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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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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罷免
凡罷免, 罪不著者, 曰某官某免. 幷免爵者, 曰某官某爵某免爲庶人注+流徙者, 卽不言爲庶人..
著者, 名下加有罪字注+..
無罪者, 曰免某官某. 幷免爵者, 曰免某官某爵某爲庶人.
策免者, 加策免字.
凡謝病‧請老‧致仕, 宰相賢臣則書注+張良‧王吉‧二疏‧韋賢之類..
凡就國‧貶‧左遷, 亦依罷免例.
分三等, 罪疑則姓名在上, 罪著則加有罪字, 無罪則云遣某人就國, 貶某官某爲某官, 左遷某爲某官.
凡上印綬, 收印綬, 從本文注+鄧禹‧王商之類..
凡下獄死, 罪不著者, 曰某官某下獄死. 罪狀明白者, 名下加有罪字注+或云以.. 無罪者, 曰下某官某獄殺之.
其以赦出或被刑, 若自殺‧不食死之類, 各隨其事書之.
官已見者, 不復見.
惟無罪而賢者, 則特書之, 雖以廢免, 亦曰故某官爵某.
凡誅殺叛逆大罪, 曰某官某伏誅, 或曰誅某官某, 或曰討某官某誅之注+秦趙高‧漢韓王信‧諸呂‧子弘‧七國之類..
凡他罪明白者, 曰有罪棄市. 罪疑者, 去有罪字. 無罪曰殺某官某注+趙李牧‧秦李斯‧漢韓信‧彭越之類..
凡書官例, 與下獄例同.
族其家, 夷其族, 夷三族, 族誅某人家, 族滅某人家, 皆從本文.
凡欲殺而釋之者注+韓信‧朱雲之類..
◑欲治而寬之者注+梁王立之類..
◑當誅而不果者注+王氏五侯之類..


17. 파면罷免
수계囚繫, 유찬流竄, 주살誅殺, 관유寬宥에 관한 사항
무릇 파면罷免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모관某官 가 파면되었다.[某官某免]”라 하였고, 작위爵位를 아울러 파면하였으면 “모관某官 모작某爵 가 파면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某官某爵某免爲庶人]”注+유사流徙하였으면 ‘위서인爲庶人’이라 하지 않았다.라 하였다.
죄가 드러났으면 이름 아래에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하였다.注+② 혹 ‘이죄以罪’라고 하였다.
죄가 없으면 “모관某官 를 면직하였다.[免某官某]”라 하였고, 작위爵位를 아울러 파면罷免하였으면 “모관某官 모작某爵 를 파면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免某官某爵某爲庶人]”라 하였다.
책서策書로 관직을 파면하였으면 ‘책면策免’ 2자를 추가하였다.
무릇 사병謝病(병으로 사직함)과 청로請老치사致仕재상宰相현신賢臣일 경우 기록하였다.注+이다.
무릇 ‘취국就國(자기 본국으로 나아감)’과 ‘’, ‘좌천左遷’은 또한 파면罷免범례凡例에 따랐다.
세 등급으로 나누어 가 의심스러우면 성명姓名을 위에 두었고, 가 드러나면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하였고, 무죄無罪면 “모인某人을 보내어 자기 본국本國에 나아가게 하였다.[遣某人就國]”, “모관某官 폄직貶職시켜 모관某官으로 삼았다.[貶某官某爲某官]”, “를 좌천시켜 모관某官으로 삼았다.[左遷某爲某官]”라 하였다.
무릇 인수印綬를 바치거나 인수印綬를 걷는 경우는 본문本文을 따랐다.注+이다.
무릇 하옥사下獄死가 드러나지 않으면 “모관某官 가 하옥되어 죽었다.[某官某下獄死]”라 하였고, 죄상罪狀명백明白하면 이름 아래에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하였고注+① 혹 ‘이죄以罪’라고 하였다., 무죄無罪면 “모관某官 를 하옥시켜 죽였다.[下某官某獄殺之]”라고 하였다.
사출赦出(사면하여 내보냄)하거나 혹 피형被刑(형벌을 받음)으로써 만일 자살自殺하거나 음식을 먹지 않고 죽은 경우에는 각각 그 일에 따라 기록하였다.
이 이미 나타난 경우는 다시 나타내지 않았다.
오직 무죄無罪이면서 현자賢者는 특별히 기록하였고 비록 폐면廢免(罷免)이라도 또한 ‘고모관작모故某官爵某’라 하였다.
무릇 반역叛逆이나 혹 대죄大罪를 지은 자를 주살誅殺하면 “모관某官 가 죄를 받고 죽었다.[某官某伏誅]”라 하거나 혹 “모관某官 를 죽였다.[誅某官某]” 혹 “모관某官 를 토벌하여 죽였다.[討某官某誅之]”注+
, 나라의 韓王 韓信과 呂氏들, 아들 弘, 七國(吳楚七國)의 경우이다.
라 하였다.
무릇 그 죄가 명백하면 “가 있어 기시棄市하였다.[有罪棄市]”라 하였고, 가 의심스러우면 ‘유죄有罪’ 2자를 제거하였고, 무죄無罪면 “모관某官 를 죽였다.[殺某官某]”注+, 이다.라 하였다.
무릇 관직을 쓰는[書官]범례凡例하옥下獄범례凡例와 같다.
“그 집안을 족멸하다.[族其家]”와 “그 족속을 멸하다.[夷其族]”, “삼족을 멸하다.[夷三族]”, “모인某人의 집안을 족멸하였다.[族誅某人家]”, “모인某人의 집안을 족멸하였다.[族滅某人家]”는 모두 본문本文을 따랐다.
무릇 죽이려다가 석방한 경우가 있다.注+이다.
◑다스리려다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注+이다.
◑誅罰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注+이다.


역주
역주1 [或作以罪] : 저본에는 이 4자가 없으나,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四庫全書》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張良과……경우 : 二疏는 漢나라 宣帝 때의 名臣인 疏廣과 조카 疏受를 말한다. 《資治通鑑綱目》에서 己亥(B.C. 202) 漢 高祖 5년에 “張良이 병으로 사직하고 辟穀하였다,[張良謝病辟穀]”라 하였고, 庚申(B.C. 61) 漢 宣帝 神爵 원년에 “諫大夫 王吉이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갔다.[諫大夫王吉謝病歸]”라 하였고, 戊午(B.C. 63) 漢 宣帝 元康 3년에 “疏廣과 疏受가 물러나게 해주기를 청하자 금을 하사하고 돌려보냈다.[疏廣疏受請老 賜金遣歸]”라 하였고, 甲寅(B.C. 67) 漢 宣帝 地節 3년에 “5월 승상 韋賢이 致仕하였다.[五月 丞相賢致仕]”라 하였다.
역주3 鄧禹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亥(27) 後漢 光武帝 建武 3년에 “鄧禹가 大司徒의 인수를 바치자 우장군으로 삼았다.[鄧禹上大司徒印綬 以爲右將軍]”라 하였고, 丙申(B.C. 25) 漢 成帝 河平 3년에 “여름 4월 승상 樂昌侯 王商의 인수를 거두라는 조칙을 내리자 王商이 근심하다 卒하였다.[夏四月 詔收丞相樂昌侯王商印綬 商以憂卒]”라 하였다.
역주4 [罪] : 저본에는 이 1자가 없으나,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四庫全書》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漢나라의……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巳(B.C. 196) 漢 高祖 11년에 “韓王 韓信을 복주하였다.[韓王信伏誅]”라 하였고, 辛酉(B.C. 180) 漢 高皇后 呂氏 8년에 “齊王 劉襄이 군사를 동원하여 여러 呂氏를 토벌하였다.[齊王襄發兵討諸呂]”, “여러 대신이 代王 劉恒을 맞이하여 세웠다. 후9월에 장안에 도착하여 즉위하고 여후가 孝惠帝의 아들이라 명명한 劉弘 등을 죽이고 사면령을 내렸다.[諸大臣迎立代王恒 後九月 至 卽位 誅呂后所名孝惠子弘等 赦]”라 하였다. 丁亥(B.C. 154) 漢 景帝 3년에 “吳王 劉濞와 膠西王 劉卬, 膠東王 劉雄渠, 菑川王 劉賢, 濟南王 劉辟光, 楚王 劉戊, 趙王 劉遂가 반란을 일으켰다.[吳王濞 膠西王卬 膠東王雄渠 菑川王賢 濟南王辟光 楚王戊 趙王遂反]”라 하고 그 伏誅 결과를 기록하였다.
역주6 秦나라의 趙高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午(B.C. 207) 秦 二世 3년에 “9월에 子嬰이 趙高를 토벌하여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九月 子嬰討殺高 夷三族]”라 하였다.
역주7 (成)[或]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 있으나,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四庫全書》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근거하여 ‘或’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趙나라의 李牧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申(B.C. 229) 秦 始皇 18년에 “趙나라가 그 대장군 李牧을 죽였다.[趙殺其大將軍李牧]”라 하였다.
역주9 秦나라의 李斯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巳(B.C. 208) 秦 二世 2년에 “秦나라가 우승상 馮去疾과 좌승상 李斯를 옥리에 내렸는데, 풍거질은 자살하고 이사는 허리가 잘리고 삼족을 멸하였다. 趙高를 중승상으로 삼았다.[秦下右丞相馮去疾左丞相李斯吏 去疾自殺 要斬斯 夷三族 以趙高爲中丞相]”라 하였다.
역주10 漢나라의……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巳(B.C. 196) 漢 高祖 11년에 “봄 정월에 황후가 淮陰侯 韓信을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春正月 皇后殺淮陰侯韓信 夷三族]”라 하고, “梁王 彭越을 폐하고 蜀으로 옮겼다. 3월에 그를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梁王越廢 徙蜀 三月 殺之 夷三族]”라 하였다.
역주11 韓信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子(B.C. 201) 漢 高祖 6년에 “겨울 12월에 황제가 陳 땅에 제후를 모이게 하고 楚王 韓信을 잡아 돌아갔다. 洛陽에 이르러 한신을 사면하여 淮陰侯로 삼았다.[冬十二月 帝會諸侯於陳 執楚王信以歸 至洛陽 赦爲淮陰侯]”라 하였고, 己酉(B.C. 12) 漢 成帝 元延 원년에 “옛 槐里令 朱雲이 직언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조금 있다가 석방되었다.[故槐里令朱雲言事得罪 旣而釋之]”라 하였다.
역주12 梁王……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戊申(B.C. 13) 漢 成帝 永始 4년에 “有司가 梁王 劉立의 죄를 아뢰자 은폐하고 다스리지 않았다.[有司奏梁王立罪 寢不治]”라 하였다.
역주13 王氏 五侯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卯(B.C. 18) 漢 成帝 鴻嘉 3년에 “왕씨 오후가 죄가 있었는데 궁궐에 나아가 사죄하니 사면하고 죽이지 않았다.[王氏五侯有罪 詣闕謝 赦不誅]”라 하였다. 왕씨 오후는 成帝 때 외척인 王氏 성의 다섯 제후로 王譚, 王商, 王立, 王根, 王逢時를 가리킨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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