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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송의宋義가
안양安陽에 이르러서 46일 동안을 머물러 있으면서 나아가지 않자,
注+《사기색은史記索隱》에 “지금의 송주宋州 초구楚丘에서 서북쪽으로 40리 되는 곳에 안양고성安陽故城이 있다.”라고 하였다.항우項羽가 말하기를, “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포위하고 있어서 사태가 위급하니, 의당 재빨리 군사를 거느리고
하수河水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초楚나라 군대는 그들의 바깥쪽을 치고,
조趙나라 군대가 그 안에서 호응하면, 반드시
진秦나라 군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송의가 말하기를, “지금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고 있는데,
진秦나라가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군사들이 피로할 것이니, 우리 군대가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타면 될 것이다.
注+피罷(피로하다)는 피疲로 읽는다.
그리고
진秦나라가 이기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우리가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진秦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注+“고행鼓行”은 북을 치면서 가는 것으로 두려움이 없이 가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명령을 내리기를, “용맹하기는 호랑이와 같고, 드세기는 양과 같으며, 욕심이 많기는 이리와 같아서, 강하여 부릴 수 없는 자는 모두 참수할 것이다.”
注+한狠은 드세고 사나운 것이다. “용맹하기는 범과 같고, 드세기는 양과 같고, 탐욕스럽기는 이리와 같다.”라고 한 이 세 마디 말은 모두 항우項羽를 가리켜서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그의 아들인 송양宋襄을 보내어서 제齊나라의 재상이 되게 하고는, 그를 호위하여 무염無鹽에 가서는 술을 마시면서 크게 잔치를 벌였다.
그때 날씨가 춥고 큰비가 내려서 사졸들이 추위에 떨고 주려 있었다.
注+상相은 재상[보상輔相]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평국東平國에 무염현無鹽縣이 있다.”고 하였다. “고회高會”는 큰 모임이다.
이에 항우가 말하기를, “금년은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가난하여, 사졸들이 콩이 반이나 섞인 밥을 먹고 있는데,
注+사졸들이 나물 반찬뿐인 밥을 먹는데, 거기에 콩이 반씩이나 섞인 것이다. 송의는 술을 마시고 크게 잔치를 벌이면서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가 조趙나라의 곡식을 먹고 힘을 합쳐서 진秦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탈 것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무릇 진秦나라의 강함으로 이제 막 세워진 조趙나라를 공격하면, 그 형세가 반드시 조趙나라를 함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럴 경우 무슨 수로 피폐한 틈을 탈 수 있겠는가.
또 우리나라는 군사들이 얼마 전에 크게 격파되어, 왕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불안한 상태이다.
이에 온 경내의 군사를 모두 들어 장군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안위가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지금 사졸들은 돌보지 않고 사사로움만을 따르고 있으니,
가 아니다.”
注+순徇은 경영하는 것이다. “순기사徇其私(사사로움만 따르다.)”는 자신이 직접 아들을 보내어서 제齊나라의 재상이 되게 한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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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약속한 시간이 되자, 뒤늦게 온 사람이 많았으며, 혹 한낮이 되어서야 온 자도 있었다.
이에 팽월彭越이 다시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늙었는데도 여러분들이 억지로 나를 우두머리로 삼았소.
지금 약속 시간에 늦게 온 사람이 아주 많으니, 이들을 다 죽일 수는 없고, 가장 늦게 온 자 한 사람만 주살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뒤로는 감히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팽월은 끝내 가장 늦게 온 자를 참수하였다.
그러자 그 무리들이 모두들 깜짝 놀라서 감히 팽월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에 마침내 그 주위 지역을 경략하여 흩어진 군졸들을 수습해 모아 1,000여 명을 얻었다.
이때에 이르러서 그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패공沛公에게 귀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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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기사騎士가
패공沛公에게 조용하게 말하였더니,
注+종從(침착하다)은 칠공七恭의 절切이다. 종용從容은 급박하지 않은 모습이니, 행동거지를 마음대로 하여 의젓한 체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 패공이
고양高陽의
전사傳舍에 이르러서 사람을 시켜
역이기酈食其를 불러보았다.
注+전傳(역참)은 장련張戀의 절切이다. 전사傳舍는 역말을 두는 집이니 사람이 쉬는 곳으로, 앞사람이 이미 떠나간 뒤에 뒷사람이 다시 오니, 옮겨가며 서로 전하는 것이다.
역이기가 도착하여 들어가서 배알하였는데, 그때 패공이 바야흐로 침상에 걸터앉아서 두 여자로 하여금 자신을 발을 씻게 하고 있다가, 그대로 역이기를 만나보았다.
注+거踞는 음이 거據이며, 침상의 가에 앉는 것을 거踞라고 한다. 세洗(씻다)은 선전先典의 절切이다.
그러자 역이기가 길게 읍만 하고 절은 하지 않은 채 말하기를, “족하께서는 진秦나라를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거느리고서 진秦나라를 격파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하자, 패공이 욕을 하면서 꾸짖기를, “이 어리석은 유생 놈아.
천하 사람들이 모두 진秦나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제후들이 서로 손을 잡고서 진秦나라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진秦나라를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할 것이냐고 묻는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역이기가 다시 말하기를, “반드시 무리를 모으고 의병을 합하여 무도한
진秦나라를 주벌하고자 한다면,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장자長者를 만나보아서는 안 됩니다.”
注+장자長者는 노인이라는 뜻으로, 역이기 자신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패공이 발을 씻던 것을 중지시키고 일어나서 역이기를 맞이하여 윗자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계책에 대해 물었는데,
注+철輟은 그치는 것이다. 역이기가 말하기를, “족하께서 거느리고 있는 군대가 1만 명도 채 안 되는데, 곧장 강한
진秦나라 지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니, 이것은 이른바 범의 아가리 앞에서 어슬렁댄다고 하는 것입니다.
注+경徑은 곧장이라는 뜻이다.
무릇
진류陳留라는 곳은 천하의 요충지이고, 또한 곡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진류현陳留縣은 진류군陳留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 말하기를, “유留는 정鄭나라의 고을인데, 뒤에 진陳나라에서 병합하였으므로, 진류陳留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충衝은 통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제가 그곳의 현령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니, 저를 그곳에 사신으로 보내어 가서 유세하게 하면 현령으로 하여금 족하에게 항복하게 하겠습니다.”
注+내가 진류현陳留縣의 현령과 서로 친하므로, 나를 사신으로 보내어 가서 유세하게 하면, 현령으로 하여금 귀순해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역이기를 보내고 난 뒤에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가서, 드디어 진류를 복속시켰으며, 역이기를 광야군廣野君이라고 호칭하였다.
그 뒤에는 역이기를 유세객으로 삼아 제후들에게 사신으로 보냈다.
注+가 말하기를, “광야廣野는 하내군河內郡의 산양현山陽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역이기의 동생인 역상酈商도 군사 4,000명을 모아 패공에게 와서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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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처음에 중승상 조고趙高가 진秦나라의 정권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하였는데,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사슴을 가지고 가 바치면서 이세황제二世皇帝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승상이 잘못 보았소.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라고 하고는, 좌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혹 사슴이라고 하였다.
조고가 이로 인하여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은밀하게 모략하여 법으로 처단하자
注+중中은 거성去聲이니, 몰래 해치는 것이다. 그 뒤로는 여러 신하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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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8월에 패공沛公이 무관武關을 공격하여 도륙하였다.
조고趙高가 전에 자주 ‘함곡관 동쪽에 있는 도적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사신을 보내어 조고를 힐책하였다.
그러자 조고가 두려워하여 그의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과 더불어 모의하여, 거짓으로 큰 도적이 있다고 하면서 아전과 군졸들을 소집한 다음, 염락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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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궁궐 안으로 들어가서
황상皇上의
에 쳐진 휘장을 활로 쏘자,
注+상하와 사방을 모두 둘러친 장막을 악幄이라고 한다. 위幃는 홑겹으로 된 장막이다.이세황제二世皇帝가 노하여 좌우에 있는 자들을 불렀다.
그러나 모두들 두려워하면서 맞서 싸우지를 못하였다.
곁에 있던 환관 한 사람이 이세황제를 모시면서 도망치지 않았는데, 이세황제가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일찌감치 나에게 고하지 아니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가?”라고 하자, 그 환관이 대답하기를, “가령 저희들이 일찌감치 말을 하였더라면, 모두가 이미 주살되었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염락閻樂이 앞으로 나아가서 이세황제의 죄를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말하기를, “족하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무도하게 사람들을 주살하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배반한 것이오.
그러니 스스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시오.”라고 하자, 이세황제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의 군郡을 얻어서 왕이 되고자 한다.”라고 하니, 염락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황제가 다시 만호후가 되고 싶다고 하였으나, 또다시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황제가 다시 처자식들과 함께 일반 백성이 되어 살고 싶다고 하자, 염락이 말하기를, “신은 승상에게 명을 받아서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족하를 주벌하는 것이오.
그러니 족하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더라도 신은 감히 그것을 보고할 수가 없소.”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휘하의 군사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자, 이세황제가 스스로 자살하였다.
조고가 말하기를, “진秦나라는 예전부터 있었던 왕국이다.
진秦 시황始皇이 천하에 군림하였으므로 제帝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육국六國이 다시 섰으니, 예전처럼 왕王이라 칭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자영子嬰을 세워서
진秦나라 왕으로 삼았으며, 일반 백성을 장사 지내는 예로 이세황제를
안에 장사 지냈다.
注+“원중苑中”은 의춘원宜春苑 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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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진秦나라에서 군사를 보내어
요관嶢關을 막았는데,
注+요嶢는 음이 요堯이며, 요관嶢關은 요산嶢山에 있는 관문이다. 이기李奇가 말하기를, “상락上洛의 북쪽, 남전藍田의 남쪽, 무관武關의 서쪽에 있다.”라고 하였다.패공沛公이 이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기치旗幟를 더욱 늘어놓아서 군사의 숫자가 많아 보이게 하고,
역이기酈食其와
육가陸賈를 사신으로 보내어
진秦나라 장수들에게 가서 유세하되, 이익을 가지고 꾀게 하소서.”
注+“의병疑兵”은 기치를 많이 벌여놓아 인원수를 부풀려서 적들로 하여금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담啗은 도람徒濫의 절切이며, 이익으로 상대를 꾀는 것이니, 음식을 주어 상대로 하여금 받아먹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진秦나라 장수들이 과연 연합하여 화친하려고 하자, 패공이 이를 허락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장량이 다시 또 아뢰기를, “그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서 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자, 패공이 드디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진秦나라 군대를 쳐서 크게 격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