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고 나약해서 결단하지 못하는 은혜가 국가의 올바른 법이 아닌 줄은 알지만 우선 다시 경사京師에 머물게 하라.”注+나懦은 음이 연軟이니, “선나選懦”는 인자하고 연약해서 결단하지 못하는 뜻이다. 수宿(머물다)는 음이 수秀이고 유留(머물다)는 음이 유溜이다.
綱
【강綱】 큰비가 내렸다.
綱
【강綱】 겨울 10월에 황제가 장릉章陵에 갔다가 11월에 환궁하였다.
目
【목目】 이때에 태위 장우太尉 張禹가 도성에 남아 지키고 있었는데, 거가車駕가 강릉江陵으로 행차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역마驛馬로 간언을 올리니,
황제가 조서詔書로 답하기를 “사당에 배알하고 제사하기를 마치면 마땅히 남쪽으로 대강大江에 예禮를 올리려 하였는데, 마침 그대가 상주上奏하니 한수漢水에 임하여 수레를 돌리겠노라.”注+“사알祠謁”은 장릉章陵에 행차하여 사친四親의 능묘陵廟에 배알하고 제사함을 이른다. 하였다.
綱
【강綱】 태관太官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먼 나라의 진귀한 음식을 받지 말게 하였다.
目
【목目】 영남嶺南 지역은 예로부터 생용안生龍眼과 여지荔枝(여지)가 생산되므로 10리에 한 역[치置]를 두고 5리에 한 후候를 두어서 밤낮으로 파발마로 도성에 보냈는데注+용안龍眼은 나무의 높이가 5, 6장丈이고, 열매가 여지荔枝와 비슷한데 둥글고 7월에 익는다. 여지는 나무의 높이가 5, 6장丈이고 크기가 계수나무만 하며, 열매가 계란과 비슷한데 달고 즙이 풍부해 안석류安石榴와 유사하다. 달고 신맛이 있는데,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 갑자기 모두 붉어지면 먹을 수 있다. 치置는 역驛을 이르고, 후候는 바로 후堠(이정표가 있는 돈대)이니 길가에 세우는 것이다. “우중禺中”은 정오에 가까운 때이다.,
임무장 당강臨武長 唐羌이 다음과 같이 상서上書하였다.注+임무현臨武縣은 계양군桂陽郡에 속하였으니, 영남嶺南에서 공물을 바쳐 올릴 적에 중도에 임무현臨武縣을 경유한다. “신臣은 듣건대, 위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덕德으로 삼지 않고 아래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공功으로 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남쪽 지역은 날씨가 덥고 해충과 맹수가 길에 즐비한데, 생룡안과 여지를 바치는 자들은 죽음을 무릅쓰는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지만, 앞으로 오는 자들은 그래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다음과 같이 조서詔書를 내렸다. “먼 나라의 진귀한 음식은 본래 종묘宗廟에 받들어 올리기 위한 것인데, 만일 백성을 다치고 상하게 한다면 어찌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겠는가. 태관太官에게 명하여 다시는 바치는 것을 받지 말도록 하라.”注+종묘宗廟의 제사 음식은 각각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을 올리기 때문에 먼 지방의 물건을 귀하게 여긴다.
역주
역주1肅宗(章帝)의 故事 :
肅宗은 형제들을 사랑하여 황제에 즉위한 뒤에도 오랫동안 封國으로 돌려보내지 않았고, 형제들이 조회를 올 때마다 친히 저택을 순행하여 기물을 진설하는 등 우애가 깊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138쪽, 146쪽에 보인다.
역주2일식은……주청하자 :
옛날에 군주는 태양을 상징하고 태양은 하나밖에 없으므로 諸王과 后妃를 모두 陰으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諸王이 封地를 갖고 있으면서 都城에 머물러 있는 것이 황제에게 해롭다 하여 封國으로 내보낼 것을 주청한 것이다.
역주3蓼莪와……슬픔 :
〈蓼莪〉는 ≪詩經≫ 〈小雅〉의 편명으로 “무성하게 자라는 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쑥이 아니고 못 먹는 다북쑥이었네. 슬프고 슬프다 부모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힘쓰고 수고하셨네.[蓼蓼者莪 匪莪伊蒿 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보이는바, 이는 자식이 태어났을 때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는데, 자라고 보니 못나서 부모의 봉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다북쑥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凱風〉은 ≪詩經≫ 〈邶風〉의 편명으로 여기에 “온화한 凱風이 남쪽에서 이 여린 가시나무 속[棘心]으로 불어오도다. 가시나무 속이 여리고 여리니, 어머니 힘쓰고 수고하셨네.[凱風自南 吹彼棘心 棘心夭夭 母氏劬勞]”라고 보이는바, 凱風은 초여름의 온화한 바람으로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비유하고, 棘心은 여리고 여린 가시나무 속에 있는 가시로 못난 자식을 비유한 것이다. 이 두 詩는 모두 효자가 부모의 사랑과 수고로움을 잊지 못하여 지은 것이므로 “〈蓼莪〉와 〈凱風〉의 슬픔”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4나를……돌아본다 :
부모가 자식을 기를 적에 사랑하여 되돌아보고 다시 반복함을 이르는바, ≪詩經≫ 〈小雅 蓼莪〉에 “아버지는 나를 나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네.……나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반복하여 돌아보시어 나가고 들어올 적에 나를 가슴속에 잊지 못하셨네.[父兮生我 母兮鞠我……顧我復我 出入腹我]”라고 보인다.
역주5詔太官勿受遠國珍羞 :
“世祖(光武帝)가 太官에게 詔令을 내려 郡國의 특별한 음식을 받지 말라고 쓴 뒤로부터 이때 다시 보이니, 이를 써서 찬미한 것이다. 〈唐 玄宗이〉 姚思藝를 檢校進食使者로 삼았다고 쓴 것과는 다르다.[自世祖有詔太官 勿受郡國異味之書 於是時再見 書美之也 與書以姚思藝爲檢校進食使者 異矣]다”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