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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7)

자치통감강목(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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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元嘉二十年이요 魏太平眞君四年이라
春正月 魏擊宋仇池取之하다
魏軍進至下辯한대 宋將軍强玄明等敗死注+强, 其兩切.하고 胡崇之被擒하니 餘衆走還漢中이라 魏遂取仇池하니 楊保熾走하다
烏洛侯國遣使如魏하다
魏之居北荒也 鑿石爲廟在烏洛侯西北하여 以祀其先하니 高七十尺이요 深九十歩注+烏洛侯國在地豆干國北, 去代四千五百餘里. 地豆干在室韋四千餘里, 室韋當勿吉之北, 勿吉在高麗之北, 則烏洛侯東夷也.
及烏洛侯使至 言石廟具在한대 魏主遣使致祭하고 刻祝文於壁而還하니 去平城四千餘里러라
夏四月 魏殺其武都王楊保宗하다
秋七月 宋立楊文德爲武都王하다
魏河間公齊 與武都王楊保宗으로 對鎭雒谷注+齊, 翳槐之玄孫. 雒谷, 卽駱谷, 北史作駱.이러니 保宗弟文德 說保宗閉險叛魏한대 齊誘保宗殺之하니
其屬苻逹任朏遂擧兵하여 立文德爲王注+朏, 音斐.하니 據白崖하여 分兵取諸戍하고 進圍仇池하여 自號仇池公注+胡三省曰 “今大安軍東北八十里有白崖. 大安軍, 古葭萌地也.”이어늘
魏將軍古弼 擊之하니 文德退走러니 皮豹子督關中軍하여 至下辯하여 聞仇池圍解하고 欲還이어늘
弼遣人謂曰 宋人恥敗하여 必將復來 軍還之後 再擧爲難이니 不若練兵蓄力以待之
不出秋冬 宋師必至하리니 以逸待勞 無不克矣리라 豹子從之하다 文德遣使求援於宋한대
七月 宋以文德爲征西大將軍武都王하여 屯葭蘆城하니 武都陰平氐多歸之注+胡三省曰 “今階州福津縣東南七十里有葭蘆城. 世傳, 魏將鄧艾與蜀將姜維相持於此, 後魏置葭蘆縣. 後周倂入盤堤縣.”러라
九月 魏主襲柔然走之하다
魏主如漠南하여 捨輜重以輕騎襲柔然할새 分軍爲四道러니 魏主至鹿渾谷하여 遇勅連可汗注+鹿渾谷, 卽鹿渾海之谷也, 本高車袁紇部所居, 其地直平城西北, 其東卽弱洛水.하니
太子晃曰 賊不意大軍猝至하니 宜掩其不備하여 速進擊之니이다
尙書劉絜曰 賊營塵盛하니 其衆必多 不如須諸軍大集然後 擊之니이다
晃曰 塵盛者 軍士驚擾也 何得營上而有此塵乎 魏主疑之不急擊이러니 柔然遁去어늘
追之不及하고 獲其候騎하니 曰 柔然不覺魏軍至하여 惶駭北走 經六七日하여 知無追者하고 始乃徐行이라하다
魏主深悔之하여 自是 軍國大事 皆與晃謀之러라
司馬楚之别將督軍糧하니 柔然欲擊之러니 俄而軍中 有告失驢耳者어늘
楚之曰 此必賊遣姦人하여 入營覘伺하고 割以爲信耳 賊至不久 宜急爲備라하고
乃伐柳爲城하여 以水灌之하니 城立而柔然至한대 氷堅滑하여 不可攻이라 乃散走하다
冬十一月 宋人攻魏濁水戍하여 敗績하다
宋將軍姜道盛 與楊文德으로 合衆攻魏濁水戍이어늘 魏皮豹子等 救之하니 道盛敗死注+濁水城在上祿縣東南․武街城西北. 酈道元曰 “濁水卽白水也. 武街城故下辨縣治.”하다
十二月 魏主還平城하다
魏主還이라가 至朔方하여 詔太子晃總百揆하고 且曰
諸功臣 皆勤勞日久하니 皆當以爵歸第하여 隨時朝宴하여 論道陳謨 不宜復煩以劇職이니 更擧賢俊以備百官이라하고 遂還平城注+朝宴, 謂朝請饗宴也.하다


宋나라 太祖 文帝 劉義隆 元嘉 20년이고, 北魏 世祖 太武帝 拓跋燾 太平眞君 4년이다.
[綱] 봄 정월에 北魏가 宋나라의 仇池를 공격하여 빼앗았다.
[目] 北魏의 군대가 진격하여 下辯에 도착하였는데, 宋나라 將軍 强玄明注+① 强은 其兩의 切이다. 등이 패하여 죽고 胡崇之가 사로잡히니, 남은 병사들이 달아나 漢中으로 돌아갔다. 北魏가 마침내 仇池를 탈취하니 楊保熾는 달아났다.
[綱] 烏洛侯國이 사신을 파견하여 北魏로 보냈다.
[目] 예전에 北魏의 조상이 북쪽 황량한 곳에 살 때에 바위를 뚫어 사당을 만든 것이 烏洛侯國의注+① 烏洛侯國은 地豆干國 북쪽에 있으며 代까지 거리는 4,500여 리이다. 지두간국은 室韋에서 4,000여 리에 있고 室韋는 勿吉 북쪽과 접해 있으며, 勿吉은 高句麗의 북쪽에 있으니, 烏洛侯國은 東夷이다. 서북쪽에 있어서 〈그곳에서〉 선조에게 제사를 지냈다. 사당 높이가 70尺이고 깊이가 90步였다.
[綱] 여름 4월에 北魏가 武都王 楊保宗을 죽였다.
가을 7월에 宋나라가 楊文德을 세워 武都王으로 삼았다.
[目] 北魏 河間公 拓跋齊가 武都王 楊保宗과 함께 雒谷에서 서로 마주하여 鎭守하였다.注+① 拓跋齊는 拓跋翳槐의 玄孫이다. 雒谷은 駱谷이니, ≪北史≫에 〈‘雒’이〉 ‘駱’으로 되어 있다. 양보종의 아우 楊文德이 양보종에게 험지를 잘 방비하며 北魏를 배반하도록 설득하였는데, 탁발제가 양보종을 유인하여 죽였다.
양보종의 부하 苻逹과 任朏(임비)가注+② 朏은 음이 斐이다. 결국 병사를 일으켜 양문덕을 세워 王으로 삼으니, 양문덕이 白崖를注+③ 胡三省이 말하기를 “지금 大安軍 동북쪽 80리에 白崖가 있다. 大安軍은 옛 葭萌 지역이다.”라고 하였다. 점거하여 군대를 나누어 여러 鎭地를 빼앗고 나아가 仇池를 포위하여 스스로 仇池公이라고 불렀다.
北魏 將軍 古弼이 공격하니 양문덕이 물러나 달아났다. 皮豹子가 關中의 군대를 감독하여 下辯에 도착하여 仇池의 포위가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려고 하였다.
고필이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宋나라 사람들은 이번 패한 것을 수치로 여겨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 군대가 돌아간 후에 다시 움직이는 것은 어려우니 군대를 훈련하여 힘을 비축하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기 전에 宋나라 군대는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편안함으로 수고로운 적을 기다리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피표자가 그대로 따랐다. 양문덕이 사신을 보내 宋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7월에 宋나라가 楊文德을 征西大將軍 武都王으로 삼아서 葭蘆城에注+④ 胡三省이 말하기를 “지금 階州 福津縣 동남쪽 70리에 葭蘆城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魏나라 將軍 鄧艾와 蜀나라 將軍 姜維가 이곳에서 대치하였다고 한다. 北魏 때에는 葭蘆縣을 두었고 後周 때에는 盤堤縣에 편입하였다.”라고 하였다. 주둔하게 하니, 武都와 陰平의 氐族이 대부분 귀의하였다.
[綱] 9월에 魏主가 柔然을 습격하여 도주하게 하였다.
[目] 魏主가 漠南으로 가서 輜重을 버리고 경무장한 기병으로 柔然을 습격할 적에 군대를 나누어 4개의 길로 나아갔다. 魏主가 鹿渾谷에注+① 鹿渾谷은 바로 鹿渾海의 골짜기로 본래 高車 袁紇部가 살던 곳이며 그 지역은 平城의 서북쪽에 해당하니, 그 동쪽이 바로 弱洛水이다. 도착하여 勅連可汗과 마주치자
太子 拓跋晃이 말하기를 “적들의 입장에서는 뜻밖에 대군이 갑자기 이른 것이니, 마땅히 그들이 대비하지 못하였을 때 엄습하여 신속히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尙書 劉絜이 말하기를 “적들의 군영 안에 흙먼지가 가득하니 그 무리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여러 부대가 집결하기를 기다린 후에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탁발황이 말하기를 “흙먼지가 가득하다는 것은 군사들이 매우 놀라서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어찌 군영에 이런 흙먼지가 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魏主가 의심하여 급하게 공격하지 않으니, 柔然이 이 기회를 틈타 달아났다.
추격하여도 따라잡지 못하고 柔然의 정찰 기병을 사로잡았는데, 말하기를 “柔然이 北魏 군대가 도착할 것을 생각지 못하다가 당황하며 놀라서 〈무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달아났는데 6, 7일 지나고 나서 추격하는 자가 없는 것을 알고 비로소 천천히 갔습니다.”라고 하였다.
魏主가 크게 후회하며 이때부터 군대와 국가에 관한 큰일을 모두 탁발황과 의논하였다.
[目] 司馬楚之는 별도로 병사를 거느리고 군량 운송을 감독하였는데 柔然이 그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중에 당나귀 귀가 잘렸다고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마초지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적들이 간사한 사람을 보내서 군영에 들어와 정탐하고 〈당나귀의 귀를〉 잘라 증거로 삼은 것이다. 도적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올 것이니 마땅히 재빨리 방비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곧바로 버드나무를 잘라 성채를 만들고 그것에 물을 부어서 얼게 하였다. 城이 만들어진 뒤에 유연의 군대가 도착하였는데 얼음이 견고하고 미끄러워 공격할 수가 없게 되자 곧바로 흩어져 달아났다.
[綱] 겨울 11월에 宋나라 사람이 北魏 濁水戍를 공격하여 크게 패배하였다.
[目] 宋나라 將軍 姜道盛이 楊文德과 무리를 合兵하여 北魏의 濁水戍를注+① 濁水城은 上祿縣 동남쪽, 武街城 서북쪽에 있다. 酈道元이 말하기를 “濁水는 바로 白水이다. 武街城은 옛 下辨縣의 治所이다.”라고 하였다. 공격하였다. 北魏의 皮豹子 등이 그곳을 구원하니 강도성이 패하여 죽었다.
[綱] 12월에 魏主가 平城으로 돌아왔다.
[目] 魏主가 돌아오다가 朔方에 도착하여 太子 拓跋晃에게 조서를 내려 모든 정무를 총괄하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여러 功臣들이 모두 수고한 지 오래되었으니 응당 작위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수시로 朝請이나 향연에 참가하면서注+① 朝宴은 朝請하거나 饗宴하는 것을 말한다. 도리를 논하고 계책을 진술하도록 하라. 마땅히 다시는 번거로운 직책을 맡기지 않을 것이니, 다시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여 백관을 갖추게 하라.”라고 하고 마침내 平城으로 돌아왔다.


역주
역주1 예전에……리였다 : 嘎仙洞 유적에 대한 이야기로 현 내몽고자치구 呼倫貝爾에 있다. 北魏의 조상인 鮮卑 拓跋氏가 생활했던 곳이다. 이것이 1980년에 米文平에 의해 발견되었다.
역주2 [兵] : 저본에는 ‘兵’이 없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令凍] : 저본에는 ‘令凍’이 없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자치통감강목(17) 책은 2021.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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