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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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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年(B.C. 207)
三年이라
楚二 趙二 齊二 燕三 魏二 韓二年이라
冬十一月 楚次將項籍 矯殺宋義而代之하야 大破秦軍하고 虜其將王離하다
宋義至安陽하야 留四十六日不進注+索隱 “今宋州楚丘西北四十里, 有安陽故城.”이어늘 項羽曰 秦 圍趙急하니 宜疾引兵渡河하야
楚擊其外하고 趙應其內하면 破秦軍 必矣리라 宋義曰 今秦 攻趙하니 戰勝이라도 則兵罷 我乘其敝注+罷, 讀曰疲.
不勝이어든 則我鼓行而西하면 必擧秦矣注+鼓行, 謂擊鼓而行, 無畏懼也.리라하고
因下令曰 有猛如虎狠如羊貪如狼하야 彊不可使者 皆斬之注+狠, 戾狠也. 猛如虎‧狠如羊‧貪如狼 此三語, 皆指項羽也.호리라
遣其子襄하야 相齊할새 送之無鹽하야 飮酒高會러니
天寒大雨하야 士卒 凍飢注+相, 輔相也. 班志 “東平國有無鹽縣.” 高會, 大會也.어늘
項羽曰 今歲饑民貧하야 卒食半菽注+士卒食蔬菜, 以菽雜半之也.이어늘 而飮酒高會하고 不引兵渡河하야
因趙食幷力攻秦하고
乃曰 承其敝라하니 夫以秦之彊으로 攻新造之趙하면 其勢必擧
何敝之承이리오
且國兵 新破 坐不安席하사
掃境內而屬將軍하니 國家安危在此一擧어늘
今不恤士卒하고 而徇其私하니 非社稷之臣也注+徇, 營也. 徇其私, 謂身送其子相齊也.로다
十一月 羽晨朝義라가 卽其帳中斬之注+朝, 音潮.하고
出令軍中曰 宋義與齊謀反이어늘 陰令籍誅之라하니
諸將 莫敢枝梧注+梧, 音悟. 小柱爲枝. 邪柱爲梧. 枝梧, 猶枝捍也. 謂諸將皆慴服, 莫敢枝梧營救也.하야 共立羽爲假上將軍注+未得懷王之命, 故且爲假也.하고
遣使報命於王한대 因以羽 爲上將軍하다
鉅鹿 兵少食盡이라 張耳數召陳餘호대 餘不敢前이어늘
耳又使張黶陳澤으로 讓之하야 要與俱死注+澤, 音釋. 要, 約也. 約與俱往攻秦而致死戰.어늘
餘使二人으로 將五千人하야 先嘗秦軍이라가 皆沒注+嘗, 試也.하다
齊師燕師及耳子敖 來救호대 亦未敢擊秦이러니
羽乃使蒲將軍으로 將二萬人渡河하야 絶秦餉道注+餉, 式亮切, 謂饋運其軍糧也.한대
餘復請兵이어늘 羽乃悉引兵渡河하야 已渡 皆沈船破甑燒廬舍하고
持三日糧하야 以示士卒必死無還心注+沈船, 謂沈沒其船於水中. 甑, 子孕切, 甗也.하고
與秦軍遇하야 九戰皆破之하니
章邯 引却이어늘 遂虜王離하다
諸侯軍救鉅鹿者十餘壁이로대 莫敢縱兵이러니
及楚擊秦 皆從壁上觀하니 楚戰士 無不一當十이라 呼聲 動天地하니
觀者人人惴恐이러라
旣破秦軍 諸侯將 入轅門할새 膝行而前하야 莫敢仰視注+諸侯將, 諸侯及諸將也. 軍行, 以車爲陣, 轅相向爲門, 故曰轅門. 膝行而前, 言畏懼俯伏不敢安行也.하니
羽由是 始爲諸侯上將軍하야 諸侯兵 皆屬焉하다
趙王 旣得出 張耳責讓陳餘하고 問黶澤所在하야 疑餘殺之어늘
餘怒解印綬予耳하니 耳不受러니
餘起如厠이어늘 客有說耳者曰 天予不取 反受其咎注+此辭出國語.
急取之하라
耳乃佩其印綬하고 收其麾下注+麾, 吁危切, 大將之旗, 所以指麾. 麾下, 言凡在旌麾之下也.
梁王 彭越 梁王 彭越
어늘
餘遂與數百人으로 去之河上澤中하야 漁獵하다
春二月 沛公 擊昌邑하니 彭越 以兵從하다
昌邑人注+班志 “昌邑縣屬山陽郡.”이라 常漁鉅野澤中하야 爲群盜注+班志 “山陽郡鉅野縣, 有大野澤.” 鉅野縣, 唐屬鄆州.러니
楚兵 澤間少年 相聚百餘人하야 請越爲長注+長, 猶帥也.이어늘
謝曰 臣 不願也로라
彊請乃許之하고
與期호대 旦日日出하라 後期者注+旦日日出, 謂明日之朝日出時也.호리라
至期多後하야 或至日中이어늘
於是 謝曰 臣老어늘 諸君 彊以爲長이러니
今期多後하니 不可盡誅 誅最後者一人호리라
皆笑曰 何至是
請後不敢호리라
竟斬之하니
徒屬 皆驚하야 莫敢仰視러라
乃略地收散卒하야 得千餘人이러니
至是하야 以其兵歸沛公하다
沛公 使酈食其 說陳留下之하다
沛公 過高陽注+文穎曰 “高陽, 聚邑名, 屬陳留圉縣.”할새 高陽人酈食其家貧落魄하야 爲里監門注+酈, 音歷, 姓也. 食其, 音異基. 魄, 音薄. 落魄, 失業無次不得志之貌. 監門, 門卒也. 閭在鄕, 里在野. 竝五百家, 皆有門.이러니
其里人 有爲沛公騎士者 食其謂曰 諸侯將過此者 吾問之하니 皆握齪自用하야 不能聽大度之言注+握, 乙角切, 本作齷. 齪, 初角切, 本作齱. 握齪, 急促貌.이러니
今聞沛公 慢而易人하나 多大略이라하니 此眞吾所願從遊注+易, 去聲, 輕小也.
見沛公謂曰注+若, 汝也. 臣里中 有酈生하니 年六十餘이요 長八尺이라
人皆謂之狂生이라호대 自謂非狂이라하라
騎士曰 公 不好儒하야 冠儒冠來者 輒解而溺其中하고
與人言 常大罵하니
未可以儒生說也注+上冠, 古玩切. 溺, 乃釣切, 小便也.니라
酈生曰 第言之注+第, 但也.하라
騎士從容言之注+從, 七恭切. 從容, 不迫之貌, 謂從任其容止, 不矜莊也.한대 沛公 至傳舍하야 則使人召酈生注+傳, 張戀切. 傳舍, 傳置之舍, 人所止息, 前人已去, 後人復來, 轉相傳也.하니
至入謁할새 沛公 方踞牀하야 使兩女子 洗足而見生注+踞, 音據. 邊牀曰踞. 洗, 先典切.이어늘
長揖不拜曰 足下欲助秦攻諸侯乎
且欲率諸侯破秦也 沛公 罵曰 豎儒
天下同苦秦 久矣
故諸侯相率而攻秦이어늘
何謂助秦攻諸侯乎
生曰 必聚徒合義兵하야 誅無道秦인대 不宜踞見長者注+長者, 老人也, 食其自謂也.니라
乃輟洗而起하야 延生上坐하고
問計注+輟, 止也.한대 生曰 足下兵不滿萬이어늘 欲以徑入彊秦하니 此所謂探虎口者也注+徑, 直也.
夫陳留 天下之衝이요 又多積粟注+班志 “陳留縣屬陳留郡.” 孟康曰 “留, 鄭邑也. 後爲陳所幷, 故曰陳留.” 說文曰 “衝, 通道也.”하니
善其令이라 請得使之하야 令下注+言我與陳留縣令相親善, 請得爲使而往說之, 可令其歸伏.호리라
於是 遣生行而引兵隨之하야 遂下陳留하고 號生爲廣野君하야
爲說客使諸侯注+韋昭曰 “廣野在河內山陽縣.”하다
其弟商 亦聚衆四千人하야 來屬沛公하다
夏四月 沛公 攻潁川 略南陽한대
秋七月 南陽守齮降하다
四月 沛公 攻潁川하고 因張良略韓地注+河南新鄭, 南至穎川, 南北皆韓地也. 以良累世相韓, 故因之.러니
聞趙將司馬卬 欲渡河入關하고
乃攻平陰絶河津하고 南出轘轅注+班志 “平陰縣屬河南郡.” 直渡曰絶. 轘, 音環. 後漢志 “河南緱氏縣有轘轅關.”하다
六月 略南陽한대 郡守齮戰敗走保宛注+齮, 音蟻, 郡守之名, 史失其姓. 宛, 南陽郡治所.이어늘
沛公 引兵過之注+未拔宛城, 而兵過宛城西出.러니 張良曰 今不下宛이면 從後擊하고 彊秦 在前하니 此危道也니라
乃夜從他道하야 還圍宛하니
七月 齮降이어늘 封殷侯注+韋昭曰 “殷在河內.”하고 引兵而西하니 無不下者러라
所過亡得鹵掠하니 秦民 皆喜注+亡, 古毋‧無二字通. 鹵, 與虜同. 掠, 謂略奪也.하더라
章邯 以軍降楚하다
章邯 軍棘原하고 項羽 軍漳南하야 相持未戰 秦軍 數却注+棘原, 地名, 在鉅鹿郡南. 漳南, 漳水之南也. 括地志 “濁漳水, 一名漳水.” 今俗名柳河, 在邢州平鄕縣南.이라
二世使人讓邯한대하야 使長史欣으로 請事할새 留司馬門三日호대 趙高不見注+宮垣之內, 兵衛所在四面, 皆有司馬, 主武事. 故總謂宮門之外門爲司馬門.이어늘
하야 走還報曰 趙高用事於中하니 下無可爲者注+下, 在下之人.
今戰勝이라도 高疾吾功이요 不勝이면 不免於死하리니
願熟計之하라
陳餘亦遺邯書曰 將軍 居外久하야 多內卻注+卻, 讀曰隙, 怨也.하니 有功亦誅 無功亦誅리라
且天之亡秦 無愚智皆知之하나니
將軍 何不與諸侯爲從約하야 分王其地注+諸侯, 謂關東諸侯. 爲從, 謂欲如六國時合從.
孰與身伏鈇質하고 妻子爲戮乎注+鈇, 與斧同.
狐疑하야 陰使羽約未成注+狐, 多疑而善聽, 每度河, 聽氷, 且聽且度, 故以喩人之懷疑不決者.이러니 羽引兵連戰大敗之한대 復請降이어늘
乃與盟於洹水上하고 立以爲雍王하야 置楚軍中而使欣으로 將其軍하야 爲前行注+行, 胡郞切.하다
八月 沛公 入武關한대
趙高弑帝于望夷宮하고 立子嬰爲王注+帝壽, 二十三.하다
九月 子嬰 討殺高하고 夷三族하다
中丞相趙高 欲專秦權호대 恐群臣 不聽하야 乃持鹿獻於二世曰 馬也니이다
二世笑曰 丞相 誤邪
謂鹿爲馬온여 問左右한대 或默或言鹿이어늘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注+中, 去聲, 陰中害之也.하니 群臣 皆畏之하야 莫敢言其過하더라
八月 沛公 攻屠武關하니
高前數言關東盜無能爲러니 至是하야 二世使責讓高한대
高懼하야 乃與其壻咸陽令閻樂謀하야 詐爲有大賊하고 召吏發卒하야 使樂將之하야
至望夷宮殿門注+張晏曰 “望夷宮在長陵西北, 臨涇水作之, 以望北夷.” 時二世欲祠涇水, 齋於望夷宮.하야 縛衛令僕射曰 賊入此호대 何不止 遂殺之注+衛尉, 秦官, 掌宮門衛屯兵, 屬官有令. 閻樂所縛者, 衛令及僕射也.하고
射郞宦者한대 或走或格하니 格者 輒死注+射, 食亦切. 郞, 謂郞官. 宦者, 黃門‧閽寺之屬. 格, 敵也.러라
入射上幄坐幃注+上下四方悉周曰幄. 幃, 單帳也.한대 二世怒하야 召左右하니
皆惶擾不鬪하더라
旁有宦者一人 侍不去어늘 二世謂曰 公 何不早告我하야 乃至於此 對曰 使臣早言이면 皆已誅 安得至今이리오
前數二世曰 足下驕恣하야 誅殺無道하니 天下皆畔이라
其自爲計하라 二世曰 吾願得一郡爲王하노라 弗許한대
願爲萬戶侯하노라 又弗許한대
願與妻子爲黔首하노라 樂曰 臣 受命丞相하야 爲天下誅足下하니
足下雖多言이나 不敢報라하고
麾其兵進하니 二世自殺하다
趙高曰 秦 故王國이러니
始皇 君天下 故稱帝하나
今六國 復立하니 宜爲王如故便이라하고
乃立子嬰爲秦王하고 以黔首 葬二世苑中注+苑中, 謂宜春苑中.하다
九月 高令子嬰으로 廟見受璽注+璽, 謂玉璽. 始皇得藍田和氏璧, 命李斯篆之, 孫壽刻之. 方四寸, 其文曰 “受命于天, 旣壽永昌.” 字形如魚龍鳳鳥之狀. 自漢高以來, 遂爲傳國寶.어늘 子嬰 稱疾不行한대
高自往請이어늘 子嬰 遂刺殺高하고 三族其家以徇하다
沛公 擊嶢關破之하다
遣兵拒嶢關注+嶢, 音堯, 嶢山之關. 李奇曰 “在上洛北, 藍田南, 武關之西.”이어늘 沛公 欲擊之러니
張良曰 未可하니
願益張旗幟爲疑兵하고 而使酈生陸賈 往說秦將하야 啗以利注+疑兵, 言多張旗幟, 過其人數, 令敵多有兵. 啗, 徒濫切, 謂以利誘之. 如食餧之, 令其啗食.라한대
秦將 果欲連和어늘 沛公 欲許之러니
又曰 不如因其怠而擊之니라 沛公 遂引兵하야 擊秦軍大破之하다


갑오년(B.C. 207)
[綱] 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3년이다.
[目] 나라 회왕懷王 2년, 조왕趙王 조헐趙歇 2년, 제왕齊王 전불田巿 2년, 연왕燕王 한광韓廣 3년, 위왕魏王 위표魏豹 2년, 한왕韓王 한성韓成 2년이다.
[綱] 겨울 11월에 나라의 차장次將 항적項籍이 왕명을 사칭하여 송의宋義를 살해하고, 그를 대신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나라의 장수 왕리王離를 사로잡았다.
[目] 송의宋義안양安陽에 이르러서 46일 동안을 머물러 있으면서 나아가지 않자,注+사기색은史記索隱》에 “지금의 송주宋州 초구楚丘에서 서북쪽으로 40리 되는 곳에 안양고성安陽故城이 있다.”라고 하였다.항우項羽가 말하기를, “나라가 나라를 포위하고 있어서 사태가 위급하니, 의당 재빨리 군사를 거느리고 하수河水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 군대는 그들의 바깥쪽을 치고, 나라 군대가 그 안에서 호응하면, 반드시 나라 군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송의가 말하기를, “지금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고 있는데, 나라가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군사들이 피로할 것이니, 우리 군대가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타면 될 것이다.注+(피로하다)는 로 읽는다.
그리고 나라가 이기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우리가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注+고행鼓行”은 북을 치면서 가는 것으로 두려움이 없이 가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명령을 내리기를, “용맹하기는 호랑이와 같고, 드세기는 양과 같으며, 욕심이 많기는 이리와 같아서, 강하여 부릴 수 없는 자는 모두 참수할 것이다.”注+은 드세고 사나운 것이다. “용맹하기는 범과 같고, 드세기는 양과 같고, 탐욕스럽기는 이리와 같다.”라고 한 이 세 마디 말은 모두 항우項羽를 가리켜서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그의 아들인 송양宋襄을 보내어서 나라의 재상이 되게 하고는, 그를 호위하여 무염無鹽에 가서는 술을 마시면서 크게 잔치를 벌였다.
그때 날씨가 춥고 큰비가 내려서 사졸들이 추위에 떨고 주려 있었다.注+은 재상[보상輔相]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평국東平國무염현無鹽縣이 있다.”고 하였다. “고회高會”는 큰 모임이다.
이에 항우가 말하기를, “금년은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가난하여, 사졸들이 콩이 반이나 섞인 밥을 먹고 있는데,注+사졸들이 나물 반찬뿐인 밥을 먹는데, 거기에 콩이 반씩이나 섞인 것이다. 송의는 술을 마시고 크게 잔치를 벌이면서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가 나라의 곡식을 먹고 힘을 합쳐서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탈 것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무릇 나라의 강함으로 이제 막 세워진 나라를 공격하면, 그 형세가 반드시 나라를 함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럴 경우 무슨 수로 피폐한 틈을 탈 수 있겠는가.
또 우리나라는 군사들이 얼마 전에 크게 격파되어, 왕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불안한 상태이다.
이에 온 경내의 군사를 모두 들어 장군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안위가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지금 사졸들은 돌보지 않고 사사로움만을 따르고 있으니, 가 아니다.”注+은 경영하는 것이다. “순기사徇其私(사사로움만 따르다.)”는 자신이 직접 아들을 보내어서 나라의 재상이 되게 한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目] 11월에 항우項羽가 이른 아침에 송의宋義에게 조회하면서 그가 있는 장막으로 나아가 송의의 머리를 베었다.注+(조회하다)는 음이 이다.
그러고는 군중에 영을 내려 이르기를, “송의가 나라와 함께 우리 나라에 대해 모반을 하였으므로, 왕께서 몰래 나로 하여금 그를 주살하라고 명하시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감히 대들지 못하고注+는 음이 이다. 작은 기둥을 라 하고 빗긴 기둥을 라 한다. 지한枝捍과 같으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복종하고 감히 맞서면서 구원해주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다 함께 항우를 세워 임시 상장군으로 삼았다.注+회왕懷王의 명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우선 (임시)라고 한 것이다.
그러고는 사신을 보내어 왕에게 복명復命하였는데, 왕이 이로 인하여 항우를 상장군으로 삼았다.
장이가 또 장염張黶진택陳澤(진석)으로 하여금 진여에게 가서 책망하게 하고는,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우기로 약속하였다.注+은 음이 이다. 는 약속하는 것으로, 함께 가서 나라를 공격하되, 목숨을 바쳐 싸우기로 약속한 것이다.
진여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5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먼저 나라 군사를 시험해보게 하였는데, 모두 몰살하고 말았다.注+은 시험해보는 것이다.
나라 군대와 나라 군대 및 장이의 아들 장오張敖가 와서 구원하였으나, 역시 감히 나라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目] 항우項羽가 이에 포장군蒲將軍을 시켜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황하黃河를 건너가 나라의 향도餉道를 끊게 하였다.注+식량式亮이니, 그 군량을 운반하여 먹이는 것을 이른다.
진여陳餘가 다시 군대를 더 보내주기를 요청하자, 항우가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황하를 건너갔는데, 이미 건너간 다음에는 타고 갔던 배들을 모두 침몰시키고, 밥을 짓는 솥을 깨뜨렸으며, 묵고 있던 여사도 모두 불태웠다.
그러고는 3일 치의 양식만 가지고 가게 하여, 사졸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우고, 되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뜻을 보였다.注+침선沈船”은 물속에 배를 침몰시키는 것을 이른다. 자잉子孕이니, 시루이다.
이에 나라 군대와 만나서 아홉 번을 싸워 모두 격파하였다.
그러자 장한章邯이 군사를 거느리고 퇴각하였으며, 왕리王離를 마침내 사로잡았다.
항우項羽가 장한章邯을 격파하다항우項羽가 장한章邯을 격파하다
[目] 당시에 거록성鉅鹿城을 구원하러 온 제후들의 군사가 10여 성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서도 감히 군사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가 나라를 공격함에 미쳐서는 모두들 성벽 위에 서서 바라보니, 나라의 전사들은 모두 일당십의 전사들이었으며, 부르짖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에 바라보던 자들이 모두 두려워서 덜덜 떨었다.
[目] 나라 군사들이 이미 나라를 군사를 격파하고 난 뒤에, 제후와 장수들이 항우項羽가 주둔해 있는 곳의 원문轅門에 들어갈 적에 모두 엉금엉금 기어서 갔으며, 감히 항우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였다.注+제후장諸侯將”은 제후와 장수들이다. 군대가 나아갈 때에는 수레로 진을 만들고 수레의 끌채를 서로 향하게 하여 문을 만든다. 그러므로 원문轅門이라고 하는 것이다. “슬행이전膝行而前”은 두려운 마음으로 엎드려 있으면서 감히 걸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항우가 이로 말미암아 비로소 제후들의 상장군이 되었으며, 제후의 군사들이 모두 그의 휘하에 예속되었다.
[目] 조왕趙王이 이미 거록성鉅鹿城에서 탈출해 나온 뒤에 장이張耳진여陳餘를 책망하였으며, .
그러자 진여가 노하여 인수印綬를 풀어서 장이에게 주니, 장이가 받지 않았다.
진여가 일어나서 변소에 갔을 때 어떤 객이 장이에게 유세하기를, “하늘이 주는데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되는 법입니다.注+이 말은 《국어國語》 〈월어越語〉에 나온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속히 진여가 주는 인수를 받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장이가 진여의 인수를 자신이 차고서 진여의 휘하에 있던 군사들을 거두어들였다.注+우위吁危이니, 대장의 깃발로, 지휘하는 것이다. 휘하麾下는 대장의 깃발 아래에 있는 모든 군사를 말한다.
그러자 진여가 드디어 수백 명을 거느리고 떠나 황하 가에 있는 택중澤中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면서 지냈다.
[綱] 봄 2월에 패공沛公창읍昌邑을 공격하니 팽월彭越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따랐다.
[目] 팽월彭越창읍昌邑 사람인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창읍현昌邑縣산양군山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거야택鉅野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다가 도적 떼가 되었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산양군山陽郡 거야현鉅野縣대야택大野澤이 있다.”고 하였다. 거야현은 나라 때에는 운주鄆州에 속하였다.
나라 군사가 일어나자, 거야택 주위에 살고 있던 젊은이들 100여 명이 모여서는 팽월에게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어달라고 청하였다.注+(우두머리)은 와 같다.
그러자 팽월이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저는 우두머리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이 강청彊請하자, 이에 허락하였다.
그러고는 그들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다음 날 아침에 해가 뜰 적에 만나되, 약속 시간에 늦는 자가 있으면 참수할 것이라고 하였다.注+단일일출旦日日出”은 다음 날 아침 해가 뜰 때를 말한다.
[目] 약속한 시간이 되자, 뒤늦게 온 사람이 많았으며, 혹 한낮이 되어서야 온 자도 있었다.
이에 팽월彭越이 다시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늙었는데도 여러분들이 억지로 나를 우두머리로 삼았소.
지금 약속 시간에 늦게 온 사람이 아주 많으니, 이들을 다 죽일 수는 없고, 가장 늦게 온 자 한 사람만 주살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뒤로는 감히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팽월은 끝내 가장 늦게 온 자를 참수하였다.
그러자 그 무리들이 모두들 깜짝 놀라서 감히 팽월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에 마침내 그 주위 지역을 경략하여 흩어진 군졸들을 수습해 모아 1,000여 명을 얻었다.
이때에 이르러서 그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패공沛公에게 귀의하였다.
[綱] 패공沛公역이기酈食其로 하여금 진류陳留의 현령을 설득하게 하여 복속시켰다.
[目] 패공沛公고양高陽을 지나갈 적에注+이 말하기를, “고양高陽취읍聚邑의 이름으로, 진류陳留어현圉縣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고양 사람 역이기酈食其가 집안이 가난하고 뜻을 얻지 못하여 마을의 감문監門 노릇을 하고 있었다.注+은 음이 이니, 성이다. 식기食其는 음이 이기異基이다. (넋)은 음이 이다. “낙탁落魄”은 생업을 잃고 살 곳이 없어서 뜻을 얻지 못한 모습이다. 감문監門은 문을 지키는 졸개이다. 는 마을에 있고 는 들판에 있는데, 모두 500집이 모여 있으면 모두 문이 있다.
그 마을 사람 가운데 패공의 기사騎士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역이기가 그 기사에게 말하기를, “제후와 여러 장수로서 이곳 고양을 지나간 자들에게 내가 모두 물어보았더니, 모두들 자신들의 하찮은 지혜를 쓰려고만 하면서 큰 법도의 말은 듣지 않았다.注+(악착하다)은 을각乙角이니, 본래 으로 되어 있다. (악착하다)은 초각初角이니, 본래 로 되어 있다. “악착握齪”은 급히 재촉하는 모양이다.
지금 듣건대, 패공은 거만하여 사람들을 깔보기는 하지만, 큰 지략이 많다고 하니,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내가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다.注+거성去聲이니, 깔보는 것이다.
만약 자네가 패공을 보게 되거든, 패공에게注+은 너라는 말이다. ‘저의 마을에 여생麗生(역이기酈食其)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나이는 60여 세이고, 신장이 8척이나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미치광이라고 부르지만, 그 사람은 스스로 미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말해주게.”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기사가 말하기를, “패공은 유생들을 좋아하지 않아 유생의 관을 쓴 객이 찾아오면 그 관을 벗기고서 그 안에 오줌을 쌉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눌 적에는 항상 큰소리로 욕을 합니다.
그러니 유생으로는 유세를 할 수가 없습니다.”注+위에 있는 (쓰다)은 고완古玩이다. 내조乃釣이니, 소변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역이기는 “그대는 단지 그렇게만 말해 달라.”注+는 다만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目] 기사騎士패공沛公에게 조용하게 말하였더니,注+(침착하다)은 칠공七恭이다. 종용從容은 급박하지 않은 모습이니, 행동거지를 마음대로 하여 의젓한 체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 패공이 고양高陽전사傳舍에 이르러서 사람을 시켜 역이기酈食其를 불러보았다.注+(역참)은 장련張戀이다. 전사傳舍는 역말을 두는 집이니 사람이 쉬는 곳으로, 앞사람이 이미 떠나간 뒤에 뒷사람이 다시 오니, 옮겨가며 서로 전하는 것이다.
역이기가 도착하여 들어가서 배알하였는데, 그때 패공이 바야흐로 침상에 걸터앉아서 두 여자로 하여금 자신을 발을 씻게 하고 있다가, 그대로 역이기를 만나보았다.注+는 음이 이며, 침상의 가에 앉는 것을 라고 한다. (씻다)은 선전先典이다.
그러자 역이기가 길게 읍만 하고 절은 하지 않은 채 말하기를, “족하께서는 나라를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격파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하자, 패공이 욕을 하면서 꾸짖기를, “이 어리석은 유생 놈아.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제후들이 서로 손을 잡고서 나라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라를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할 것이냐고 묻는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역이기가 다시 말하기를, “반드시 무리를 모으고 의병을 합하여 무도한 나라를 주벌하고자 한다면,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장자長者를 만나보아서는 안 됩니다.”注+장자長者는 노인이라는 뜻으로, 역이기 자신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패공이 발을 씻던 것을 중지시키고 일어나서 역이기를 맞이하여 윗자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계책에 대해 물었는데,注+은 그치는 것이다. 역이기가 말하기를, “족하께서 거느리고 있는 군대가 1만 명도 채 안 되는데, 곧장 강한 나라 지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니, 이것은 이른바 범의 아가리 앞에서 어슬렁댄다고 하는 것입니다.注+은 곧장이라는 뜻이다.
무릇 진류陳留라는 곳은 천하의 요충지이고, 또한 곡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진류현陳留縣진류군陳留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 말하기를, “나라의 고을인데, 뒤에 나라에서 병합하였으므로, 진류陳留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은 통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제가 그곳의 현령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니, 저를 그곳에 사신으로 보내어 가서 유세하게 하면 현령으로 하여금 족하에게 항복하게 하겠습니다.”注+내가 진류현陳留縣의 현령과 서로 친하므로, 나를 사신으로 보내어 가서 유세하게 하면, 현령으로 하여금 귀순해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역이기를 보내고 난 뒤에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가서, 드디어 진류를 복속시켰으며, 역이기를 광야군廣野君이라고 호칭하였다.
그 뒤에는 역이기를 유세객으로 삼아 제후들에게 사신으로 보냈다.注+가 말하기를, “광야廣野하내군河內郡산양현山陽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역이기의 동생인 역상酈商도 군사 4,000명을 모아 패공에게 와서 복속되었다.
[綱] 여름 4월에 패공沛公영천潁川을 공격하고 남양南陽을 경략하였다.
가을 7월에 남양南陽의 군수 가 항복하였다.
[目] 4월에 패공沛公영천潁川을 공격하고 장량張良의 도움을 바탕으로 나라 지역을 경략하였다.注+하남河南신정新鄭에서 남쪽으로 영천潁川에 이르기까지의 남쪽과 북쪽 지역이 모두 옛 나라의 땅이다. 장량張良의 집안이 대대로 나라의 정승을 지냈으므로, 그를 인하여 경략한 것이다.
그러다가 나라 장수 사마앙司馬卬이 황하를 건너서 함곡관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패공이 이에 평음平陰을 공격하여 황하의 나루터를 곧장 건너 남쪽으로 환원轘轅으로 나갔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평음현平陰縣하남군河南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곧장 건너는 것을 이라고 한다. 은 음이 이다. 《후한서後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남군河南郡구지현緱氏縣환원관轘轅關이 있다.”고 하였다.
[目] 6월에 남양南陽을 경략하였는데, 남양군수南陽郡守가 싸움에 패하고서 달아나 완성宛城을 지키고 있었다.注+는 음이 이니, 군수의 이름인데, 사서史書에 그 이 전하지 않는다. 남양군南陽郡치소治所이다.
이에 패공沛公이 군사를 이끌고 그곳을 그대로 지나쳐갔는데,注+완성宛城을 함락시키지 않고 군대가 완성을 지나서 서쪽으로 간 것이다.장량張良이 이르기를, “지금 완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완성에서 우리를 뒤따라와서 칠 것이고, 강력한 나라가 앞에 있게 될 것이니, 이것은 위태로운 방도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패공이 이에 밤중에 다른 길을 통하여 되돌아가서 완성을 포위하였다.
[目] 7월에 군수 가 항복하자, 은후殷侯에 봉한 다음에注+위소韋昭가 말하기를, “하내河內에 있다.”라고 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니, 항복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패공沛公이 지나가는 곳마다 함부로 노략질을 하지 못하게 하니, 나라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다.注+은 옛날에는 두 글자와 통용하였다. (사로잡다)는 자와 같다. 은 약탈하는 것을 이른다.
[綱] 장한章邯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에 항복하였다.
[目] 장한章邯극원棘原에 주둔해 있고 항우項羽장수漳水 남쪽에 주둔해 있으면서 서로 버티고만 있고 싸우지는 않았는데, 나라 군사들이 자주 퇴각을 하였다.注+극원棘原은 지명으로, 거록군鉅鹿郡 남쪽에 있다. 장남漳南장수漳水의 남쪽 지역이다. 《괄지지括地志》에 “탁장수濁漳水는 일명 장수漳水이다.”라고도 하는데, 지금 세속에서는 유하柳河라고 이름하며, 형주邢州 평향현平鄕縣의 남쪽에 있다.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사람을 보내어 장함을 꾸짖자, 장함이 두려워하여 장사 사마흔司馬欣을 시켜서 함양咸陽에 가서 일을 청하게 하였는데, 에 3일 동안 머물러 있었으나, 조고趙高가 만나주지 않았다.注+궁궐 담장 안에는 군사들의 위소衛所가 사면에 있는데, 모두 사마司馬가 있으면서 군사에 관한 일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궁궐 문의 외문外門을 통틀어서 사마문司馬門이라고 한다.
이에 사마흔이 두려워하여 도망쳐 돌아와 장함에게 보고하기를, “조고가 안에서 용사用事하고 있어서 아래에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注+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이제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조고가 반드시 우리의 공을 시기할 것이며,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심사숙고하여 계획을 세우십시오.”라고 하였다.
진여 역시 장함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장군께서 외방에 나와 있은 지가 오래되어서 조정 안 사람들과 틈이 많이 벌어져 있으니,注+으로 읽으니, 원망하는 것이다. 공이 있어도 죽임을 당할 것이요, 공이 없어도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임은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제후들과 더불어 합종하는 맹약을 맺고서, 그 지역을 나누어 받아 왕 노릇을 하지 않으십니까?注+제후諸侯관동關東에 있는 제후들을 이른다. “위종爲從”은 육국六國 시대와 같이 합종하려는 것을 이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은 형벌을 받아 죽고 처자식은 도륙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어떻겠습니까?”注+와 같다.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장함이 여우처럼 의심하여, 몰래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어 약속을 맺으려 하였다. 그런데 약속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注+여우는 의심이 많고 소리를 잘 듣는다. 이에 매번 시내를 건널 때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나는가 들어본 다음 건너며, 건너가다가는 또다시 소리를 들어보고 건너간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사람이 의심이 많아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에 비유한다. 항우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잇달아 싸워 나라 군사를 크게 패배시키니, 장함이 다시 항복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항우와 더불어 원수洹水 가에서 맹약을 맺고는, 장함을 세워 옹왕雍王으로 삼아 나라의 군중에 있게 하고, 사마흔으로 하여금 장함의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注+(행렬)은 호랑胡郞이다.
[綱] 8월에 패공沛公무관武關에 들어갔다.
조고趙高이세황제二世皇帝망이궁望夷宮에서 시해하고, 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注+황제의 수명은 23세였다.
[綱] 9월에 자영子嬰조고趙高를 토벌하여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
[目] 처음에 중승상 조고趙高나라의 정권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하였는데,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사슴을 가지고 가 바치면서 이세황제二世皇帝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승상이 잘못 보았소.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라고 하고는, 좌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혹 사슴이라고 하였다.
조고가 이로 인하여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은밀하게 모략하여 법으로 처단하자注+거성去聲이니, 몰래 해치는 것이다. 그 뒤로는 여러 신하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못하였다.
[目] 8월에 패공沛公무관武關을 공격하여 도륙하였다.
조고趙高가 전에 자주 ‘함곡관 동쪽에 있는 도적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사신을 보내어 조고를 힐책하였다.
그러자 조고가 두려워하여 그의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과 더불어 모의하여, 거짓으로 큰 도적이 있다고 하면서 아전과 군졸들을 소집한 다음, 염락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다.
[目] 염락閻樂망이궁望夷宮의 궁전 문에 이르러서注+이 말하기를, “망이궁望夷宮장릉長陵의 서북쪽에 있는데, 경수涇水 가에 임하여 궁을 지어서 북이北夷를 바라보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이세황제二世皇帝가 경수에 제사 지내고자 하여 망이궁에서 재계하고 있었다.위령衛令복야僕射를 묶고는 말하기를, “도적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어찌하여 막지 못하였는가?”라고 하고는, 드디어 그들을 죽였다.注+위위衛尉나라의 관직으로, 궁문을 호위하는 둔병을 관장하며, 그 속관에 이 있다. 염락閻樂이 묶은 자는 위령衛令복야僕射이다.
그러고 나서 낭관과 환관들에게 활을 쏘자, 어떤 자는 달아나기도 하고 어떤 자는 맞서 싸우기도 하였는데, 맞서 싸우는 자는 바로 죽였다.注+(맞히다)은 식역食亦이다. 은 낭관을 이른다. 환자宦者는 황문이나 혼시 따위이다. 은 맞서서 막는 것이다.
[目] 궁궐 안으로 들어가서 황상皇上에 쳐진 휘장을 활로 쏘자,注+상하와 사방을 모두 둘러친 장막을 이라고 한다. 는 홑겹으로 된 장막이다.이세황제二世皇帝가 노하여 좌우에 있는 자들을 불렀다.
그러나 모두들 두려워하면서 맞서 싸우지를 못하였다.
곁에 있던 환관 한 사람이 이세황제를 모시면서 도망치지 않았는데, 이세황제가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일찌감치 나에게 고하지 아니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가?”라고 하자, 그 환관이 대답하기를, “가령 저희들이 일찌감치 말을 하였더라면, 모두가 이미 주살되었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염락閻樂이 앞으로 나아가서 이세황제의 죄를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말하기를, “족하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무도하게 사람들을 주살하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배반한 것이오.
그러니 스스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시오.”라고 하자, 이세황제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의 을 얻어서 왕이 되고자 한다.”라고 하니, 염락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황제가 다시 만호후가 되고 싶다고 하였으나, 또다시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황제가 다시 처자식들과 함께 일반 백성이 되어 살고 싶다고 하자, 염락이 말하기를, “신은 승상에게 명을 받아서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족하를 주벌하는 것이오.
그러니 족하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더라도 신은 감히 그것을 보고할 수가 없소.”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휘하의 군사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자, 이세황제가 스스로 자살하였다.
조고가 말하기를, “나라는 예전부터 있었던 왕국이다.
시황始皇이 천하에 군림하였으므로 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육국六國이 다시 섰으니, 예전처럼 이라 칭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자영子嬰을 세워서 나라 왕으로 삼았으며, 일반 백성을 장사 지내는 예로 이세황제를 안에 장사 지냈다.注+원중苑中”은 의춘원宜春苑 안을 말한다.
[目] 9월에 조고趙高자영子嬰으로 하여금 종묘에 조알하고 옥새를 받게 하였는데,注+옥새玉璽를 이른다. 시황始皇남전藍田화씨벽和氏璧을 얻어서 이사李斯로 하여금 전자篆字를 쓰게 하고, 손수孫壽로 하여금 새기게 하였다. 사방의 길이가 4촌이며, 거기에 “하늘에서 천명을 받았으니, 를 다하고 길이 창성하리라.[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글자의 모양새가 마치 용과 봉의 모습과 같았다. 나라 고조高祖 이후로 이것이 드디어 나라를 전하는 보물이 되었다. 자영이 병을 핑계 대고는 가지 않았다.
이에 조고가 스스로 가서 청하였는데, 자영이 드디어 조고를 칼로 찔러서 죽이고, 그의 집안 삼족을 멸족시킨 다음 조리를 돌렸다.
[綱] 패공沛公요관嶢關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目] 나라에서 군사를 보내어 요관嶢關을 막았는데,注+는 음이 이며, 요관嶢關요산嶢山에 있는 관문이다. 이기李奇가 말하기를, “상락上洛의 북쪽, 남전藍田의 남쪽, 무관武關의 서쪽에 있다.”라고 하였다.패공沛公이 이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기치旗幟를 더욱 늘어놓아서 군사의 숫자가 많아 보이게 하고, 역이기酈食其육가陸賈를 사신으로 보내어 나라 장수들에게 가서 유세하되, 이익을 가지고 꾀게 하소서.”注+의병疑兵”은 기치를 많이 벌여놓아 인원수를 부풀려서 적들로 하여금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도람徒濫이며, 이익으로 상대를 꾀는 것이니, 음식을 주어 상대로 하여금 받아먹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라 장수들이 과연 연합하여 화친하려고 하자, 패공이 이를 허락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장량이 다시 또 아뢰기를, “그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서 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자, 패공이 드디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나라 군대를 쳐서 크게 격파하였다.


역주
역주1 사직의 신하 : 종묘와 사직을 편안히 하는 신하를 이른다.
역주2 枝梧 : 비스듬히 기대어 지지하는 동자기둥인데, 대항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역주3 鉅鹿城……못하였다 : 章邯이 項梁을 격파한 뒤 황하를 건너 趙나라 군대를 격파하자 張耳와 趙王 歇이 鉅鹿城으로 도망갔는데, 이를 秦나라 장수 王離가 포위하였다. 陳餘는 常山으로 가서 군대를 수습하여 거록 북쪽 지역에 주둔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장함이 甬道를 쌓아서 왕리의 군대에 군량을 공급하였다. 이에 장이는 자주 진여에게 군대를 출동시킬 것을 재촉하였으나 진여는 秦나라 군대에 대적할 수 없다고 여기고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역주4 張黶(장염)과……의심하였다 : 이 두 사람이 전사한 것은 184쪽에 보인다.
역주5 文穎 : 삼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자가 叔良이며, 《漢書》에 주를 내었다.
역주6 孟康 : 삼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公休이며, 저서에 《漢書註》가 있다.
역주7 韋昭 : 삼국시대 吳나라 雲陽 사람으로, 《國語》에 주를 달았다.
역주8 司馬門 : 궁성의 외문을 말한다. 항상 司馬로 하여금 위병들의 파수를 지휘하게 하였으므로, 사마문이라고 하였다.
역주9 子嬰 : 秦 始皇의 큰아들인 扶蘇의 아들이라는 설, 진 시황의 형의 아들이라는 설, 진 시황의 동생이라는 설, 진 시황의 동생의 아들이라는 설 등이 있다.
역주10 張晏 : 자가 子傳이며 삼국시대 魏나라 中山 사람이다. 저서에 《西漢書音釋》 40권이 있다.
역주11 幄坐 : 사방이 휘장으로 둘러쳐진 황제가 있는 자리를 말한다.
역주12 宜春苑 : 秦나라 때 離宮의 하나였던 宜春宮의 동쪽에 있었던 동산이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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