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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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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年(250)
十三年이라
魏嘉平二年이요 吳赤烏十三年이라
潘夫人有寵於吳主權하여 生少子亮하니 權愛之러라 全公主 旣與太子和 有隙이라 欲豫自結하여 數稱亮美하니
權以魯王霸結朋黨以害其兄라하여 心亦惡之하여 謂侍中孫峻曰注+峻, 靜之曾孫也. 子弟不睦하니 將有袁氏之敗하여 爲天下笑
若使一人立者 安得不亂乎아하다 遂有廢和立亮之意호되 然猶沈吟歷年注+沈吟者, 欲決而未決之意.이러라
至是하여 乃幽太子和하니 將軍朱據諫曰 太子 國之本根이요 加以雅性仁孝하여 天下歸心하니
晉獻用驪姬而申生不存하고 漢武信江充而戾太子冤死하니 臣竊懼太子不堪其憂일까하노니 雖立思子之宮이나 無及矣니이다
不聽하니 據與尙書僕射屈晃으로 率諸將吏하고 泥頭自縛하여 連日詣闕請和注+泥頭, 謂以泥塗其頭也.하다
而無難督陳正及五營督陳象 各上書切諫注+吳主置左右無難營兵, 又置五營營兵, 各置督領之.한대 吳主大怒하여 族誅正象하고 牽據晃入殿하니
據晃猶叩頭流血하여 辭氣不撓 權杖之一百하다 遂廢和爲庶人하여 徙故鄣注+故鄣縣, 屬丹陽郡.하고
賜霸死하고 殺楊笁全寄等하고 據尋亦賜死하고 明年 立潘氏爲皇后하다
注+堂邑縣, 前漢屬臨淮郡, 後漢屬廣陵郡, 魏吳在兩界之間爲棄地. 塗, 當作涂, 讀曰滁. 涂水在堂邑.하다
遣兵十萬作之하여 以淹北道注+以絶魏兵之窺建業.하다
十二月 魏擊吳하여 戰於江陵하여 大破之하다
魏王昶言호되 孫權流放良臣하고 嫡庶分爭하니 可乘釁擊之注+良臣, 謂朱據等.라한대
司馬懿遣新城太守州泰襲巫秭歸注+州泰, 姓名.하고 荊州刺史王基向夷陵하고 昶向江陵注+魏荊州刺史與征南府竝屯宛, 時已徙屯新野.하니 昶引竹絙爲橋하여 渡水擊吳軍注+絙, 居登切, 大索也. 以竹索爲橋, 駕虛而渡, 名曰繩橋, 又名笮橋. 吳引沮‧漳之水, 浸江陵以北之地, 以限魏兵, 故昶爲橋以渡水.하니
吳將施績 夜遁入江陵注+績, 朱然之子也. 然本施氏, 朱治以爲子, 魏人本其所自出之姓稱之.이어늘 昶欲引致平地與戰하여 乃先遣五軍案大道發還하여 使吳望見而喜注+案大道, 案依大路而還歸.하고
又以所獲鎧馬甲首 環城以怒之하고 而設伏兵以待之注+首, 謂所斬人頭. 環, 音宦.러니
績果來追어늘 昶與戰하여 大破之하고 斬其二將注+二將, 謂鍾離茂‧許旻.하다 王基州泰亦破吳兵하니 降數千口이라


庚午年(250)
[] 나라(蜀漢) 後主 延熙 13년이다.
[] 魏主 曹芳 嘉平 2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赤烏 13년이다.
[] 가을에 나라가 太子 孫和를 폐위시키고, 魯王 孫霸將軍 朱據를 죽이고, 겨울 11월에 아들 孫亮을 세워서 太子로 삼았다.
[] 예전에 潘夫人吳主 孫權에게 총애를 받아 작은아들 孫亮을 낳으니 손권이 사랑하였다. 〈전공주가 손량과〉 미리 교분을 맺고자 하여 자주 손량의 훌륭한 점을 칭찬하였다.
손권은 魯王 孫霸가 붕당을 결성하여 그의 형을 해친다고 여겨 마음속으로 또한 그를 미워하여 侍中 孫峻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孫峻孫靜의 증손자이다. “자제들이 화목하지 않으니, 앞으로 이 있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만약 〈손화와 손패 중〉 한 사람을 세운다면 어찌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침내 손화를 태자에서 폐위시키고 손량을 세우려는 뜻이 있었으나,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해가 지났다.注+沈吟”은 결정을 내리려고 하나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이때에 이르러 마침내 太子 孫和를 유폐시키니, 將軍 朱據가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태자는 국가의 근본이고 게다가 평소 성품이 仁孝하여 천하 사람들이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신은 태자가 근심을 견디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비록 〈한 무제가 아들을 생각하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吳主가 따르지 않았으니, 주거가 尙書僕射 屈晃과 여러 장군 및 관리들을 거느리고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 결박하여 연일 궁궐 문에 나가 손화를 풀어달라고 청하였다.注+泥頭”는 머리에 진흙을 바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陳正 陳象이 각각 上書하여 간절하게 간언하자注+吳主左無難營右無難營의 군대를 설치하고, 또 五營의 군대를 설치하였는데, 각각 을 두어 그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吳主가 크게 노하여 진정과 진상을 族誅하고, 주거와 굴황을 포박하여 궁전으로 들어왔다.
주거와 굴황이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며 피가 흐르는데도 말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으므로, 손권이 곤장 100대를 치게 하였다. 마침내 손화를 태자에서 폐위시켜 庶人으로 삼아 故鄣縣으로 귀양 보내고,注+故鄣縣丹陽郡에 소속되어 있다.
孫霸에게 죽음을 내렸으며, 楊笁全寄 등을 죽이고 주거에게도 곧이어 죽음을 내리고, 다음 해에 潘氏을 세워서 皇后로 삼았다.
[] 나라가 堂邑縣塗塘(涂水에 쌓은 제방)을 설치하였다.注+堂邑縣前漢 때에 臨淮郡에 속하였고, 後漢 때에 廣陵郡에 속하였으며, 나라와 나라 때에 두 나라의 경계 사이에 버려진 땅이었다. 는 마땅히 로 써야 하고, 로 읽는다. 涂水堂邑에 있다.
[] 군사 10만을 堂邑에 보내어 塗塘을 설치하여 북쪽 길을 차단하였다.注+塗塘으로써 나라 병사가 建業을 엿보는 것을 단절시킨 것이다.
[] 12월에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여 江陵에서 싸워 나라를 크게 격파하였다.
[] 나라 王昶이 말하기를 “孫權이 훌륭한 신하들을 추방하고 嫡子庶子가 편을 갈라 다투고 있으니, 이 틈을 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注+良臣”은 朱據 등을 말한다.라고 하자,
司馬懿新城太守 州泰를 보내 秭歸를 습격하게 하고,注+州泰는 성명이다. 荊州刺史 王基夷陵으로 향하게 하고, 왕창을 江陵으로 향하게 하였다.注+나라 荊州刺史征南將軍府와 함께 모두 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때 이미 新野로 옮겨 주둔하였다. 왕창이 대오리로 엮은 줄을 매어 다리를 만들어서 강을 건너 나라 군대를 공격하였다.注+居登이니, 큰 줄이다. 대오리로 다리를 만들어 허공에 매달아서 건넜는데, 繩橋라고 하고, 또 笮橋라고 하였다. 나라가 沮水漳水를 끌어다가 江陵 이북의 땅을 침수시켜서 나라 군사들을 막았다. 그러므로 왕창이 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넌 것이다.
나라 장군 施績이 밤에 강릉으로 달아났는데,注+朱然의 아들이다. 주연은 본래 施氏인데, 朱治가 아들로 삼았으니, 나라 사람이 본래 유래한 성으로 그를 불렀다. 왕창이 그들을 평지로 유인하여 싸우려고 하여 마침내 먼저 다섯 군대를 보냈다가 큰 길을 따라 돌아오게 하여 나라 군사들이 보고서 기뻐하게 만들고,注+案大道”는 큰 길을 따라서 돌아오는 것이다.
또 획득한 鎧馬(갑옷 입힌 말)와 甲士의 머리를 성 주변에 둘러놓아 나라 군사들을 분노하게 하고는 병사를 잠복시켜 나라 군사들을 기다렸다.注+는 잘린 사람의 머리를 말한다. (둘러싸다)은 음이 이다.
시적이 과연 추격해오자, 왕창이 시적과 싸워서 크게 격파하고 나라의 두 장수를 참수하였다.注+二將”은 鍾離茂許旻을 말한다. 왕기와 주태가 또한 나라 병력을 격파하니, 항복한 자가 수천 명이었다.


역주
역주1 吳廢其太子和……立子亮爲太子 : “孫和에게는 ‘廢’라고 기록하고, 孫霸에게는 ‘殺’이라고 기록하고, 朱據에게는 ‘及’이라고 기록하고는 또 爵位를 삭제하지 않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모두 죄가 없는 사람들이다. 枕席의 사사로움은 昏主를 미혹시킬 뿐만 아니라 비록 明君이라도 역시 반드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고, 忠直한 말은 昏主만 어길 뿐만 아니라 비록 明君이라도 또한 반드시 따르는 것은 아니다. 살펴보건대 吳主 孫權은 嫡子를 폐하고 庶子를 세웠으며, 朱據 등의 충성스러운 말과 애써 올린 간언을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따라서 죽였으니, 한 시대 호걸의 만년 말로가 어둡고 어긋난 것이 이러하였다.[和書廢 霸書殺 據書及 且不去其爵 是皆無罪之人也 夫衽席之私 非惟昏主惑之 雖明君亦未必能免 忠直之言 非惟昏主違之 雖明君亦未必能聽 觀吳主權之廢嫡立庶 朱據等忠言苦諫 不惟不能聽 又從而殺之 以爲一世人豪 晩節末路 昏繆乃爾]” ≪發明≫
역주2 全公主가……있었는데 : 이 내용은 본서 35, 36쪽에 보인다.
역주3 袁氏의 패망 : 袁紹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袁譚‧袁熙‧袁尙이었다. 원소가 죽자 여러 사람들은 원담이 장남이므로 그를 세우려 하였는데, 審配가 원소의 명령이라고 속여 원상을 후계자로 세웠다. 원담은 후계자가 되지 못하여 스스로 장군이라 일컫고 黎陽에 주둔하였다. 원희‧원상은 조조에게 패하여 遼東太守 公孫康에게 투신하였으나 죽임을 당하였고, 원담은 曹操에게 투신했다가 반란하여 군대가 패하여 죽었다.
역주4 晉 獻公이……죽었고 : 春秋時代의 申生은 晉 獻公의 世子였는데, 헌공의 愛妾인 驪姬가 신생을 죽이려고 계책을 꾸며서 신생이 아버지 헌공을 독살하려 했던 것처럼 만들자, 이에 헌공은 노하여 태자의 스승 杜原款을 죽였다. 어떤 사람이 신생에게 사실을 밝혀 억울한 누명을 벗으라고 권하자, 신생은 “내가 사실을 밝히면 여희의 죄가 드러날 것이다. 아버님은 이미 늙으셨으니, 아버님으로부터 여희를 빼앗고 싶지 않다.” 하였다. 또 도망치라고 권하자 “아버님을 죽이려 했다는 더러운 누명을 쓰고 내가 다른 나라로 도망친들 그 나라에서 나를 받아주겠는가.” 하고는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신생을 恭世子라고 불렀다.(≪春秋左氏傳≫ 僖公 4년)
역주5 漢 武帝……죽었으니 : 漢 武帝의 太子 劉據가 江充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마침 巫蠱의 일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맡은 강충이 태자를 다급히 몰아붙였는데 太子宮의 땅에서 오동나무로 만든 木偶人을 캐내어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태자를 궁지에 빠뜨렸다. 태자는 견디다 못해 드디어 사람을 시켜 강충을 잡아다 놓고 “우리 父子를 혼란시키려 하는구나.” 하고 참수하였다. 그리고 長樂宮의 衛卒을 동원해서 무제가 보낸 군대와 市街戰을 하였으나 끝내 패하여 자살하였다.(≪漢書≫ 〈武五子傳〉)
역주6 思子宮을 세웠으나 : 漢 武帝는 추후에 太子 劉據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고 생각하고 ‘思子宮’을 지은 것을 말한다.
역주7 無難督 : 無難은 吳나라 孫權이 설치한 군영으로 황제에 대한 侍衛와 정벌에 참여하였다. 無難營은 左部와 右部로 나누어지며 督으로 통솔하게 하였다.
역주8 五營督 : 五營은 吳나라에서 설치한 군영으로 황제의 시위를 담당하였으며, 督으로 통솔하게 하였다.
역주9 吳作堂邑塗塘 : “塘을 만든 것을 반드시 기록한 것은 백성의 노력을 중시한 것이다. 塘을 만든 것을 기록한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塘을 만든 것을 기록한 것은 네 번이다.(吳나라 塗塘, 浦里塘, 梁나라 緣淮塘, 〈五代〉 吳越의 捍海石塘)[作塘必書 重民力也 書作塘始此 終綱目 書作塘四(吳塗塘浦里塘 梁緣淮塘 吳越捍海石塘)]” ≪書法≫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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