 그가 황제가 된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황제를 폐하고 세움은 국가에 있어 부득이한 일이다. 霍光이 忠心이 있었기 때문에 武帝가 간절히 어린 아들을 부탁한 것이니, 곽광이 昭帝를 옹립하고 宣帝를 세운 것을 보면 곽광이 큰 절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창읍왕의 인물됨을 미리 살피지 못하고 경솔히 세운 점이다. 더구나 그의 미친 짓과 방종함이 평소 드러나 있었는데, 漢나라 조정에서는 어찌 한 사람도 그의 소행을 아는 이가 없어서 宗廟를 받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폐위한단 말인가. 이는 곽광이 배우지 못하여 學術이 없어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잘못이다. 《資治通鑑綱目》에 만일 창읍왕에게 죄가 있음을 쓰지 않았다면 곽광의 부득이한 마음을 어찌 천하와 후세에 밝혀지게 할 수 있었겠는가?[賀已正尊位 而猶書昌邑王者 不予其帝也 夫廢立非國家之得已 以光之忠赤 故武帝拳拳於託孤 觀其擁昭立宣 則光之大節可知 然惜其不先審昌邑之爲人 率然立之 況其狂縱素著 漢朝豈無一人知其所爲 必至於不可奉宗廟 乃始廢之哉 此則光不學無術 不能知人之過爾 綱目儻不書昌邑有罪 則光之心何以自白於天下後世乎]” 《發明》
역주11 (等)[孝] : 저본에는 ‘等’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孝’로 바로잡았다.
역주12 內所引內召內 : 본서 354쪽 “內所居傳舍”, “引內昌邑騶宰官奴”, “召內泰壹宗廟樂人”을 가리킨다.
역주13 內……下內所引內召內同 : 다음 節의 “內所居傳舍”와 “引內昌邑騶宰”와 “召內泰壹”은 모두 納으로 읽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14 (主)[王]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5 五刑 : 다섯 종류의 형벌이다. 시대별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漢나라 때에는 刺字함[黥], 코를 벰[劓], 왼발과 오른발을 벰[斬左右趾],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닮[梟首], 죄인의 뼈와 살을 젓 담금[菹其骨肉]을 지칭하였다.
역주16 城旦 : 죄인에게 새벽에 일어나서 축성하는 부역을 시키는 것으로 4년 동안 하였다.
역주17 迎武帝……太皇太后 : “劉賀가 이미 ‘즉위했다.’고 쓰고서 ‘昌邑王’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군주 노릇을 못했기 때문이다. 太后의 令으로 군주를 폐한 경우가 많으나 쓰지 않았는데, 오직 霍光만이 ‘太后에게 아뢰었다.’고 썼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전횡하여 군주를 폐했다는 명목으로 곽광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횡하여 군주를 폐했다는 명목으로 곽광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여 특별히 ‘太后에게 아뢰었다.’고 쓰고, 전횡하여 군주를 세웠다는 명목으로 곽광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여 특별히 ‘皇后의 詔令을 받들었다.’고 쓴 것이다. 그렇다면 武帝의 曾孫인 宣帝가 즉위할 때에 ‘太后의 詔令을 받들었다.’고 쓰지 않은 것은 곽광이 자기 마음대로 세움을 인정한 것인가? 위에서 ‘곽광이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太后에게 아뢰었다.’고 썼으니, 곽광을 두 번 쓰지 않은 것은 윗글을 이어받아서일 뿐이다.[賀旣書卽位矣 書昌邑王 何 不君也 故以太后令廢主者多矣 不書 惟霍光以奏太后書 其書之 何 不以專廢君累光也 是故不以專廢君累光 則特書奏太后 不以專立君累光 則特書承皇后詔 然則曾孫之立 不書承太后詔 其許光以專立歟 上書光率群臣奏太后矣 不再書光 則蒙上文而已]” 《書法》
“昌邑王이 즉위할 적에 ‘霍光이 皇后의 詔令을 받들었다.’고 썼고, 폐위할 적에 ‘곽광이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太后에게 아뢰었다.’고 썼었는데, 宣帝를 迎立함에 이르러는 곧바로 ‘맞이하여 〈病已가〉 들어와 즉위했다.’고 쓰고 ‘태후에게 아뢰었다.’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창읍왕은 군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가 있어서 이미 세웠다가 다시 폐하였으니, 곽광이 혹시라도 위로 태후의 명령을 받들지 않았으면 이는 곽광의 전횡이 되니 곧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선제에 이르러는 충분히 宗廟를 받들 수 있었으므로 곧바로 ‘迎立했다.’고 씀을 혐의하지 않은 것이다. 곽광은 배우지 않은 武人으로서 수립한 바가 이와 같았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쓴 것은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기 때문이니, 단지 곽광이 武帝의 어린 아들을 부탁받은 충절이 있음을 나타냈을 뿐만이 아니요, 무제가 사람을 알아본 현명함을 또한 딴 사람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昌邑之立 書光承皇后詔 其廢也 書光率群臣奏太后 至宣帝之立 則直書迎入卽位 而不書奏太后 何哉 蓋昌邑有不君之罪 旣立之而又廢之 儻不上承太后之命 則光爲專 輒不臣矣 至宣帝 則足以奉承宗廟 故不嫌於直書迎立也 夫光以不學武人 而所立若此 綱目書之 名正言順 不特見光有托孤之節 而武帝知人之明 亦爲不可及矣]” 《發明》
역주18 郡邸獄 : 漢나라 때 王侯와 郡守의 府邸에 설치한 감옥으로, 大鴻臚에 속하였다.
역주19 望氣 : 고대 方士의 占候術로, 雲氣를 관찰하여 吉凶을 예측하였다.
역주20 蠶室 : 古代에 宮刑을 집행하거나 궁형을 받은 자가 거처하던 獄室을 이른다.
역주21 곽광의……꾀 : 막내딸 霍成君을 황후로 만들 욕심으로 女醫를 시켜 許皇后를 독살하고, 곽성군을 황후에 오르게 한 것을 말한다. 霍顯은 霍光이 죽은 뒤, 허황후를 시해한 일이 탄로나자 宣帝를 폐위하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하고 棄市되었다.
역주22 太皇太后歸長樂宮 : “‘歸’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도리에〉 순하다는 말이다. 太后의 거처를 옮겼다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태후가 거처를 옮겨 어느 宮으로 돌아갔다.[太后遷歸某宮]’고 한 것은 〈도리에〉 순하다는 말이고, ‘태후의 거처를 어느 宮으로 옮겼다.[遷太后于某宮]’는 것은 〈도리를〉 거스른다는 말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태후가 어느 宮으로 이사했다.[太后徙某宮]’고 쓴 것이 두 번이고, ‘태후가 거처를 어느 宮으로 옮겼다.[太后遷某宮]’고 쓴 것이 한 번이고, ‘태후가 어느 宮으로 돌아갔다.[太后歸某宮]’고 쓴 것이 한 번이고, ‘태후가 어느 宮에 거처했다.[太后居某宮]’고 쓴 것이 한 번인데, 모두 〈도리에〉 순하다는 말이다.[歸者 何 順辭也 太后遷辭二 太后遷歸某宮者 順辭也 遷太后于某宮者 逆辭也 終綱目 書太后徙某宮二 書太后遷某宮一 書太后歸某宮一 書太后居某宮一 皆順辭也]” 《書法》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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