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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1)

자치통감강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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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1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卯年(211)
十六年이라 春正月 注+漢五官中郞將, 領屬光祿勳, 未嘗爲丞相副也.하다
○三月 遣鍾繇하여 擊張魯하다
◑馬超, 韓遂等이어늘 曹操擊破之하다
操遣鍾繇하여 討張魯하고 而使夏侯淵等으로 出河東하여 與繇會注+淵, 惇族弟也.러니
倉曹屬高柔 諫曰注+公府倉曹, 主倉穀事, 有掾有屬. 大兵 西出이면 韓遂, 馬超 疑爲襲己하여 必相扇動하리니 宜先招集
三輔苟平이면 漢中 可傳檄而定也리이다 操不從하니 關中諸將 果疑之注+操舍關中而遠征張魯, 伐虢取虞之計也. 蓋欲討超‧遂而無名, 先張討魯之勢, 以速其反, 然後加兵耳.하여 馬超, 韓遂等十部皆反하여 其衆十萬 屯據潼關注+十部, 謂馬超‧韓遂及侯選‧程銀‧楊秋‧李堪‧張橫‧梁興‧成宜‧馬玩也. 潼關, 在弘農華陰縣.이러라
七月 操自將擊之러니 八月 至潼關하여 潛遣二將하여 渡蒲阪津하여 據河西爲營注+二將, 徐晃‧朱靈也. 蒲阪津在蒲阪縣西, 河西卽唐之蒲津關.하다
閏月 操北渡河할새 兵衆 先渡하고 操獨與虎士百餘人으로 留南岸斷後러니
馬超將步騎萬餘人하고 攻之하여 矢下如雨호되 操猶據胡床不動注+胡床, 其制本自虜來, 隋以讖有胡字, 改名交床.이러라
許褚扶操上船하니 船工 中流矢死 褚左手擧鞍蔽操하고 右手刺船注+刺, 音戚.이러니
校尉丁斐 放牛馬以餌賊하니 亂取之어늘 操乃得渡하여 遂自蒲阪渡西河하여 循河爲甬道而南하니 超等 退拒渭口注+渭口, 渭水口也, 渭口之東, 卽潼關也.하다
操乃多設疑兵하고 潛遣兵하여 入渭作浮橋하고 而夜分兵하여 結營於渭南이러니 超等 夜攻營이어늘 伏兵 擊破之하다
九月 進軍悉渡하니 超等 數挑戰호되 不許러니 固請割地, 送任子어늘 賈詡以爲可僞許之니이다
操復問計한대 詡曰 離之而已니이다 操曰 解注+解, 曉也.라하다 韓遂請與操相見하니 操與遂有舊注+魏志, 操與遂父, 同歲孝廉, 又與遂同時儕輩.
於是 交馬語移時호되 不及軍事하고 但說京都舊故하여 拊手歡笑하니
秦, 胡觀者 前後重沓注+秦‧胡, 秦地之人與胡人. 重, 平聲. 重沓, 重疊雜沓也, 言觀者衆多也.이라 操笑謂之曰 爾欲觀曹公邪 亦猶人也 非有四目兩口 但多智耳니라
旣罷 超等 問遂호되 公何言 遂曰 無所言也라하니 超等 疑之러니 他日 操與遂書 多所點竄하여 如遂改定者하니 超等 愈疑遂注+二者, 皆所以離之也. 點竄, 猶言塗注也, 謂書中之字, 多有點抹塗竄.
操乃與克日會戰하여 大破之注+克, 通作剋. 克日者, 剋定其日也.하니 遂, 超犇涼州어늘 操追至安定而還하다
諸將 問曰 初 賊守潼關 渭北道缺注+缺, 謂缺而不備.이어늘 不從河東擊馮翊하고 而反守潼關이라가 引日而後 北渡 何也注+引, 延也.잇고
操曰 若吾入河東이면 賊必引守諸津하리니 則西河未可渡 吾故盛兵向潼關하여 使賊悉衆南守하여 而西河之備虛故 二將 得取西河
然後 引軍北渡하니 不能與吾爭이라 連車樹柵하고 爲甬道而南 旣爲不可勝하고 且以示弱注+兵法 “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이요
渡渭爲堅壘하여 虜至不出 所以驕之也 不爲營壘하고 而求割地어늘
吾順言許之하여 使不爲備하고 因畜士卒之力이라가 一旦擊之하니 所謂疾雷不及掩耳注+淮南子之言. 兵之變化 固非一道也니라
關中諸將 每一部到 操輒有喜色이어늘 諸將 問其故한대
操曰 關中 長遠하니 若賊 各依險阻 征之 不一二年이면 不可定也
今皆來集하니 其衆 雖多 莫適爲主하여 一擧可滅이라 吾是以喜라하더라
乃留夏侯淵하여 屯長安하고 以張旣爲京兆尹하여 招懷流民하고 興復縣邑하다
劉璋 遣使迎劉備어늘 備留兵守荊州而西하니 使備擊張魯하다
扶風法正 爲劉璋軍議校尉러니 不能用注+軍議校尉, 使之議軍事.하고 又爲州里俱僑客者所鄙하니 邑邑不得志注+僑, 音喬, 寄也. 鄙, 薄也. 邑邑, 不樂之意.러라
別駕張松 與正善이러니 亦自負其才하여 忖璋不足與有爲하고 因勸璋結劉備한대
璋曰 誰可使者 乃擧正하니 辭謝하고 佯爲不得已而行이라가하여 爲松說備有雄略注+還爲之爲, 去聲.이라하여 密謀奉戴以爲州主러라
鍾繇欲向漢中하니어늘 因說曰注+說, 輸芮切. 曹公兵 無敵於天下 若因張魯之資하여 以取蜀土 誰能禦之리오
劉豫州 使君之宗室이요 而曹公之深讐也 善用兵하니 若使之討魯 魯必破
魯破則益州強하리니 曹公 雖來 無能爲也리이다 今州中諸將 恃功驕豪하여 欲有外意注+謂其意欲附外也.하니
不得豫州 則敵攻其外하고 民攻其內하리니 必敗之道也니이다 然之하여 遣正迎備하다
主簿黃權 諫曰 左將軍 有驍名注+曹操表備爲左將軍, 故稱之. 驍, 健也.하니 今以部曲遇之 則不滿其心이요
以客禮待之 則一國不容二君이라 若客有泰山之安이면 則主有累卵之危하리니 不若閉境以待時淸이니이다
從事王累 自倒縣於州門하여 以諫호되 一無所納注+縣, 讀曰懸.이러라
至荊州하여 陰說備取益州한대 備疑未決이어늘 龐統曰 荊州荒殘하여 人物殫盡하고 東有孫車騎하고 北有曹操하니 難以得志注+備表權爲車騎將軍, 故以稱之.
今益州 戶口百萬이요 土沃財富하니 誠得以爲資 大業 可成也리이다
備曰 今指與吾水火者 曹操也注+言水火者, 以其性相反也. 操以急이어든 吾以寬이요 操以暴어든 吾以仁이요
操以譎이어든 吾以忠하여 每與操反이라야 事乃可成耳 今以小利而失信義於天下하면 奈何
統曰 亂離之時 固非一道所能定也 且兼弱攻昧하고 逆取順守 古人所貴
若事定之後 封以大國이면 何負於信이리오 今日不取 終爲人利耳리이다
備以爲然하여 乃留諸葛亮, 關羽等하여 守荊州하고 自將步卒數萬而西하다
孫權 聞備西上하고 遣船迎妹한대 而軍人 欲將備子禪去注+軍人, 通鑑作夫人.어늘 張飛, 趙雲 勒兵截江하여 乃得禪還하다
劉璋 隨在所하여 供奉贈遺 以巨億計 巴郡太守嚴顔 拊心歎曰 此所謂獨坐窮山하여 放虎自衛者也로다
備北詣涪하니 率兵三萬하여 往會之注+涪, 音浮. 涪縣, 屬廣漢郡.러니 張松 令法正白備하여 於會 襲璋한대
龐統曰 如此 則無用兵之勞而坐定一州 不可失也니이다 備曰 初入他國하여 恩信未著하니 此不可也라하고 歡飮百餘日하다
增備兵하고 厚加資給하여 使擊張魯하니 備北到葭萌하여 厚樹恩德하여 以收衆心注+葭萌縣, 屬廣漢郡.하다


辛卯年(211)
나라 孝獻皇帝 建安 16년이다. 봄 정월에 曹操가 그의 아들 曹丕으로 삼아 丞相로 삼았다.注+나라 때 五官中郞將光祿勳에 소속되었고, 일찍이 丞相가 된 적은 없었다.
】 3월에 鍾繇를 보내어 張魯를 공격하게 하였다.
馬超韓遂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가을에 曹操가 이들을 격파하였다.
】 처음에 曹操鍾繇를 보내어 張魯를 토벌하게 하고 夏侯淵 등으로 하여금 河東으로 출동하여 종요와 만나게 하였는데,注+夏侯淵夏侯惇族弟이다.
倉曹屬官高柔가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注+公府倉曹는 창고에 저장된 곡식에 관한 일을 주관하였는데, 屬官이 있었다. “대군이 서쪽으로 나가게 되면 韓遂馬超는 자기들을 습격할 것이라고 의심하여 반드시 서로 선동할 것이니, 마땅히 먼저 長安三輔 지방을 招諭하여 평안하게 해야 합니다.
삼보가 만일 평안하면 漢中(張魯)은 檄文만 돌리고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자, 關中의 여러 장수들이 과연 의심하여注+曹操關中을 버리고 멀리 漢中張魯를 정벌한 것은 옛날 조조는 馬超韓遂를 토벌하고자 하였으나 명분이 없으므로 먼저 장로를 토벌하는 형세를 만들어서 그의 배반을 재촉한 뒤에 군대를 내어 공격한 것이다. 마초와 한수 등 10가 모두 반란을 일으켜서 그 무리 10만 명이 潼關을 점거하고 주둔하였다.注+10馬超, 韓遂, 侯選, 程銀, 楊秋, 李堪, 張橫, 梁興, 成宜, 馬玩을 이른다. 潼關弘農郡 華陰縣에 있다.
7월에 조조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이들을 공격하였는데, 8월에 동관에 이르러서 은밀히 두 명의 장수를 보내어 蒲阪津을 건너가 河西(황하의 서쪽)를 점거하여 진영으로 삼게 하였다.注+두 장수는 徐晃朱靈이다. 蒲阪津蒲阪縣 서쪽에 있으니, 河西나라의 蒲津關이다.
】 윤8월에 曹操가 북쪽으로 黃河를 건널 적에 병사들을 먼저 건너게 하고 조조 자신은 홀로 100여 명과 함께 南岸에 남아 뒤를 차단하였다.
馬超步兵騎兵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여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으나, 조조는 여전히 胡床에 걸터앉아서 동요하지 않았다.注+
馬超가 渭水에서 曹操와 크게 싸우다馬超가 渭水에서 曹操와 크게 싸우다
胡床은 그 제도가 본래 오랑캐에서 나왔는데, 나라에서는 圖讖書자가 있다 하여 이름을 交床으로 바꾸었다.
許褚曹操를 부축하여 배에 올랐는데 뱃사공이 流矢에 맞아 죽자, 허저가 왼손으로 말안장을 들어 조조의 몸을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노질하였다.注+(노를 젓다)은 음이 이다.
校尉 丁斐가 소와 말을 풀어놓아 적을 유인하자, 적들이 어지럽게 소와 말을 취하니, 조조가 비로소 黃河를 건널 수 있었다. 마침내 蒲阪으로부터 西河를 건너 황하를 따라 甬道(용도)를 만들고서 남쪽으로 가니, 馬超 등이 후퇴하여 渭口를 지키며 저항하였다.注+渭口渭水의 어구이니, 위구의 동쪽은 바로 潼關이다.
조조는 마침내 疑兵을 많이 만들어놓고 은밀히 군대를 보내어 渭水로 들어가서 浮橋를 만들게 하고 밤에 병력을 나누어 위수 남쪽에 진영을 만들었다. 마초 등이 밤에 진영을 공격하자, 伏兵이 이들을 격파하였다.
】 9월에 曹操가 진군하여 모두 渭水를 건너가니, 馬超 등이 여러 번 도전하였으나 조조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마초 등이 〈河水 서쪽 지역의〉 땅을 떼어줄 것과 任子(인질)를 보낼 것을 굳이 요구하자, 賈詡(가후)는 거짓으로 허락해야 한다고 하였다.
조조가 다시 계책을 묻자, 가후가 말하기를 “이간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하니, 조조가 “알았다.”注+는 앎이다.라고 하였다. 韓遂가 조조와 만나볼 것을 청하였는데, 조조는 한수와 구면이 있었다.注+三國志≫ 〈魏書〉에 “曹操韓遂의 아버지와 같은 해에 孝廉에 천거되었고, 또 한수와 동시대의 동년배이다.” 하였다.
이에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한동안 말하였으나 군대의 일을 언급하지 않고 다만 都城에 있을 때의 옛일을 말하면서 손뼉을 치고 즐겁게 웃었다.
이때 구경하는 지역의 사람과 오랑캐가 전후로 매우 많았는데,注+, ”는 지역의 사람과 오랑캐이다. (거듭)은 平聲이니, “重沓”은 重疊하고 雜沓한 것으로 구경하는 사람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조조가 웃으며 이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曹公을 보고 싶은가. 조공 또한 사람이니, 네 개의 눈과 두 개의 입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지략이 많을 뿐이다.” 하였다.
曹操韓遂가 헤어지자, 馬超 등이 한수에게 묻기를 “曹公이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특별히〉 말한 바가 없다.” 하였다. 마초 등이 이 말을 의심하였는데, 후일에 조조가 한수에게 편지를 보낼 적에 글자에 점을 찍고 개칠한 것이 많아 마치 한수가 내용을 고친 것처럼 하니, 마초 등이 더욱 한수를 의심하였다.注+〈“交馬語移時……拊手歡笑”와 “操與遂書 多所點竄”의〉 두 가지는 모두 〈曹操韓遂馬超를〉 이간질하기 위한 것이다. “點竄”은 塗注라는 말과 같으니, 편지 가운데의 글자 중에 덧칠하여 지우거나 고쳐 쓴 부분이 많이 있음을 이른다.
조조는 마침내 마초와 날짜를 정하여 교전해서 대파하니,注+(약정하다)은 과 통하니, “克日”은 그 날짜(교전할 날짜)를 정하는 것이다. 한수와 마초가 涼州로 달아나므로 조조가 安定까지 추격하고 돌아왔다.
諸將들이 曹操에게 묻기를 “처음에 潼關을 지킬 적에 渭水 북쪽의 길이 망가져서 방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注+은 망가져 방비를 갖추지 못함을 이른다. 께서 河東을 따라 馮翊을 공격하지 않고 도리어 동관을 지키시다가 날짜를 지체한 뒤에야 북쪽으로 황하를 건넌 것은 어째서입니까?”注+은 오래 끎이다. 하니,
조조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내가 河東으로 들어갔으면 적이 반드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여러 나루터를 지켰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우리가 西河를 건너갈 수가 없다. 내가 일부러 군대를 크게 진열하여 동관을 향하게 해서 적들로 하여금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남쪽을 지키게 함으로써 서하의 수비가 허술하게 되었기 때문에 徐晃朱靈 두 장수가 서하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런 뒤에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도하하니, 적이 우리와 다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레를 연결하고 木柵을 세우고 甬道를 만들어 남쪽으로 간 것은 적이 이미 우리를 이길 수 없게 만들어놓고 또 이로써 적이 약점을 보이게 한 것이고,注+
渭水를 건넌 다음 견고한 보루를 만들고서 적이 쳐들어와도 출전하지 않은 것은 적을 교만하게 하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적이 진영과 보루를 만들지 않고 땅을 떼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내가 순종하는 말로 그들의 요구에 응해서 적들로 하여금 대비하지 않게 하고, 이를 틈타 士卒의 힘을 비축했다가 하루아침에 공격하였으니, 이른바 빠른 우레에 미처 귀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注+〈“疾雷不及掩耳”는〉 군대의 변화는 진실로 한 가지 방법이 아니다.”
】 처음에 關中의 장수들(馬超, 韓遂 등)이 한 부대를 이끌고 도착할 때마다 曹操는 번번이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다. 장수들이 그 이유를 묻자,
조조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중은 길이 머니, 만약 적이 각각 험한 곳을 의지하여 막으면, 이들을 정벌할 경우 1, 2년을 허비하지 않으면 평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모두 와서 모이니, 그 무리가 비록 많으나 주장하여 주인이 될 사람이 없어서 일거에 섬멸시킬 수 있다. 내 이 때문에 기뻐한 것이다.”
〈관중을 평정하고〉 조조는 마침내 夏侯淵을 남겨두어 長安에 주둔하게 하고, 張旣京兆尹으로 삼아서 流民들을 불러 회유하고 縣邑을 회복시켰다.
】 겨울에 劉璋使者를 보내어 劉備를 맞이하자, 유비가 군대를 남겨두어 荊州를 지키게 하고 서쪽으로 진출하니, 유장이 유비로 하여금 張魯를 공격하게 하였다.
扶風 사람 法正劉璋軍議校尉가 되었는데 유장은 그의 계책을 제대로 쓰지 못하였고,注+軍議校尉는 그로 하여금 군사의 일을 의논하게 한 것이다. 법정은 답답하여 뜻을 펴지 못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임시로 붙어사는 것이다. 는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邑邑”은 즐겁지 않은 뜻이다.
益州別駕 張松이 법정과 친하였는데, 그 또한 자기 재주를 자부하여 유장과는 함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는 인하여 유장에게 劉備와 결탁할 것을 권하였다.
張松張松
유장이 말하기를 “누구를 使者로 보낼 만한가?” 하니, 장송이 이에 법정을 천거하였다. 법정은 일단 사양하고 거짓 부득이한 체 길을 갔다가 돌아와서 장송에게 유비가 雄大한 지략이 있다고 말하고는注+還爲”의 (에게, 향해)는 去聲이다. 은밀히 유비를 추대하여 의 주인으로 삼을 것을 모의하였다.
】 마침 〈曹操의 장수〉 鍾繇(종요)가 漢中으로 향하고자 하니, 劉璋이 두려워하였다. 張松이 인하여 다음과 같이 유장을 설득하였다.注+(설득하다)는 輸芮이다.曹公의 군대는 天下無敵입니다. 만약 張魯의 물자를 이용하여 지방(益州)을 취하려 하면 누가 능히 그를 막겠습니까.
劉豫州(劉備)는 使君宗室이고, 조공의 깊은 원수입니다. 유예주는 用兵을 잘하니 만일 유예주로 하여금 장로를 토벌하게 하면 장로가 반드시 격파될 것입니다.
장로가 격파되면 우리 益州가 강해질 것이니, 조공이 비록 공격하러 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의 장수들은 을 믿고서 교만 방자하여 밖으로 향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니,注+〈“欲有外意”는〉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귀의하고자 함을 이른다.
유예주를 얻지 못하면 적은 그 밖을 공격하고 백성들은 그 안을 공격할 것이니, 이는 반드시 패망할 방도입니다.” 유장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法正을 보내어 유비를 맞이하게 하였다.
劉璋主簿黃權이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左將軍(劉備)이 용맹하다는 명성이 있으니,注+曹操表文을 올려 劉備左將軍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를 좌장군이라고 칭한 것이다. 는 용감함이다. 이제 그를 부하로 대우하면 그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손님의 예로 대우하면 한 나라에는 두 군주를 용납하지 아니하여, 만약 객에게 泰山의 편안함이 있으면 주인에게는 累卵의 위태로움이 있을 것이니, 국경을 폐쇄하여 시절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從事 王累는 직접 의 문에 거꾸로 매달려서 간하였으나, 유장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注+(매달다)은 으로 읽는다.
法正荊州에 이르러 은밀히 劉備를 설득해서 益州를 점령하게 하자, 유비는 의심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龐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주는 황폐하여 인물들이 모두 없어졌고 동쪽에는 孫車騎(孫權)가 있고 북쪽에는 曹操가 있으니, 우리가 뜻을 얻기가 어렵습니다.注+劉備表文을 올려 孫權車騎將軍으로 삼았기 때문에 孫車騎라고 칭한 것이다.
지금 익주는 戶口가 백만이고 토질이 비옥하고 재정이 풍부하니, 진실로 이곳을 얻어 밑천으로 삼으면 大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
劉備는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지금 나와 물과 불처럼 서로 반대된다고 지목되는 자는 曹操이다.注+물과 불이라고 말한 것은 그 성질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조조가 급함으로써 하면 나는 너그러움으로써 대응하고, 조조가 포악함으로써 하면 나는 인자함으로써 대응하고,
조조가 속임수로써 하면 나는 충성으로써 대응하여 매번 조조와 반대로 해야만 일을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작은 이익 때문에 천하에 信義를 잃는다면 어찌하겠는가.”
龐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에는 진실로 한 가지 방법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古人이 귀하게 여긴 바입니다.
만약 일이 평정된 뒤에 劉璋에게 大國을 봉하면 어찌 信義를 저버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益州를 취하지 않으면 끝내 남의 이로움이 될 뿐입니다.”
劉備는 그의 말을 옳게 여겨서 諸葛亮關羽 등을 남겨두어 荊州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직접 步兵 수만 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출하였다.
孫權劉備가 서쪽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는 선박을 보내어 누이(유비의 부인)를 맞이해오게 하였는데, 병사들이 유비의 아들 劉禪을 데리고 가고자 하였다.注+軍人은 ≪資治通鑑≫에는 夫人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張飛, 趙雲이 군대를 무장하여 강을 막아서 비로소 유선이 돌아올 수 있었다.
趙雲과 張飛가 강을 막고 劉禪을 구하다趙雲과 張飛가 강을 막고 劉禪을 구하다
劉璋所在地(沿途郡縣)마다 명하여 劉備供奉하고 선물을 주게 하니, 그 비용이 巨億으로 헤아려졌다. 巴郡太守 嚴顔이 가슴을 치며 탄식하기를 “이는 이른바 홀로 궁벽한 산속에 앉아서 호랑이를 풀어놓아 자신을 호위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유비가 북쪽 涪縣으로 진출하니, 劉璋이 3만의 병력을 인솔하고 가서 유비와 만났는데,注+는 음이 이니, 涪縣廣漢郡에 속하였다. 張松法正으로 하여금 유비에게 아뢰어 회의 석상에서 유장을 기습하게 하였다.
龐統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전쟁하는 수고로움이 없이 가만히 앉아서 한 를 평정하는 것이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유비가 말하기를 “내가 막 다른 나라에 들어와서 은혜와 신의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것은 불가하다.” 하고는 유장과 즐겁게 만나 백여 일 동안 술을 마셨다.
유장은 유비에게 병력을 증원해주고 물자를 후하게 주어서 張魯를 공격하게 하니, 유비가 북쪽으로 葭萌縣(가맹현)에 이르러서 은혜와 덕을 크게 베풀어 민심을 수합하였다.注+葭萌縣廣漢郡에 속하였다.


역주
역주1 五官中郞將 : 五官將이라고도 한다. 여러 殿門의 宿營과 車駕의 경호를 담당하였다. 또한 使者로도 파견되었다.
역주2 曹操以其子丕……爲丞相副 : “丞相의 副는 예전에는 있지 않았으니, 曹操가 관직을 독점하고 專橫한 것이 이때에 심하였다. ‘조조가 그 아들 조비를 〈승상의 부로 삼았다.〉’라고 썼으니, 이는 그를 죄책한 것이다. 이로부터 司馬昭는 그의 아들 司馬炎을 副相國으로 삼았고, 高歡은 그의 세자 高澄을 보내어 鄴城에 들어가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고, 徐溫은 그의 아들 徐知訓을 남겨두어 江都에서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조조가 가르친 것이다.[丞相副 前乎此未有也 操之專錮 於是爲甚焉 書曰曹操以其子丕 罪之也 自是司馬昭以其子炎副相國 高歡遣其世子澄 入鄴輔政 徐溫留子知訓江都輔政 皆操之敎也]” ≪書法≫
역주3 晉나라가……계책이다 : 晉나라가 虞나라에 많은 뇌물을 주면서 길을 빌려 虢나라를 치려 하자, 虞나라의 賢臣인 宮之奇가 虞나라와 虢나라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輔車相依]’와 같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관계[脣亡齒寒]’와 같으니, 그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고 간하였다. 그러나 虞나라 임금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가, 끝내는 晉나라가 虢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虞나라까지 멸망시킨 고사가 전한다.(≪春秋左氏傳≫ 僖公 5년)
역주4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虎士 : 범과 같이 용맹한 병사로, 周나라 때 虎賁氏에 소속되어 있던 戰士를 이른다. ≪周禮≫ 〈夏官 司馬 下〉에 “호분씨는 下大夫가 2명, 中士가 12명, 府가 2명, 史가 8명, 胥가 80명, 虎士가 800명이다.” 하였다. ≪三國志≫ 〈魏書 許褚傳〉에 “許褚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太祖(曹操)에게 귀의하자, 태조는 즉일에 허저를 都尉로 임명하고 들어와 宿衛하게 하였으며, 허저를 따르던 여러 빈객들을 모두 虎士로 삼았다.”라고 보인다.
역주6 兵法에……하였다 : ≪孫子≫ 〈軍形〉에 나오는 말로, 여기에 “옛날에 전쟁을 잘한 자는 먼저 〈수비를 잘하여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틈을 기다렸으니, 승리할 수 없음은 자기에게 달려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달려 있다.[昔之善戰者 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不可勝 在己 可勝 在敵]”라고 보인다.
역주7 淮南子의 말이다 : 이 말은 ≪淮南子≫에 보이지 않고, ≪六韜≫ 〈軍勢〉에 “빠른 우레에 미처 귀를 막지 못하고, 빠른 번개에는 미처 눈을 감지 못한다.[疾雷不及掩耳 迅電不及瞑目]”라고 보인다.
역주8 益州로……받으니 : ≪三國志≫ 〈蜀志 法正傳〉에 法正은 扶風 郿縣 사람으로 同郡의 孟達 등과 蜀으로 들어왔으며, 같이 온 사람들에게 품행이 없다는 비방을 받았다고 하였다.
역주9 약한……공격하며 : 원문의 “兼弱攻昧”는 ≪書經≫ 〈商書 仲虺之誥〉에 보이는데, 약한 나라를 겸병하여 취하고 어두운(혼우한) 자를 공격하여 멸망시킴을 이른다.
역주10 逆으로……지킴 : 원문의 “逆取順守”에서 逆은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고 順은 이치를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처음 천하를 취할 적에는 道德과 仁義를 돌아보지 않고 權謀術數를 사용하며, 천하를 얻은 뒤에는 도덕과 인의를 행하여 순리대로 나라를 지킴을 이른다.

자치통감강목(11)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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