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襄
이 益疑懼
하여 遣參軍權翼
하여 使於浩
한대 浩曰 身與姚平北
이 共爲王臣
이어늘 平北
이 毎舉動自專
하니 甚失輔車之理
注+輔, 頰輔也. 車, 尺奢切, 牙車也. 左傳 “輔車相依, 脣亡齒寒.”로라
翼曰 平北이 英姿絶世하고 擁兵數萬이로되 而遠歸晉室者는 以朝廷有道하고 宰輔明哲故也어늘
今將軍이 輕信讒慝하여 與之有隙하시니 愚謂猜嫌之端이 在此而不在彼也니이다
浩曰 平北이 生殺自由하고 又掠吾馬하니 王臣之體 固若是乎아
翼曰 姦宄之人은 亦王法所不容也니 殺之何害리잇가
浩曰 然則掠馬는 何也오 翼曰 將軍이 謂平北雄武難制라하여 終將討之라 故取以自衛耳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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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華有疾하니 曜靈이 纔十歳라 立爲世子하다 重華庶兄祚有勇力, 吏幹하고 而傾巧하여 善事內外하여 與嬖臣趙長等으로 結異姓兄弟하다
謝艾以枹罕之功으로 有寵하니 左右譛之하여 出爲酒泉太守하다
艾上言호되 權倖用事하여 公室將危하니 乞聽臣入侍라하고 且言祚及長等이 將爲亂하니 宜盡逐之라하다
重華疾甚하니 手令徴艾輔政이러니 祚, 長等이 匿而不宣하다
重華 卒에 曜靈이 立하여 稱涼州刺史西平公하니 長等이 矯遺令하여 以祚輔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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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처음에 장우張遇가 진秦나라에 항복하니, 진주秦主 부건苻健은 그를 사공司空으로 삼고 그의 계모繼母 한씨韓氏를 궁중으로 들여 소의昭儀로 삼고는 여러 번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장우에게 이르기를 “경은 나의 수양아들이다.” 하였다.
장우는 이것을 치욕으로 여겨 은밀히 관중關中의 호걸豪傑들과 결탁하여 부씨苻氏를 멸하고 그 땅을 가지고 진晉나라(동진東晉)에 가서 항복하려고 하다가 일이 탄로되어 복주伏誅되었다.
이에 관중의 호걸 몇 사람이 각각 수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사자를 보내어 와서 구원병을 청하였는데, 진秦나라가 모두 공격하여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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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요양姚襄이 더욱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참군參軍 권익權翼을
은호殷浩에게
사자使者로 보내자, 은호가 말하기를 “나와
요북평姚平北(
요양姚襄)이 함께 황제의 신하가 되었는데,
평북平北이 매번 거동을 자기 마음대로 하니,
의 이치를
注+① 輔는 頰輔(광대뼈)이고, 車는 尺奢의 切이니 牙車(아래턱뼈)이다. ≪春秋左氏傳≫에 하였다. 크게 잃었다.” 하였다.
권익이 말하기를 “평북이 영예로운 자품資品이 세상에 뛰어나고 수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멀리 진晉나라(동진東晉)에 귀의한 것은 조정에 도道가 있고 재보宰輔가 명철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장군이 경솔하게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평북과 틈을 만드시니, 저는 생각하건대 시기하고 혐의하는 단서가 이곳에 있고 저곳에 있지 않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은호가 말하기를 “평북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또 나의 말을 약탈하였으니, 군주와 신하의 예모禮貌가 진실로 이와 같단 말인가.” 하였다.
권익이 말하기를 “간사한 사람은 또한 왕법王法에 용인할 수 없는 바이니, 그를 죽인들 어찌 나쁘겠습니까.” 하였다.
은호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의 말을 약탈함은 어째서인가.” 하니, 권익이 말하기를 “장군은 평북이 영웅스럽고 위무威武가 있어 제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끝내 그를 토벌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평북이 말을 취하여 스스로 호위했을 뿐입니다.” 하였다.
은호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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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처음에 은호殷浩가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진秦나라(전진前秦)의 양안梁安과 뇌약아雷弱兒를 유인하여 진주秦主 부건苻健을 죽이게 하고는 〈이것이 성공하면〉 관서關西 지역의 임무를 맡기겠다고 허락하니, 뇌약아 등은 거짓으로 이를 허락하고 또 군대를 보내어 응접할 것을 청하였다.
은호는 장우張遇가 난리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는 양안 등의 일이 성공했다고 생각해서 마침내 수춘壽春에서 7만의 병력을 인솔하고 북벌하였으니, 이는 전진해서 낙양을 점거하여 원릉園陵을 수복修復하고자 해서였다.
왕표지王彪之가 회계왕會稽王 사마욱司馬昱에게 서신을 올려서 혹 거짓과 속임수가 있을 수 있으니, 가볍게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나, 회계왕이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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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장중화張重華가 병이 있으니, 이때 장요령張曜靈이 겨우 10세였는데, 그를 세워 세자로 삼았다. 장중화의 서형庶兄 장조張祚는 용력勇力과 관리의 재간이 있었는데, 사람이 음흉陰凶하고 공교로워 안팎의 관원들과 잘 지내어 총애하는 신하인 조장趙長 등과 이성異姓 형제를 맺었다.
사애謝艾가 부한枹罕의 전공戰功으로 총애가 있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그를 참소하여 외직으로 내보내어 주천태수酒泉太守를 삼았다.
사애는 상언上言하기를 “권세 있고 총애 받는 신하들이 권력을 행사하여 조정이 장차 위태롭게 되었으니, 바라건대 신臣이 입시하기를 허락해주소서.” 하였다. 또 “장조와 조장 등이 장차 난을 일으키려고 하니, 마땅히 모두 축출해야 한다.” 하였다.
장중화의 병이 위독하니, 장중화는 손수 글을 써서 사애를 불러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는데, 장조와 조장 등은 이것을 숨기고 발표하지 않았다.
장중화가 졸卒하자, 장요령張曜靈이 즉위하여 양주자사涼州刺史 서평공西平公을 칭하니, 조장 등이 유명遺命을 사칭詐稱하여 장조로 하여금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